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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캐나다개혁교회에서 발행하는 Clarion에 실린 글을 허락받아 번역 게재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역할

 

글: Tim Schouten 목사

(프린스 조지 캐나다 개혁교회)

번역: 박광영 목사

 

 

서론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시리즈를 통하여서 우리는 교회가 백신 패스를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는 출입구 앞에 서서 그리스도께서 환영하시는 사람들을 거부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에게 순종하게 만드는 정부의 규제들에 대하여서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첫 번째 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 출입에 대한 그리스도의 기준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 글에서는 교회의 속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교회는 실제로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이고, 복음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글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보면 서로 다른 생각과 신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서로 융통성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 교회는 불필요하게 또는 급하게 성도들의 양심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논쟁이 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셨다면, 그분의 교회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로마서 14-15장의 원리

 

   로마서 14장과 15장에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서 제시하신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대한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원리들은 교회 안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갈등을 빚는 상황을 배경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문제나 행동에 대하여서 도덕적인 판단의 불일치가 일어날 때 우리는 이 원리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문제에 약간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울은 정말 옳은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14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사도는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사실을 분면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로마서에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가르쳐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남겨놓았다. 14절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는 이렇게 가르친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상황과 신념 때문에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선언하신 것을 먹는 것에 대한 도덕적인 불안함이 남아있을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불안함을 무시하기보다, 그런 불안함을 존중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원리는 수많은 다른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허용하신 사안에 대하여서도 양심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는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별히 사람의 행위가 개입돼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바울은 음식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다고 선언하였다(바울은 디모데전서 4:4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말하였다). 음식에 대해서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음식에도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은 생명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훨씬 더 많이 개입되어있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사람의 손길이 더 많이 개입돼있을수록 깨끗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서 고민하고, 각자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오늘날의 프로 스포츠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들은 경기장의 열광적인 분위기, 광고들, 특별히 프로스포츠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우상숭배적인 분위기를 불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반면에 또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즐겁게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 참석할 수도 있다(특별히 공짜 티켓이 있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가 “연약한 자”이고, 누가 “강한 자”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의 그런 믿음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특정한 성경 구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오늘 우리 문화의 상황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서 성경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스도인들마다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도 로마서 14장과 15장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코로나 백신문제에 적용

 

   이 원리를 코로나 백신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나는 내가 지금 믿고 있는 바를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 밝히려고 한다. 이처럼 나의 개인적인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양심의 여지를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백신에 대하여서 감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그런 이들은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누구든지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나의 염려는 주로 십계명 제6계명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상하게 하거나, 나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0주차) 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백신을 맞는 것이 그러한 것이 아닌지 판단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아직 백신의 필요성, 안전성, 효능성에 대하여서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나는 정부나 주류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하여서 완전히 투명하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검토해보면 코로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작은 위험요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삼십 대의 건강한 사람들(바로 내가 그렇다)과 어린이들에게 코로나의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백신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사망을 포함)은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백신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백신들이 너무 빠른 시일 안에 만들어졌고, 앞으로 그것의 장기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백신이 3차 접종, 4차 접종까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코로나 전파를 막지 못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별히 캐나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백신에는 줄기세포주가 사용되었다. 이것이 십계명 제6계명과 관련하여 내게는 더욱 염려가 되는 부분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모두 1973년에 낙태된 아이의 콩팥에서 배양된 HEK-293 세포를 통하여서 개발되었다. 또한, 내가 아는 바로는 얀센 백신도 1985년 낙태된 아이의 망막에서 배양된 PER-C6 세포를 통하여서 개발되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그리스도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세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배양되고 복제되어서, 실제로 낙태된 아이와는 직접 연결돼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십계명 제6계명과 관련하여서 백신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서 나는 그런 주장들이야말로 비성경적인 실용주의의 사례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침해하며 내 생각만을 주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양심상 나는 줄기세포주와 관련된 이 정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가 만약 자발적으로 이런 백신을 맞는다면, 또는 나의 자녀들에게 맞게 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로마서 14장이 여기에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백신과 관련하여서 우리의 양심에 대하여서 더 많은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정보들을 여기에 압축하여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때로는 사람들의 굳은 확신들이 정보에 근거하기보다는 어떤 감정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지체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가볍게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받으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인이시며, 교회는 모든 양심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문 앞에 서서 그리스도께서 받아들이신 사람들을 거부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양심에 관하여서 가르치며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결론을 맺는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5-7).

 

   나는 이번 시리즈의 글들이 지역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길 기도한다. 만약 우리가 백신패스를 받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지혜롭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길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교회 됨을 멈추지는 말자. 교회는 구속받은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이며, 보이는 복음의 상징이며, 복음의 원천이고,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이다.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들도 동일하게 “오라”고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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