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회 직원 순환보직이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예장고신 제66회 총회는 수도노회장 방석진 목사가 발의한 총회 직원 순환보직 청원건과 충청노회장 손종환 목사가 발의한 총회 산하 사무처 직원의 순환보직 실행을 위한 청원 건을 총회임원회 및 총회인사위원회에 맡겨서 처리하기로 가결한 바가 있다. 두 노회는 순환보직의 근거로 타 업무에 대한 이해와 연계성을 통해 총회 업무의 효율성이 증대될 것을 기대했고, 부정적으로는 한 부서에 오래 일하므로 권위남용, 무사안일행정, 방만한 재정운영의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당시 총회는 이 순환보직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총회교육원 및 사무총장, 선교부 총무의 임기에 대한 문제를 길게 다루다 보니 충분한 논의 없이 임원회와 인사위원회에 맡기는 것으로 가결이 된 것이다.
총회산하 사무처 직원의 순환보직을 거론한 것은 두 노회의 발의에서 지적했듯이 총회 직원이 한 부서에 오랫동안 일하게 될 경우에 있을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타성에 젖게 되고 창의적으로 일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순환토록 할 수 없기에 총회임원회 및 총회인사위원회에 맡겨서 처리하게 했다. 총회임원회 및 총회인사위원회가 총회 산하 각 기관과 충분히 논의하고, 각 직원들의 업무능력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파악한 다음에 결정할 것이라 기대하고, 그 구체적인 방식은 거기에 맡긴 것이다.
예컨대, 고신대학교 직원이 고려신학대학원으로 갈 수 있고, 고려신학대학원 직원이 고신대학교로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고려신학대학원 직원이 복음병원으로 간다든지, 고신언론사 직원이 총회유지재단으로 가든지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 식의 순환 보직은 업무가 전혀 다르기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각 기관을 혼란 속에 빠뜨리는 것이 될 것이다. 각 기관이 가지고 있는 업무의 고유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총회 산하 각 기관 나름의 특성과 고유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뒤섞어 보자는 식의 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항간에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 순환 보직 결정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을 그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보직으로 옮기고, 그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맡아온 사람을 앉히는 결정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인사위원회 내부에서조차 큰 소리가 나고 갑론을박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을 보면 순환보직의 특정 안이 다분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 결정이 잠시 보류되었다고는 하나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순환 보직 실행의 취지는 총회 산하 기관들 업무의 효율성과 각 기관이 서로 협력하여 총회 일이며 전체 교회를 효과적으로 도우기 위한 것이지, 일하는 태도를 일신하고 직원들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총회 임원회의 편의를 위해서나 정치적인 입김 때문에 직원들의 자리를 옮기려고 한다면 합당하지 않다. 이에 우리는 과연 그런 안이 총회 산하 기관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안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고, 만약 그 안이 특정인들을 겨냥하고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이라면 이는 가당치 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제66회 고신총회에서 결정한 총회산하 기관 직원들의 순환보직을 임원회와 인사위원회가 다루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노회가 이 문제를 헌의한 것은 그만큼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신중하게, 아니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고인 물은 썩을 수 있지만 각 기관의 고유성과 그동안 그곳에 속한 직원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가지고 있는 숙련성과 효율성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 총회 산하 기관들과 직원들이 정치적인 입김을 타거나 임원회나 인사위원회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적인 일은 모든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놓고 공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를 가지고 처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총회 인사위원회가 이 모든 것을 잘 고려하여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신의 자부심으로 일해 온 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좌절시키는 결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