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C, 여전히 필요한 고신의 학생운동
김동춘 목사
(서울제일교회 담임)
경주에 있었던 ‘SFC지도위원회와 미래정책위원회의 연석회의’ 석상에서 불거진 “SFC 폐지론”과 관련해서 여러 글과 말이 지면과 모임 석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SFC는 교회중심의 학생신앙운동이기에 교회 SFC, 지구 및 지방 SFC가 약화되는 시점에서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나 안타까움을 넘어서 비판까지 난무한 현 상황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관계자들이 더 많이 노력하여 지방 및 교회로 더욱 나아가려는 조직적 몸부림이 필요하다. 사실 현재의 간사진 숫자로는 역량 부족일 수도 있다. 캠퍼스 수에 비해 간사들 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 그들을 빼서 교회 쪽으로 재비치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차제에 일선에 있는 교회의 교역자들과 협력(파트너십)을 더욱 확대하여 교회, 지구, 지방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구조적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SFC를 어느 한편에서만 바라보고 그 역사적 정체성과 또 교회사 속에서 전개된 정책적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교회와 교회연합적인 측면에서 다음 세대가 감소하고 전도가 위축되고 있는 SFC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이해 가지만, SFC가 학원 복음화(캠퍼스선교)를 감당해 온 사역은 높이 사야 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통계 자료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원 SFC는 교회 SFC와 달리 하위(?)기관에서 사람이 올라오지 않는 구조다. 즉, 중고등부는 주일학교에서 대학청년부는 중고등부에서 어느 정도 숫자가 올라온다. 그러나 대학 캠퍼스 안의 SFC는 신입생을 찾아가면서 만나고 설득하지 않고는 절대로 가입하지 않는다. 즉, 불신자가 몇 명 영입되었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현재 대학 SFC에 속한 신입생 500명 정도는 간사들의 노력과 열정, 헌신으로 주어진 숫자다. 그들 중에는 교회를 떠났던 사람도 있고 타 교단도 있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많다.(질문지를 ‘불신자 몇 명 가입보다는 대학 SFC 운동원 중 몇 명이 고신교회를 다니는가’ 하는 질문으로 전환되었으면 한다. 아니면 총회 교세보고서에도 각 교회에서 불신자 전도 상황, 매년 교회에서 예수 믿은 불신자 수를 기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SFC는 역사적으로 여러 번 사역의 전환, 사역의 변화가 있어 왔다. 특히 1980년대 이후 SFC는 캠퍼스 선교의 중요성을 들어 특별한 사역적 전환이 있었다.
SFC는 1980년대 들어 CCC, IVF, 네비게이토, UBF 등 대학생 선교단체들이 캠퍼스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때에 정책성으로 캠퍼스 선교에 눈을 돌렸다. 우리 교단 학생들을 교회병행단체(Para-Church Movement)로 다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과 강령에 나타난 “학원복음화”의 사명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보자는 비전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1981년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전남 강진에서 실시된 ‘전국대학생대회’(약 350여명 참여)에서 ‘개혁주의 신앙과 순교정신’, ‘학원복음화’, ‘세계선교’라는 주제 속에 SFC가 학원 복음화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다. SFC가 단순히 교단 내의 교회연합운동을 넘어서서 캠퍼스에 관심을 기울이며 학원선교운동을 전개하자는 다짐이었다.
이 시기 SFC전국위원장이었던 송길원목사의 글을 보면, 당시 SFC 내에 변화의 몸부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공부교재나 캠프장 문제)... 이렇다 할 교재 한 권 없이 학원 복음화를 꿈꾸고, 캠프장은 고사하고 사무실 하나 제대로 갖춰놓지 못하고서 세계 복음화를 내다본다는 사실은 하나의 넌센스가 아니겠는가?...... 왜 우리는 계속해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야 하는가?” (《월간고신》1983.12월호)
이것은 1980년대 초부터 일어난 SFC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활발한 논의의 표현이었다. 특히 강령에 고백된 ‘학원 복음화의 사명’에 대한 재확인이자 전도와 제자훈련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었다. 이러한 표출은 대학생 대표자가 모여 제정한 “학원 SFC 선언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1983년 5월 20일 서울의 한국기독교수양관에서 개최된 제2회 대학생 대표자 모임에서 “학원 SFC 선언문”이 결의되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오늘의 현실 앞에 선 우리는 주께서 학원으로 부르신 그 부르심에 귀 기울이며 두렵고 떨리는 가슴과 가슴을 열고 우리의 소리를 외쳐본다.
학원으로 부름 받은 SFC운동원들이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 앞에 깨어지고, 학원을 주께 바쳐드리는 이 생명 운동에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충성을 다하자.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학생신앙운동에 보여주신 보다 큰 비전인 국가와 세계의 복음화라는 시대적 소명 앞에 엄숙히 무릎을 꿇으며, 이제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주 앞에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 학원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사명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열과 성을 다한다......“
이 같은 캠퍼스에 대한 관심은 각 지역별 대학 SFC의 창립으로 이어졌고, 성경공부와 전도, 그리고 대학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SFC운동이 고신교단 학생신앙운동을 넘어 캠퍼스 선교단체로 나아가 학원 복음화의 최일선에 서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학원 SFC의 성장은 내적인 면에서 운동원들의 양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SFC 3-7교과과정”이 확정됨으로써 양육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외적인 면에서도 그 규모가 확장되었다. 1982년 교단 총회보고자료에 의하면 당시 대학SFC는 전체 대학 245개 중 조직대학 23개교 정도였는데, 최근까지 140여개 대학에서 SFC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비록 숫자는 줄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캠퍼스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10명도 되지 않는 간사들의 수로서는 광범위한 대학 캠퍼스를 섬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간사들의 보충이 시급했다. CCC는 당시 SFC의 10배가 넘는 100여 명의 간사진이 있었다. 당시 월간고신에 실린 강학근 목사(현 총회장)의 글을 보면 간사의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5명의 전담간사가 1지방을 맡고 있는 다른 선교단체에 비해서 1명의 간사가 2지방과 7개 대학 8개 지구를 관할해야 하는 우리의 실정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더 많은 헌신자의 문제도 그렇지만 전폭적인 교단적 배려도 빼 놓을 수 없는 문제다” (《월간고신》1985.1월호)
총회는 간사 수를 늘리기 위해 농어촌지원 강도사에게 해당되는 목사 조기안수제도를 간사들에게도 적용하는 등 정책적 배려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열악한 지원 환경에서 근본적으로 간사는 헌신해야만 늘어날 수 있는 구조였다. 결국 대학에서 복음을 듣거나 비전을 발견한 졸업생 중에서 간사로 헌신한 지원자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간사 수가 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기 평신도 간사 숫자가 40명을 넘기도 했는데, 이들 간에 신학 이수와 장기사역을 향한 지속적인 헌신이 이어져 ‘대학졸업 → 평신도 간사 사역 → 신학이수 → 장기 간사 사역’이라는 새로운 사역의 형태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간사들의 헌신이 이어지면서 캠퍼스에서는 더욱 활발하게 전도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각 지역별로 행해진 전도훈련과 전국 SFC의 순례전도여행은 SFC의 야성과 학원복음화 운동의 활성화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순례전도여행에는 각 지역에서 전도폭발훈련을 받은 훈련생 및 간사들이 함께 참가했다. 이처럼 캠퍼스 선교를 향한 SFC의 비전과 운동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부으심 속에 큰 진전이 있었다.
“날마다주님과”(큐티 교재)과 “시와 찬미”(찬양 교재)는 꾸준히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해외 대학에서도 SFC운동이 개척 활성화되었다(현재 8개 나라에는 간사가 파송되어 있고, 동문선교사들에 의해 세계의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현지어로 SFC 강령을 외치고 있다). 전국 대학생대회 숫자도 증가하였다. 참가인원이 1000여명을 넘어 2000명 가까이 모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학원 복음화(캠퍼스 선교)를 위한 운동원과 간사의 헌신,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고신 총회가 노력한 산물이었다. SFC를 통해 배출한 인재가 고려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KPM선교사로 지원하고, 사회 각 영역에 활발히 사역하면서 고신교회의 모판으로서 SFC는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SFC 운동이 캠퍼스 선교로 선택과 집중이 있었고 다소 그쪽으로 몰입되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교회연합사역을 소홀히 한 측면은 인정된다. 교회와 캠퍼스라는 양 축에서 한 축이 약화되고 감소된 측면에서 다시 한 축을 챙기고 다시 선택과 집중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강조되었던 캠퍼스선교 자체를 후퇴시키거나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감당해야 할 엄연한 정체성(“학원복음화”라는 강령구현운동)을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열매는 인정해야 한다.
필자가 담임하는 교회당의 한켠에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의 본부가 있다. 최근 본부 간사로부터 들은 2022년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 대학생 선교단체에 활동하는 인원이 최소한 30% 정도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여름 전국대학생집회에 참가한 숫자도 현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CCC는 코로나 전에 모였던 대회에 비해 40% 줄었고 다른 선교단체도 마찬가지였다. IVF는 전성기에 비해 전체 회원의 숫자 50%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SFC는 이번 여름 대학생대회에 90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이 숫자는 학복협에 등록된 13개의 단체 중에서 세 번째 규모가 큰 숫자이다. 캠퍼스에서 활동하는 전체 선교단체로 넓히면 20~30여개 캠퍼스선교단체에서 모이는 숫자로는 SFC가 3위권이란 말이다. 이것은 우리 총회의 자랑이요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교회 쪽 사역이 위축되고 지지부진하다고 SFC운동 자체를 폄하시키거나 SFC의 역사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캠퍼스 선교에 대한 SFC의 헌신도는 높이 치하 해야 된다. 물론 서두에 언급한 대로 다음 세대가 무너지고 청소년 전도가 감소되는 형국에 SFC 관계자들이 교회 SFC와 지방 SFC를 다시 세우려는 몸부림은 일어나야 한다. (시찰회 내의 약한 교회들 연합수련회, 노회별 연합수련회, 전국 단위의 매년 권역별로 개최되는 수련회, 교회 순회 헌신 및 청소년 전도, 문화 집회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캠퍼스를 인근 교회들과 매칭하여 “한 캠퍼스 한 간사”를 세워서 캠퍼스 전도에 더욱 매진하게 하여 대학생들의 전도 열매가 교회로 오게 하는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교회가 전임간사든 아니면 협력간사든 한 명의 간사의 생활비를 후원하여 캠퍼스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SFC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 논란이 일어난 것과 아울러 차제에 SFC운동이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 시점에서 교회사역과 학원사역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점차로 교회사역으로의 선택과 집중이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간사들에게 맡겨야 할 짐이 아니라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여러 기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래서 SFC 운동이 개체 교회, 시찰회, 노회, 총회 차원에서 다시 재정비되며, 그것이 더욱 확산되어 CE운동, 남전도회 여전도회에까지 영향력이 파급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총회 차원에서는 전국 교회 2300여개 교회 중에서 SFC명칭과 강령을 더 확신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났으면 한다. 현재 중고등부에서라도 SFC 이름을 쓰는 교회는 500~600여개 교회 밖에 되지 않는다. 고신교회 전체에 비하면 1/4 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수도권교회와 중대형교회들이 3/4에 해당되고 있다. SFC를 알지 못하는 개체 교회 교역자들에게 SFC 정신이 전수되지 못하여 SFC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면 총회 차원에서 전국교회가 SFC 명칭과 강령을 사용하자는 결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담임목회자의 노력이 아울러 요구된다. 또한 신대원에 “SFC론”에 대한 교과과목이 반드시 있어야 되며, 장로고시 공부에서도 SFC에 대한 교육이 간단하게나마 진행되었으면 한다.
고신의 태동은 고신교회와 교단이 조직되는 것, 신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 청소년 청년세대가 세워지는 세 가지 축으로 진행되었다. 청소년 청년세대는 SFC운동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신은 SFC의 백그라운드, SFC는 고신의 모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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