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위하여 기도하자
충격과 망연자실. 지난 금요일 저녁 프랑스의 파리 뿐 아니라 온 세계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IS가 자행한 새로운 공격 앞에서 숨이 막히는 것을 경험하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쇄 테러의 장소가 축구 경기장, 식당, 록 공연장, 카페 등 같은 그저 음악과 스포츠, 외식을 즐기려는 자유 시민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이런 곳에서 자신이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공연장에 난입한 테러범들은 15초에 한 명씩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사망자들은 단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됐다. 프랑스는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겪는 대규모 참상 앞에서 최대의 안보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공포와 불안. 극도의 공포와 불안의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 파리 뿐 아니라 미국,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한국인에겐 낯선 느낌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겪어온 많은 안전사고·자연재해와는 분명 다른 감정이다. 테러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극도의 경계와 불신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이 있는 모든 곳을 지옥으로 탈바꿈시킨다. 아마도 함께 사는 아랍 계통의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테러가 서유럽의 대도시 중심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찾는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유럽인들의 가슴에 와 닿는 공포와 불안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테러범 일부가 난민의 신분을 가졌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지금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대의 난민 위기와 씨름을 하고 있는 유럽의 입장에서는 지금 난감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공포와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상은 테러범들이 노리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공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난민들은 이번 테러를 자행한 자들이 아니라 이들 역시 희생자들이다.
IS같은 테러범들을 궤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테러 분자들을 양산하지 않게 하는 국제 환경을 조성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이어서 출현한 IS를 설사 없앤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괴물이 나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천문학적 돈과 인력을 쓰고도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제거하지 못했다. 이 사이 테러는 10배 가까이 늘었다. 아랍 지역 사람들의 분노와 차별의 씨앗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서방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속한 정치적 안정과 대폭적인 민생 경제 지원,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 제공, 전쟁고아에 대한 교육 기회와 취업 알선, 아랍 난민 수용 같은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의 행진에 몰려드는 테러 세력을 꺾지 못할 것이다.
테러범들은 이번 테러의 일시를 주도면밀하게 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테러를 두고 ‘13일의 금요일’ 이라는 미신과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비록 우리가 고백하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파리를 다스리신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시 58:11).
우리 기독인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무엇보다 파리를 위하여 기도하자. 이번 희생으로 슬픔을 겪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자. 나아가 테러범들의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하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은 불가능한 이 기도를 우리에게 요구 하셨다. 예수님의 복음은 IS에게도 전해져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나아가 전쟁과 갈등이 있는 나라와 지역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자. 곧 대강절이 다가온다. 평화의 왕이 주시는 참 평화를 대망하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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