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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력과 대처방안

- 교회 안의 위험한 기류와 해결책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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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현

(로뎀장로교회 목사, 대구서부노회)

 

 

 

1. 서론

 

   작년(2020년) 초만 해도 길어야 몇 주, 아무리 길어도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이하 COVID-19) 팬더믹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북미와 유럽의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자국민들에게 백신 주사를 맞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 비해 COVID-19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확진자 수, 사망자 수, 국가의 재정난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그 반대이다. 공예배와 공적 모임 전반에 있어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소형 교회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작은 공간을 빌려 월세를 내며 근근이 버티는 미자립교회의 경우, 목사 가족 외의 교인 대부분이 출석하지 않는 교회가 상당하다. COVID-19 팬더믹은 그나마 서서히 줄어가고 있던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교세가 확연한 하향세로 돌아서는 분수령이 되었다.

   2020년 COVID-19 팬더믹 초창기에 한국 교회가 입은 피해는 외부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이단 사이비 종파인 신천지 교도들의 집단 감염, 이로 인해 기존의 건전한 교회들마저 비슷한 집단으로 취급해버리는 언론들과 사회의 따가운 시선, 방역을 이유로 교회의 예배 소집권을 통제하는 공직자와의 관계 등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로 인해 교세가 현저히 줄어든 현실은 한국 교회의 내구성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원하든 그렇지 않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핍박과 이단의 도전은 교회사 전반에 걸쳐 항상 존재했다. 세상 국가와 공직자들은 때때로 교회를 보호하며, 또 때때로 교회를 핍박했다. 교회는 핍박의 시대에도, 이단의 공세에도 성장해왔다. 그러니 언제까지 외부적인 요인들을 이유로 내세울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요인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한국 교회의 내구성을 무너뜨리는 몇 가지를 언급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2. 위협

 

2.1. 공예배의 약화

   한국 교회 안에서 COVID-19로 인해 발발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소위 ‘비대면 예배’에 대한 찬반 논쟁이다.

   어떤 이들은 비대면 예배를 반대하고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강조했다. 그러나 성경 주해와 신학적 근거를 정확히 설명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교세 하락, 교회 재정 약화 등 실용주의적인 이유가 그 배경에 내재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근거가 없는 가짜 뉴스, 정부와 관계 기관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을 내세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예배로 모여 큰 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하면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신비주의 신앙도 여기에 가세했다. 어떤 선교단체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기초하여 백신이 마치 계시록 13장의 ‘666’과 같거나 유사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가르치고 퍼뜨리다가 대량 감염과 확산을 초래했다.

   한편, 다른 이들은 ‘비대면 예배’를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지 장소나 현장에서 모이는 것 자체는 본질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1)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22)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4)”(요 4:21~24)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과 적용이다. 구약 시대에는 지상 위의 단 한 곳에만 중앙 성소가 있었다. 시내 산에서 제작한 성막은 광야 시대를 거쳐 실로에 정착했다. 그 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중 세 차례 중앙 성소로 와서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신 17장). 그러나 요한복음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막(요 1:14)이요 성전(요 2:19~22)이라는 놀라운 복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이제 이 산 – 사마리아 성전이 있던 그리심 산 – 이나 예루살렘이 아니라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신약 시대에는 성령 받은 공동체인 교회가 바로 새 성전, 사람-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씀은 예배의 현장에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 구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사람-성전인 교회가 성령으로 영감 된 진리의 말씀을 설교하는 강단을 중심으로 모여서 예배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16세기 개혁자들이 성경대로 설교하고, 성경대로 성례를 시행하는 교회야말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참 교회라고 가르친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 – 심지어 신학교 교수, 사회 저명인사 중에서도 - 은 신앙고백을 언급하여 ‘비대면 예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 복음 시대에 기도나 종교적 예배의 어떤 순서도 행하는 장소나 향하는 곳에 매여 있지 않으며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매일 가정에서나 은밀하게 홀로, 그리고 어디서나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이나 섭리로 요청하실 때 공적 집회에서 더 엄숙하게 예배할 수 있으니, 이런 집회를 부주의나 임의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6)

 

   이는 신앙고백서의 오독(誤讀)이다. 위 세 문장 중 첫째 문장은 앞의 요 4:21~24의 설명과 같다. 이제는 이 땅 위에 중앙 성소가 없으므로 특정한 어느 한 장소나 방향으로 기도할 필요가 없으며, (중앙 성소에서 모이는 대신) 하늘에 계신 교회의 머리(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지구 위의 곳곳에서 모여 예배한다. 이 문구는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반대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둘째 문장은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으며, ‘가정예배(family worship)’와 같은 경건한 모임을 장려하는 문구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개혁신앙의 선조들은 가정예배와 신앙 양육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가정예배’나 ‘경건회/기도회(prayer meeting)’를 ‘공예배(public service)’와 동일시 한 적이 없다. 가정예배와 경건회는 장려하되, 이것이 곧 공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

 

   성경과 신앙고백에 근거하기보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한 결과는 처참하다. 가뜩이나 ‘가나안’ 교인이 많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예배에 대한 냉소주의와 비관론을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헌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 목사의 배를 불리기 위해, 미신과 광신을 주장하기 위해 예배한다는 비난이 오히려 들끓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신앙이 연약한 교인들이 예배에 불참하는 죄를 가리는 핑계가 되었다.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본질이 아니라는 주장, 그래서 ‘비대면 예배’가 공예배와 등가(等價) 하며 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 둘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익숙해진 이들은 이제 예배당에 모여 예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기독교방송을 시청하는 것과 공예배의 차이가 불분명해졌다. 다수의 교회가 예배 현장을 영상으로 송출하므로, 소속은 이 교회에 있으나 다른 교회 목사로부터 말씀을 공급받고 은혜받는 생활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 소속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라고 할 명분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상의 결과로, 한국 교회는 이제 교회 밖의 이단 사이비뿐 아니라 교회 내의 예배 약화라는 큰 위협 아래 처하게 되었다.

 

2.2. 성찬의 약화

   ‘비대면 예배’의 논쟁은 더 나아가 ‘비대면 성찬’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비대면 성찬’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으나, 대체로는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예배 도중에 목사가 순서를 인도하지만, 성찬은 각 가정 또는 개인별로 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교회들 – 특히 대형교회들 - 이 꽤 있다. 총회 또는 노회에서도 ‘비대면 성찬’이 가능한지 한국 교회의 각 교단에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성찬과 세례는 차이점도 있으나, 둘 다 성례(sacrament)라는 점에서 동등한 가치가 있다. 둘 다 언약의 표와 인이며, 눈으로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성례는 믿음을 생성하지는 못하나, 믿음을 강화하며 증진시킨다. 그러니 ‘비대면 성찬’을 허용한다면 ‘비대면 세례’를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전자를 받아들이면 후자도 받아들여야 하며, 전자를 허용할 수 없다면 후자도 허용할 수 없다. 목사가 영상으로 세례 예식문을 낭독하고, 각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자신의 아기에게 세례를 줄 수 있을까? 사실 세례는 신앙고백 당사자 또는 유아세례를 받는 아기의 부모만 서약하는 자리가 아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그리고 이미 성찬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교인이 (혈통을 넘어선 언약의 부모로서) 수세자를 영적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공적인 서약의 자리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 교회는 성찬을 자주 시행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연합의 가치를 자주 절감하지 못한다. 그러니 서로 떨어져서 예배하고 성례를 시행해도 그리 큰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교회가 영적인 가족, 즉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성령 공동체임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성찬의 약화는 교회를 하나님의 새 가족이 아니라 단지 출석하는 단체로 전락시킨다.

 

2.3. 개인주의 만연

   19세기와 20세기 기독교는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의 시대였다. 천지창조, 동정녀 탄생, 부활과 승천, 재림 등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시기는 복음주의의 시대이기도 하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그리고 역사성을 굳게 믿고 선교와 전도의 전 세계적 열풍이 분 시기이기도 하다. 복음주의는 이런 장점이 있으나, 치명적인 단점도 갖고 있다. 성경의 교리 중 회심과 중생에만 치우친 강조, 교회 질서(Church Order) 즉 예전(liturgy)과 교회 정치의 약화, 그리고 교회의 중요성보다는 개인주의(individualism) 신앙의 강조가 그 대표적인 특징이다.

   한국의 주류 교회들은 복음주의 영향을 깊이 받아왔다. 그래서 소수의 자유주의 교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경의 영감과 역사성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단점도 함께 안게 되었다. ‘내 예수, 나 믿고 나 천당 간다.’라는 것이 한국 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교회 건설과 공예배는 전도와 회심과 개인 구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의 보조적 기능에 머문다. 성경적인 설교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느꼈느냐가 우선시된다.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가?’는 강조되나, ‘무엇을 향해 그리고 누구를 향해 구원받았는가?’는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COVID-19 팬더믹을 통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예배 출석과 결석을 교인들의 개인 의사에 맡겨버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당회와 아무런 상의 없이 개인 의사로 결석하는 교인을 권면하고 교정하는 장로들이 얼마나 되는가? 심지어 규모가 꽤 큰 교회의 경우, 누가 결석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이번 주일에는 이 교회에 출석한 사람이 다음 주일에는 저 교회에 가서 예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꽤 많은 그리스도인, 심지어 교회의 직분자조차 이러한 개인주의 신앙을 비정상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결석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여긴다. 등록도, 탈퇴도,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고 여긴다. 이는 개체교회 ‘장로들의 회(會)’인 당회의 기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위협이다. 이단 사이비 종파의 공격적인 포교 활동에는 큰 위기감을 가지면서도, 위에서 언급한 개인주의 신앙의 폐해에 대해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개인주의의 만연과 교회의 무관심은 이단들이 기존 교회에 쉽게 잠입하여 교인이 되고, 나아가 영향력 있는 직분자가 되는 통로가 된다. 한 교회의 지체가 된 교인들이 쉽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통로가 된다. 교회가 견고한 요새가 되기를 포기하고, 사탄에게 하나님의 집 대문의 열쇠를 넘겨주는 꼴이 된다. 또한, 교인들은 본인의 생각이나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쉽게 교회를 옮기고, 목자 없는 양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2.4. 신앙의 본질인 결단과 희생의 약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은 핍박과 희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5)”(마 16:24~25)

 

   그러나 COVID-19와 함께 나타난 공예배와 성례의 약화는 개인주의 신앙과 결합하여 신앙의 본질을 위협한다. 신앙생활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선택 가능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감염 예방과 사회에 본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의료인과 공무원, 교사 등은 공예배에 결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 ‘비대면 예배’를 하지 않고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면 회사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자녀가 어리기 때문에, 혹시나 감염될까 불안해서, 께름칙한 마음에 결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실 대다수 교회는 위생수칙과 방역, 그리고 거리두기에 철저하다. 정상적으로 수칙을 준수하기만 하면, 대중교통과 직장과 학교에서보다 감염 가능성이 훨씬 낮다.

   물론 당회와 집사는 제6계명(이웃의 생명)을 준수하기 위해 건강과 체력이 연약한 성도들을 항상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단순히 선택의 문제로 맡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공예배와 성도의 교제, 직분의 봉사를 받는 것이 일상생활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런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한 헌신과 결단과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많은 교회가 이 문제와 씨름할 수밖에 없다.

 

 

3. 대처방안

 

   교회사 가운데 그리스도의 참 교회가 위기에 직면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탄은 핍박(용)으로, 이단의 미혹(뱀)으로, 또 다른 때는 안일함과 나태로 교회를 위협한다. 많은 경우, 위의 여러 가지가 결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은 다양하나, 그 해결책은 언제나 같다. 재빨리 성경과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협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지 그 표준(canon/criterion)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교회에게 신앙과 삶의 표준이 되는 규범을 주셨다. 성경이다. 이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의 선조들은 신조(creeds)와 신앙고백(confessions)을 작성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3.1. 공예배와 관련하여

   개혁신앙을 고백하는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는 복음적 교회(evangelical church)이지 복음주의 교회(evangelistic church)와는 구별된다. 예전(liturgy)과 성찬(Lord’s Supper)의 강조는 개혁주의 교회가 가지는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예전이 분명하기에 공예배는 가정예배, 각종 기도회 또는 경건회 등과 뚜렷이 구분된다. 성찬이 자주 시행되며, 시행 대상이 분명하기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과 교회의 하나 됨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대체로 공예배와 공적 모임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공예배의 본질과 원리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 않다. 교회는 공예배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1) 공예배의 원리

   첫째, 공예배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영구적인 명령이며, 언약 공동체(교회)의 책무이다.

   둘째, 공예배는 언약 백성만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엄격히 말하면, 언약의 외인은 예배의 주체나 참여자가 아니다. 참석하더라도 예배자는 아니다. 복음은 감춰진 비밀이어서 불신자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존재와 기능, 예배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예배는 세상과의 타협이나 이해 가운데 유지되지 않는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며, 언약 백성의 (핍박과 손해를 감수한) 믿음의 행위이다.

   셋째, 공예배는 언약 백성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의무이다. 신자의 자녀, 심지어 짝 믿는 가정의 자녀조차 언약 백성이다.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넷째, 공예배에는 은혜의 방편이 시행되어 표지가 나타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분자들의 봉사가 필요하다. 은혜의 방편은 설교(말씀), 성례, 기도이다. 이는 개인 성경읽기나 사적 성례, 개인 기도가 아니라 공예배 시에 직분자를 통해 시행하는 구원의 효력 있는 방편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주중에도 목사는 설교 준비를, 장로는 심방을, 집사는 구제와 위로의 사역을 한다. 그러나 이 봉사가 확연히 드러나는 현장은 주일 공예배이다. 목사의 설교, 장로들의 회(會)가 준비한 성찬, 그리고 집사의 사역을 위한 헌금(연보)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말씀과 권징이라는 열쇠로 천국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직분자들의 봉사와 회중의 참여, 은혜의 방편과 표지가 모두 나타나는 유일한 현장이 공예배이다. 교회는 이를 시행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대다수 교회가 성찬이나 세례를 매주 시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행할 환경 자체를 제거한 모임은 경건회일 수는 있어도 온전한 의미에서의 공예배는 아니다.

   다섯째, 공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 가지 측면으로 묘사한다. 물리적인 몸, 공동체적인 몸(교회), 그리고 상징적인 몸(성찬)이 바로 그것이다. 부활하신 몸으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사역인 상징적인 몸(성찬)을 통해 땅에 있는 몸(교회)과 연합하신다. 설교가 공예배의 핵심이라면 성찬은 설교의 꽃이요 공예배의 절정이다. 성찬은, 교회가 단순히 출석하는 단체가 아니라 영적인 새 가족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성찬은 공예배가 이 영적 가족이 한 몸임을 확인하는 현장임을 가시화한다. 유아세례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이를 단순히 부모의 서약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이 아이를 혈통을 초월한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직분자들과 온 회중의 공적인 서약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공예배는 하나님과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만남이 아니다. 온 교회가 언약 공동체이자 성령 공동체로서 하나 됨을 확인하는 현장이다. 수직적 연합과 수평적 연합이라는 신비가 가시화되는 현장이다.

   이상의 모든 내용을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한 시간에 한 장소에서 모이는 예배뿐이다.

 

(2) 공예배의 순서

   성경은 공예배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알려주지만, 정확한 순서를 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예배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언약 교제 또는 언약 갱신이라는 점이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시는 행위와 백성들이 하나님께 하는 행위로 어우러진다. 예배의 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①개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②죄의 공적 고백: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③말씀의 봉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듣는 말씀).

④성례의 시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보는 말씀).

⑤자비의 봉사와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⑥폐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십니다.

 

   공예배가 선명하게 시행되고 가르쳐질 때, 성도들은 그 중요성과 가치를 깊이 인식하게 된다. 가정예배와 개인 경건의 시간 등 여타 신앙 행위가 이를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비상시에 영상을 송출하는 등 비대면으로 예배 순서를 진행하더라도 이를 기존의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등가(等價) 하거나 공예배를 대체하는 것인 양 가르쳐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공예배가 시행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경건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낫다. 결핍이 있을 때,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마치 아무런 결핍이 없는 것처럼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결핍을 깊이 인지하여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회복해주시기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편이 더 낫다.

 

3.2. 직분과 관련하여

   한국 교회는 직분자로 넘쳐난다. 세례교인(수찬자) 중 직분자가 아닌 사람보다 직분자의 수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 직분을 바르게 이해하며, 그에 합당하게 봉사하고 있는가’이다. 직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 직무를 시행할 때, 교회가 질서 있게 건설된다. 반역자와 배교자 그리고 이단자를 가려내고, 양무리를 먹이는 진리와 사랑의 공동체로 우뚝 설 수 있다.

 

(1)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

①천국 문을 여닫는 권세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천국 문을 여닫는 권세를 주셨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의 직원, 특히 ‘장로들의 회(會)’에게 그 권세를 주셨다.

 

“1. 주 예수님께서는 자기 교회의 임금이시요 머리로서 국가공직자와는 구별하여 교회 직원들의 손에 치리를 맡기셨다.

2. 이 직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는데, 그들은 이 열쇠로써 정죄하기도 하고 사죄할 수도 있으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말씀과 권징으로 천국을 닫고, 회개한 죄인에게는 필요에 따라 복음의 사역과, 권징의 해벌로 천국을 열어 줄 권한을 가진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0:1~2)

 

②두 종류의 장로

성경은 두 종류의 장로가 있다고 가르친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여기서 “잘 다스리는 장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다스리는) 장로를 가리킨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장로들)”은 목사를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에서 ‘장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이는 (다스리는) 장로뿐 아니라 목사를 항상 포함하여 생각해야 한다.

 

③심방의 직무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서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πρεσβυτέρους, 프레스뷔테루스)을 청하니(17)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ἐπισκόπους, 에피스코푸스)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8)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29)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30)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행 20:17, 28~32)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πρεσβυτέρους, 프레스뷔테루스)(17절)을 가리켜 “감독자”(ἐπισκόπους, 에피스코푸스)라 부른다. 여기서 ‘감독(자)’은 ‘살펴보는 자(overseer)’, ‘지키는 자(guardian/keeper)’라는 뜻이다. 즉, ‘장로’는 양무리를 이리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살펴보는 자이다. 장로는 이를 위해 ‘심방(pastoral visitation)’이라는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심방은 목사의 부인이나 여전도사가 아니라 장로에게 맡겨진 직무이다. 그가 양무리를 심방할 때, 사죄의 은혜가 나타난다. 연약한 성도들을 죄에서 건져낸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14)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15)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16)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17)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18)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19)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20)”(약 5:14~20)

 

④말씀의 직무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이 사나운 이리(이단)로부터 양무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위해 사도인 자신이 삼 년이나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한다(31절). 이는 감성적인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가 가르친 복음을 기억하여 말씀 사역을 함으로써 이리로부터 양무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이다(32절).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특히 이 직무를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직분자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한 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말씀 사역(행 19:8~10)이요, 둘째는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표적과 기사를 행한 것이다(행 19:11~12).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할 것을 명하지 않고, 자신이 한 말씀 사역을 기억하여 그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행 20:31~32)

 

   목사는 사도들이 전한 것과 같은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 (다스리는) 장로들은 이 설교와 가르침 가운데 양무리가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심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로들의 회(會)’는 말씀 사역에 동역한다. 이는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이 선교사요 목사인 디모데에게 명한 내용과 일치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διδασκαλίαν, 디다스칼리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3:17)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4: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κήρυξον, 케뤽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2)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3)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4)”(딤후 3:16~4:4)

 

   딤후 3:16은 개인 경건의 시간(Q.T.)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인 디모데의 직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목사인 디모데는 “교훈(교리)”, “책망”, “바르게 함(교정)”, “교육”을 통해 교회를 말씀으로 먹인다. 그럴 때, 그는 이 직무를 맡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된다. 딤후 4:2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노방전도가 아니라 디모데의 설교 사역을 뜻한다. 그는 “말씀을 설교”(2절)함으로써 이단 사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돌이킨다(3~4절).

   필자를 포함한 목사들은 이 부분에서 자성해야 한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옮기는 이유 중 꽤 큰 비중은 COVID-19 때문이 아니라 목사의 설교 때문이다. 성경대로 설교하는 교회의 강단으로부터 생명수 강이 흘러나와 언약 백성들을 적신다. 그들을 치료하고 회복한다. 목사는 COVID-19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설교 준비와 선포에 힘써야 한다. 설교는 Q.T.가 아니다. 설교는 성경을 읽고 느낀 감상문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설교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설교의 내용이시다. 성령께서 언약 백성들의 스승이 되어 설교를 깨닫게 하신다. 설교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분의 양무리를 지금도 사랑하고 돌보고 계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장이다. 목사가 도덕・윤리를 전하는 교회는 도덕・윤리적으로 타락한다. 목사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 회심과 중생이 발생하며, 그 설교를 듣는 사람이 죄로부터 회복된다. 한국 교회의 윤리적 회복은 복음 설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⑤출입(出入)이 분명한 교회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이리로부터 양무리를 보호할 사명을 상기시켰다. 이를 위해서는 사도가 전한 말씀을 기억하여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양무리를 돌봐야 한다. 바울이 이토록 간곡하게 권면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탄은 교회의 열린 문으로 언제든지 거짓 사도, 거짓 교사들을 잠입시키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3)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14)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15)”(고후 11:13~15)

 

   바울이 장로들의 사역을 이토록 강조한 이유는 이미 사도 시대부터 이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가 용납한 이단: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이 용납한 이단: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6)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7)”(갈 1:6~7)

 

데살로니가교회에 잠입한 이단: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디모데가 사역하는 교회에 잠입한 이단: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6)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7)”(딤후 3:5~6)

 

요한이서 수신자들에게 접근한 순례 설교자를 가장한 이단: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10)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11)”(요이 10~11)

 

버가모교회에서 세력을 형성한 이단: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14)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계 2:14~15)

 

두아디라교회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이단: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이 때문에 개체교회 ‘장로들의 회(會)’인 ‘당회’의 사역은 실로 막중하다. 목사뿐 아니라 (다스리는) 장로들 역시 말씀과 교리에 정통해야 한다.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들은 COVID-19 상황으로 출석 수가 줄어들 때, 교회의 출입(出入) 기준을 성경이 말씀하는 것보다 느슨하게 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출입을 분명히 해야 한다. 등록(등록 교육 포함), 이명, 세례, 성찬, 혼인, 장례, 권징 등 명부 정리를 분명히 해야 한다. 타 교회에서 본 교회로 옮기는 사람의 경우, 이전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확인해야 한다. 교회의 출입이 선명해질 때, 교인들은 공예배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실감하게 된다.

 

(2) 집사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궁핍한 성도들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게 하려고 일곱 분의 직분자를 세웠다. 이분들이 오늘날의 집사와는 차이가 있으나, 집사의 기원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3)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4)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5)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6)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행 6:1~7)

 

   이 일곱 분이 성도를 구제하는 일을 담당하고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전념한 결과,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7절). 교회의 직분과 직무가 질서 있게 세워지자, 그것이 선교와 전도의 열매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직분과 선교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은사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μεταδιδοὺς, 메타디두스)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ἐλεῶν, 엘레온)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

 

   개혁자 칼빈은 이 구절의 “구제하는 자”와 “긍휼을 베푸는 자”를 집사의 사역으로 설명했다. 전자는 연보 또는 헌물을 궁핍한 자들에게 분배하는 사역으로, 후자는 질병이나 낙심 등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설명했다.

COVID-19 상황 가운데 교회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해야 할 사람이 누구일까? 집사이다. COVID-19로 인해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집사는 이들에게 분배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위생수칙과 방역을 가볍게 여기는 바람에 감염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한국 교회의 COVID-19 확진자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감염된 사람들이다. 이들로 인해 교회가 피해를 보았다며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집사들이 이들을 살피고 돌보며, 회복하고 위로해야 한다. 죄와 무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그와 함께, 집사들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자신의 재물을 내놓기 싫어하는 이들을 책망하여 돌이키는 일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재기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지만, 집사들은 나눔과 베풂을 통해 하나님의 양들을 보호한다. 집사들의 이 위로 사역은 ‘장로들의 회(會)’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

 

   “범사에 여러분(필자 주: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4. 결론

 

   COVID-19로 인해, 한국 교회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우리의 공예배와 직분의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회복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 어려움은 외부로부터 시작했으나, 회복은 내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경과 신앙고백의 가르침에 따라 공예배와 직분의 봉사를 든든히 할 때, 교회의 내구성이 회복되며, 양들의 영혼이 치유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내쫓으시고,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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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4월 22일(목) 오후 2시 남서울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2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교실, 정신과학교실, 인지과학협동과정,시스...
    Date2021.04.30 By개혁정론 Views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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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범 교수)

    아래 논문은 2021년 4월 22일(목) 오후 2시 남서울교회당에서 진행된 "고신설립 70주년 컨퍼런스 2차 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입니다. - 편집자 주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범 교수 (서울대) 오늘 뜻깊은 자리에서 제가 큰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Date2021.04.26 By개혁정론 Views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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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