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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문은 2017년 1학기 고려신학대학원 개강집회에서 시행한 설교입니다.

 

 

 

예배, 그 두려운 체험(출 19:16-25; 히 12:18-29)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오래된 종교이면서 최근에 한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는 생각을 자극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반성을 촉구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오감을 열게 만들고, 온 몸으로 우주를 체험하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이 종교는 특별한 조직과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종교입니다. 이 종교를 이끄는 뚜렷한 사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합니다. 뚜렷한 입교의식도 없습니다. 그러니 회원탈퇴라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주말에 이 예식에 많이 참여하지만 주중에도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예식에 참여하는 이들은 무언중에 성취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 예식에 참여한 이들이 서로를 깊이 알지 못해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 됨을 체험합니다. 이들은 예식이 끝나면 아쉬운 마음으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서 다음 예배 때를 기다립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 예식을 기다립니다. 그 예식이 삶의 유일한 출구일 뿐만 아니라 활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종교가 무엇일까요? ‘등산교’입니다.

   산은 오르는 것은 가장 평범한 것 같지만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정상을 꼭 밟아보려고 하는 집착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산은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기에 높낮이를 떠나서 그 산에 오르는 이들, 심지어 산자락에 주저앉아 있는 이들까지도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하늘에 이르러 보고자 하는 열망을 산에 오르므로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하늘에 가장 가까운 것이 산이기 때문입니다. 산 곳곳에 돌무더기가 있다는 것, 산신령에 대한 믿음은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에 기도원이 대부분 산에 있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민족보다 독특한 산 체험을 한 민족이 있습니다. 이 민족은 산 체험으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는 산 체험이 곧 하나님 체험이었습니다. 산 체험 이전에 물 체험도 했습니다. 바다를 건넌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산 체험이 애굽에서부터 시작된 이전의 모든 체험의 절정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교회는 예배를 통해 삼위 하나님을 체험하고, 삼위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장소를 중심으로 이 예배체험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는 산에서의 예배 체험입니다. 둘째는 집, 즉 성전에서의 예배체험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늘에 이르는 예배 체험입니다. 순서대로 살펴 보겠습니다.


1. 구약의 예배1: (시내)산 체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3개월 후에 한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 산이 시내산입니다. 절기로 치면 오순절에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시내산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있습니다. 왜 광야로 보내셨을까요? 왜 황량한 곳으로 보내셨을까요? 어떤 생산품도, 문명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불러올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장로와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예’라고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체결할 준비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이제 한 민족과 더불어 맺으려고 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개인이 아니라 민족으로, 나라로,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준비시켰습니다. 3일째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겠다고 하셨고, 이것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산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산에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십니다. 노파심일까요? 오늘 본문 21절부터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불러올리시고는 다시 경고하십니다. 백성들이 산에 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답합니다.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라. 제사장과 백성들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한 자들은 끔찍한 일을 당할 것입니다. 호기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요. 그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아닙니다. 마치 태양을 직접 쳐다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사회생활에서도 이게 지혜입니다. ‘거리두기’ 말입니다.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배당입구에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붙여 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경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죽을 수도 있음!”

   셋째 날 아침 일찍 산에 벼락이 칩니다. 번개가 번쩍입니다. 산에 구름이 가득합니다. 산 전체가 불붙는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산 전체가 어둠과 빛이 교차합니다. 한 순간 밝아졌다가, 다음 순간에 어둠으로 덮입니다. 빛만이 아니라 어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7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 와중에 나팔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집니다. 쇼파르 라고 부르는 나팔입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 이 나팔을 붑니다. 누가 나팔을 불까요? 신명기 마지막 말씀인 신명기 33장 2절, 3절에서 모세가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여기서 말하는 일만 성도가 사실은 일만 천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팔부는 천사들을 동원하고 산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큰 두려움이 임합니다. 히브리서 12장 말씀에 보면 모세 자신도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라고 했습니다. 산 전체도 떱니다. 지진이 난 것일까요? 지축이 흔들립니다. 자연만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덜덜 떱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백성들을 데리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모세가 말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수 백 만 명이 예배 자리에 섰습니다. 지상 최대의 교회요, 지상 최대의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 ‘내 백성을 모으라’고 하셔서 모였습니다. 이렇게 목사는 예배인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한 것은 신명기 4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나팔소리가 점점 커져서 귀를 찢을 듯했기 때문에 떤 것이 아닙니다. 귀를 찢을 듯한 음향 때문에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힘이 있기에, 심령 가장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으시기에 떨립니다. 시편 29편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이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이 있다고 말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온 땅을 채우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게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회복한 설교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소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소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설교시간에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위협이나 잔소리가 되어갑니다. 오죽 했으면 세상에서도 ‘설교하지 마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까요? 한편, 설교자가 가현설에 빠져 있습니다. 설교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을 향해서 무조건 손해 보라고 하면 말입니다. 사업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이렇듯 설교조차 현실을 회피하는 기제가 되어 있습니다. 예배가 현실을 끌어안는 몸부림이 되지 않으니 예배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1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예배를 배웠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원체험입니다. 이것은 마치 창조사건과 방불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이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시내산 체험입니다. 이후 구원의 역사는 항상 출애굽사건과 비견되지 않습니까? 이 강력한 체험 때문에 유대인은 그 극심한 고난가운데서 생존했고,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시내산 체험이 이스라엘 되게 한 것입니다. 시내산 예배가 이스라엘을 만들었습니다.


2. 구약의 예배2: (예루살렘) 성전 체험

이제 구약의 두 번째 예배, 두 번째 체험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도시의 체험입니다. 도시에서, 집을 지어놓고 신전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예배장소가 고정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거듭 언급했듯이 너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절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고, 그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집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집에서, 성전에서 예배해야 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는 어땠을까요?

   예배할 곳이 광야의 시내산이 팔레스틴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야의 하나님이 이제 도시의 하나님으로 바뀐 것일까요? 성전이 왜 필요합니까? 사람이 지은 고정된 집이 왜 필요합니까? 고정된 성전은 하나님의 안식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안식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도 안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안식에로 이끌기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는 봉헌식 때 외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겠습니까?”(왕상 8:27) “하지만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들으시옵소서.” 이제 성전은 하나님일 기쁘게 예배하는 장소가 됩니다. 누구나 나아와서 예배하는 장소가 됩니다. 성전예배가 시작되면서 기쁨의 예배, 환희의 예배가 시작됩니다. 이방종교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다른지요? 겁을 상실한 결과일까요? 아닙니다.

   시편 122편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에 하나인데요. 순례자들이 절기가 되어 집을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문에 발을 내디디면서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할 때에 너무 너무 기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너무 너무 기쁘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미 예배가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되었습니다.


3. 신약의 예배- 하늘(예루살렘) 체험

산에서의 그 굉장히 두려웠던 체험, 성전에서의 그 따뜻하고 평온한 체험을 지나 이제 신약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회가 생겨났습니다. 교회도 성전, 그리고 회당을 이어받아 예배합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인 히브리서 말씀에 보면 신약 신자들에게 ‘너희가 이른 곳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예배하면서 이르게 된 곳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시내산에서 예배했지요. 예루살렘에서 예배했지요. 그런데 너희들이 이른 곳은 어디냐고 묻습니다.

   이렇게 묻고 있는 이유는 예배가 시들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예수님 믿을 때는 너무 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교회의 예배가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도 심하고요. 그래서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예배하던 그 체험이 훨씬 더 강력하고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면서 이르게 되는 곳이 어딘지 아냐고 묻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이 어디라고 합니까? ‘시온 산’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상의 도성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바로 그 곳이라고 합니다. 신약교회가 예배할 때 도달하는 곳은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교회는 예배하면서 하늘을 체험합니다.   
   신약의 예배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소가 어떠하든지, 건물이 어떠하든지 신약의 예배는 지상의 모든 산을 넘고 넘어 하늘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등산에 비유할 바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가 이른 곳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바로 그 곳으로 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 분이 흘리신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피는 자신을 죽인 형 에서를 벌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께 상처받은 몸을 내보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성자께서는 언약의 중보자로 일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신약교회의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신약예배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가 계시니 예배를 통해 하늘과 이 땅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에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연결됩니다. 신약예배는 시내산과 성전이 그림자처럼 보여주었던 바로 그곳에 이릅니다. 하나님이 계신 바로 그 곳에 이릅니다. 신약신자의 체험은 그리스도체험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0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 내가 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교회와 내가 영원히 있다는 믿음입니다.

   중세교회는 하늘에 가 계신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장소를 하늘을 재현하는 곳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그랬습니다. 키에프 공국의 대공이 보낸 사절들이 그 성당에서 예배하고는 자신들이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꽃이라고 하는 고딕성당이 그랬습니다. 건축술의 발달로 높이고 넓힌 거대한 공간에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와 천상이 펼쳐졌습니다. 예배는 보는 예배가 되었고, 심지어 종교 일반의 예배인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예배를 개혁 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늘을 이 땅으로 끌어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려 하늘에까지 고양시켰습니다. 종교개혁의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하나님께서 올려드리는 예배를 했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령의 능력으로 힘입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예배를 개혁하여 삼위 하나님과 언약적 교제를 즐거워하게 해 주었고, 천상을 맛보고 누리게 해 주었습니다. 지상을 살지만 천상을 사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아무리 난리를 쳐도 그 순간뿐이지요?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예배가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설교해보니 뭐 하냐? 라는 생각이 들지요. 다들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있을 각종 모임이나 활동들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평생 예배했는데, 말씀 들었는데 한 치도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가 삼위하나님을 체험하고, 삼위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우상숭배의 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불안과 죄책감을 부추기거나, 그것들을 일시적으로 잠재워 보려는 푸닥거리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내일 이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예배만 할 거냐는 말을 우리가 쉽게 합니다. 이제부터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됩니다. 사실, 안 믿는 사람들조차 예배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예배하는 인간이니까요. 교회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회적인 활동을 통해 존재목적이 드러나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배할 때마다 생겨난다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교회는 예배 하나만 잘해도 됩니다. 예배가 유일한 일입니다. 예배가 우리가 사회에 해 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선행입니다.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예배는 인류 최고 최대의 자산입이다. 그래서 교회를 공교회라고 부르고, 예배를 공예배라고 부릅니다. 예배는 사유화할 수 없는 인류 전체를 위한 자산입니다.  

 

   등산과 같은 강렬한 체험을 원합니까? 집과 같은 포근함을 원합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신비한 체험을 원합니까?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을 조작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인격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예배체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하늘에까지 올라갑니다. 우주인들을 인터뷰한 일본작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우주인들을 인터뷰 해 보았는데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번 우주에 같다 오고 나니 결코 예전과 같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버뷰 임펙트’라고 부릅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것은 에베레스트 등정하는 것, 달나라에 갔다 온 것과 비교할 바가 없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 하늘에까지 올라갔다 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예배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흔들어 놓으십니다. 예배가 온 세상을 심판합니다. 신자는 예배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습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신자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다 부어주십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 마지막 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소멸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예배해도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다 불타 버립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교회와 신자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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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7.03.12 By개혁정론 Views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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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설교]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교회

    [설교]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교회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20-23절 설교자: 황대우 목사 우리 교회는 “0000교회”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오늘날 신학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정...
    Date2017.03.10 By개혁정론 Views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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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설교] 직분의 의미, 역할, 선출방식에 대하여

    - 직분의 의미, 역할, 선출방식에 대하여 -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본문: 사도행전 6:1-7 제목: 복음적 분업을 이루자 서론: 문제 해결의 본보기 초기교회는 급속히 부흥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은 일이었으며, 사도들의 헌신과...
    Date2016.09.30 By개혁정론 Views2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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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승천과 성찬

    이 설교문은 필자가 섬기고 있는 한길교회의 주일예배에서 선포된 것입니다. 손재익 목사 객원기자/ 한길교회 설교본문낭독: 마태복음 28장 20절; 마가복음 16장 19절 (참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6-49문답) 설교제목: (성찬설교) 승천과 성찬 서론 지난 5...
    Date2015.05.15 By개혁정론 Views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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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어버이 주일 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엡 6:1-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04문(제5계명)을 중심으로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운영위원회 전문위원(서기)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명령이다(출 20:12). 십계명에서 사람에 대한 첫째 계명이 ‘...
    Date2015.05.08 By개혁정론 Views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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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오직 그리스도만이”(solus Christus) 나의 의이십니다!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지금부터 497년 전, 1517년 10월 31일, 중세 로마교의 축일인 ‘모든 성인의 날’ 하루 전날, 독일 수도원의 수도사요 사제요 대학교수인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95개 조항으로 된 면죄...
    Date2014.10.22 By개혁정론 Views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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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성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본문: 욥 42:7-9 (이 설교는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교회 강연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행한 설교입니다) 서론 지난 한두 주간 동안 문창국 국무총리 지명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도 엄청난 소용돌이에 ...
    Date2014.09.05 By개혁정론 Views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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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모델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5월 11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마 19:16-22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달려와서 영생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
    Date2014.06.02 By개혁정론 Views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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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하나님 없는 수고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5월 4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시 127:1-2 시 127:1-2절은 인간 역사에 관련하여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요약해 준 말씀입니다. 이 말씀...
    Date2014.05.30 By개혁정론 Views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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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슬픈 자에게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4월 27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눅 24:17-20, 31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11번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
    Date2014.05.28 By개혁정론 Views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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