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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론이 주최한 '제7차 고신 개정헌법,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성희찬 목사가 발제한 교회정치와 권징조례에 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고신 교회 제7차 헌법 개정안 초안에 나타난 교회론

-교회정치, 권징조례를 중심으로-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1. 서론

 

 예장 고신 제70회 총회(2020년 9월)는 2011년 헌법개정 이후 10년 만에 제7차 헌법개정을 결의했고, 헌법개정위원회(위원장: 김세중 목사)는 약 2년의 수고와 작업 끝에 지난 6월에 개정안 초안을 교단 언론지 기독교보에 공개했다.

 

 오는 9월에 열리는 총회에 상정 예정인 이 헌법 개정안 초안을 고신 교회에 속한 교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 대다수 사람은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심지도 목사와 장로들도. 마치 사회에서 우리가 법을 몰라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교회(헌)법을 몰라도, 아니 법이 없어도 사랑이 넘치고 성령께서 역사하고 전도와 선교를 잘 할 수 있고 교회도 부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법은 사랑과 성령과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큰 오해가 있다. ‘법’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오해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교회의 ‘법’은 세상의 ‘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이 법은 ‘하나님의 법’인 성경에서 그 기본 원리가 다 나왔기 때문이다(물론 어떤 법 조항은 사람의 지혜로 만든 것도 있다). 또 교회법은 궁극적으로 공예배 질서를 위한 것이며, 회중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치리를 대신할 교회 직원과 치리회에 관한 것이며, 군림이 아니라 봉사의 법이며 화평을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4장). 그래서 16세기 교회개혁을 위해 쓰임 받은 종교개혁가들은 교회 건설을 위해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과 함께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교회법을 작성했다. 개혁가 칼빈은 <교회개혁의 필요성>이라는 소논문에서 공예배에서 설교하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교회정치(혹은 교회법)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유산을 따라서 믿음과 생활에 절대적 표준인 성경만이 아니라 이 성경을 토대로 만든 교회 헌법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헌법은 다시 교리표준(신앙고백서, 교리문답)과 관리표준(예배지침, 교회정치, 권징조례)으로 나뉜다. 교리표준은 교회의 고백을 위한 표준을, 관리표준은 예배와 직원과 치리회, 권징과 관련하여 교회를 관리하기 위한 표준을 각각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 헌법은 그냥 법 조항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교회를 구체적으로 그린 설계도와 청사진이다.

 

 이런 측면에서 흔히 교회(헌)법은 “법 조항들로 이루어진 교회론”이라 불린다. 네덜란드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1837-1920)는 1894년에 자기 책, 『Encyclopedie der Heilige Godgeleerdheid』(거룩한 신학 백과사전)에서 교회(헌)법을 교회사와 함께 ‘교회학’으로 분류하고, 교회(헌)법을 제도교회가 존재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으로 보았다.[1] 이런 정신을 따라 개혁주의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L. Berkhof)의 『조직신학』이나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유해무 교수의 『개혁교의학』도 교회론에서 교회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요지는 교회법은 교회(제도교회)를 다루기에 ‘교회학’이나 교회론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교회(교단)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그 교회가 채택한 헌법 조항을 보면 알 수 있다. 헌법 조항을 통해 그 교회가 무엇을 고백하는지(신앙고백서), 어떤 교리를 가르치는지(교리문답), 공예배에서 어떤 질서를 통해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지(예배지침), 직분과 치리회가 어떤 질서로 교회를 다스리는지(교회정치), 치리회가 어떤 방법으로 권징을 시행하는지를 알 수 있다(권징조례).

 

 본 글은 이번 제7차 개정안(초안), 특히 교회정치와 권징조례에 나타난 새로운 교회론이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고, 이것이 과연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로 그 교회론인지를 비판적으로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2. 장로회 정치원리가 제시하는 교회론

 

 개혁주의 교의학자인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에 따르면 장로회 정치원리가 제시한 교회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치리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2] 장로교회에서 교회법 각 조항 저변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교회에 대한 유일한 치리는 오직 그리스도께만 있다고 하는 고백이다.[3] 이 점에서 현대인에게 익숙한 민주주의가 교회 안에서는 최고선으로서 결코 기능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가 주와 머리로서 다스리는 성도의 교제이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없는 곳에는 영적 무질서와 혼돈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회법은 행정이 아니라 영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 교회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치리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교파마다 여러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감독정치는 강조점을 직분에 둔다. 오직 감독을 매개로 그리스도의 치리가 나타난다고 믿는다. 원리적으로는 감독이 교회의 모든 직무를 다 수행한다(예배, 교리 등). 반면 회중정치의 강조점은 오직 성도의 교제인 회중에게 있다. 그리스도의 치리가 회중에게 직접 나타난다고 믿는다. 최고 권위는 직분이 아니라 회중에 있기에 치리회의 권위는 회중보다 크지 않다.

 이 두 교회정치형태 중간에 있는 것이 바로 장로회정치다. 직분과 회중을 모두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직분과 교인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회중과 당회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는 당회와 노회/총회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다. 이 상호작용에서는 그리스도의 치리가 나타날지언정 교권주의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한 교회가 다른 교회 위에, 어떤 직분이 다른 직분 위에, 한 목사가 다른 목사 위에, 한 장로가 다른 장로 위에, 한 집사가 다른 집사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장로교회 정치는 부당한 교권을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회중과 당회 사이에, 당회와 다른 치리회 사이에 상호작용이 조화를 이루는 교회정치다.

 

 우리 고신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치리가 목사와 장로로 구성한 ‘장로회’를 통해 지역교회의 회중에게 나타난다고 고백한다. 목사가 설교와 성례라는 은혜의 방편을 전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치리가 회중에게 나타나고, 그리고 설교와 성례라는 방편으로 은혜를 받은 회중이 주님께 감사와 성결의 생활로 다시 응답하도록 목사와 장로가 이를 감독하고 권징하며, 집사는 나눔과 구제로 회중을 사랑으로 돌봄으로 회중과 장로회(당회)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다. 나아가 당회는 더 큰 장로회인 노회와 총회와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교회와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또 영적 감독을 받는 상호작용을 한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노르트만스(1871-1956, O. Noordmans)는 바로 이 장로회 정치를 가리켜서 “성령의 사역과 관련하여 인간적인 수단을 가장 최소화하기 위한 교회 정치형태”라고 불렀다.[4] 그래서 장로회정치는 오직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한 직분자가 다른 직분자나 회중 위에 군림하는 것과 한 사람이나 목사, 당회가 회중 위에 군림하는 것과 또 한 교회가 다른 교회에 군림하는 것과 나아가 노회 혹은 총회에서 한 사람이나 혹은 상층부(임원이나 특정 부서)에 의해 나타나는 교권주의를 극히 경계하는 교회정치라 할 수 있다.

 

 장로회 정치원리가 제시하는 이 교회론의 관점에서 이번 헌법 개정안 초안이 제시하는 교회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번 개정안(초안)은 그 각 조항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를 얼마나 잘 드러내는지, 또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얼마나 인간적인 수단을 가장 최소화하면서 즉 교권주의를 경계하면서 그리스의 다스림이 온전히 나타나는 교회를 제시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고신 교회에서 배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따라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며 또 바라보고 세우고자 하고 건설하고자 한 그 교회인지를 살피고자 한다.

 

 

3. 헌법 개정안 초안(교회정치, 권징조례)에 나타난 교회론(몇 가지 실례를 중심으로)

 

 1) 교인의 권리

 

 교회정치는 직원만 아니라 교인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직원만 아니라 교인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은 믿음과 행위의 문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자유와 권리가 존중을 받도록, 이것이 법 조항에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이 점에서 이번 새 개정안이 ‘교인(1/3이상)이 공동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권리’(교회정치 제146조 2항)를 부여한 것은 정말 잘했다. 그런데 1992년 개정헌법부터 삭제된 ‘교인은 헌법에 따라 진정, 청원, 소원, 상소할 권리가 있다’가 아직도 깔끔하게 회복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새 개정안은 교회정치 제24조에서 간접적으로 애매하게 다음같이 서술하고 있다: “교인이 노회에 교회 헌법에 따라 진정, 청원할 서류를 제출하고자 하면 당회를 경유하여야 하나, 당회가 이를 거부할 때는 제출한 서류와 당회가 거부한 이유서를 첨부하여야 한다.” 또 1981년 개정헌법에 있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분량에 따라 봉사할 특권’도(교인의 의무에 이 봉사가 들어가 있지만 봉사는 교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회복하는 것이 좋다.

 

 2) 교회당 간 거리

 

 새 개정안은 기존에 교회정치 헌법적 규칙 제2조(개체교회의 설립) 조항, “교회설립 시에는 부근 교회와 직선거리 300미터 이상을 유지하여야 한다”를 삭제했다. 지금까지 이 조항 때문에 주로 도시에서 불필요한 교회 간 분쟁을 어느 정도 막아 왔고, 특히 미자립교회나 약한 교회, 작은 교회를 보호해왔고, 교회분열로 인한 분쟁을 막아 왔다. 그런데 큰 교회가 작은 교회 바로 옆으로 이전해오고, 교회분열로 새로운 교회가 바로 옆에 세워지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조항이 없어지면 그리스도의 치리 대신 사람의 힘이 작용하고 한 교회가 다른 교회 위에 힘을 행사하는 교권주의가 나타날 것은 뻔한 일이다.

 

 3) 서리 집사, 권사와 명예 집사(권사)

 

 교회 직원은 항존 직무를 통해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대신해서 은혜의 방편을 전달하고 회중을 돌아보고 감독하고 권징을 하는 이들이다. 이 관점에서 직무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우후죽순처럼 세우는 ‘서리 집사’ 제도는 점차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권사에게 붙인 ‘준 항존 직원’ 이름은 ‘여자 집사’로 바꿔야 한다. 권사는 집사의 직무를 하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무가 아니라 순전히 명예를 위해 세우는 명예 집사(권사) 신설 조항(교회정치 제36조)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치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4) 목사의 동등성(지위/권한에서)

 

 목사는 설교와 성례라는 은혜의 방편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그 지위와 권한은 동등하다. 그런데 새 개정안은 4차 산업혁명의 격변기를 맞고 어느 때보다 공정을 중시하는 사회를 살면서 장유유서의 유교문화권에 있는 한국교회의 오랜 숙제라 할 수 있는 위임목사-전임목사-부목사, 원로목사-은퇴목사의 차별 문제를 헌법에 그대로 둠으로써 목사를 1등, 2등으로 나누는 이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목사 간에 차별이 있을 때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치리 대신에 사람의 힘과 권한이 크게 작용하는 것을 교회 역사와 현실에서 보지 않는가?

 

 5) 한 사람의 영향력이나 혹은 치리회의 상층부(임원, 특정 부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치리가 나타나야 할 치리회

 

 노회는 지역교회와 당회와 목사를 감독하고 살피는 ‘시찰’ 직무를 맡았다. 이 시찰로 노회는 그리스도의 치리를 각 지역교회와 목사와 당회에 나타나게 해서 화평과 성결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새 개정안은 1981년 헌법서부터 약화한 노회의 시찰 기능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다. 이 말은 시찰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치리가 노회를 통해 정상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1981년 개정헌법서부터 도입된 전권위원회, 비록 ‘재판권’은 2011년 헌법에서 삭제되었으나 여전히 막강한 행정권을 행사하는 전권위원회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 ‘모든 권한’을 뜻하는 ‘전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의 권한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겸허하게 전달하기보다 자칫 사람의 권한이 더 크게 작동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를 삭제하고 그때마다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거기에 합당한 특별위원회를 세우는 것이 좋다.

 새 개정안은 2011년 헌법에 신설된 ‘총회장의 지위’ 조항(제144조)을 그대로 두고 있다(“총회장은 총회를 대표하고 총회 업무와 산하기관을 총괄한다”). 이 조항으로 고신 교회는 회의 기간이 마치면 파회(罷會)하는 총회 의장에 불과한 총회장을 교단장으로 만들었다. 총회가 해산한 뒤에도 버젓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교회들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다. 비록 교황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려 있다면 이미 우리는 감독 정치, 교황정치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회장의 지위를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없이 제102조(치리회의 회장)에서 서술한 대로 “각 치리회는 사무를 질서 있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회장을 선정하되 목사가 회장이 된다”로 충분하다. 총회장은 여기에 서술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총회장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 이는 그리스도의 치리와 성령의 역사를 최대화하기 위해 사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과 정반대의 방향이며, 그리스도의 권한을 강탈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는 장로회 정치원리를 거스를 뿐 아니라 한국 어떤 장로교회도 지금까지 법 조항에서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일이며, 과거에 부당한 교권의 피해를 직접 겪은 고신 교회의 정체성과 역사에 모순되는 일이다.

  이와 함께 교회정치 제137조에서 ‘총회’의 영문 이름을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 KPCK)”이라고 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다. 제36회 총회(1986년)는 교단의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로 확인하고 영어표기를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로 확인했다.[5] 그런데 이 결정은 치리회인 ‘총회’(General Assembly)와 ‘교회들’을 가리키는 ‘교단’을 혼동한 것이다. ‘모든 회중’을 가리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총회’(히브리어로 ‘카할’)와 치리회로서 ‘총회’를 혼동했다. 제137조(총회의 의의)에서 총회를 영어표기로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KPCK)라고 한 것도 ‘교단’과 치리회인 ‘총회’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를 보여준다. 영어표기는 ‘교단’을 가리키는데 한글로는 ‘총회’라 부르고 있다. 이 혼동이 심각한 이유는 치리회인 총회를 교단으로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총회에 주신 정당한 교회의 권세는 당회와 노회에 주신 권세보다 훨씬 더 크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역사는 오직 그리스도의 치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부당한 교권도 우리 안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6) 제직회 대신 집사회 신설

 

 우리 헌법 교회정치는 제7장(집사 및 권사) 제77조에서 집사의 직무를 다루나 이 직무를 규모 있게 수행하기 위한 집사회는 말하지 않는다. 제151조에서 제직회를 언급할 뿐 집사회는 찾을 수 없다. 1922년에 작성한 교회정치를 보면 집사들이 집사회를 조직하여 집사의 직무를 하는 것이 원리적으로는 맞는 일이지만, 교회 형편상 집사들이 집사회를 구성하여 집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기에 집사는 물론 목사와 장로, 영수와 조사, 심지어 서리 집사 제도를 만들어 이들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집사회를 대변하는 제직회”를 조직해서 제직회가 집사의 일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회를 대변하는 제직회”는 살아남고 집사회는 사라지고 말았다(조선예수교장로회 1934년 교회정치에서부터).

 집사 역시 나눔의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치리를 회중에 나타내야 할 직분이라는 점에서 목사와 장로와 동등하다. 집사회를 따로 두어 집사들이 목사와 장로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직무를 시행하고 그리스도의 치리가 교회에 더욱 온전히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7) 기독교적 권징을 드러내야 할 권징조례

 

 우리가 아는 것처럼 2011년 권징조례는 이전 1992년 권징조례에 비해서 3배나 조항 수가 늘어났다. 늘어난 조항들을 보면 대부분 교회 권징이 ‘기독교적’ 권징으로서 권징의 본래 원리와 정신(회개와 화평(화해), 교육, 훈련, 양육의 요소 등)을 담은 것보다는 거의 사회의 사법적 과정과 시스템, 용어를 따라갔다. 그런데 새 개정안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손대지 못하고 2011년 권징조례 일부 조항만 수정했다.

 

 교회 권징이 기독교적 권징인 것은 한마디로 ‘영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시벌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범죄자의 회개와 교회의 거룩과 화평이 목적이다.

 교회 권징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첫째는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원리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5-17).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당회와 노회에 가져오기 전에 먼저 권면하고 또 증인을 세워서 권면하라는 원리이다.

 두 번째 중요한 권징의 원리는 갈라디아서 6:1에 나오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이다. 그래서 교회 권징은 사회 송사 과정과 달리 강제적이지 않다.

 세 번째 중요한 권징의 원리는 신명기 19:15에 나오는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이다. 그래서 적어도 두 명의 증인을 통해 범죄를 확정하고, 증인이 없으면 본인의 소명을 통해 자백을 듣는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새 권징조례는 위 세 가지 기독교적 권징의 원리와 특성이 너무 약화 되어 있고, 대신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사법적 절차와 과정, 기한을 다루는 조항만 열거되고 있다. 그래서 법 조항을 통해 민주주의 원칙은 확립되었을지 모르나 오히려 복음의 정신은 많이 사라졌다.

 단적인 예로 제3조에서 권징의 성격을 정의할 때 “권징은 세례 이상의 교인과 직원의 범죄(폭언, 성회모욕, 폭행, 명예훼손, 불온유인물, 기물파손, 예배방해 등 포함)와 치리회가 재판하여 유죄할 때에 시벌하는 행위이다”라고 정의한 것을 들 수 있다. 권징의 성격을 ‘시벌하는 행위’로 이해한 것은 성경이나 신조, 개혁주의 권징의 정신에 합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회개’와 ‘화평’을 목적으로 하는 기독교적 특성을 가진 교회의 권징을 오직 정죄와 시벌을 목표로 하는 세상 법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이것으로 치리회의 권징을 통해 나타나야 할 그리스도의 영적 권한과 치리가 왜곡된 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다.

 

 그 외에도 새 개정안(권징조례) 제30조를 보면 1981년 개정헌법(제7조~10조)에서 ‘화해’(화목, 화평)의 정신을 강조한 조항이 거의 사라졌다. 예를 들면 제7조의 “누가 범죄하였다는 말만 있고 소송하는 원고가 없으면 재판을 열 필요가 없다. 단, 권징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치리회가 원고로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이나 제8조의 “혹시 범죄사건이 중대할지라도 이상한 형편을 인하여 판결하기가 극난한 경우에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공의의 방침으로 실증을 주시기까지 유안하는 것이 재판하다가 증거 부족으로 중도에 폐지하여 일반 권징의 효력을 손실하게 하는 것보다 낫다”는 1992년, 2011년은 물론 새 개정안에서도 볼 수 없다.

 제22조(총회재판국 구성)에서 제3항을 신설하여 “본 교단 시무장로 중 법조인(판사, 검사, 변호인) 1인 이상을 전문위원으로 둔다”고 한 것은 교회법이 가진 ‘기독교적’ 특성을 더욱 약화하는 일이다. 교회 권징은 그 특성이 영적이어서 재판과정, 원리, 속성에서 일반 소송 과정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법조인을 필요에 따라 자문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으로 두는 것은 허용될 수 있으나, ‘전문위원’이란 이름으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981년 권징조례와 그 이후 개정된 권징조례(1992년, 2011년, 새 권징조례 초안)를 비교해보면 예전에 있었던 것이 지금은 없거나 혹은 다른 곳(교회정치 제26조!29조)으로 이동한 것이 있다. 즉 1981년 권징조례에 나오는 제11장(이명자 관할 규례), 제12장(이주 기간에 관한 규례), 즉 이명과 관련한 조항은 권징의 바른 시행을 위해 본래 권징조례에서 다루어졌다. 목사나 교인은 어떤 때와 어떤 지역에서 범죄하여 재판을 받을 때 ‘그가 그때 어느 치리회에 속했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재판은 그가 속한 소속 치리회에서 받기 때문이다. 바로 이 ‘권징’을 제대로 할 목적으로 이명자 관할과 이주 기간 규례가 나왔다. 물론 목사와 교인 모두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그런데 1992년 이후 2011년, 2022년(초안)은 모두 이러한 맥락과 정신을 무시하고 이명 관련 조항을 교회정치로 이동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중요한 내용을 생략하고 그냥 무미건조한 행정적 절차로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새 개정안이 2011년 권징조례의 제7조(교인의 자녀관리)를 교회정치 제25조(교인의 의무)로 이동한 것 역시 결정적인 잘못이다. 사실 위 조항은 본래 J. A. Hodge의 <교회정치문답조례>(원제, What is Presbyterian Law?, 1886년)에 있는 내용인데, 1992년 권징조례에 실었다. 여기서 권징의 대상을 다룰 때 ‘교인의 자녀’ 조항이 나온다. 즉 성찬 교인은 누구나 권징 대상이지만 보이는 교회의 경계 안에서 출생한 모든 자녀도 교회의 회원이며 교회의 치리와 권징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6] 따라서 본래 이 내용이 위치한 권징의 맥락을 무시하고 이를 교회정치 제25조(교인의 의무)로 이동했다. 1981년 권징조례에는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는 풍성한 교회론이 있었는데, 1992년 헌법 이후 권징조례에서 이같은 교회론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속히 회복되어야 한다.

 

 

4. 결론

 

 결론적으로 2022년 고신 교회의 헌법 개정안(초안), 특히 교회정치와 권징조례를 어떻게 봐야 할까? 과연 우리 고신 교회가 꿈꾸는 그 교회의 청사진과 설계도를 보여주고 있는가? 이를 위해 먼저 각 조항이 복음과 개혁주의 신학에 부합한 지, 그리고 고신 교회의 정체성을 약화하거나 혹은 부인하는 것은 없는지를 봐야 한다. 헌법과 헌법적 규칙을 구분하여 성경에서 분명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기에 변하지 않는 구속력 있는 조항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조항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리표준이나 관리표준에 속한 다른 문서와 일치하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각 조항의 역사적 배경(개정 역사, 총회의 결정 역사)과 현재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는지, 나아가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미래를 내다본 것인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이번 개정안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헌법을 통해 과연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는 바로 그 교회를 잘 드러내는지, 특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인간적인 수단을 가장 최소화하고 교권주의를 경계하는지, 회중(교인)과 당회 사이에, 당회와 노회/총회 사이에 상호작용이 조화를 이루는지를 생각할 때 새 개정안(초안)은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교인이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상회에 진정, 청원, 소원, 상소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1981년 헌법처럼 밝히지 못한 점, 그럼에도 직무는 없이 이름만 가진 서리집사 제도의 유지, 집사의 직무를 그대로 이을 뿐인 권사를 준항존직원으로 격상한 것, 특히 순전히 명예를 위해 명예집사(권사)를 세우는 신설 조항은 교회직원이 회중을 위해 그리스도의 치리를 대신할 자라는 우리 고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당회와 회중(교인)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교회당 간의 거리 제한 폐지, 목사의 동등성과 직분 간의 동등성을 해치는 조항(목사 간에 차등을 두는 조항, 집사회 대신 제직회를 둔 조항)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간의 힘 더 커지게 했고, 시찰 기능은 약하게 만들어 놓고는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만든 전권위원회, 교단장으로 만든 총회장의 지위, 총회를 교단과 같게 본 조항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사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장로회 정치의 특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로 볼 때 개정안(초안)에는 여러 교회정치형태 중에서 소위 ‘집합 정치(Collegialism)’,[7] 교회 상층부가 교회를 다스리는 정치체제의 원리가 많이 들어와 있다. 이 체제에서 개체교회와 회중은 하나의 제도교회에 속한 지부에 불과하다. 노회와 총회가 교회의 집합체이기에 그 자체가 교회로 인정되며 총회(노회)의 임원이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 체제에서는 특정한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에게 쏠린 권한의 집중으로 인해 언제라도 부당한 교권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는 지역교회의 당회와 노회/총회가 상호작용을 하며 여기에 오직 그리스도께서 다스린다고 고백하는 것이 주저되지 않을까?

 개정안의 권징조례는 2011년부터 사회의 형사소송법의 용어와 과정과 체계, 민주주의적 요소를 많이 본받고 도입하면서, 1981년 권징조례에서 지닌 권징의 원리와 정신은 많이 약화한 채 하나님의 법을 세상 법 수준으로 격하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 이 권징조례에서 과연 교회의 거룩과 화평에 관한 복음을 들을 수 있으며, 권징의 교제가 풍성한 교회, 이러한 성도의 교제를 향한 열망을 느낄 수 있을까? 법과 원칙과 절차는 따지면서 정작 복음은 없는 바리새인의 율법주의가 물씬 풍기지는 않는가?

 

 

 


[1] 그는 신학을 성경학, 교회학, 교의학, 봉사학으로 구분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성경학이라면, 교의학은 하나님 말씀의 내용을, 봉사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 ‘교회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2] 루이스 벌코프, 권수경 이상원 역, 벌코프 조직신학(하)(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91), 839 이하.

[3] 루이스 벌코프, 840~843. 벌코프가 제시하는 개혁파 혹은 장로회 정치원리는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모든 교회의 권위의 원천이다. 2. 그리스도는 말씀이라는 방편을 통하여 권위를 행사하신다. 3.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권세를 주셨다. 4. 그리스도는 대표적 기관들에 의해 이 권세가 특별히 행사되도록 정하셨다. 5. 교회의 권세는 근본적으로 지역교회의 당회에 있다.

[4] http://kerkrecht.nl/content/noordmans-o-1932-tekst: O. Noordmans, Beginselen van Kerkorde(Assen: Van Gorcum & Comp. N.V., 1932), p.4.

[5] 제36회 총회회록, 23.

[6] J.A. Hodge, What is Presbyterian Law as defined by The Church Courts(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and Sabbath School Work, 1886 revised 5th), 113.

[7] 루이스 벌코프, 839; J.M. Vorster, An Introduction to Reformed Church Polity(Potchefstroom: Pochefstroomse Teologiese Publikasies, 200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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