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니다!
- 이런 선거 행태로는 고신 교회 설립 70년을 맞을 수 없다 -
올해 2022년은 고신 교회가 설립된 지 70년을 맞는 해다. 오는 9월에 열릴 제72회 총회 기간(9월 20일-22일)에 고신 교회 70주년 설립 기념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고신 교회 지도자들과 제72회 총회 총대들의 관심은 고신 교회 설립 70주년에 있지 않고 총회 개회 직후에 있을 여러 선거(총회 임원과 여러 이사 선출)에 온통 쏠려 있다. 고신 교회 설립 70년을 맞는 만큼 지나온 70년을 성찰하고 나아가 이후 70년을 바라보며 논의할 엄숙하면서도 감사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과열되는 선거 분위기로 인해 염려와 개탄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독 작년에 이어 올해가 더 혼탁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49회 총회(1999년 9월)가 선거 조례를 신설하고 불법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만든 후로 기탁금 제도를 만들고, 지역별 소견 발표회를 해보기도 하고, 공명선거 서약을 하고 있지만,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든 법망을 피하면서 선거운동을 한다. 특별히 경쟁하는 후보가 있으면 후보자를 중심으로 세를 이루고, 향응과 대접은 물론 상대방을 흠집 내고, 비방하는 말과 글을 서슴지 않고 곳곳에 유포시킨다. 자신이야말로 고신 교회를 살릴 유일한 사람이라고 자신하면서 상대방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사회의 여러 선거운동보다 더 부패하고 더욱 가증한 모습이다. 이런 부패한 선거운동에서 부끄러움 없이 주님의 이름과 교회를 위한 명분을 내세우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운운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을 지키고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되는 것일까?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신 그 길일까?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교회의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이들이, 강단에서 성결과 화평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거룩한 성찬을 시행하고 공적 기도를 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서로 분노하며 다툼을 일으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렇게 선하고 온유하고 신앙적인 사람이 왜 이렇게 남을 시기하며 헐뜯고 자기만 옳고 자기만 교회를 위할 자라고 자만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경건한 목사 장로들이 특정 후보자를 중심으로 왜 편을 나누고 서로 세를 형성하는 것일까?
첫째, 근본적으로 총회를 ‘교단’으로 총회장을 ‘교단장’으로 인식하는 데 원인이 있고, 그 결과 총회장 한 사람에게 교권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과열 선거운동과 불법 선거의 주된 원인이다. 총회장 1인에게 교권이 편중된 이상 누구도 어떤 제도 법 조항도 선거운동 과열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최근 “OOO이 교단의 수장이 될 수 있는가?”라는 글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교단의 수장’, 개혁주의와 장로회 정치를 표방하는 고신 교회에서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이런 문구는 부패한 중세 시대의 교회에 해당하는 말이며, 현재 로마 천주교회에 어울리는 말이며,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에 적합한 말이다. 그런데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고신 교회에서 이 말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장로회 정치원리에 의하면, 총회장은 결코 교단장이나 교단의 수장이 될 수 없다. 총회장은 치리회 중 하나인 총회의 의장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헌법 교회정치는 2011년 헌법개정으로 제148조를 신설하여 총회장에게 ‘교단장’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즉 “총회장은 총회를 대표하고 총회 업무와 산하기관을 총괄한다”라고 했다.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은 총회장을 총회의 ‘의장’으로서 권한과 직무만 인정하고 있다. 오직 고신 교회만 법 조항에서 총회장을 교단장으로 인정하고 있다. 예장 통합과 합동보다 더 장로회 정치원리에서 한참 멀어진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로회 정치원리에서 본다면 총회장은 총회의 의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나 현실적으로 총회를 대표하는 자가 되어 다음의 일을 관례적으로 한다. 총회 폐회 후에도 계속해서 본 교단을 대표하는 자로서 정부와 공공기관, 타교단 및 각종 기독교단체의 초청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초교파연합행사, 각종 집회와 회의의 초청을 받아 참여하고 있고, 총회 폐회 후에도 총회 운영위원회와 총회 임원회를 주재하며 총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또 총회유지재단이사회 이사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고신 교회의 정체성인 개혁주의는 교회 역사에서 교권이 특정한 사람에게 편중되는 것과 부당하게 교권이 이용되는 교권주의를 항상 경계해왔다. 한 목사가 다른 목사 위에 군림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직분의 동등성을 고백했다. 만약 총회장 한 사람에게 교권이 편중된다면 그 지도력은 섬김보다는 군림하는 지도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목사 사이의 동등성은 물론 교회의 본질인 성도의 교제가 파괴되거나 약화 되며 사실상 교황정치를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는 성직자의 권한이 동등하지 않고 교황을 정점으로 엄격한 교권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장로회 정치는 총회가 폐회되고 나면 ‘파회’(罷會)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총회장은 총회가 개회되는 동안만 그 총회를 주재하는 의장이지 총회가 마친 후에는 총회장이 아니라고 본다. 개혁주의에서는 당회를 제외하고서는 상설 의장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총회장의 지위를 규정한 제148조를 폐지하고, 총회 파회 후 교단을 대표하는 일에는 사무총장이나 해당 부서가 하도록 하고, 총회가 위임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총회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남용해서는 안 되며 유지재단이사장의 겸직은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총회를 ‘교단’으로 혼동하고 있는 우리 인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물론 제141조(총회의 의의)를 수정해야 한다. 우리 교회정치는 비(非) 상설치리회에 불과한 ‘총회’와 ‘교단’을 혼동하고 있다. 지금 교회정치 제141조(총회의 의의)는 총회를 영어표기로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KPCK)”라고 함으로 ‘교단’과 치리회인 ‘총회’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회중’을 뜻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총회’(히브리어로 ‘카할’)와 치리회(회의체)로서 ‘총회’를 혼동했다.
근본적으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교회정치의 개혁 없이는 참으로 고신 교회 70년을 맞을 수 없다. 1952년 고신 교회 설립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 부당한 교권의 횡포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확립, 회개 운동, 바른 교회정치를 구호로 내세우며 시작하지 않았던가! 이 구호를 잃어버리고 설립 70년 기념대회를 한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사각오로 성경과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라 교회를 개혁하며 고신 교회를 시작한 것을, 장로회 정치원리와는 어긋나게 교권주의를 헌법에서 노골적으로 명문화시키고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설립 70년을 맞는 것은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총회장을 교단의 수장으로 인식하는 이상, 이를 쟁취하려는 죄인들의 이기적인 욕망의 불꽃은 절대 식지 않을 것이며, 이 욕망을 위해 때로는 온갖 아름다운 말과 수식으로 포장할 것이며 때로는 온갖 추한 말과 교묘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둘째, 믿음과 선거는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통념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잘못된 통념과 생각 때문에 선거가 혼탁하고 부패해도 당사자들은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양심이 마비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얼마든지 ‘불법’을 저질러도 죄가 되지 않고 신앙 양심에 가책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통념이 고신 교회 안에 어느새 밀려 들어와 있다. 믿음과 선거는 서로 무관하기에 얼마든지 돈 봉투를 건네고 향응을 하고 상대방을 근거 없이 비방하고 유인물을 배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개혁주의 신앙에서 고백하는 “하나님 주권 사상”과 “그 왕을 위하여”(Pro Rege)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다. 유일한 왕 그리스도의 통치가 엄지손가락의 크기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우리 고백을 무색하게 만드는 행위다. 이 통념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지 않는 이상 선거 과열과 혼탁은 결코 막을 수 없다. 이 통념이 거룩해지지 않고 개혁주의 신앙 핵심인 하나님 주권 신앙을 새롭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고신 교회 설립 70년을 맞는다는 말인가!
따라서 이 혼탁한 선거의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나온 고신 70년에 대한 성찰 없이, 70년 이후 고신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서 오로지 자신만이 당선되기 위해 상대 후보의 과거 행적에서 조그만 흠이라도 들춰내고 찾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고, 이를 위해 고신 교회 안에서 서로 세를 형성하여 분열하는 모습,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참으로 악한 일이라고 형용하는 것 외에 무슨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우리 고신 교회 안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총회를 통해 주님의 부르심을 공적으로 받을 때까지 겸손하게 기다리는 신본주의가 퇴색하고 사람의 힘으로 목표를 성취하려고 하는 인본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런 모습은 총회는 물론 노회와 개체교회, 각종 연합회 선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영적으로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돈으로 직분과 직책을 사고파는 성직매매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후보자 당사자들은 자신만이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자만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용하게 믿음으로 총대들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교단의 수장이 되는 사람을 원하지 않고, 강력한 지도력으로 교단을 주무르는 초인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하게 영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귀감을 보이며 영적인 바른 자세와 태도, 방향을 제시할 지도자를 찾는다.
교단 안에 오랫동안 있어 온 계파 대립이 파벌주의로 발전하면서 설상가상으로 선거 과열을 부추긴 책임이 크다. 현실적으로 계파의 추천을 받지 않고서는 당선이 어렵다고 한다. 계파가 얼마든지 정책 대결을 통해 순기능을 할 수 있음에도 진영 논리와 파벌주의에 빠져 서로를 비방하면서 진짜 좋은 사람과 좋은 정책을 놓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나름대로 수고하고 있으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먼저 자신들이 엄정하게 중립에 서야 한다. 특정 후보자에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심지어 만약 선거관리위원 중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같은 교회에 소속해 있다면 이익 충돌 방지를 위해서라도, 그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해당 위원을 사퇴시키는 것이 맞다.
총대들에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후보자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지역별 소견 발표회를 허락하는 것 외에 모든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후보자는 적어도 3-5년 이상은 총회 총대 자격 박탈과 같은 강력한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들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보자들이 음성적으로 사용하는 선거경비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더구나 일부 후보자는 교회 재정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님께 드린 교인의 헌금이 개인 선거운동으로 쓰인다는 것인데 과연 이를 이해할 교인이나 교회가 있을까!
제72회 총회 총대들은 진짜 고신 교회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하는 중에 후보자의 인품과 영성, 제시하는 정책을 보고서 선출해야 한다. 선거를 빌미 삼아 향응을 바라거나 그 힘을 이용하려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며, 이런 악한 일을 교회에서 허용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 나아가 향응을 제공하여 표를 사거나 상대방의 과거 행적을 뒤지며 흠을 들춰내며 상대방을 비방하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후보는 결코 우리 지도자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
이런 혼탁한 선거 행태로는 고신 교회(교단) 70년을 결코 맞을 수 없다. 이런 선거 행태를 그대로 방관한 채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삼위 하나님을 향해 고신 교회 설립을 기념하는 대회를 치르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인가.
20년 전 ‘교단 설립 50주년 기념대회’(제52회 총회, 2002년 9월 24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제52회 총회는 ‘교단 설립 50주년’을 맞아 기념 예배에서 총회장 이선 목사는 레위기 25장을 본문으로 ‘50주년을 거룩하기 위해’로 설교했다. ‘교단 설립 50년’은 50년 만에 모든 억눌린 것에서 해방이 되어 희년을 맞는 것처럼 뜻깊은 일이다. 그런데 ‘교단 설립 50주년’, 진리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기념하는 희년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2003년 5월 9일로 산하기관인 복음병원이 부도가 나고 고려학원 이사회에 관선이사가 파송되면서 고신 교회는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교회의 바벨론 포로를 경험했다. 당시 수년 전부터 김해복음병원의 부실을 경고받았음에도 총회는 이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런 상태에서 ‘교단 설립 50년’ 행사를 치렀던 것이다.
다시 20년이 흘러 올해 고신 교회 설립 70년을 맞는다. 20년 전 일을 회상하며 과열되는 혼탁한 이 선거 풍토에서 지도자들과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개혁하지 않고서 맞는 70년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바뀌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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