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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론 목회자 인터뷰 일곱 번째 인터뷰. 

 

창녕제일교회 정수생 목사님.

 

           신학교 3학년 2학기 필수 과목으로 “교회 정치”가 있다. 교회의 질서, 교회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당시 지도하는 교수가 “고신 교단에 교회 법 전문가가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정수생 목사님”이라 얘기 했었다. 그때 그 이름이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았었다. 게다가 마침 헌법 개정 위원이라 헌법 머리말에도 이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개혁정론 일곱 번째 인터뷰로 그 정수생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 “고신정신” 강의를 위해 올라온 정수생 목사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정 목사의 인터뷰는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대선배의 무게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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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목사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신앙 이력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정수생 목사: 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로 인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교회를 다니다가 안 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침 중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녔습니다. 교회 안다녔는데 학생들이 이상하게 나를 교회 다니는 학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 교회 나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 다닐 때 하나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때 교사들이 가르쳤던 것이 소교리문답이었습니다. 소교리문답을 외우고 복창했습니다. 제1문 등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질문하고 답하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교회 다닐 때 아버지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핍박 이유는 3가지 입니다. 첫째로 365일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 52일 동안이나 쉬면 먹고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조상들 제사 문제입니다. 귀신이 오던, 안 오던 조상들의 기일을 잊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셋째로 제 성품이 온유하다고 생각하셔서, 예수님 믿으면 더 어리석어 지는데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극히 반대하셨습니다. 유독 기억나는 것이, 고등학교 2학년 3월 1일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아침에 교회 못나가게 지키셨습니다. 결국 교회 못나가고 하루 종일 울며 방에서 기도했습니다. 또 저녁 예배 마치고 오면 문을 잠그셔서, 수채 구멍 같은 비슷한 곳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곤 했습니다. 심지어 회유도 하셨습니다. 교회 안 나가면 좋은 고등학교 보내주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던 부모님께서도 신학교 진학하면서는 잘 지원해주셨습니다. 주변 분들이 신학교 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신학교 진학 이후에는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지원해주셨습니다. 등록금을 제때 내기가 어려워 분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점심 굶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초창기에는 핍박이 있었지만. 결혼 후에 어머니께서 교회 출석하셨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아버지께서도 교회 나오셨습니다. 명절 전날에는 보통 제사가 있어 집을 방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명절 전날 집을 방문했는데 제사 드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말하시길 “주일에 아버지께서 교회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새벽기도를 철저히 하셨습니다. 

 


Q 목사님, 신학교 시절, 그리고 그 이후 사역들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사역 연수가 많아 다 소개하시지는 못하시겠지만 몇 가지들을 소개해주십시오.

 

A 정수생 목사: 첫 사역은 신전교회였습니다. 고향 교회였지요. 교역자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박임규 전도사님(남서울교회 원로 목사 박종수 목사 선친)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교역자가 없으면 전도사 사역을 하시고 교역자가 오면 집사 사역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교회에서 교역자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2년 사역했습니다. 친구들도 있고 부모 같은 어른들이 계시니 많이 민망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님들께서 저를 깍듯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생활비도 받고 성미까지도 받았습니다. 만약 제가 개망나니 짓을 했다면 사역 못했을 것인데, 그런 짓을 안했기 때문에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웃음)
           그때 참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병 든 분을 만났습니다. 귀신 들린 병이었습니다. 전 남편이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귀신이 들린 것 같았습니다. “하나 둘”하면서 군인 흉내를 냈었습니다. 다른 데서 치료를 못 받으니 교회에 왔었지요. 주중에는 제가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교인들과 함께 집에 찾아가 기도하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집에 낫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낫을 들고 오니 다 도망쳤지요. 그때 저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마침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그 귀신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분이 싹싹 빌더라고요. 그 뒤 나았고 얘기를 들으니 그분께서도 신앙생활 잘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체험했었습니다. 

           기장교회에서 임병민 목사님께서 제게 아주 좋은 경험을 시켜주셨습니다. 바로 당회 방청을 시키신 것입니다. 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게다가 장로님들께서도 이상하게도 좋아하셨습니다. “왜 방청 시키느냐?” 하지도 않고 허락하셨죠. 그래서 목사님께서 제게 의견을 묻기도 하셨고, 그러면 의견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권징이 있을 때 중간 역할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당회 인도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에는 제2영도교회에서 사역하기도 하고, 대전 한밭교회에서 사역도 했습니다. 한밭 교회는 위임목사로 갔습니다. 또 이후에 삼한교회에서 청빙이 있어 7년간 사역했습니다. 7년 지나니 영주시민교회에서 청빙이 있어 하나님 뜻인가 하고 부임했습니다. 4년 반 정도 사역한 뒤 창녕에서 청빙이 있어 창녕제일교회로 온 것입니다. 

 

 

Q 목사님 가정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정수생 목사: 졸업반 때 결혼을 했고, 기장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아내가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고려파 정신에 따라 주일 관념이 아주 강했습니다. 주일날 일직을 하면 다른 분들과 바꾸었습니다. 한 번은 운동회를 주일날 하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말씀 드렸는데도 잘 안 되었죠. 그래서 연습은 다 시키고선 주일날 안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큰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청와대에다 진정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지도한 학생이 콩쿨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해서 이후에 다른 학교로 발령 받았습니다. 일직이 있으면 공휴일로 바꾸고 주일을 지키는데 애썼습니다. 
           자녀는 4명입니다. 그리고 모두 고신 교회에 출석합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고신 교회에 출석하고 직분자로,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려파 출신이면 고려파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강조합니다. 우리 교단을 섬겨야 하는데 왜 다른 교단을 가느냐는 거죠. 고려파 정신에 의한 고려파 교회. 고려파 긍지, 고려파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말만 개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예배하고, 섬기고, 봉사한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목사님들이 고려파 하면서 당신의 자녀들을 타 교단 교회에 보냅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장로님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교단 교회를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주일 성수를 크게 강조했습니다. 제 큰 딸의 경우 당시에 한국외국어 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수석 입학했습니다.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교사임용고시가 주일이었습니다. 보이콧 했지요. 그래서 학원 강사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국민고충처리 위원회(위원장 김광일)에 소장을 올렸습니다. 헌법에 따라 행복추구권,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주일에 시험 치면 방해 받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정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토요일로 변경이 되었지요. 
           큰 딸은 지금 기독교 사립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그때 박사학위 가진 사람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딸을 채용했습니다. 학교 성적도 좋았지만 목사 딸이라서 채용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신앙이 어설픈 사람들이 지원하고 하니 고려파 목사 딸이니 믿을 만 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Q 23년간, 가장 오랜 기간 사역한 곳이 바로 창녕제일교회입니다. 창녕제일교회에서 하셨던 사역들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정수생 목사: 창녕에 처음 내려올 때 제가 총회 유지재단 이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 목사가 여기를 발판 잡고 다른 곳으로 또 떠나려고 온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데 가본들 별 볼일 있겠습니까? 가라고 안하면 계속 있을 겁니다” 했습니다. 오래 있으려고 생각한 것이지요. 여기서 은퇴하려면 20년이나 넘게 있어야 하니까 교회에 변화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예배당 건축이었습니다.
           당시에 예배당이 골목 가운데 있었습니다. 차량을 한 대도 주차 못하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의 계기를 예배당 건축으로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성도들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분들 중심으로 힘을 모아 예배당 건축을 추진했습니다. 지금도 참 감사한 것이 교인들이 많은 금액을 헌금했습니다. 그래서 빚 있는 것을 3-4년 만에 갚았습니다. 예배당은 부지도 넓고 건물도 제법 모양 있게 잘 건축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고수합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예배를 고수합니다. 처음에는 여름에는 저녁 8시, 가을에는 7시 반, 겨울에는 7시 했는데, 지금은 7시로 고정했습니다. 물론 저희도 예배 전 찬양을 합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묵상기도로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예배를 고수합니다. 사실, 예배를 인도하다보면 저녁예배가 참 좋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가 오후예배를 합니다. 어떤 데는 1시 반에 드리는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냥 때우는 식입니다. 
           그리고 주일 성수도 강조합니다. 돈 거래를 피도록 강조합니다. 찬양대 간식 사오고 하면 야단쳤습니다. 선배 목사님한테 들은 얘기로, 찬양대가 헌신예배 준비로 간식 사들고 온 것을 보고는 그날 찬양대 서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선배들에게는 주일 성수가 중요했고,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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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목사님께서는 교단 내에서 헌법 전문가로 유명하십니다. 헌법 개정, 해설 위원으로도 참여하셨는데, 교회법(교회정치)을 아는 것이 교회(성도들)에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A 정수생 목사: 사람들이 “정 목사는 어떻게 법을 잘 아는가?” 하고 묻습니다. 헌법 개정 할 때 앞에 나가서 설명을 했는데, 뒤에서 “정 목사 법대 나왔어?”하고 묻습디다. (웃음) 
           먼저 헌법 개정 위원 활동부터 얘기하겠습니다. 헌법 개정하면 꼭 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총회에 헌의도 올리고 했는데 부결되었던 것입니다. 먼저 장립집사, 권사를 미조직 교회에서 세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조직 교회에서 장로는 되고 왜 집사 권사는 안 되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협조 당회원을 노회에 요청해(주로 시찰회에 일임) 장립집사, 권사를 세우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투표입니다. 투표는 참 힘듭니다. 특히 교인들이 많으면 더 힘듭니다. 그래서 공천을 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헌의안으로 올렸을 때는 현행법대로 하자고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듣기로는 당시에 어떤 교회는 교인이 많으니 노회에서 허락받은 3명을 1차 투표에서 선출하고 다음에는 3명을 O X 로 가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200명 300명 까지는 어느 정도 공천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수 이상 넘어가면 공천 없이는 사람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공천 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고 헌법을 개정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명예 권사제도 입니다. 총회에서 안한다고 결정해도 계속 기독교보에 광고로 올라왔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 아예 넣었습니다. 교회 직분자는 명예가 아닙니다. 아마 명예 권사 세우면 반드시 명예 장로가 나올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장립 집사가 세상을 떠나니, 장례에서 관명정에 장로로 명기해 달라고 요청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거는 꼭 군대에서 순직하면 계급 특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서 헌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했습니다.

           제가 개정 위원이 되었을 때 특히 권징 조례 부분을 자원했습니다. 권징 조례에 있어서 생각한 것이 총회에서 특별 위원 구성이나, 전권 위원 구성할 때 무기명으로 하지 말고 공천 위원회에서 배수를 추천한 뒤 구성하자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그룹의 사람을 돌려서 넣었는데 이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전권 위원회만 하면 횡포를 많이 부렸습니다. 면직도 시키고 했지요. 재판을 하면 기소위원이 있어야 하는데, 전권 위원회에서 기소 위원회도 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혼란이 많이 생겼습니다. 한 번은 전권위원회가 잘못을 해서 다시 전권위원회 세운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설 재판국을 두자고 했습니다. 전권위원회에서 행정권인 견책, 근신, 정지까지만 하고 징계하고 그 이상은 재판국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법을 세분화해서 정했습니다. 애매한 부분을 분명하게 짚었습니다. 세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한 것이 조직교회 당회장이 노회장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정치 파트가 한 동안 총회에 통과가 안 되었습니다. 
           장로교는 당회, 노회, 총회가 치리회 입니다. 노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 없는 당회장이 어떻게 목사와 장로의 회인 노회의 치리회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 기초 단위에 있는 치리회장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상급 치리회의 회장이 될 수 있느냔 말이죠. 반대하는 분들이 “그 목사가 능력도 있고 한데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거 아니냐?” “노회장 할 사람이 너무 없다”는 등 말했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세례교인 30명이 되면 장로를 세울 수 있습니다. 30명도 안 되는 교회 목사가 어떻게 노회장이 되어 100명도 넘는 모임을 치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장로교 목사가 왜 장로를 안 세웁니까? 총회에서 이렇게 하니 총회 총대들이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이 생기면서 노회 분할이 어려워 져서 덜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저는 기장교회 때부터 당회 참석을 할 수 있어서, 당회와 법의 중요성을 잘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 중심이 “법대로 하자” 입니다. 사람들은 법을 너무 내세우면 딱딱한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또 교회는 은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혜 될 때는 좋은데, 은혜가 떨어지면 무너집니다.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려워도 법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늘 지조로 삼고 있습니다. 정도로 삼았습니다. 제가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기보다는 헌법을 많이 읽고 헌법대로 목회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Q 목사님 어느 덧 은퇴가 다가왔습니다. 혹시 은퇴 이후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A 정수생 목사: 은퇴를 리타이어먼트(retirement)라고 합니다. 타이어 새로 끼우는 것이지요. 하지만 타이어 새로 끼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폐차 처분입니다. (웃음) 
           많은 분들이 은퇴 이후를 묻습니다. “무슨 계획이 있느냐?” 하지만 잘 안 됩디다. 저도 은퇴식 설교 가면 뭐라고 말 했지만, 막상 은퇴를 맞이하니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법을 잘 아니 법률 사무소 같은 것들을 해보라고 조언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법 문제 같은 것들은 민감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익명으로 많이 문의하고 저도 또 캐묻지도 않고요. 그러다보니 법률 사무소 같은 것은 애매합니다. 동기 이용호 목사님이 취미생활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취미를 하겠습니까? 등산을 다니는 것도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고민이 많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은퇴 이후 교회를 어디로 가야하는가?”입니다. 담임목사가 부담스러워 합니다. 더군다나 섬기는 교회는 더 출석할 수 없습니다. 자기 부모도 안 모시려고 하는 세상인데 상왕 같은 어른을 교회에 두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장로님들도 그렇고요. 또 내가 목회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변경될 텐데 인간적인 마음에 섭섭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주변에 은퇴하신 분들이 많이 섭섭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것을.

           은퇴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앞으로 누구든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직접 어디에 전화해서 불러달라고도 얘기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은사가 0.001%도 없어서. (웃음) “이제 아침 식사 하고 어디로 나가야 하나?”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가야하나? “점심 먹은 뒤 어디로 가야할까?” 이런 생각하는 것들이 참 힘듭니다. 아마 새벽기도는 집 근처 통합 측 교회에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주일 저녁예배 하는 곳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오후예배 때까지 죽치고 교회에 있는 것도 힘들 것 같습니다. 예사 일이 아닙니다. 2시 예배니 애매하지요. 

           보통 여행을 하면 그 날이 기다려지는데, 은퇴하는 날은 하나도 기다려지지 않습니다. 벌써 다 되어가네 생각합니다. 

 


Q 목사님의 무거운 마음을 제가 다 알겠습니까만, 은퇴가 홀가분한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목사님,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목사님에게 고려파 정신은 어떤 의미입니까?

 

A 정수생 목사: 제게 있어 고려파 정신은 순교자 정신, 생활의 순결 입니다. 고려파의 이념입니다. 사실은 고려파가 순교 신앙을 이어 받는다고 하지만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이 직접적으로 고려파는 아닙니다. 고려파는 사실 신앙은 한상동, 신학은 박윤선을 따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박윤선 주석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그 세대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그 다음 세대인데, 우리도 고려파가 아닌 밖에 있는 너무 다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육은 침례교 교육을 합니다. 또 순복음 영향을 받아 성령운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본 기초는 칼빈 신학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조입니다. 고백서에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는 헌법에 나와 있는 예배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 정치에 따라 목회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A 정수생 목사: 교회 3대 표지가 바로 말씀, 성례, 권징 아닙니까? 예배는 전통적인 예배여야 합니다. 꼭 사수해야 합니다. 말씀 선포는 칼빈주의 신학에 입각한 성경 해석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너무 섞습니다. 장로교 설교 하는지 순복음 설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징을 해야 합니다. 물론 저도 권징을 하면서도 벌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너무 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징은 칼빈이 요구한 것입니다. 칼빈 기념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대상이 기둥에 있고, 장로석이 그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칼빈이 청중들을 안보고 장로들에게 설교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시의회 의원들이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장로가 변해야 교인이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을 교육하는데 힘썼다고 합니다. 장로가 변하지 않으면 교회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동일합니다.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개혁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내용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예배(성례), 권징, 말씀에서 갱신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나의 삶, 나의 목회”라는 책이 나옵니다. 저의 신앙생활의 과정을 적었습니다. 또 헌법에 대한 질의 응답한 것들 120여 가지들, 그리고 제 설교들이 담겨 있습니다. 법에 대한 궁금증들은 이 책을 참고하여도 좋습니다. 

 


윤웅열: 목사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의 큰 선배님께서 좋은 권면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퇴 이후에도 선배 고려파 목사님으로 든든히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어: 윤웅열 (다우리교회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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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개혁교회와 고신총회의 관계에 ...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의...
[대담] “진리를 말하고 삶으로 진리... 1
개혁신앙인은 현대과학을 어떻게 볼... 1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1
칼빈의 창조적인 교회력 수정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논문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수도권의 교회연합 가능성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