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2부: 교회의 속성
글: Tim Schouten 목사
(프린스 조지 캐나다 개혁교회)
번역: 박광영 목사
서론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를 다룬 전편의 글에서 우리는 교회가 백신 패스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는 출입구에 서서 그리스도께서 환영하시는 사람들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게 만드는 정부의 규제를 교회는 따르지 않아야 한다.
1부에서 우리는 이 주제를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기준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지난 글을 마쳤다. 교회는 건물인가? 교회 건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면서, 우리는 먼저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약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교회는 야외나, 가정집에서 모였었다. 오늘날 교회는 주로 예배당이라는 건물에서 모인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모임에 있다. 교회는 주로 예배를 위하여서, 다시 말해서 설교, 찬양, 기도, 세례,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서 함께 모인다. 또한, 교회는 성경공부나 식사모임으로, 또는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 하기 위하여서 모이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가 전체로 모일 때나, 부분적으로 모일 때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가로막아야 하는가?
교회의 속성을 신중하게 살펴보면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찬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복음에 상반되는 일이다. 또한, 백신 상태에 따라서 사람들을 나누어서 모임을 하는 것도 복음과 반대되는 일이다.
실제 공동체
첫째,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실제 공동체다. 벨직 신앙고백서를 통하여서 우리는 “교회는 구속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고백한다(벨직 신앙고백서 27조). 또한, “성도들은 섬김으로 공동체를 세우면서 교회와 연합하여야 한다”고 고백한다(벨직 신앙고백서 28조). 더욱이 우리는 교회가 온전하게 성례를 집례하며, 권징을 실천하는 공동체임을 믿는다(벨직 신앙고백서 29조). 이런 교회는 사람들이 실제로 직접 모이는 공동체다. 물론, 교회는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연합됨을 믿지만, 바로 그 성령 안에서의 연합은 실제 지역 교회 안에서 선포된다. 이런 실제 교회들을 우리는 신약성경과 교회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로 오는 것은 교회로 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를 막을 수 없다. 또한, 이렇게 교회로 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다. 물론 지역 교회는 불완전하다. 허물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은사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오는 것은 그분의 교회로 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교회로 오는 것은 성도들과 함께 하는 실제 공동체로 나아오는 것이다.
복음의 상징
둘째, 교회는 복음을 보여주는 실제 그림이며 상징이다. 우리는 교회가 복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교회의 연합을 통하여서 드러난다. 교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진리와 사랑을 나눌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안에서 드러난다. 사도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4-1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바울 시대에 로마 사회에는 매우 엄중하고 분명한 계급별, 인종별 구분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들, 그리고 상류층 로마 시민들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매우 급진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같은 건물, 같은 성찬에 초대하는 것은 더욱 급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복음의 메시지이다. 우리 모두 동일한 죄인이며, 동일하게 구원받았고, 동일한 성도가 되었다. 모두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적인 기준들은 버려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복음의 메시지가 교회 안에서 실제로 보여졌다. 이것이 바울이 가능한 대로 교회 안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던 이유이다. 교회는 복음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원천
셋째, 교회는 복음의 원천이다. 교회로부터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복음의 찬양이 울려 퍼져야 한다. 복음의 기도가 교회로부터 올려져야 한다. 복음의 사랑이 교회 안에서 보여져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죄인들을 복음의 원천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사람들을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
“죄송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당신은 스구디아인입니다. 스구디아인은 무례한 야만인이기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당신은 흑인입니다. 흑인은 법적으로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당신은 백신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교회로 나아온 사람들을 어떠한 경우에도 가로막을 수 없다.
바울은 차별 없이 모인 교회의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서 우리는 교회의 핵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서 복음이 선포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복음은 목마른 자들에게 오라고 부르는데, 성령만이 아니라 신부도 그들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신부는 바로 교회이다. 성령과 함께 교회가 부르고 있다. “오라! 목마른 자도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오라! 그리스도께서 쉬게 하시리라” 그런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중에 백신을 맞지 않은 자는 교회에 올 수 없는가?
교회는 영원한 복음이 선포되는 원천이다. 우리는 목마른 사람들이 이 원천으로 와서 마시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가족
넷째,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이며 양육자다. 나 홀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굉장히 낯선 개념이다.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의 성찬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으며, 자녀들을 세례받게 하고, 서로 격려하고, 각자가 받은 다양한 은사를 사용한다. 교회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교통을 경험한다. 우리는 이 공동체에서 새 힘을 얻으며,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교회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이라고 가르쳤다. 교회에서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하면 성도 개개인은 차갑게 식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교회는 하나님께서 묶어두신 가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이처럼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백신 상태를 이유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3부에서는
다음에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대하여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