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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캡처.PNG

글: Peter Holtvlüwer

번역: 박광영 목사

 

 

* 이 글은 Clarion Vol.70 Year End Issue에서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목자들에게 선포되었던 천사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사실 천사의 이 메시지와 비슷한 말씀이 메시아의 탄생 기사들에 많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눅 1:13)고 말하였다. 또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마 1:20)고 말하였다. 마리아에게도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눅 1:30)라고 말하였다. 예수님도 이 땅을 살아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눅 12:7, 32; 마 8:26; 14:27; 28:10).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명령으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쉽지 않은 명령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나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즉시 이 감정을 제거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다른 명령들에 순종하는 것이 좀 더 쉬워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우리가 즉각적으로 재정적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 네 이웃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 생명을 보호하라는 명령들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여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다.

   그런데 두려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어떻게 걱정을 바로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지나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 걱정거리가 가득한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명령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명령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명령을 지금 당장 실천하여 순종의 열매를 만들어내야 하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로 생각하면 어떨까? 이 명령을 마치 우리에게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 명령은 우리의 의지로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어려운 명령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될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모든 두려움의 뿌리를 제거하시며,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면제

 

   면제는 고통스럽고 무거운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기 중 성취도가 평균 이상의 학생들은 학기말 시험을 면제받았었다. 면제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그리고 실제로 면제를 받으면, “나는 자유다”라고 외치며 정말 행복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세금을 내는 것을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세금을 싫어하고, 무거운 짐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당신에게 “세금 면제”라고 선언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당신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는 세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정말 큰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의도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더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두려워할 여러 가지 의무들로부터 면제받았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가랴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서 찬송하면서 말하였던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 1:68-75).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바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탄절(부활절과 승천절도 마찬가지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면제하신 날이다. 할렐루야!

 

 

어떤 두려움?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 두려움은 어떤 종류의 두려움인가? 성경은 좋은 두려움도 있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모든 신자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포가 아니라 경외심이다. 마리아도 주를 찬양하면서 이러한 좋은 두려움을 노래하였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눅 1:50). 이 두려움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또한, 이 두려움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한다. 사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이 사랑의 두려움이 다른 모든 두려움, 곧 공포로 가득 찬 두려움을 제거하고 우리를 깊은 평안으로 인도한다(요일 4:18).

   그렇다면 공포로 가득 찬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사가랴가 우리에게 말한 대로 우리는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될 것이다. 원수의 손에 놓이면 공포로 가득 찬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바로의 폭정으로 인해 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가야 했다. 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채찍을 맞으며 온종일 고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나중에는 스스로 재료를 준비하면서까지 벽돌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을 강물에 던져야만 했다. 얼마나 두려운 삶인가! 그들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수많은 원수들로 인하여서 그들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애굽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두렵게 하였던 모든 원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움이 없이 진정한 평안 속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공포로부터 해방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다. 바로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은 사단과 죄의 종살이를 하는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그림 언어였다.

   우리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이 되어서, 악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며,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영적인 애굽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사단과 그의 수하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죄로 유혹하고, 우리의 타락한 죄성 때문에 우리는 죄에 끌려다니고 있다. 바로처럼 사단도 끊임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핍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 우울감, 죄책감, 걱정들로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사단은 최선을 다하여서 죄인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며, 그들을 희망이 없는 삶과 절망적인 죽음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를 가로막고자 이 땅에 태어나셨다. 바로와 마찬가지로 사단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 내로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분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우리에게 쏟아졌으며 우리는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이 죄악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사단과 죄와 죽음의 권세에 놓여서 영원토록 두려움에 갇혀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복음은 우리를 그 영원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할 구세주가 오셨다는 소식이다.

   사실 우리의 죄로 인하여서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였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가 우리가 가진 최악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사단과 이 세상, 그리고 우리의 죄성으로부터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로 더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래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서 우리의 반역에 대한 죗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우리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거두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공포, 두려움, 염려로부터 해방되었다.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평안과 화목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회복시키셨다.

 

 

평안으로 충만한 삶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사가랴를 통하여서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빛을)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9). 당신이 만약 우리의 죄를 위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음을 믿는다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며,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이상 우리에게 분노하지 않으실 것이다. 당신은 더이상 애굽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사단은 더이상 당신의 죄악 된 본성과 삶을 조종하지 못하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지옥의 불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여러 상황 속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수많은 걱정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서 우리 마음이 마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크리스마스의 복음을 믿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자.

   질병, 사고, 상실들을 두려워하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크리스마스의 복음을 들으라!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심판을 대신 담당하실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더욱 거룩한 모습으로 만들어가시는 중이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므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걱정하고 있는가? 크리스마스의 복음은 이렇게 선언한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은 누구보다 더 죄인들의 구원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시며, 누구도 그분의 손에서 그분의 양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10:28). 그러므로 평안을 누리라! 혹시 우리 가족들과 교회와 이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내일을 약속하셨다. 그날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당신은 영원한 평안의 약속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기에 이런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두려움은 매우 강력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여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끝없는 두려움과 비이성적인 공포들이 우리를 계속 붙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자책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상한 갈대이며, 꺼져가는 심지임을 알고 계신다(마 12:20). 그저 이 복음을 붙잡으며, 주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다른 지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모든 지각을 뛰어넘는 평안을 주실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라. 그러면 그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훨씬 더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요일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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