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교회에서 예식은 중요한가요?”
정찬도 목사
(주나움교회)
오늘날 교회는 ‘예배’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예식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 예식들 가운데 질문이 제기되곤 합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식이 드려지지?”라는 물음입니다. 예배와 예식의 구분이 필요합니다.
먼저 예배란 무엇일까요? 예배는 단순한 경건 모임이 아닙니다. 예배는 교회가 당회의 치리와 감독 아래 공식적으로 소집되어, 성경이 규정한 방식에 따라 말씀과 기도와 찬송 그리고 성례를 중심으로 드려지는 교회의 대표적이고 공적인 행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일에 드리는 오전·오후 예배가 공예배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의 모임들은 일반적으로 ‘기도회’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공예배를 돕고 성도의 신앙을 훈련하는 보조적이고 보완적인 모임입니다. 공예배와 기도회를 구분하는 핵심은 공식성과 치리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식이란 무엇일까요? 예식은 일반적으로 예배의 형태로 이루어는 의식입니다. 흔히 예식은 세례와 성찬처럼 은혜를 전달하는 방편은 아니지만, 말씀의 원리에 따라 교회가 질서와 책임을 위해 행하는 모든 공적 절차와 선언을 가리킵니다. 혼인, 장례, 임직과 같은 예식들은 교회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에, 교회가 그 의미를 공적으로 확정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이 목적이라면, 예식은 그 외 다른 목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경우 이런 예식들까지도 포괄적으로 “성례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거룩한 예식”이라는 표현으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칠성례(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 개념에서 비롯된 언어적·개념적 영향이 개신교 안으로 스며든 흔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회의 예식은 은혜를 수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이미 정해진 질서와 부르심, 그리고 관계를 공적으로 선언하고 확증하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예식을 예배의 정신으로,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태도로 행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예식의 핵심은 뭐에 있을까요? ‘서약’과 ‘공포’에 있습니다(물론 은퇴식이나 추대식의 경우에는 새로운 직무를 맡는 것이 아니므로 서약이 따로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예식은 개인의 결단이나 교회의 결정을 단순한 행정 절차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직분과 책임, 약속과 위임을 공동체 앞에서 공적으로 확인하고 선포하는 교회적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식이 동일한 구조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례식과 예배당 봉헌식에는 본질적으로 ‘서약’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장례식은 남겨진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부활의 소망을 다시 붙드는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은 주님 안에서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임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공적 신앙고백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배당봉헌식 역시도 ‘사람이 자신을 바치는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감사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선언’이기 때문에 서약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결단을 선언할 뿐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예식들은 각각의 성격에 따라 서약과 공포의 형태는 달라지지만, 공통적으로는 교회의 믿음과 질서를 공동체 앞에서 분명히 드러내고 확증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예식이 거행되는 시간적 위치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예식들은 주일 공예배가 아닌 평일이나 별도의 집회에서 거행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주일 예배 안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예배 그 자체가 아니라 교회의 행정과 질서를 위한 공적 선언에 있습니다. 임직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대개 별도의 시간에 진행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임직예식의 경우 장소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회 정치의 질서 안에서, 목사 임직식은 노회에서 진행하고 장로 임직식은 개체교회에서 진행합니다. 그 이유는 목사는 한 개체교회의 소유가 아니라, 노회에 속한 공교회적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 교회에 청빙 받아 섬기지만, 그 직분 자체는 노회의 관할 아래 있기에, 목사의 임직은 노회가 주관합니다. 반면 장로는 개체교회의 직분자로서 그 교회의 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장로의 임직은 개체교회에서 행합니다. 이 때문에 목사는 교회를 옮겨 사역해도 목사직을 유지하지만, 장로는 다른 교회로 이동할 경우 그 직분이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예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식이 중요한 이유를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예식은 은혜가 머무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예식은 교회의 결정과 개인의 책임과 헌신을 공동체 앞에서 공식화하고 확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직분과 권위와 책임이 분명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집니다. 또한 이 공적 확증 속에서 개인의 결단은 공동체의 기억과 책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교회는 그 부르심을 함께 지켜 내는 공동체가 됩니다. 그래서 예식은 은혜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보호 구조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봅시다. 교회의 예식은 예배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로 세워진 공동체가 은혜를 질서와 책임 안에서 지켜 가도록 돕는 울타리입니다. 예식은 은혜를 만들어 내지는 않지만, 공적 선언과 확증을 통해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공동체를 지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식은 언제나 은혜를 섬기는 질서이며, 말씀을 돕는 구조로서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서약과 공적 선언 앞에서 더욱 신중해지고, 교회가 세운 질서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며, 무엇보다 모든 예식과 모든 예배를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서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형식을 지키는 공동체를 넘어, 은혜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질 것이며, 그 은혜와 질서 안에서 각 사람에게 맡겨진 자리와 책임을 끝까지 성실하게 감당하는 교회로 자라 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