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옥소리라는 한 여배우가 헌법재판소에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7년 만에, 6년 전의 혼인빙자 간음죄의 위헌판결과 폐지에 이어 간통죄의 형사상 처벌조항마저 헌법재판소의 7:2 위헌판결로 62년 만에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간통죄 위헌 판결의 주된 이유는 ‘개인의 사적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금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에 대한 보호’이다. 헌재는 일부일처제의 혼인제도와 가족제도의 보호 등의 공공의 질서보다는 개인의 인권에 방점을 두었다. 인권이 대세인 요즘의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위헌의견을 낸 7명 중 박한철 소장과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을 비롯한 5명은 “간통죄 처벌조항은 일부일처제 혼인제도를 보호하고 부부 사이에 정조의무를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위헌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간통이 비도덕적 행위라고 해도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간통죄를 폐지하는 추세이고, 국민의 성에 관한 인식도 바뀌고 있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위헌판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오해가 없을 것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간통죄 자체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입장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간통죄는 여전히 도덕적으로 잘못이며 민사상으로도 부도덕한 죄로 여전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의 핵심은 다만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잘못에 대해 과도한 형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미국의 문화신학자인 데이빗 웰스 역시 개인의 자유와 국가가 강제하는 법이 곧바로 충돌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다. 건강한 사회란 시민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성숙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와 법 사이에 도덕적 완충지대가 존재해야 하며 공공의 질서를 위한 시민들의 높은 윤리적 수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국가가 개인의 사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도덕적 행위에 대해 형법으로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헌재의 이번 판결이 규정한 간통죄의 영역이 과연 개인의 사생활의 영역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는 다음의 이유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적절치 않았음을 지적해야 한다. 변화하는 성의식의 반영이라고 근거를 대긴 했지만 여론조사 결과 아직도 국민의 60% 이상이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상황을 빌어 간통죄가 존속해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간통죄는 단순히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원의 죄가 아니며 더군다나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보호되어야 문제가 아니다. 간통죄는 일부일처제 사회의 결혼제도와 가정이라는 사회의 기초를 허무는 공익과 관련된 죄이기 때문이다. 사실 헌재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약화되고 성에 대한 윤리적 인식이 문란해진 상황이라면 더욱이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만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야 했다. 웰스의 지적대로 도덕적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법은 최소한의 기능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도덕성이 약화된 현금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간통죄 형법조항은 부실한 점들을 보완하여 오히려 사회의 공공질서를 강화하는 데로 나아갔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헌재는 이와는 정반대로 이러한 성 인식의 변화를 명분으로 하여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통죄를 폐지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헌재의 이번 판결의 기본 전제가 “헌법에 있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성행위 여부와 상대방·시간·장소 등을 선택할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함한다”는 것임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간통죄가 사라지던 날, 어느 나이트클럽에서는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간통죄 폐지 후폭풍으로 벌써부터 ‘기혼자 만남 사이트’의 접속이 폭주하고 있다. 간통죄 폐지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가속화될 것으로 바라보는 전망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비록 헌재의 간통죄 위헌판결이 간통죄를 죄가 아니라고 단정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성적 문란으로 치닫는 한국사회는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로 간통죄가 더 이상의 죄가 아니며 우리 사회가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실제의 모습이다. 성의식의 개방에 따른 변화와 함께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간통죄 형법조항이 형식적으로나마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 간통죄는 이제 사회의 공공질서를 훼손하는 공적인 범죄가 아니라 개인의 사사로운 관계에서 빚어지는 도덕적 문제, 민사적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이혼을 조장하거나 방임하는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혼에 있어서 배우자 유책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간통과 같은 유책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의 간통죄 위헌 판결은 이러한 유책주의를 파탄주의로 가져갈 공산이 크다. 이미 끝나버린 결혼생활의 파탄을 들어 간통을 범한 가해자 본인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끝까지 인내하며 혼인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혼의 상황에 내몰릴 위험이 크다. 피해 당사자 자체가 사회적 약자임에도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은 사실상 피해 당사자인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오히려 무시하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만 것이다. 나아가 혼인의 의무는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 하지만 간통죄는 혼인과 가정 등 사회의 기초 질서와 관련 있으며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의 문제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실상 사문화되어버린 현행 간통죄 형법조항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실제적인 효용을 위하여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미 도덕적으로 무너져 버린 한국교회, 목회자의 성적인 타락, 순결에 대한 정조관념이 상실된 청년들을 보며, 한국교회도 이러한 세태와 별반 다를 바 없으며 더구나 이런 상황임에도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인권을 명분으로 하여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며 동성애 정당화와 동성결혼 합법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이 때에, 한국교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먼저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며 성경적인 윤리기준을 강화하고 결혼의 신성함과 성의 아름다움을 바르게 가르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교회 내의 올바른 권징을 통해 참된 교회로서의 표지를 확립하며 그리스도인 개인의 생활과 교회의 거룩을 확립하는데 힘을 써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의 역할일는지도 모른다. 부패한 사회 속에서 죄와 불법으로 고통 받는 이 사회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행실을 보고 다시금 반성하며 돌아서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흑암이 깊어갈 때 빛은 더욱 발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놓치지 말자. 지금은 한국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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