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보>(1499호, 2022년 8월 6일) 기사를 읽고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고신 교회 정론지 <기독교보>가 1500호를 맞는다. 오는 8월 11일(목) 오전에 있을 기독교보 1500호 발행 감사 예배를 앞두고 이번 1499호(2022년 8월 6일) 신문은 고신 언론사 사장(최정기 목사) 이름으로 전국 교회에 감사하는 내용의 말과 함께 “고신 교회가 가야 할 바른 방향과 고귀한 정신을 정론직필(正論直筆)로써 잘 감당해 나가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실렸다.
“개혁신학의 전통수호, 교단화합의 초석, 순수복음의 확산”을 사시(社是)로 하는 <기독교보>는 고신 교회의 귀한 자산이며 보배다. 1500호를 맞는 기독교보와 고신언론사에 진심으로 감사와 축하의 말을 드린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무엇보다 직원들이 말없이 큰 수고를 해왔다. 앞으로도 고신 교회가 기독교보를 더욱 아끼고 기도하며 지키며 후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보 1499호(2022년 8월 6일) 신문에서 몇 가지 기사를 읽으면서 1500호를 맞으며 다시 다짐하는 <기독교보>의 방향에 왠지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에 독자들과 짧은 생각을 나누고 싶고, 독자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1. 2면에 실린 시론(時論): “이런 교회는 어떠한가(1)”에 관해
2면에 기독교보 주필로 봉사하는 김하연 목사가 ‘시론’(時論)의 이름으로 “이런 교회는 어떠한가(1)”를 썼다. 김하연 목사는 구약학 학자이며 노회는 물론 총회에서 여러모로 수고하고 있고 존경받는 중견 목회자다. 특히 최근 헌법개정위원회 서기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런 교회는 어떠한가”라는 주제로 실린 시론 요지는 간단하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교인이 감소하고 부동산 가격과 건물 임대료가 폭등하는 이때 재정이 약한 교회를 위해서 예배당(시설)을 함께 공유하는 교회, 이런 교회는 어떠한가? 라는 것이다. 필자는 교인 감소로 조금 여유가 생긴 예배당이나 교육관 등 시설을 어려운 교회를 위해서 이를 공유하는 교회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외국에서 한인 교회가 더러 현지 교회당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를 실례로 들었고, 최근 한국 교계에서도 일부 시작된 일이라고도 소개했다. 이 제안 자체만 보면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적절하고 또 선제적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옳은 말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주장이 아직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일까? 이 주장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여러 장애 때문에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 개 처 이상의 교회가 한 예배당을 공유하려면 어떤 합의가 필요한 데 과연 그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까? 예배당 공유는 비용 절감 이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다른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은 비교적 가능할 수 있다.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빚어지는 여러 갈등, 목회자 사이의 경쟁 구도 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교단 같은 노회 같은 시찰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예배당이나 기타 시설을 공유하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아 보인다. 예배당 공유를 통해 혹시라도 먼저 자기 교회 교인에게 미칠 영향이 없는지를 계산하고 걱정하지 않을까? 한시적으로 어떤 특수한 상황에 있는 교회가 같은 시찰 교회의 예배당 시설을 일부 임대해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시론에는 지금 이런 교회가 우리 고신 교회에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 또 그런 교회가 어떤 형태로 공유하고 있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또 이를 둘러싼 현장이나 전문가의 목소리, 여론 조사 등에 뒷받침된 것이 없이 제안만 둥그러니 그냥 있다.
혹 본 시론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헌법개정안 초안은 기존 <교회정치> 헌법적 규칙 제2조(개체교회의 설립)에 있던 내용, 즉 “교회 설립 시에는 부근 교회와 직선거리 300미터 이상을 유지하여야 한다”를 삭제했다. 지금까지 고신 교회 안에서 한 교회의 예배당과 다른 교회의 예배당 사이에는 반드시 300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 제한 조항을 없앴다. 이 교회(예배당) 간 거리 유지 조항 때문에 주로 도시에서 불필요한 교회 간 분쟁을 어느 정도 막아 왔고, 특히 미자립교회나 약한 교회, 작은 교회를 보호해왔고, 교회분열로 인한 분쟁을 막아 왔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 바로 옆으로 이전해오고, 교회분열로 새로운 교회가 바로 옆에 세워지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조항이 없어지면 그리스도의 치리 대신 사람의 힘이 작용하고 한 교회가 다른 교회 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권주의가 나타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헌법개정위원회 서기이면서 본 시론의 필자가 제안한 “예배당을 공유하는 교회”는 놀랍게도 예배당 간에 거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없애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지난 6월 21일 제2차 대구삼승교회당에서 개최된 제2차 고신 헌법개정안 공청회 시에 기존 <교회정치> 헌법적 규칙 제2조(개체교회의 설립)에 나오는 “교회 설립 시에는 부근 교회와 직선거리 300미터 이상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배경에 관해 일부 참석자가 질문했고, 당시 헌법개정위원회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예배당을 공유하는 교회”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예배당을 공유하는 교회” 시대에 예배당 간 거리 제한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해명했다고 들었다. 아는 대로 위 예배당 간 거리 제한 조항은 고신 교회에 속한 교회에만 해당하는 법 조항이다. 다른 교단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배당을 공유하는 교회”가 우리 고신 교회 안에, 같은 시찰 지역 교회에 실제로 있고, 이로 인해 위 법 조항에 저촉된다면, 이때 “예배당을 공유하는 교회”는 위 조항에서 제시하는 큰 원칙에 예외로 하면 될 일이지, 아직 우리에게 현실적이지도 않은 “예배당 공유 교회”로 인해 위 법 조항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시론’이란 한 시대에 일어난 그때그때 사건에 대한 평론인데 이런 뜻에서 이번 시론은 특정 사건에 관한 평론이라는 오해를 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니기를 바란다.
2. 2면에 실린 사설, “헌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며(교리-정치)”에 관해
‘사설’은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기독교보>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이다. 그런데 “헌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며(교리-정치)” 제목의 이번 사설은 그 내용으로 보아 한 개인이 펼치는 주장으로서는 가능하지만, 과연 기독교보의 사설에 적합한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설이 가지고 있는 논설의 성격에 맞지 않고 거의 주관적인 주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선, 제목이 “헌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며”라고 했지만 이번 개정안에 나타난 문제점보다는 장점만 부각해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수도권 노회가 주관한 서울 포럼에서 안재경 목사가 개정안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며 결과적으로 개정안을 1년 유보하여 다시 검토할 것을 주장했고, 기독교보는 이 소식을 그대로 지면에 실었다! 그랬던 기독교보가 어떻게 헌법개정안에 나타난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고 그냥 칭찬 일색으로 일관된 내용을 사설로 실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사설을 읽으면 마치 헌법개정위원회 위원 한 분이 개정안을 홍보할 목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적어도 기독교보의 사설이라고 하면 헌법개정위원회의 개정안에 관해 균형 잡힌 비평과 논평이 실려야 하지 않는가? 1500회를 맞는 기독교보가 “고신 교회가 가야 할 바른 방향과 고귀한 정신을 정론직필(正論直筆)로써 잘 감당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는데, 10년 혹은 20년마다 한 번 있을까 한 헌법개정, 고신 교회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이 거룩하고 큰 작업에서 기독교보가 다른 기사는 몰라도 적어도 사설에서는 고신 교회가 가야 할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정론직필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기독교보 1498호와 이번 1499호는 최근 SFC 폐지 여부에 대한 논쟁을 염두에 두고 찬반 토론의 글을 실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헌법개정안을 두고서는 토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너무 비교되고 이상하다. 사설 위원이 썼다고 할지라도 사설로 합당하지 않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맞다.
3. 1498호 3면(손현보 목사, SFC 폐지와 총회목회자훈련원 개설을 제안합니다), 1499호 3면(김성호 목사, SFC,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 실린 SFC 폐지 찬성/반대 토론에 관해
최근 총회에 속한 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SFC 폐지 주장과 함께 총회목회자훈련원 개설을 주장했고, 이후 고신 교회 여러 곳에서 SFC 폐지 여부에 대한 토의가 뜨겁다. 기독교보는 1498호와 1499호에서 SFC 폐지에 대한 찬반 토론의 글을 실었다. 차분하게 글로써 토론하자는 선한 취지에서 그렇게 했으리라.
그런데 필자는 <기독교보>가 SFC의 폐지 논란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고 이 토론이 진짜로 흘러가야 할 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SFC 폐지는 지난 7월 4-5일에 미래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손현보 목사)와 각 노회 SFC 지도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처음으로 전도의 책임을 들어 주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미래정책연구위원회와 위원장의 진짜 의도는 SFC 폐지가 아니라 총회목회자훈련원 개설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목표로 SFC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총회목회자훈련원 개설의 목표는 특히 교회에서 교육부서를 담당하는 교역자를 중심으로 각 담당 부서별로 교역자를 매년 1주일씩 재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각 교회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담당 부서 교역자끼리 재교육도 할 수 있지만, 교단 전체나 권역별로 전국의 다음 세대 담당 목회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세미나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작년에 제71회 총회(2021년)에 경남김해노회가 청원한 “(가칭) 고신 교단 목회후보자(강도사) 영성훈련소 설립” 건과 일맥상통한다. 이 청원건을 보면 SFC를 폐지하고 총회목회훈련원 개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여러 통계가 동일하게 실려 있다. “(가칭) 고신 교단 목회후보자(강도사) 영성훈련소 설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고려신학대학원의 일부 교수 중에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이가 있어서 교수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교단의 영향력이 약화됐기에 교단이 주관하는 현 하기 목회대학원으로서는 목회자 재교육이 불가능하고, 이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시한 1안은 고려신학대학원 6학기 과정 중에서 1학기는 목회를 제대로 하는 목회자의 교회나 해외 사역지에 파송하여 특별 영성을 훈련하도록 하자는 것이고, 2안은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3개월 동안 전도, 설교, 리더십, 영성, 공동체 등을 중심으로 재교육하고 그중에서 1개월은 교회와 선교지에 파송하여 실습을 하는 것이다.
총회는 이 청원에 대해 신학위원회와 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과 함께 1년을 연구하고 차기 총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총회목회자훈련원”이나 “(가칭) 고신 교단 목회후보자(강도사) 영성훈련소”를 잘 살펴보면 그 배경이나 목표가 비슷하다. “총회목회자훈련원”의 경우는 기존 SFC에 교회교육을 맡겨서는 안되겠다는 것 때문에 개설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SFC에 전도의 열매가 없고 일부 소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간사가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총회목회자훈련원”이나 “(가칭) 고신 교단 목회후보자(강도사) 영성훈련소” 설립 배경과 그 적합성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SFC 폐지 여부”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불과하고 이번 소동에서 우리가 진짜 논의해야 할 사안은 “목회자 재교육”에 관한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기독교보가 이러한 배경을 안다면, 겉으로 드러난 SFC 폐지를 둘러싼 찬반 토론보다는, ‘목회자 재교육’ 혹은 ‘목회자 재훈련과 영성 훈련’이라는 제안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이나 전문가들, 일선의 목회자들과 교육 담당자, SFC의 간사들이 함께 모여서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 불필요하게 소모적인 SFC 폐지 논쟁에 휩싸여 들어가서 기독교보가 주도해서 SFC 찬반 토론을 할 것이 아니었다. 현상을 잘 파악해서 바른 방향으로 토론을 주도하는 것이 옳았다.
목회자 재교육에 관해 총회가 다양한 안건을 다룬 것을 생각해야 한다. 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제시하는 것처럼 전도, 영성, 지도력 등의 교육도 중요하고 그런 훈련원을 설치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런데 2010년대에 한국교회 전체에 목회자의 설교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고신 총회에도 “설교 표절에 대한 대책 마련 청원”이 제기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1년간 연구한 신학위원회는 제67회 총회(2017년)에서 각 노회가 목회자의 설교 표절을 감독할 것과 특히 목회대학원 수강을 통해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설교 표절 문제는 미래정책연구위원회의 현 제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또 총회에는 목회자의 자질 관련 청원도 제기되었다. 이는 고려신학대학원이나 미래정책연구위원회의 대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일이다. 제68회 총회(2018년)와 제17회 총회(2021년)는 각각 목회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대책 청원에 대해 신학대학원이 이 점을 고려하여 바르게 교육하도록 결정하였다. 제71회 총회(2021년)에는 고려신학대학원의 학생 일부만 받는 논문 작성 지도를 전원에게 확대하자는 청원이 들어왔다. 그 취지는 목회자가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응하는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자기 소견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목회자 재교육은 미래정책연구위원회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폭이 넓고 더 근본적이다. 기독교보가 표면에 드러난 SFC 폐지 논쟁이 아니라, 미래정책연구위원회의 문제의식을 잘 파악해서 목회자 재교육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토론하도록 이끄는 것이 옳았다.
앞서 말한 대로 기독교보는 고신 교회의 자랑이요 보배다. 1500호를 맞는 다짐에서 밝힌 대로 고신 교회가 가야 할 바른 방향과 고귀한 정신을 정론직필(正論直筆)로써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하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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