[사설] 제67회 고신총회에 바란다
장로교 정치에 있어서 총회는 교회가 아니다. 당회와 노회처럼 상설치리회도 아니다. 총회의 직무는 명확하다. 총회는 소속된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을 위해 하회에서 청원한 것과 교회의 분쟁을 접수하여 처리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노회를 설립하거나 합병하고, 신학대학원을 설치하여 운영하므로 교역자를 양성하고, 국내외의 개혁주의 교회들과 친교를 도모한다. 여기에 그 어떤 교권이 필요한가? 그런데 우리는 총회 총대가 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총회임원이며 이사회 및 각 위원회 임원이 되는 것을 대단한 감투로 생각하면서 교권이 형성되는 것을 본다. 총회가 마치 상설치리회인 것처럼 과도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총회는 교권형성의 장이 되어서도, 교권행사의 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
올해는 개신교 모든 교단이 예외 없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올해 총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총회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올 한 해 동안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종교개혁의 의의를 살피는 시간들을 가져왔다. 이번 총회는 이렇게 종교개혁 500주년을 가슴속에 새기면서 새로운 500년을 향해서 힘차게 출발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사역자들을 일으키셔서 교회가 새로워지고, 신자가 자유를 누리고, 사회가 변혁된 놀라운 역사가 이 시대에, 이 땅에 다시금 일어나기를 간절히 구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어 개신교회가 어느새 로마교회처럼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고 공로를 내세우는 자리에 서 있기에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해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이번 주에 제67회 고신총회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다. 고신 총회는 시작되기도 전에 어수선함을 넘어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한 분위기다. 총대원들에게 괴문자가 여러 차례 발송되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충격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총회 문자발송시스템을 이용하여 남의 이름을 도용하여 거짓된 내용을 발송했다. 총회 회계의 이름으로 부총회장을 비난하는 문자가 발송되었다. 그리고 양심선언이라고 해서 총회 재무실장의 이름으로 문자가 발송되었는데 순환보직을 하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몇몇 사람들과 짜고 사무총장의 문제를 코닷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남의 이름을 도용하여 문자를 발송하고는 그 문자발송시스템의 비밀번호를 변경해서 접근이 불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아마도 고신교단이 시작되고 나서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누가 이런 부끄러운 일을 감행했는지에 대해 추측성 소문만이 돌고 있으니, 총회는 하루속히 엄격하고 정확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지 조직이기주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총회 산하의 기관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자기 조직을 비대하게 만들고, 조직원들의 편리를 추구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넘었다. 총회 직원들은 교단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혈세를 거두어서 월급을 받는 것과 같다. 그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갑질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총회 산하 기관들의 존재의미가 무엇인가? 서로 협력하여 교단교회들을 도우는 것이다. 교회들이 힘 있게 서 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개 교회가 할 수 없는 것을 연합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총회 기관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총회마저 파국으로 몰아가려고 하니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개혁 500주년에 개혁자들이 성경에서 발견했던 진리가 부인할 수 없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 어떤 선한 것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악한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다. 이번 일은 어떤 특정인물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 모두 솔직히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이다.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나 자신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이번 총회에 우리는 어떤 자랑거리를 내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총회 기간에 있을 종교개혁 500주년 대회도 그 빛을 바랬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입에 들먹이는 것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나 부끄럽고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야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을 하려고 일어선 인물들이 아니었다. 오직 말씀 앞에서 가장 작은 자로 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일으켜 주셨다. 이번 총회에서 우리는 임원선거, 노회구역조정, 교육원과 출판국의 통합논의 등에서 모든 정치적인 입김이나 개인과 조직의 유불리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입에 올리고, 개혁주의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이미 드신 것을 보지 못한다면 고신총회는 더 큰 부끄러움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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