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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론 목회자 인터뷰 여덟 번째 인터뷰. 

 

경동지역 SFC 대표간사 박창원 목사.

 

          고신교회는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지도하는 기관으로 학생신앙운동(이하 SFC)을 두고 있다. 지난 개교70주년 학술대회에서 김순성 교수는 고려파 영성이 SFC에 남아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리더십을 세우는데 간사들이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데, 그 간사 중 한명인 박창원 목사를 인터뷰했다.
          박창원 목사는 경동지역(경주, 포항 일대) 대표간사이며 포항 대흥교회 대학부 담당 목사이기도 하다. 그는 SFC 내에 개혁신앙에 충실하면서도 뜨거운 부흥강사 같은 설교자, 강사로 알려져 있다. 독자들께서 이 인터뷰를 통해, 박창원 목사가 지닌 개혁신앙의 따뜻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박창원 간사.jpg

 

Q 목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개혁정론 인터뷰로 만나니 더 반갑군요. 먼저 개인적인 신앙 이력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박창원 목사: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고신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여상하게 주일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무난한 교회의 자녀로 자랐지요. 특이점이라면 부모님께서 개척교회를 섬기셔서 어릴 때부터 교회를 위한 삶을 보고 자랐으며, 덕분에 교회적 삶에 대한 이해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을 할 수 있었지요. 주일학교 시절부터 부모님과 새벽기도회에도 가고, 주말에는 예배당 청소도 하는 등, 어린 시절 제게 교회는 놀이터요, 삶의 중심이었답니다. 또 성도가 적다보니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냈지요. 그래서 누군가 가르쳐서가 아닌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성도의 교제를 풍성히 나눌 수 있었답니다. 훗날 신학을 공부하면서 보니, 그게 바로 교회의 참된 모습이었더라구요. 그래서 저를 교회의 자녀로 길러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Q 회심한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교회의 자녀로 자랐으니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셨나요? 

 

A 박창원 목사: 저는 분명한 회심의 경험이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모범 성도로 자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저는 불량성도였습니다. 교회와 학교에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이었지요. 그러다가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인생의 첫 좌절을 겪게 됩니다. 공부를 등한히 했기에, 이미 실패는 제 속에 내재되어 있었건만, 결과로 드러나니 충격이 아주 크더군요. 극심한 패배감에 사로잡혔죠. 제 인생이 얼마나 비루하고 비참한지를 마주했답니다.
          당시에는 전기, 후기, 전문대로 나누어 응시했는데, 모든 시험에 낙방 하면서 존재의 무가치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럽던지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겠더라구요. 처음으로 주일에 교회에 가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동안 감추어 두었던 저의 실체가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자, 저는 심판 당한 자처럼 심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주일 낮 예배를 가지 못했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구요.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예배는 드려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저녁 예배 때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본당으로 들어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불이 꺼진 지하 기도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컴컴한 기도실에 들어서자,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강대상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곤 무릎을 꿇었지요. 아니 꿇었다기보다 그냥 저도 모르게 엎어졌다는 게 더 맞을 겁니다. 그리고 곧 서러움의 눈물이 터졌지요. “하나님께 왜 이렇게 저를 비참하게 하십니까?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폭풍 눈물을 흘렸지요. 그런데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이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몰랐니? 이게 바로 너의 실체다”라고 말이지요. 네~ 그 순간 하나님은 저의 죄와 비참함을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러움으로 시작한 눈물이 이후에는 저의 죄에 대한 눈물로 이어졌습니다. 그 동안 죄와 비참에 빠져 살았던 삶에 대한 애통이 터져나왔지요.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자 하나님께서 또 이런 마음을 주시더군요. “창원아, 네가 이렇게 비참한 존재이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너의 비참함 때문에 너에게는 내가 필요하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그날이 저의 회심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이전의 어두운 삶을 떠나 하나님 안에서 빛의 삶을 살게 되었지요. 참된 평안과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누리면서 말이지요. 

 

 

Q 찐한 회심 경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로 부르심은 어땠습니까?

 

A 박창원 목사: 재수 시절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비로소 저의 삶에 목적이 생기더군요. 공부해야할 이유가 생긴 거지요. 덕분에 힘써 공부할 수 있었고, 영남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곤 SFC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요. 대학시절은 성경과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으로 가득했던 시간입니다. 한마디로, SFC가 전부였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즐거운 세월을 보내다가 졸업할 즈음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나는 평생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하나님께 물었지요. 그때 주변 분들은 사역자로서의 삶을 많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여러 많은 분들로부터 사역의 외적 부르심을 받았지만 제 안에 확신은 없었지요. 

 

 

Q 아! 내적 소명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었군요? 

 

A 박창원 목사: 네~ 외적 소명은 있었지만 내적 소명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많이 주저했어요. 주저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목회자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둘째, 너도나도 신학교에 가면, 세상에서의 빛된 삶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 걸까?였지요.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SFC 신앙 부흥회가 있었는데 한진환 교수님이 강사로 오셨지요. 그리고 설교 중에 본인의 대학 졸업반 시절을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제 이야기와 너무 비슷했습니다. 교수님도 졸업반 때 교회 봉사의 삶을 살았는데,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하나님께서 목회로의 부르심을 주셨다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지금도 신학의 길, 목회의 길은 어려운 길이지만 꼭 필요하고 참 중요한 길이니, 여러분 신대원으로 오십시오’라고 강력하게 도전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도전은 바로 저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물론 뒤에 알고 보니 그때 교수님이 신대원 원장이 되신 해라서 가는 곳마다 신학생 콜링을 하셨다고 합니다(웃음). 그래도 저의 시간에 딱 맞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시간이었지요. 그때의 부르심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지치거나 힘들 때면 그 기억을 더듬으며 마음을 다 잡습니다.

 

 

Q SFC 사역은 신대원 졸업하고 시작하신 건가요? 

 

A 박창원 목사: 아니요. 신학교 진학보다 SFC 보조간사 사역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지요. 지식이 없이는 가르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같이 놀아주는 간사 밖에는 될 수 없었지요. 그렇게 가르침 없이는 운동 또한 없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계를 갖고 신학교로 갔어요. 가르칠 바를 확실히 배우고 채워 넣겠다는 일념으로 신대원에 왔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아주 행복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치열하게 공부도 하고, 동기들과 즐거운 교제도 나누었습니다. 야구팀을 만들어 잔디밭에서 즐겁게 야구 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다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요. SFC 사역과 교회 사역....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청년 사역자와 단체가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사역하는 자는 희귀하고 말씀과 교회 중심의 단체는 적다는 마음을 주시더군요. 그리곤 캠퍼스 안에서 말씀의 들불이 일어나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SFC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대구지역으로 복귀했습니다. 

 

 

Q 경동지역에 처음부터 가신 것이 아니었군요. 어떻게 대구지역에서 연고 없는 경동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신 건가요?

 

A 박창원 목사: 대구로 복귀하면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교로 돌아가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10년은 사역하겠다는 거였지요. 간사가 자주 교체되면 가르침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운동의 지속성이 약화되기에, 저는 한 학원에 10년간 뼈를 묻어 사역의 열매가 맺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모교인 영대 SFC를 섬겼는데, 이때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역했던 시기였지요. 물불 안 가리고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운동원들과 침밀한 관계를 맺어가던 2년차 때 경동으로 인사발령을 받았지요. 
          처음 인사 발령을 받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 꼭 나인가? 10년 사역하기로 했는데 2년 만에 어찌 갈 수 있단 말인가?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쳤던 제자들을 버려두고 내가 어찌 여길 떠나겠는가?라며 눈물로 밤을 보냈지요. 이제 간사 그만해야 하는가?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참 힘든 시기였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가지 마음을 주시더군요. 첫째는 경동이 가기를 꺼려하는 지역이었다는 겁니다. 자원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는 것과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것이 조금씩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또 사도행전을 묵상하던 중, 바울이 온 마음을 다해 사역한 지역이라도 복음의 필요를 따라 사역지를 옮기는 모습을 보며, 사역자는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복음의 필요를 따라 사는 자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저의 계획을 접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경동에서의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Q 초기 경동지역 사역은 어땠습니까?

 

A 박창원 목사: 초기의 사역 환경은 어려웠습니다. 저와 다른 간사님 한분, 그렇게 둘이서 사역을 했는데 맡아야 하는 학원만 7개였지요. 그래서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정신없이 사역했습니다. 어디 캠퍼스 사역 뿐인가요? 주말에는 대흥교회 대학부 사역, 또 교회 연합 사역 등 정말 많은 일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정말 하이델베르크의 우르시누스가 말한 것처럼 방앗간의 나귀처럼 열심히 방아를 찧었어요. 그렇게 몸은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마음에는 복음 전파의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제 자신이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지요. 물론 그 덕분에 몸이 많이 상했고, 결국 탈이 나서 병원 신세도 졌습니다. 심장 혈관 쪽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서는 곧 죽는다고 야단났었지요. 문자, 페이스북 등으로 저를 위한 기도 요청이 급속도로 전파됐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기도 덕분에 제가 안 죽고 살아 지금까지 즐겁게 사역 잘하고 있습니다. 그때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Q 어떻게 사역을 하셨나요? 모임 인도, 리더 훈련은 어떻게 하셨나요? 무엇을 중점적으로 가르치셨나요? 질문이 쏟아집니다.

 

A 박창원 목사: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또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가르칠 내용과 방향도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르쳐야할 내용은 개혁신앙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교리문답 등이 그 기초지요. 가르쳐야할 목표는 개혁신앙인 양성이었습니다. 이는 곧 좋은 성도를 길러내는 걸 가리키지요. 
          내용과 목표가 선명해지니 사역은 적실성 있게 진행됐습니다. 목표가 분명하기에 향방있는 달음질이 가능했지요. 그리고 조금씩 열매가 맺혔습니다. 또 저 혼자만이 아니라 노회 안에서 좋은 선배 목사님들을 만나 목회와 개혁주의 신학의 실질들을 배우면서 더욱 풍성한 사역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좋은 스승과 동지를 만난 것은 제가 경동에 와서 얻은 가장 큰 복입니다.

          간사는 강령에 기초한 가르침과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열심히 배워야 하지요. 그렇게 강령을 배우다보니 이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주 늦게 깨달은 셈이지요. 간사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강령의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된 거지요. 너무나 불량한 운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귀한 것을 알게 돼 너무 감사했고, 또 늦은 만큼 더 열심을 내어 가르쳤지요.
          또 개혁신학을 가르치며 사역적 열매도 풍성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동대 SFC 같은 경우 10명도 채 안 모였는데. 열심히 개혁신학을 가르쳤더니 그 가르침이 많은 주의 자녀를 불러 모으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많은 운동원이 모이는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개혁주의 신학이 가진 힘을 경험할 수 있었지요. 개혁신학은 몇몇 사람들만의 특별한 신학이 아닙니다. 개혁신학은 성경적 바른 삶을 살기 원하는 모든 평범한 성도들을 위한 보편신학입니다. 성경이 은혜의 방편이라면, 개혁신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보편의 방편이지요. 그래서 이 신학을 가르쳐야만 하며, 이를 가르칠 때 보편 성도가 자라고, 또 보편 교회가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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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역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박창원 목사: 저는 이제 강령을 구현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동안 참 많이 외치고, 또 많이 가르쳤지요. 그러면 이제 구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개혁주의 대한 교회 건설 사명의 성취 말이지요. 그래서 올해로 간사 사역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교회 개척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제 가르침의 실질을 이루어내야 하는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삶의 중요한 시험대 앞에 선 거지요. 이 일은 어렵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여러 한계에 부딪히겠지만 그동안 배워 얻은 앎을 삶으로 구현해내야만 합니다. 말씀 속에서 발견한 교회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이제 저의 삶 속에 심어야지요. 힘은 들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러나 우직하게 걸어가려 합니다. 그래서 이상이 완벽히 실현되지 않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기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해요. 제 별명이 더딘 걸음, 완보(緩步)인데요, 완보(緩步)로 완주(完走)하길 소원합니다. 

 

 

Q 목사님 가정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A 박창원 목사: 아내와 자녀 둘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들인데 11살이고, 둘째는 6살 딸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개척을 결정한 주요 요인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가정을 세우고, 건강한 가정은 또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지요. 
          하지만 간사 사역을 하는 동안 가정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순전히 저의 부족함 탓이긴 하지만 선교단체 간사는 일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질 수 없습니다. 늘 늦은 밤까지 사역하느라, 새벽녘이 돼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그래서 몸도 몸이지만, 가정적인  손실도 많이 입었답니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필요한 시기에 아버지 노릇을 못했지요. 한번은 아들이 다섯 살 즈음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 오늘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아빠를 얼마나 못 보니 아빠가 같이 사는 존재라는 걸 잊어버린 거지요.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 이야기입니다.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저는 하나님과 자녀 앞에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남의 자녀는 잘 가르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사역했는데 정작 내 자녀는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으니 저는 목사로서, 아비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회개하며 참회하며, 이제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개척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저의 실수를 경험삼아 성도 모두가 언약의 복된 가정을 함께 세워가는 그런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가정의 회복은 교회의 가르침과 돌봄을 통해 가능합니다. 성도 모두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말씀의 배움을 얻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함께 땀 흘릴 때, 경건한 가정도, 거룩한 교회도 세워질 수 있지요. 저는 그런 교회를 꿈꿉니다. 가정, 교회, 학교에서 한 신앙의 가르침과 고백과 교제를 누리는 그런 교회 말이에요.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한 불길이 또 다른 가정으로 번지면, 어느새 모든 가정으로 확산 되리라 믿습니다. 저희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한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가정에서도 이 말씀을 나누며, 모두가 한 솥의 밥(영육의)을 먹는 한 식구(食口)된 교회를 세워나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만이 자녀를 향한 신앙 양육이 부재해 가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으며, 믿음의 다음 세대를 낳고 길어 내는 성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Q 가정 소개를 부탁드렸는데, 기승전 교회개척 이야기로 나가는군요. 웃음. 뜨거운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마지막 질문이 다가왔습니다. 목사님에게 개혁신앙은 어떤 의미입니까?

 

A 박창원 목사: 저에게 개혁신앙은 성경을 보는 눈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저는 ‘개혁주의’ 덕분에 성경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요, 또 교회와 그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법)를 구현(질서)해 내는 곳이요, 이 교회는 일꾼(직분자)을 통해 세워지는 의와 거룩의 나라임을 배웠지요. 이렇게 개혁신앙은 제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실체요, 하나님의 의의 통치가 구현되는 영광의 현장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신앙은 경험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누리는 곳이니 어찌 경험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에게 개혁주의는 따뜻하고 풍성하고 즐겁고, 참 뭐라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신나는 그 무엇 입니다. 성경 안에 담긴 풍성한 은혜의 실재를 누리고, 또 그 은혜를 지속시켜주는 질서와 방편을 배워 순종케 하는 것이 개혁주의이지요. 그래서 제게 개혁신앙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영화롭게),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Q 아쉽지만 이제 인터뷰를 마칠 시간입니다. 개혁정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기도제목을 알려주십시오.

 

A 박창원 목사: 지금껏 다 말했는데 또 뭘 더 말해야 하죠? 웃음. 두 가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아! 또 두 가지이군요. 웃음). 첫째는 SFC를 위한 기도입니다. 근래 SFC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 의혹들이 많이 제기됩니다. 실제로 연약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SFC는 고신교단의 자녀이며, 교단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녀의 약함을 부모가 사랑으로 위로하고 훈육하듯. 교단이 잘 훈육해준다면, SFC는 앞으로도 교회의 자녀를 돌보고, 교회 중심의 개혁신앙인을 길러내는 좋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SFC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개혁신앙 운동을 힘 있게 펼쳐 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둘째는 저의 개척사역입니다. 아직 준비된 것도 별로 없고, 앞날이 막막하기도 합니다. 기대만큼 두려움도 크지요. 하지만 담대하게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또 준비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절차와 방식이 말씀의 정하신 질서 안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윤웅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임 전 남은 사역들 잘 마무리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든든한 개혁주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박창원 목사는 필자의 동일한 대학 학과, SFC 직속 선배이다. 오랜 시간 떨어진 후배지만 그는 늘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음이 본인에게도 큰 감동이었다.)

 

인터뷰어: 윤웅열 (다우리교회 강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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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해외칼럼] 오직 그리스도로(Solo C...
[해외칼럼]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해외칼럼]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해외칼럼] 존 크리소스톰의 설교와...
기고
개혁신앙인은 현대과학을 어떻게 볼... 1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1
칼빈의 창조적인 교회력 수정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이신칭의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
영화 ‘루터’를 보고 (성영은 교수) 1
“총회교육원과 출판국을 왜 통합하...
논문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수도권의 교회연합 가능성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