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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제66회 고신총회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보고하여 총회가 받은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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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유광 명예교수

 

 

 

             매사(每事)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나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며, 크고 웅장한 건물을 갖춘 교회를 사람들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제자들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13:2)”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순절 후 1만 명 이상이 모이던 예루살렘 교회를 사방으로 흩어 보내신다.(행8:1)

             영광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굳건히 세워진 교회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이다. 그의 뜻에 순종하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교회만이 교인의 숫자나 교회당의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비난한다. 한국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참된 교회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아래의 건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시도 중 하나이다.

 

             동부산 노회장 박성배 목사는“개체교회 적정 규모 및 최대 규모에 대한 연구 건의”를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제66회 총회에 제출했다. 아래는 이 건의의 제안 설명이다.[1]

 

 

종교개혁 500 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국 개신교는 지난 120년 동안 온 세계 교회가 주목할 만큼 괄목할 성장을 이루어 왔으나 근간 그 성장세가 급격히 저조 되어 마이너스 성장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대형교회와 초대형교회가 기형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개체교회 간에 수평이동이 심화되고 이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개체교회의 균형적 성장이 깨어지고 개교회주의가 만연됨으로 개신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고신교회는 부산노회 영도시찰과 일부 몇몇 교회에서 보여준 분립개척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대형교회 및 초대형교회의 출현이 적절하게 자제되어 왔지만 근간 몇몇 교회가 대형 교회화 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바 개체교회의 적정 규모 및 최대 규모에 대한 총회 행정적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이 시급하게 요구됩니다.

현행 헌법 교회정치‘제2장 교회’에서 개체교회의 설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인‘장년교인 2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은 제14조 2항에서 제시하고 있으나 개체교회의 적정규모 및 최대 규모에 대한 조항은 없으므로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를 정하여 제시함으로 각 개체교회가 적정규모로 성장하게 되면 분립 개척을 자발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개체교회의 최대 규모를 정하여 계도함으로 개체교회의 규모가 노회 규모보다 더 크게 되는 기형을 방지하고 행정질서를 원만하게 세울 수 있도록 총회 차원에서 성경적, 신학적, 목회학적으로 연구하여 개체교회의 적정 규모 및 최대 규모를 제시하여 주시기를 건의하오니 살펴보시고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총회는 이를 아래와 같이 결정하여 신학위원회에 배정하였다.동부산노회장 박성배 목사가 청원한‘개체교회 적정규모 및 최대 규모에 대한 연구 건의’의 건은 신학위원회에서 1년간 연구하여 보고하기로 가결하다.”[2]

 

             본고의 주제는 위의 건의에 따른 개체교회의 적정규모와 관련된 것이다. 개체교회의 적정 규모 및 최대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할 것인가에 더하여 교회의 최소규모는 얼마인가를 추가하여 제시하려고 한다. 필자는 먼저 성경의 원리를 찾아보려 한다. 그리한 후에 교회 역사와 개혁신학 그리고 사회학으로부터 대답을 찾아보고, 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의 목회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려 한다.

 

 

1. 개체교회의 적정규모에 대한 성경의 원리

 

   1) 성경은 개체교회의 적정 규모에 대해 무엇을 말하나?

             성경은 개체교회의 적정 규모나 최대 규모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이 교회의 규모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직후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세례를 받아 예루살렘 교회에 더해졌다(행2:41). 얼마 후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켜 걷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 뒤 사도들이 예수 안에 있는 부활을 선포하고 가르쳤을 때에 남자만 5천 명이 믿고 교회로 들어왔다(행4:4). 여기에 여자를 포함한다면 예루살렘 교회는 1만 명 이상에 달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또 집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행2:46, 행5:4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큰 은혜 안에 영광스런 교회를 이루었다(행4:32-37).

             그러나 이런 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있었고, 구제 문제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의 다툼이 일어났다. 교회는 위기에 부닥쳤다. 그러나 열두 사도들이 구제를 전담하는 일곱 사람을 세우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함으로써“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는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수적(數的)부흥도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큰 박해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은 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도록 허락하실 때가 있다. 그러나 또한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자체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님도 알 수 있다.

             안디옥 교회의 경우를 보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때문에 흩어진 자들 중 일부가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함으로써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해서 그 교회를 양육하게 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불러내어 동역하므로 큰 무리를 가르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교회로 발전하였다(행11:19-30).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안디옥 교회에 세워지고‘본격적’으로 양적인 성장을 기대해 볼만한 때에 성령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하여 선교사로 보내신다(행13:1이하). 여기서도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의 수적인 성장보다 주 예수의 복음이 타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심을 알게 된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나타난 교회들을 보면 성전이나 두란노 서원과 같은 큰 장소를 이용하여 모이기도 하고, 가정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로마에는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가 셋에서 다섯 군데 정도 있었다는 로마서 16장을 근거로 한 추측도 있다.[3] 비록 변종길은 다음의 주장에 강하게 반대하긴 하지만[4] 브레닉, 박응천 그리고 조병수는 고린도전서 14:23을 근거로 고린도에 가정교회가 여러 개가 있었고, 때때로 이들이‘온 교회’로 연합하여 모였다고 추측한다.[5]

주후 50년 경에 기록된 야고보서 2:2에는‘회당’이 언급된다. 이 회당은 유대주의자들의 회당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처소로 볼 수 있다고 변종길은 말한다.[6] 이상에서 볼 때에 초대 교회의 집회 장소는 교인들의 숫자에 따라, 초기에는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의 규모가 커감에 따라 더 큰 장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 개체교회의 규모에 대해 성경이 언급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은 개체교회의 적정규모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가? 필자는 성경이 가르치는 목사의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개역개정 한글성경에는‘목사’라는 단어가 에베소서 4:11에 유일하게 한 번 등장한다.‘목사’로 번역된 헬라어는‘포이멘’(ποιμήν)이며, 원 뜻은‘목자’이다. 신약원어성경에 총 18회 나오는 단어인데[7] 엡4:11 외에는 개역개정에서 모두‘목자’로 번역되었다. 개역개정 구약성경에는‘목사’라는 단어는 당연히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라아’(רָעָה)라는 단어가 164회 나오며 이 중 개역개정에‘목자’로 번역된 것이 총 80회 등장한다.

             ‘라아’와‘포이멘’이 목사의 역할에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는 대표적인 부분은 이사야 40:11과 에스겔 34장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21장과 베드로전서 5장이다. 이 성구들을 중심으로 이제 목사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에스겔 34장1-6절은 당시 유다의 왕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을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의 임무 태만과 직무 유기 나아가 지위를 이용한 백성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지도자들의 비리를 지적한 에스겔은 참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악한 목자들을 벌하시고, 백성들을 회복시키며 강하게 하실 것을 34:7-16에서 밝히신다. 에스겔 34장의 말씀은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에게 연결할 수 있다. 이제 이사야 40장, 에스겔 34장과 요한복음 10장, 요한복음 21:15-18에서 베드로에게 양을 돌보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베드로전서 5:1-4에서 베드로 사도가 당시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목사의 역할과 연결하여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① 좋은 꼴, 살진 꼴을 먹인다. (사40:11; 겔34:14; 요10:9, 21:15, 17)

   ② 양을 품어주며 좋은 우리에 누워있게 한다. (사40:11; 겔34:14-15)

   ③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불러 쉬게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는 직무이다.

   ④ 잃어버린 자를 찾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쌔매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한다. (겔34:16)

   ⑤ 양무리 중 하나하나를 잘 알고, 세심하게 보살피며 각 양의 필요를 채워주며 돌본다. (사40:11; 겔34:16; 요10:14, 21:16; 벧전5:2)

   ⑥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한다.(요10:11)

   ⑦ 양들이 목자의 것이 아니요 목자장 되시는 주님의 소유임을 기억하고, 양들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구하지 않고 목숨까지도 버린다. (겔34:6, 8, 11-16; 요10:11, 15, 21:15-17; 벧전5:2)

   ⑧ 양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않고 양무리의 본이 된다. (요10:4; 벧전5:3)

   ⑨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인도한다. (요10:16)

   ⑩ 악한 양들을 주의하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긴다. (겔34:17-22)

위에 열거한 목자의 책임을 오늘 목사들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의 책임 중 특별히 교회의 적정규모와 관련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목사는 자신이 맡은 양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알아야 한다.

   ② 목사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여야 한다.

   ③ 목사는 교인들 각각에게 필요한 치유와 회복을 베풀어야 한다.

   ④ 목사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한다.

             이런 목자, 이런 목사가 되려면 양떼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가능해질 것이다. 예수님은 비유를 드실 때에 일백 마리의 양을 돌보는 목자를 말씀하신다. 여기서‘일백 명’의 교인이 교회의 적정규모라고 단정지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목사 외에 장로와 집사가 있고 교회학교 교사도 있다. 목사가 이들과 함께 목회를 할 때에 세심하게 돌볼 수 있는 교인의 수는 일백 명을 훨씬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팀이 되어 ‘일백 명’이 훨씬 넘는 교인들을 신실하게 돌볼 때에, 전도를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몇몇 사람들을 추가로 알아가며 돌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2. 교회 역사가 교회의 적정규모에 대해 주는 교훈

 

             교회 역사가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을 추적하면서 오늘 한국교회의 적정규모에 대한 교훈을 찾아보려고 한다. 적정규모와 관련된 자료를 다 다룰 수는 없고 역사상 교회의 규모를 알 수 있고 본 주제와 관련된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본다.

 

   1) 예루살렘 교회

             앞서 본 대로 예루살렘 교회는 1만여 명의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부닥친 핍박으로 말미암아 각지로 흩어져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를 이루게 되었을 때에 한 교회의 교인 수는 1백 명을 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정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는 ‘회당’을 예배 장소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행전 1-12장을 근거로 생각할 때에 베드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목회자였지만 그는 결코 혼자서 사역을 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랐으며 다른 동역자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교회를 돌보았다. 이런 그의 모습은 벧전5:1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기독교가 국교화 된 4세기 이후

             역사상 초대형교회의 등장에 대해 스나이더는 이렇게 말한다.“역사를 통틀어 초대형 교회는 특히 4세기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이래로 번창했다(그리고 쇠퇴했다).”[8](주후 313년)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건축된 초대형 교회당 건물을 통해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기독교의 국교화(392년)와 함께 교구(敎區)가 형성되고, 지역의 한 교회는 전 주민을 품게 되었기 때문에 초대형 교회가 형성된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형교회의 형태는 종교개혁 시대까지 이어졌다.

 

   3) 종교개혁기

             종교개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칼빈의 제네바 교회를 생각해 본다. 나피(Naphy)에 의하면 1530년대의 제네바 인구를 약 10,000 명으로, 피난민들을 포함하면 약 17,000 명으로 추산한다.[9] 당시 제네바 시에 세 교회당이 있었고 여기에 여덟 명의 설교자가 있었고 열 명의 교구목사가 있었다.[10] 대략 목사 1인당 약 1천명의 교인들을 돌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는 중세의 제도가 남아있어 교구를 중심으로 한 교회조직이 유지되고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목사가 돌보아야 할 인원이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1만 명 이상의 교인을 돌보는 제네바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목회와 제네바 시의회와의 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책임을 지며 목회를 했다.

             개혁자 칼빈의 경우를 볼 때에, 목회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해야 할 경우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적정규모의 원칙을 모든 목사나 교회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목자’의 자세를 목회자는 신실하게 견지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을 때에 목회 대상 인원에 있어 예외를 허락할 수 있다고 하겠다.

 

   4) 종교개혁기 이후

             칼빈의 제네바 사역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영국교회의 형편을 리차드 백스터 청교도 목사의 경우를 들어 본다. 그의 책,『참된 목자』(1656)의 서론에서 J.I. 패커는 백스터가 목회했던 키더민스터 시의 형편을“800 여의 가호와 2,000여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소개한다.[11] 그리고 백스터는 그 책에서“우리들은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 일에 전념하여 일주일에 십오륙 가구를 심방하며 교구를 돌아다녀 일 년이면 팔백여 가구를 심방합니다.”[12]라고 했다.‘우리들’이라고 한 것을 볼 때에 몇 명의 사역자가 함께 2,000여 명의 교구 사람들을 돌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벡스터를 중심으로 몇 사역자들이 팀으로 한 목회이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이 이루어졌다.

             낭트칙령(1598)을 통해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프랑스에서 유그노 건축가(Jacques Perret)는 1601년에 발간된 그의 책에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개신교회당의 청사진을 제시했다.[13] 그의 생각은 현실화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가 구상했던 1만 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회형태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유그노로서 칼빈의 개혁신학의 영향을 받았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1만 명이 모이는 교회당을 구상했다는 것 자체는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에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중세 동안 국가교회로서 교구제(parish system)를 지니고 있던 서구의 교회는 종교개혁을 지나면서, 조직적인 측면에서 하나 됨이 붕괴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혁교회가 분리되었고, 다양한 신학에 따라 개신교회도 분열되어 교구와 상관없는 이합집산이 이루어졌다. 영국에서는 국교회와 청교도들의 장로회파와 회중교회파로, 독일에서는 루터파와 경건주의를 따르는 교회로, 네델란드에서는 개혁교회와 알미니안 교회로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개신교회는 교구와 상관없이 다양한 규모의 교회들로 나뉘어졌다.

 

   5) 18세기에서부터 현재까지

             조지 휫필드(1714-1770)는 대설교가로서 수천 명이 모이는 집회소를 두 개나 런던에 건축한다.[14] 약 100년 후인 1861년 대설교가 스펄전은 6천 명을 수용하는  Metropolitan Tabernacle을 완공한다. 이런 대교회 현상은 미국으로 이어져 찰스 피니, 헨리 워드 비처가 설교하는 교회들로 이어졌다.[15]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기이후 J. Frank Norris, Dr. G. B. Vick, Billy Sunday 그리고 Billy Graham과 같은 부흥사들의 출현과 교회성장학자들의 이론에 근거해서 많은 대형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다.[16] 이런 현상은 20세기 후반에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대형교회들이 세워졌다. 세계의 50개의 대교회 중 한국의 교회가 23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17]

 

             한국에서 대형교회 추세는 2천년도를 전후해서 담임세습, 목사의 성추문 또는 재정비리와 더불어 여가활동의 확대와 저출산, 진학과 취업의 문제로 인한 신앙생활에 대한 무관심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18] 미국이나 한국의 대형교회의 형성과정을 보면 결국 목회자의 역량과 사회의 문화적 환경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19]

             교회 역사에는 지속적으로 대형교회들이 존재해왔다. 대형교회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불가피했던 것이다. 스나이더는“코끼리와 공룡은 인상적인 동물이지만, 특정한 환경에서만 번창한다.”는 말로서 대형교회가 성경이 제시하는 모범을 보이는 교회는 아니지만,“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20]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기독교역사를 살펴보며 갖게 되는 예감은, 아마도 교회의 최적의 크기가 있는데,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100명 내지는 200명 정도일 것”이라고 제시한다.[21] 스나이더는 지역 교회 공동체라면‘서로’에 대해 알고 돌보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함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22]

            

 

 

3. 교회의 적정규모와 관련하여 사회학에서 얻는 지혜

 

 

 

             교회의 적정규모를 생각할 때에 사회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사회학이 교회의 적정규모를 규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적정규모에 대해 사회학적인 설명은 본 주제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1) 오규훈의 『153 교회』

             오규훈은“교회의 대형화에 대한 우려와 반성, 그리고 대안”이라는 부제를 붙여『153 교회』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23] 그는 이 책에서 교회의 적정규모를 총 153명으로 단정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게 하셨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한 것은 한 개체교회가 포용할 수 있는 최대 규모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 목사가 150쌍의 부부를 목회해도 공동체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까지 포함이 되면 목회자를 추가로 두어야 한다.“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부부와 자녀를 모두 포함해서 공동체의 규모가 150명을 넘지 않을 때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24]

             오규훈이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로 요21:11에 나오는 숫자 153을 제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황당’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153’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아님을 밝히면서 150명 내외의 사람이 공동체를 이룸이 적당함을 강조한다. 그는 “...사람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이른 바‘던바[교수]의 수’를 발표했다. 150명이 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사회관계의‘질’이다.”[25]

             오규훈은 사회학적인 근거를 몇 가지 추가로 든다. 원시부족 사회에서 씨족(clan)의 규모가 약 150명 정도라든가,“수렵시대와 농경시대의 출산율에 근거하여 한 쌍의 부부가... 4대에 이르렀을 때 가족 구성원을 모두 합한 숫자”가 150이라든가. “이는 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본인의 경험을 통해 기억할 수 있는 최대 인원에 해당한다.”고도 말한다. 그는“150명 미만의 집단에서는 사람들 간의 교류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만, 150명을 넘어서면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우두머리도 필요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필요”하게 되므로 교회의 적정규모는 150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도“신기하게도 한 개인이 알고 지내는 사람 수의 평균이 135명으로 나타났”고,“사람들이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숫자가 최대 150명 정도라는 기존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라고 밝힌다.[26]

 

   2) 교회성장학자 윈 안(Win Arn)

             이런 주장은 교회성장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윈 안은“예배를 드리는데 한 교회에 교인 150명 당 전임교역자가 한 사람의 비율로 있어야 한다.”면서 교역자 비율 1:150을 제시한다. 그는 교회성장학자답게 교인 수가 150-200명일 경우 파트타임 교역자를 1인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리고 교인이 200-300명일 경우 전임교역자가 2명 있어야 하고 그런 비율을 교인 수에 따라 유지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이를 도표로 그리면 아래와 같다.[27]

 

 

예배에 참석하는

평균인원

전임 교역자 인원

파트타임 교역자 인원

0-150

1

0

150-200

1

1

200-300

2

0

300-400

2

1

400-500

3

0

500-600

3

1

 

   3) 맥킨토시

             맥킨토시[28]는 교회의 규모에 따라 목회 방식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를 소형교회(15~200명의 예배자), 중형교회(201~400명), 대형교회(401명 이상)로 구분하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목회를 할 것을 권고한다. 소형교회는 관계중심의 특성을 지녀야 하고, 담임목사는 사랑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형교회는 행정가인 목사가 소수의 부교역자와 더불어 프로그램 중심으로 목회를 하게 되며, 대형교회는 다수의 사역자들을 이끄는 지도자(리더)로서 담임목사는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경우 소형교회는 300명까지, 중형교회는 300~1,000명, 대형교회는 1천명 이상으로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형교회가 되면서부터 담임목사는 목자라고 하기 보다는 행정가요 CEO(최고경영자)의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형교회의 담임목사는 목자(牧者 shepherd)라고 하기 보다는 여러 명의 목자를 거느린 목장주(牧場主 rancher)의 모습을 갖추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즉 교인들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줄어들고, 행정가나 조직의 리더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4) 대형교회의 한계

             대형교회를 사회학적인 면에서 다음과 같은 한계 또는 부작용을 볼 수 있다. 조직 유지를 위한 인건비가 대폭증가하게 된다. 나아가 시설 유지의 경비 또한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가난한 교인들은 힘써 헌금한다 해도 이런 현실에 대해 실망감을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대형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출석하기 힘든, 교회의 속성 중 하나인 보편성을 상실한 교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대형교회의 질 높은 프로그램과 소그룹을 통해서 교인들 중 신앙의 내면화와 성숙과 실천에 유익을 얻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명목상의 교인이 증가하며, 헌신은 없는 ‘선데이 크리스찬’ 같은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구경꾼(spectator)들이 늘어나기도 쉽다. 한 교회라고는 하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게 됨에 따라 공동체성을 상실한 교회가 되어 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투표자 2/3의 찬성을 요구하는 장로선출이 매우 어렵다는 데서 쉽게 볼 수 있다. 대형교회에서 일반 교인이 담임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평생 동안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개체교회의 최대 규모를 벗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실적주의 결과주의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피로사회’, 자신의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어‘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유치원아로부터 노인들까지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인격적인 교제가 필요한 시대에 주님의 교회마저도 유기체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조직체의 모습만을 드러낸다면 사람들은 교회를 가까이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것이 ‘가나안 교인’을 증가시키는 원인이중 하나라고 하겠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체로서 친밀한 사귐이 목사와 교인, 교인과 교인 사이에 풍성히 나타나야 한다. 그런 성도의 교통이 있을 때에 그 교회는 적정규모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4. 교회의 적정규모와 연관하여 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의 목회상황에서 고려해야 할 제안

 

   1) 필자가 제안하는 적정규모와 최대규모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를 말할 때에 사회학에서 발견한 사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러나 사40:11; 겔34:16; 요10:14, 21:16; 벧전5:2에서 명하는 대로, 우리 주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되기 위한 최대의 목회 인원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사회학의 원리를 참고하는 것은 합당하다. 따라서 목사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알고, 세심하게 보살피며 각 교인의 필요를 채워주며 돌보기 위해 150명을 적정규모로 보는 것은 지침으로 삼을 만한 숫자라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목회는 담임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승천하시는 주님은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세우실 뿐만 아니라, 장로들과 집사를 두셔서 그의 양무리를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교회에는 교회학교의 교사들도 있다.

             고신교회 교회정치 제10장 제113조는 다음과 같다.“당회를 조직하는 요건은 세례교인 30명 이상과 장로의 자격자가 있어야 한다. 다만 농어촌교회(면 소재지는 제외)는 세례교인(입교인) 20명 이상을 요한다.”[29] 교인들을 돌볼 수 있는 신앙인격과 성령께서 주시는 장로직에 합당한 은사를 갖춘 사람들이 많을 때에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는 150명을 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장로가 돌볼 최소 세례교인이 30명이라고 할 때에 그들 가운데에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다수 포함될 것이고, 이에 따라 어린이를 포함한 개체교회의 적정규모는 출석교인 약 300명 최대규모 약 500명 정도가 될 수 있다.

             졸저 교회문턱에서 필자는 성장하는 교회가 분립개척할 시기를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30]

           대형교회도 필요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인 모두가 서로 잘 알고, 한 담임목사가 교인 전체를 알고 돌보며 양육할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적인 교회가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 이런 교회의 규모는 성인 약 200명에 그들의 자녀 250명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동체성을 살리기를 원하는 교회는, 성인 교인의 수가 250명 정도에 도달하면 그 중 [50명에서] 100명 정도가 나가서 새로운 분립교회를 세우겠다는 내규 또는 정관을 세워야 한다. 이미 25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는 기도하며 논의하는 가운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교회를 분립할 것인지 논의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2) 교회의 최소 규모

             교회의 최소 규모에 대해서 앞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지만, 여기서 간략히 생각해 본다. 교회의 최소규모는 아마도 마태복음 18:20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개척교회를 시작할 때에 두세 사람이 모여서 시작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개체교회 설립에 필요한 교인들의 수는 장년교인(원입, 학습, 세례) 20인 이상이어야 한다.”고 되어있다.[31] 그 이하의 사람들이 모일 때에 헌법은‘기도소’로 부른다.[32] 그리고 목사 1인, 장로 2인 이상으로 구성된 당회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를‘조직교회’라고 한다.[33] 세례교인 30명(농어촌교회 경우 20명) 당 장로 1인을 선출한다고 할 때에 조직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세례교인 60명(농어촌교회 40명)이 있어야 한다. 이를 요약하자면 교회는 두세 사람으로 시작할 수 있으나 최소 20명의 장년교인이 있어야‘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나아가 조직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세례교인 최소 60명과 장로 2인이 있어야 한다.

             두세 사람이 모임으로써 시작된 기도소(개척교회)가‘교회’의 이름을 받고, 나아가‘조직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척을 시작하는 목사가 얼마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일 것이다. 확신에 더하여 이 소명을 이룸에 필요한 신학과 열정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개척을 하는 목사에게 있을 때에 교회는 조직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목사와 가족들과 교회를 위해 영육 간에 후원이 있을 때에 교회는 보다 더 힘차게 자라갈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면 아래와 같다.

   ① 가장 효과적인 개척의 방법은 분립개척이다. 따라서 교인 약 250명 이상 되는 교회는 적극적으로 분립 교회개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며 계획을 세워야 한다.[34]

   ② 분립에 의해 개척이 되지 않고, 목사나 몇몇 사람들에 의해 개척이 시작된 교회도 있다. 이런 교회는 상황이 매우 나쁠 수도 있다. 이런 교회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개척에 소명을 가진 목사는 개척에 나서기 전에 그 지역의 노회의 동의를 얻고, 노회의 조언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 노회의 동의 없이 교회를 개척하지 않도록 총회나 노회가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노회는, 개척교회와 노회 내의 유력한 교회(들)와 연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힘 있는 교회들을 비롯한 노회의 모든 교회들이 개척교회를 지속적으로 도울 길을 찾아 협력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이다. 따라서 노회를 중심으로 서로에 대한 지체의식을 강화하고 서로가 돕고 협력해야 한다. 유력한 교회들 중 하나의 담임목사가 개척교회의 목사를 멘토링 하도록 관계를 맺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④ 협력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재정적으로 개척교회의 목사의 생활에 필요한 경비를 후원하는 것이다. 노회는 매년 개척교회의 현황을 점검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개척교회 목사의 생활비를 후원해야 한다. 그리할 때에 그 교회는 문을 닫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모색해 나아갈 수 있다. 유력한 교회들이 해외선교나 국내 개척교회를 돕는다고 하면서 노회 안에 있는 힘든 교회를 돕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을 일이다.

   ⑤ 재정후원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후원하는 교회가 교인들을 6개월 내지 1년 단위로 개척교회에 파송해서 동역하게 하는 것이다. 단기 해외선교에 참여하는 식으로 국내 전도인 개척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이다. 개척교회의 주일 예배가 최소 20명 이상 모일 수 있도록 주위의 유력한 교회들이 유능한 교인들을 파송해야 한다. 특별히 반주자,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전도의 은사를 가진 이들을 파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개척에 매우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겠다.[35]

   ⑥ 노회 또는 시찰회는 소그룹으로 목회자를 위한 독서모임이나 설교준비모임 그리고 친목모임을 가짐으로써 개척교회 목사를 도울 수 있다.

   ⑦ 오늘날 한 지역 안에 있는 유력한 교회들이 주변의 소규모의 교회들의 교인들을 빨아들이는‘블랙홀’과 같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고신교회는 시찰 내에 있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노회/시찰에 속한 교회의 목회자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돕고 섬길 때에 함께 성장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3) 동사(同事)목사의 활용

             고신총회의 헌법은 목사의 칭호를 열 가지로 열거한다.[36] 이 중 위임목사와 전임목사만이 성경이 말하는‘목사’(엡4:11)와 가르치는 장로(딤전5:17)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따른 다양한 목사의 정당성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그런데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고신교회의 헌법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동사목사’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권주의로부터 자유를 얻은 개혁교회는 목사의 동등권을 확립하였다. 허순길은 이렇게 말한다.[37] “이 목사 세계에 계급이 있을 수 없다. 감독이 사제를 지배하는 것처럼, 한 목사가 다른 목사를 지배할 수 없다고 보게 된 것이다. 이런 목사직에 대한 칼빈의 사상이 개혁교회에는 철두철미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개혁교회에서는 수백 년 동안 목사간의 동권을 지켜오게 되었다.”이어서“...한 교회에 여러 목사가 있을 때에는 목회구역을 나누어 따로 돌보고 설교는 고르게 배정하여 교대로 하며, 교육면에 있어서는 자기 구역 청소년을 맡아 하게 된다.”

             오늘의 현실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단 부목사를 한 명 이상 두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부목사를‘동사목사’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것은‘부목사’의 칭호를‘동사목사’로 바꾸지 않고 담임목사가 시도할 수 있다. 현재 부목사가 맡고 있는 교구에 대해 그로 하여금 담임목사처럼 사역을 하도록 담임목사가 부목사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지도 할 수 있다. 이때에 관심의 초점은 담임목사나 부목사가 얼마나 인격적인 관계를, 서로 간에 그리고 교인들과 형성해 나가느냐에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목사가‘동사목사’의 역할을 원활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수행하는데 따라 분립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사목사’의 칭호를 삽입하는 헌법의 개정은 오래 걸릴 수도 또는 혹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의지를 가지고 부목사와 책임을 분담하고 동사목사로 양육하고 격려할 때에 실질적인 개혁주의의 목사의 동등권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바울사도와 디모데의 관계를 지향하며 겸손히 인내하면서 상호 권면해 나아갈 때에 교회 전체가 서로 사랑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분립 개척도 현실이 되어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교회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오규훈, 『153 교회』의 저자는 한 지역교회의 최대규모는 150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책 후반부에서 조금 충격적인 언급을 한다.[38]

 

             ...교회는 성도 수가 150명 내외일 때 공동체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교회가 성도 수를 150명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본질을 잃지 않고 목회가 가능한 인원을 응용해서 적용하면 약 1,800명 또는 1,800 가정 정도다. 이 정도 숫자라면 대형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숫자는 목회자의 능력이나 교회 구성원의 성숙도, 교회 위치, 교회 전통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800명이라는 숫자는 150명 규모의 공동체를 기본으로 할 때 기본 단위의 공동체가 한 교회 안에 12개까지 가능하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즉 150명으로 구성된 153 공동체가 12개가 될 때의 숫자가 1,800명이다. 또한 나는 담임목회자가 멘토의 위치에서 인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목회 비전을 나누며 함께 동역할 수 있는 부교역자 수가 최대 12명이라고 본다. 따라서 153 공동체의 최대 숫자가 12개 이듯 부교역자의 수도 최대 12명을 넘으면 안된다.

 

             오규훈이 150명을 한 지역교회의 최대 규모로 자신의 주장을 해오다가 갑작스럽게 그 규모를 1,800명으로 늘인 것은, 부교역자들을 동사목사의 성격으로 이해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화란이나 호주에 있는 개혁교회의 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는 교회들은 여러 목회자들이 동사목사의 신분을 가지고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 허순길은,“개혁교회에서 3명 혹은 4명의 목사가 한 교회에서 동사목사로 일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고 언급한다.[39] 결국은 목사와 교인 사이에 얼마나 신앙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느냐가 교회의 규모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하겠다.

 

             교회는 조직체이기도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요 유기체이다. 무엇보다도 각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신실하게 참된 교회의 세 가지 표지를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성례를 거행하며, 권징을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돕는 성도의 교통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 할 때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공동체임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생수에 갈급한 사람들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하고 교회로 나아올 것이다. 그런 선순환이 일어날 때에 개체교회는 최소 규모에서 출발하여 적정 규모로 그리고 최대 규모로 나아가 또 분립이 이루어지는 아름답고 영광스런 주님의 교회가 될 것이다.

 

 

 

 

 


[1]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제66회 회의안 및 보고서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2016), 101~2.

[2]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제66회 총회 중요결정사항 요약, 37. 고신총회, http://kosin.org/board_MBKc61/213183. (2016, 10. 24) 2017, 6. 8 접속.

[3] 에버레트 F. 해리스, 신성수 역, 『사도교회의 역사와 성장』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0), 395~6.

빈센트 브레닉, 홍인규 역,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서울: KCBS, 2005), 102.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Lectio Divina,  http://lectio.tistory.com/1077 (2007, 5. 24) 2017, 6. 9 접속.

[4] 변종길, “가정교회는 성경적인가?” “고린도전서 14:23의 ‘온 교회’가 과연 그런 ‘연합 예배’의 의미인지는 의심스럽다. ‘온(whole)’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홀로스(ὅλος)’는 ‘범위에 있어서 전체에 속하는(pertaining to being complete)’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온, 전체의, 완전한(whole, entire, complete)’으로 번역된다. 즉, ‘부분’에 대해 대비되는 ‘전체’의 개념이다. 따라서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는 문장에서 ‘온 교회’는 가정 교회들의 ‘연합 모임’이라기보다도 [한 개체]교회가 전체로, 즉 공적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의 말은 필자가 덧붙임) 옥산개혁교회, http://cafe326.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R8F1&fldid=EXQy&datanum=187&contentval=&docid=R8F1|EXQy|187|20071103094956&q=%B0%A1%C1%A4%B1%B3%C8%B8%20%BC%BA%B0%E6%C0%FB%C0%CE%B0%A1&search=true#, (2007.11.03.) 2017, 6. 12 접속.

[5] 브레닉, 앞의 책, 31-4. 박응천, “신약에서 본 목회사역” 『성경과 목회』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1994), 44-5. 조병수, 앞의 글.

[6] 변종길, “가정교회는 성경적인가?” 옥산개혁교회,

http://cafe326.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R8F1&fldid=EXQy&datanum=187&contentval=&docid=R8F1|EXQy|187|20071103094956&q=%B0%A1%C1%A4%B1%B3%C8%B8%20%BC%BA%B0%E6%C0%FB%C0%CE%B0%A1&search=true# (2007, 11. 3) 2017, 6. 9 접속.

[7] 개역개정 한글성경에서는 동사형인 ‘포이마이노’(ποιμαίνω)에 ‘목자’를 집어넣어 번역한 마2:6, 유1:12과 계7:17을 포함해서 총 21회(요10:11에는 두 번; ‘목자’로 번역된 엡4:11은 제외)가 나온다.

[8] 하워드 스나이더, 최형근 역, 『교회 DNA』 (서울: IVP, 2006), 90.

[9] William G. Naphy, Calvin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Genevan Reformation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94), 21. 당시 바젤은 9,000-10,000,  츄리히는 5,000-8,000, 베른이 약 5,000 명 인구로 추산한다.

   Foster는 그의 앞의 책, 401면에서 1536년경의 제네바 인구를 13,000 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본다.

[10] 김재성, 『Happy Birthday 칼빈』 (경기도 용인: 킹덤북스, 2012), 86.

[11] 리차드 백스터, 지상우 역, 『참된 목자』 (경기도 고양시: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24.

[12] 백스터, 앞의 책, 49.

[13] David E. Eagle, “Historicizing the Megachurch” Journal of social History (2015), 4.

[14] Eagle, 앞의 책, 6.

[15] 스나이더, 앞의 책, 90.

[16] 2013년 기준으로 1만 명 이상 모이는 미국 교회는 46개, 6천 명 이상 모이는 교회가 100개로 Outreach Magazine은 파악하고 있다.

http://www.outreachmagazine.com/2013-outreach-100-largest-churches-america-page-2.html, 2017, 6. 12 접속.

[17] 대구동신교회, “세계의 50대 교회” http://ds-ch.org/sub06_/50202 (2009, 7. 15), 2017, 6. 12 접속.

[18] 손인웅, “한국교회의 미래”, 뉴스파워,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25587 (2014, 9. 12) 2017, 6. 12 접속.

[19] 찰스 스윈돌, 유정희 역, 『교회의 각성』 (서울: 두란노, 2012), 99-108.

[20] 스나이더, 앞의 책, 91.

[21] 스나이더, 앞의 책, 93.

[22] 스나이더, 앞의 책, 94.

[23] 오규훈, 『153 교회』 (서울: 포이에마, 2013).

[24] 오규훈, 앞의 책 70.

[25] 오규훈, 앞의 책, 56.

[26] 오규훈, 앞의 책, 56~9.

[27] 윈 안, “교회성장에 관련된 제 변수들” C.P. 와그너, 『교회성장학 개론』 (서울: 나단, 1992), 110~1.

[28] 게리 맥킨토시, 남예리 역, 『교회가 다르면 목회가 다르다』 (서울: 권서인, 2010), 113.

[29]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헌법』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11), 293~4.

[30] 현유광, 『교회문턱』 (서울: 생명의 양식, 2016), 315.

[31]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헌법』, 259.

[32] 앞의 책, 261.

[33] 앞의 책, 258.

[34] 동네작은교회의 김종일 목사는 2007년 교회를 개척한 이후 20~30명이 모이면 분립개척을 시도했다. 2015년 11월 현재 다섯 개의 지역교회로 분립했다. 뉴스미션, “[교회탐방] 30명 되면 분립...공동체 키우는 ‘동네작은교회’” http://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63115 (2015, 11. 2), 2017, 8. 4 접속.

[35] 인천중앙교회(담임목사 안덕수)는 임직식을 한 후 44명의 새로운 직분자들을 지역의 5개 작은 교회에 파송했다. 한국성결신문, “일꾼 세워 남 주는 교회 ‘감동’” http://m.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986 (2015, 4. 8), 2017, 8. 4 접속.

[36] 앞의 책, 271. 열 가지 칭호는 다음과 같다. 위임목사, 전임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기관목사, 종군목사, 선교사, 무임목사, 은퇴목사, 원로목사.

[37] 허순길,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 (서울: 총회출판국, 1994), 41~3.

[38] 오규훈, 『153 교회』, 190-1.

[39] 허순길, 『개혁교회의 목회와 생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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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2.08.10 By개혁정론 Views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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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석과 새로운 제안 (3)

    2022년 7월 14일(목) 열린 제11회 서울포럼에서 발표한 안재경 목사의 글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석과 새로운 제안" 중에 교회정치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음에는 권징조례 부분을 실을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
    Date2022.08.02 By개혁정론 Views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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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에 대한 안재경 목사의 제안

    2022년 7월 14일(목) 열린 제11회 서울포럼에서 발표한 안재경 목사의 글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석과 새로운 제안" 중에 예배지침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음에는 교회정치 부분을 실을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
    Date2022.07.25 By개혁정론 Views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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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석과 새로운 제안 (1) - 교리표준 부분

    2022년 7월 14일(목) 열린 제11회 서울포럼에서 발표한 안재경 목사의 글입니다. 이번 9월 총회에 상정될 헌법개정안에 관한 분석과 제안입니다. 글이 길어서 나눠서 싣습니다. 아래에 싣는 부분은 개정 전반과 '교리표준'에 대한 부분입니다. 다음 ...
    Date2022.07.21 By개혁정론 Views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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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o Image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말하는 ‘전통적’이란 단어의 의미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의 연구보고서

    최근 헌법개정위원회(위원장 김세중 목사)가 헌법개정 공청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새롭게 개정할 헌법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34, 35장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교리표준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는 것은 ...
    Date2022.06.29 By개혁정론 Views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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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

    아래 글은 제66회 고신총회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보고하여 총회가 받은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 현유광 명예교수 매사(每事)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나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
    Date2022.06.20 By개혁정론 Views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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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국 교회의 위기: 노회의 기능과 역할

    아래의 글은 2022년 3월 제11회 서울 포럼을 위한 소포럼에서 발제한 원고입니다. - 편집자 주 한국 교회의 위기: 노회의 기능과 역할 정요석 (세움교회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한국 교회가 위기란 말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이 위기를 해결...
    Date2022.05.17 By개혁정론 Views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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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한국 장로교회 헌법, 어디로 가야 하나?

    한국 장로교회 헌법, 어디로 가야 하나? -예장 통합, 합동, 고신 교회 『교회정치』를 중심으로-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서론 본 글은 현재 한국 장로교회 가운데 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고신 교회의 『교회정치』를 서로 비교하며 이를 중심으로 한...
    Date2022.05.06 By개혁정론 Views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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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시찰 없이는 노회는 없다: 노회의 시찰 직무에 관해 (성희찬 목사)

    시찰 없이는 노회는 없다: 노회의 시찰 직무에 관해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서론 노회의 직무 중 하나는 구역을 나누어 시찰회를 조직하고 시찰 위원을 두어 관내 교회를 시찰(視察)하는 것이다. <교회정치>에서 분명하게 이를 규정하고 있다(제137조 시...
    Date2022.04.22 By개혁정론 Views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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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한국장로교회헌법, 어디로 가야 하나? -예장 통합, 합동, 고신교회 『예배지침』을 중심으로-

    한국장로교회헌법, 어디로 가야 하나? -예장 통합, 합동, 고신교회 『예배지침』을 중심으로- 안재경 (온생명교회 목사) 한국장로교회 대부분의 교단은 교단헌법을 가지고 있다. 그 헌법에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포함하고 있고, 이후에 교회정치를 중점...
    Date2022.03.31 By개혁정론 Views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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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고신 교회 70년과 ‘재판권을 부여받은 전권(全權)위원’(1981-2010)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변종길 교수(신약학) 은퇴기념 논문집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고신 교회 70년과 ‘재판권을 부여받은 전권(全權)위원’(1981-2010)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서론 변종길 교수님은 고려...
    Date2022.03.29 By개혁정론 Views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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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력과 대처방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력과 대처방안 - 교회 안의 위험한 기류와 해결책을 중심으로 - 권기현 (로뎀장로교회 목사, 대구서부노회) 1. 서론 작년(2020년) 초만 해도 길어야 몇 주, 아무리 길어도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신종코로...
    Date2021.06.08 By개혁정론 Views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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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리와 교회의 응전

    총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조완철 목사)가 2021년 5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단 전문상담가 3차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 고려신학대학원 이성호 교수가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을, 로뎀장로교회 권기현 목사가 ‘포스트 코로나 시...
    Date2021.06.02 By개혁정론 Views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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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서론 교리표준(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과 관리표준(예배지침, 교회정치, 권징조례)으로 이루어진 교회 헌법은 법 조항들로 이루어진 교회론이라 할 수 있...
    Date2021.05.11 By개혁정론 Views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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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4월 22일(목) 오후 2시 남서울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2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정신과학교실, 인지과학협동과정,시스...
    Date2021.04.30 By개혁정론 Views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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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범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4월 22일(목) 오후 2시 남서울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2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범 교수 (서울대) 오늘 뜻깊은 자리에서 제가 큰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Date2021.04.26 By개혁정론 Views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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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욱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2월 25일(목) 저녁 6시 안양일심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1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욱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안녕하십니까? 소개 비디오에서 인사드렸...
    Date2021.03.12 By개혁정론 Views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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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은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2월 25일(목) 저녁 6시 안양일심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1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은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먼저 〈포스트 코로나와 교회의 미...
    Date2021.03.08 By개혁정론 Views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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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고통의 신약적 이해

    2021년 2월 19일(금) 오전 11시 천안교회당에서 미래교회포럼(위원장 오병욱 목사)이 열렸다. 권수경, 최승락 교수가 고통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본지는 두 교수의 논문 전문을 각각 연재한다. 고통의 신약적 이해 최승락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1....
    Date2021.02.26 By개혁정론 Views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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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고통의 신학적 의미

    2021년 2월 19일(금) 오전 11시 천안교회당에서 미래교회포럼(위원장 오병욱 목사)이 열렸다. 권수경, 최승락 교수가 고통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본지는 두 교수의 논문 전문을 각각 연재한다. 고통의 신학적 의미 권수경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가. 고통...
    Date2021.02.22 By개혁정론 Views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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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맥추절, 성령강림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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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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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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