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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제72회(2022년) 총회 상정 안건 중에 '미래정책연구위원장 손현보 목사'가 청원한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한 연구의 건'이 있다. 고려신학대학원 입학생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미래의 목회자 수급에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최근 합동측 총신대학교 법인이사 중 한명인 이광우 목사(전주열린문교회)가 뉴스앤조이에 '여성 목사 안수는 비성경적인가?'라는 기고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4586 ). 

   이와 관련해 이미 많은 논의가 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마침 2022년 7월 손재익 목사가 목회하는 한길교회에서 한편의 설교를 통해 이 문제를 '창조-타락-구속'의 관점에서 살핀 바 있기에 이곳에 설교영상과 설교문을 올린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가정과 교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질서, 창조-타락-구속의 관점으로 보다

- 남편의 머리됨, 목사와 장로의 여성임직 문제를 중심으로

(딤전 2:11-15)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서론

 

   어떤 자매가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이쁘게 꾸미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주례 목사가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 순간 자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남편에게 복종하라니.’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결혼식이었지만, 마음이 상해 사진도 안 찍고 돌아왔습니다. 자기가 부케(bouquet)를 받아야 하는데 말이죠.

 

   어떤 자매가 다른 교회에 다니는 언니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언니와의 대화 중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언니네 교회에는 장로님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목사님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 자매는 이제까지 여자 목사님은 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 언니와 대화하기 전에는 자기 교회의 목사님, 장로님이 모두 다 남자라는 사실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충격이었습니다. 놀라는 이 자매를 보고는 그 언니가 말했습니다. “너희 교회는 참 보수적이구나.”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교회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데,[1] 왜 남자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조금 친한 교회 어른에게 “왜 우리교회는 목사 장로는 남자만 해요?”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당연히 남자만 하는 거지.” 순간 놀라면서도 평소 대화가 조금 통하던 어른이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유나 들어보려고 물었더니 그냥 한 마디로 대답하십니다. “어디 여자가.” 그 말을 듣고 몇 주간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언니네 교회로 교회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이 두 자매의 이야기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매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면 자매들의 생각과 비슷하십니까?

   이 자매들과 같은 고민과 충격을 갖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자매들이 꼭 했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자매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고, 자기 생각과 다르고, 뭔가 충격을 받았다면, 왜 그러한지 성경을 통해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야 합니다.

   이 자매들에게 분명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이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교회의 책임이 있습니다. “어디 여자가”라는 말로 실망을 준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차라리 “나도 잘 모르는데, 성경적인 이유, 신학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도만 말했어도 나았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 세상에서라면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가치와 윤리가 시시때때로 변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다릅니다. 때로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지만,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경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치 말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필 ‘가정과 교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질서 문제’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 설교를 듣고 있는데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 전체의 계시에 근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내들로 하여금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셨는지, 왜 교회 역사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남자들에게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허락해 왔는지,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 일을 함께해 보려고 합니다.

 

 

본론

 

I. 창조를 통해 세워진 남녀의 질서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지음 받음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때 남자와 여자, 오직 두 성별만을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자유로우신 하나님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자 1명만 창조하시거나 여자 1명만 창조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 1명과 여자 1명을 창조하셨습니다. 남자, 여자, 제3의 성을 창조하셨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 2명과 여자 1명, 혹은 남자 1명과 여자 2~3명을 창조하셨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 1명, 여자 1명을 창조하신 뒤에 둘을 각각 두셨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둘을 짝지어 한 몸 되게 하셨으니, 이를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케 하셨습니다.

   수많은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를 창조하신 뒤 바로 이어서 여자를 창조하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를 창조하신 뒤 어떤 일이 있고 나서 이어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두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순서(順序), 질서(秩序), 차서(次序)를 두십니다.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음

   창세기 2:18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창조하신 뒤에 바로 여자를 창조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 먼저 들짐승과 새를 지으십니다. 그리고나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들의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아담은 사자, 개, 닭, 독수리, 참새 이렇게 이름을 짓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십니다. 그의 갈빗대를 하나 취하신 뒤에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 데리고 오십니다.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짓습니다. “여자”라고. 제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하와의 ‘원래’ 이름은 여자이고, 이 이름은 아담이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친히 빛을 ‘낮’이라 부르셨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으며, 둘째 날에 궁창을 ‘하늘’이라, 셋째 날에 뭍을 ‘땅’이라 부르셨는데, 여자를 지으신 뒤에 그녀의 이름을 하나님이 친히 짓지 않으시고 남자에게 맡기셨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에 대한 권위를 상징합니다.[2]

   아담은 타락 이후 아내의 허락 및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바꿔 버립니다(창 3:20).

 

남자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심

   이 모든 일에 의도와 목적을 두신 하나님은 창세기 2:17에서 중요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 명령, 너무나 중요하기에 동산에 살던 두 사람이 모두 다 들었어야 할 명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명령을 남자만 지으신 뒤에 주십니다.

   창세기 2:7에서 남자를 지으셨습니다. 2:22에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선악과 금지명령은 2:17에서 주십니다. 선악과 금지명령은 남자는 들었으나 여자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명령이 주어지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여자는 어떻게 그 중요한 명령을 알고 지켜야 합니까? 남편에게 들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가르치는 자 다스리는 자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배우는 자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3]

 

범죄 직후 남자에게 찾아가시는 하나님

   이후에 이 명령을 여자가 먼저 어깁니다. 그리고나서 남자도 이 여자를 따라 명령을 어깁니다(창 3:6).

   여자가 먼저 따먹었는데 하나님은 여자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4] 왜 남자를 부르십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남자에게 주셨고, 남자는 여자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따 먹은 여자도 벌을 받지만, 일단 그 책임은 먼저 남자에게 물으십니다.

 

 

II. 타락 이후 더욱 강화된 남녀의 질서

 

타락 이후 여자에게 주신 벌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뱀, 여자, 남자에게 각각 벌을 내리십니다. 창세기 3:16에 여자에게 내리신 벌이 나오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가 구속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불임과 관련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 번째 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입니다.

 

남편을 원하고 =>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너는 남편을 원하고” 이 부분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했기 때문입니다.[5] 그래서 다른 번역들은 좀더 이해하기 쉽게 의역을 했습니다. 새번역은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은 “네가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번역들을 참고해서 이렇게 문장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타락 이후 강화된 창조 질서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음, 선악과 금지명령을 남자가 여자에게 가르치게 하는 일,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6] 남자와 여자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재이지만, 질서가 있으니 이 질서는 창조의 질서입니다(참조. 고전 11:3, 9).

   그러나 타락 이후 사람은 죄의 본성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는 말처럼, 여자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타락 이후 창조 질서를 폐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하십니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III. 가정에서 지켜져야 할 질서

 

가정에서부터

   창조를 통해 세워진 질서, 타락 이후 더욱 강화된 질서. 이 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 구속사의 한 흐름에 서 있는 신자가 지켜가야 할 일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속을 경험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에서 하나님은 바울의 입을 빌어 말씀하십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설교의 서론에서 자매가 들었던 주례 목사가 한 말씀입니다.

   그 자매는 이 구절을 평소에 읽었어야 합니다. 주례 목사가 자기 개인의 의견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한 것임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 자매는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남편에게 복종하라니.’라고 생각했지만, 에베소서 5:22에 나오는 “주께 하듯 하라”는 부분을 자세히 보았어야 합니다. 주께 하는 것이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으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도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님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남편의 머리 됨

   하나님은 에베소서 5:23에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여기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라는 표현, 1차적으로 바울의 표현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표현이지요? 바울은 왜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아까 그 자매는 이 본문을 읽고 고민했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라는 표현은 바울의 표현이지만(참조. 고전 11:2), 또 한편으로는 창세기에 나오는 모세의 표현이요(참조. 고전 14:34)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 궁극적 저자인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음, 선악과 금지명령을 남자가 여자에게 가르치게 하는 일, 타락 후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신 벌 등을 통해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을 시사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내용을 하나의 용어로 정리합니다. ‘머리 됨.’ 남편이 아내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머리 됨’이라는 질서의 용어로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되는 머리 됨

   바울은 이 질서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엡 5:23) 이렇게 함으로써 남편과 아내의 질서는 구속의 질서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결단코 변하지 않는 질서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질서가 아니듯, 남편과 아내의 질서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면, “같음이니”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자매는 자기가 들었던 주례사에 대해 ‘아니,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남편에게 복종하라니.’라고 한 것에 대해서,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도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라고 말해야 하느냐’고 주례 목사가 말한다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와 타락과 구속에 근거한 남편의 머리됨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 말씀 그 자체만으로도 진리이기에 당연히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명령하셨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이 ‘머리됨’이라는 용어에 담아 표현한 것처럼, 창조-타락-구속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편과 아내의 질서를 주셨습니다. 타락 후 아내에게 내린 벌을 통해 질서를 강화하셨습니다. 구속의 시대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는 사실을 통해 이 질서가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엡 5:2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창조-타락-구속에 근거한 명령입니다.

 

 

IV. 교회에서 지켜져야 할 질서

 

교회에서부터

   창조를 통해 세워진 질서, 타락 이후 더욱 강화된 질서. 이 질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 지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 교회에서도 지켜져야 합니다. 교회는 이 질서를 지킴으로 타락으로 인해 무너진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는 구속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가르치는 것과 지배하는 것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2:11-12에서 말합니다. “(11)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여기 ‘남자를 주관하는 것’이라는 말의 ‘주관’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말씀이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과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주관’ 대신 ‘지배’라고 번역했습니다. 주관 대신 지배를 넣으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가 됩니다. 이 표현을 보면 어떤 구절이 자동적으로 떠오릅니까? 창세기 3:16에서 여자에게 내리신 벌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입니다. ‘주관’, ‘지배’, ‘다스림’은 다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그 구절을 염두에 두고 ‘교회 안에서도 역시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수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남자를 ‘가르치는 자,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고, 최초의 여자를 ‘배우는 자’로 세우셨는데, 그 일에 실패한 이후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일이 가정과 더불어 교회 안에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면 안 됩니까? 그런 게 아니구요.

 

교회 안에서 적용될 말씀

   디모데전서는 목회서신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어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해야 하는지를 권면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여자에게는 가르치는 것과 지배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교회 안에서의 일과 관련되니, 즉 직분과 관련됩니다. 여기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 지배하는 것, 주관하는 것은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인 장로,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의 자격

   이 사실을 우리는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요. 디모데전서 2장에서 이야기했는데, 바로 이어서 3장에 보면 ‘감독의 자격’에 대해 말합니다. 감독이라고 번역된 말은 장로로 바꿀 수 있고(행 20:17, 28), 장로는 두 종류로 나뉘니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입니다(딤전 5:17).[7]

   이 장로의 자격을 말할 때 2번째로 나오는 것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입니다(딤전 3:2; 참조. 딛 1:6).[8]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의 자격 중 하나는 한 아내의 남편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남자가 교회에서도 성도들을 가르치고[9] 다스리는 일[10]을 해야 합니다. 이때 가르치고 다스린다는 것은 사사로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공적인 직분 사역을 말합니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다스리는(지배하는, 주관하는) 장로인 장로의 직무를 왜 남자에게만 맡기는가? 성경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어디 여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주 잘못입니다. 교회가 목사와 장로의 여성 임직을 계속해서 금해온 이유는 바로 성경의 이 가르침 때문입니다.[11]

 

시대가 아니라 창조-타락-구속으로

   그럼에도 앞서 그 자매가 생각한 것처럼, “교회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자매가 만난 언니의 교회처럼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은 1세기 당시의 배경과 문화에 따라 적용해야 할 말씀이지, 오늘날에는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보다 시대의 가르침을 따라 장로도 여자, 목사도 여자인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12]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딤전 2:12)라고 말한 뒤에 그 근거를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3-14). 13절은 창조 질서입니다. 14절은 타락의 순서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세워감에 있어서 가르치는 직분과 다스리는 직분을 여자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1세기 당시의 배경과 문화가 아닙니다. “이는 지금 시대는 여자는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 남자를 여자보다 먼저 지으신 창조의 순서,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음, 선악과 금지명령을 남자가 여자에게 가르치게 하는 일, 타락 후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신 벌에 기초합니다. 창조-타락-구속의 원리에 근거합니다.[13]

   이 땅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오해와 비난을 받아 가면서도 여성의 목사 장로 임직을 거부하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로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질문한 자매에게 “어디 여자가”라고 말한 교회 어른은 이 구절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어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 구절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어른만 모르는 게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 교회의 목사 장로도 심지어 그 교단의 지도자들조차 그렇게 하는 이유가 정말로 “어디 여자가”라는 이유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날 여성의 목사 장로 임직을 반대하는 교단 대부분은 이러한 말씀의 원리에 기초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V. 시대가 변했다는 반론에 대한 답

 

   오늘 다루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과 일부 목회자들만이 알고 논쟁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괜히 가르쳐서 긁어 부스럼이 될까 염려하여 잘 가르치지 않는 주제입니다. 아니면 몰라서 가르치지 않을 수도 있구요.

   그러다보니 가정에서의 경우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교회에서의 경우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속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의구심은 ‘성경의 가르침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는 성경적 증거

   베드로전서 3:1을 봅시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6절에서 하나의 예를 듭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이 한 말씀과 같습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할 것을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비유함으로(엡 5:23-24) 이 명령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베드로는 자기보다 약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라가 한 일을 예로 듭니다. 사라도 남편에게 주라고 부르며 순종한 것같이. 사라는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직접 받기도 전에 이미 자기 남편에게 “주”라고 불렀으니, 이는 창조의 질서, 타락 후 강화된 질서(창 2-3장)에 따라 자기 남편에게 행한 것이고, 베드로는 그것을 근거로 다시 명령하고 있으니, 이 명령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34를 봅시다.[1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ㄴ)오직 복종할 것이요”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근거를 하나 듭니다. “율법에 이른 것 같이” 바울의 근거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말하는데요. “율법에 이른 것 같이”라고 했으니,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는 말이 율법에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율법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가진 성경 난외주는 이 구절이 창세기 3:16을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창세기 3:16이 무엇입니까? 첫 여자가 받은 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입니다. 율법이란 모세의 율법을 말합니다. 모세오경 중 하나인 창세기에 기록된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이른 것 같이”라는 표현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 명령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도출된 계시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5]

 

   에베소서 5:22에서 바울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말했는데요. 이 명령이 시대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6:1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만약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는 에베소서 5:22 말씀이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순간 자녀들이 말할 것입니다. “엄마,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도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부모에게 순종해요.”[16]

   디모데전서 2:12-14는 “(12)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고 말한 뒤에 그 근거를 제시하기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라고 해서 창조와 타락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특정한 시대나 문화에 제한되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문화의 상대성과 상관없다는 증거

   또 다른 의구심은 ‘한국교회가 보수적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 ‘한국은 유교사회라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한국에서만 유독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PRC(Protestant Reformed Church)이라는 교단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는 공동의회에 아내들은 참석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공동의회에 참여하지 않고 남편들이 참석하여 의견을 행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남편의 머리 됨을 실천하는 한 방식입니다(고전 14:34-35). 방금 말씀드린 교회는 미국에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유교와 전혀 상관없는 이들입니다. 이 교회가 여성에게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제가 이 교단에서 ‘여자들’이 공동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아내들’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네. 미혼 여성은 참석합니다. 결혼한 여성들의 경우만 남편이 참석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참석합니다. 남녀 차별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남편의 머리 됨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교회도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ICRC(International Conference of Reformed Churches, 국제개혁주의교회협의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17]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스코틀랜드, 스페인, 브라질, 남아공, 케냐, 우간다, 콩고, 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전 세계에 흩어진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교단들의 협의체입니다.[18] 유교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교회들이 대부분인 협의체입니다. 이 협의체가 2017년 7월 17일(오늘로부터 정확하게 5년 전입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vrijgemaakt))의 회원권을 정지했습니다. 해방파 교회가 불과 한 달 전인 2017년 6월 16일(금) 총회에서 항존직(목사, 장로, 집사)에 대해 여성 임직을 결정한 데 따른 것입니다.[19] 아이러니하게도 회원권 정지를 당한 해방파는 이 협의회를 설립한 주체였습니다. 해방파의 회원권 정지를 가장 강하게 주장한 교단은 미국의 OPC(Orthodox Presbyterian Church, 미국정통장로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박윤선 목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졸업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신학교로 둔 교단입니다. 이 회의는 그 교단에 대해 회원권 중지를 선포하면서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매교회(姊妹敎會, sister church)였던 그 교단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은 여성 임직이 단순히 시대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에서 벗어난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많이 알려진 새들백교회(캘리포니아주 소재) 릭 워렌 목사가 2021년 5월, 3명의 여성을 목사로 임직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 교회가 속한 미국남침례교회(SBC, Southern Baptist Convention)는 다음 총회에서 릭 워렌 목사 제명 건을 다룰 예정입니다.[20]

   이러한 모습은 ‘한국교회가 보수적이라서’, ‘한국은 유교사회라서’ 라는 생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21] 아직도 세계의 많은 건전한 교회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목사와 장로에 대한 여성 임직을 금하고 있습니다.[22]

 

   성경은 성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시대의 변화나 문화의 관점이 아니라 창조-타락-구속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 그 질서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이라는 미국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성경의 가르침이 단지 ‘네 주위의 문화에서 좋게 생각되는 것을 따르라’라는 의미라면 굳이 성경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23]

 

   사람들은 성경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법칙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떤 의문을 가졌을 때 성경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자매처럼 말이죠. 혹시나 성경에서 답을 찾았는데, 그 답이 자기의 생각과 다를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당시 문화적 배경에 따라 기록된 책이야.” 그렇게 말해 버리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문화적 시대적 종교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분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렇게 해 버리면 우리는 1세기에 기록된 성경 이후 약 2000년 뒤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성경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유만으로도 남편의 머리됨, 남성의 직분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보지만, 여기까지 말한 뒤에도 “그런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그 이상의 답은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것까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왜 아버지라고 부르느냐? 어머니라고도 부를 수 있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라고 합니다.[24] 하나님을 He라고 표현한 영어성경을 “He라고 한 것은 여성 차별이다. It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주장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해야 합니까?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오늘 설교의 주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문화가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이다.”[25]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말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26] 우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여성 임직에 찬성하는 일부 사람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로서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고린도전서 14장, 에베소서 5장, 디모데전서 2장 등이 바울의 글이 아니라 후대에 사람들이 삽입한 구절이라고 말입니다.[27] 우리나라 학자로는 아주 유명한 김세윤 교수가 그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28]

 

 

VI. 오해되는 실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윤리가 아닙니다. 단순한 가정의례준칙이 아닙니다. 인간의 문화적 산물이 아닙니다. 창조 질서를 기억하라는 명령이며, 인간의 타락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일을 통해 창조 질서가 파괴된 타락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구속사적인 명령입니다.

   가르치는 직분인 목사와 다스리는 직분인 장로에 대해 남성에게만 맡기신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 사람 여자가 남자의 지도를 받아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첫 사람 남자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무에 실패한 것을 늘 기억하며, 교회 안에서 남자가 다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창조 질서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에 실패한 남자에게 다시금 그 사명을 맡기셨으니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다스리는 장로를 남자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여자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죄악을 다스려서 첫 교회와 달리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29]

 

   그런데, 이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 됨’(headship)이라는 말, ‘지배하는’ 혹은 ‘다스리는’이라는 말에만 집착하여 이 명령을 남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서의 머리 됨, 지배, 다스림 등의 ‘권위(權威)’는 군림(君臨)이나 압제(壓制)가 아닙니다.[30]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가르치시고 다스리시는 것처럼, 섬기고 돌보는 일로서의 머리 됨입니다. 영적인 필요를 발견하고 돌보는 역할로서의 머리 됨입니다.[31]

   그런데, 이러한 현실은 없고, 성경의 원리도 모르는 이들이, 그저 표면적인 단어와 문법만 가지고 남편의 우월함으로 오해하고, 남성의 우월함으로 오해하여 남편됨과 목사와 장로의 직분을 남용하고 여성을 차별하고 있으니, 이는 창조-타락-구속의 원리에 따라 허락하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편됨, 목사됨, 장로됨은 결코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내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아내의 머리가 아닙니다. 저의 목사됨이 여기에 계신 다른 분들보다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목사는 여기에 앉아계신 수많은 자매에 비해 부족한 게 많습니다. 가르치고 다스리기에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실력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우리교회의 자매들, 형제들보다 부족한 게 많습니다. 그럼에도 창조-타락-구속의 질서를 따라 세우신 목사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목사라는 직분, 장로라는 직분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높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과 교회가 허락한 직분이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직분을 수행해 갈 따름입니다.

   남편됨, 목사와 장로됨을 오해하여 우월주의에 빠지는 어리석은 남성들이 있습니다. 한없이 낮아지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3:2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린도전서 11: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가정과 교회에서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질서 문제는 성경이 직접 언급하고 있는 가정과 교회라는 영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학교, 회사, 국가에서 적용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전교 회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여자가 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타락-구속의 구속사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정과 교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남편 혹은 남자의 머리 됨입니다.

 

 

결론

 

   오늘 설교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창조-타락-구속’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 예로, 남편의 머리됨, 목사와 장로직에 대한 여성 임직 금지를 다룬 것입니다.[32] 왜 이 예를 들었을까? 이 예는 성경을 그렇게 읽지 않고, 현대의 문화적 상황으로 성경을 읽으려는(New Hermeneutics) 가장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입니다.[33]

   우리는 성경을 성경 저자의 의도에 따라 창조-타락-구속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구속사의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전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과 삶의 모든 부분을 성경에 근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생각할 때, 진리는 사라지고 세상의 변화에 뒤쫓아가는 모습만 남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2:13-14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독교인 9,675,761명 중 남성은 4,317,696명이고, 여성은 5,358,065명이었다. 여성이 55.4%를 차지했다. 이민지,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파주: 들녘, 2020), 128에서 인용.

[2] Wenham, 『창세기 1-15』, 185; John Murray,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2.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7), 박문재 역, 『조직신학 Ⅱ』(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1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서울: 생명의 양식, 2009), 58.

[3]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서울: 성약, 1994), 28, 112, 214-216, 243.

[4] David Engelsma, Marriage (Grand Rapids: Reformed Free Publishing Association, 2000), 이성호 역, 『이혼』(서울: 낮은울타리, 2000), 68.

[5] ‘원하다’(개역개정), ‘사모하다’(개역한글), ‘바람’(desire)이라고 번역된 말이 영어로는 desire이다. “너의 욕구가 네 남편에게 향할 것이며”라고 할 수 있다. 김의원, 『창세기 연구: 문예접근법에 따른 창세기 연구』(서울: CLC, 2004, 2013), 130.

[6] 최낙재, 『혼인의 신성함』(전주: 성약, 1989). 78.

[7]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8] 참고로 교부들은 ‘한 아내의 남편’(딤전 3:2; 딘 1:6)을 한 번만 결혼한 사람으로 주로 이해하여, 재혼한 사람(digamist)을 감독으로 안수하지 말라고 이해했다(참고. NRSV: “married only once”).

[9]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신약성경의 용례에 비추어 볼 때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연관된다(딤전 1:3; 3:2, 4, 5; 4:11, 13, 16; 5:17; 6:3; 딤후 2:2, 24; 4:2). 성경에서 ‘가르침 혹은 교훈’ 이라는 말은 공적인 설교를 뜻한다. 사사롭게 성경을 가르치거나 교회 안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그런 소소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공예배로 모여서 설교하는 일을 가리켜서 성경에서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10] ‘주관하다’, ‘다스리다’는 말은 ‘치리(治理)한다’로 번역할 수 있으니 장로의 역할을 말한다. 장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살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

[11]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Grand Rapids: Zondervan, 1994), 노진준 옮김, 『조직신학 (하)』(서울: 은성, 1997), 144; Lawrence R. Eyres, The Elders of the Church (Phillipsburg: P&R, 1975), 홍치모 역, 『하나님이 세우신 장로』(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63; Cormelis Van Dam, The Elder: Todays Ministry Rooted in All of Scripture (Phillipsburg: P&R, 2009), 209.

[12] 한국의 경우 1929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함북노회는 여전도사에게 강도권을 허락해 달라고 총회에 헌의했다가 거절당했다. 1932년 경안노회는 미합중국장로교회의 전신인 미 북장로교회가 여장로를 임직한 것에 대해 질의했고, 이에 대해 총회는 정치부를 통해 “우리 조선장로교는 본 정치에 의하여” 장로를 세울 수 없다고 단순한 답변을 하였다. 1935년에 열린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24회 총회 시에는 "여자는 장로가 될 수 없음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라며 차후에 다시 여자 장로 문제를 들고 나오는 사람은 엄중히 처리한다고 결의하였다. 반면, 감리교(1931), 기장(1974), 예장 통합(1994), 예수교성결교(2003), 침례교(2013), 성공회, 루터교, 예장 백석(2009), 기하성(교단 설립 때부터),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교단 설립 때부터), 구세군, 브니엘교회, 독립교회 등이 여성 안수를 시행 중이다.

[13] “바울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 곧 구속사의 완성을 중심으로 한다. 그는 남자, 여자, 교회 질서에 관한 그의 가르침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러한 틀에 호소한다. 그는 창조 질서, 저주와 그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법령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회복과 갱신에 호소한다.” Edmund Clowney, The Church (Leicester: IVP, 1995), 황영철 역, “교회에서의 여성의 사역”, 『교회』(서울: IVP, 1998), 243.

[14] 상당수 사람들이 고린도전서 14:34-36을 여성임직 논의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면서 김세윤 교수는 이 구절이 후대에 추가된 것이라고 하면서 여성임직을 찬성한다. 김세윤 외에도 고든 피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 구절은 여성의 교회 안에서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본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신약성경에서 여성의 임직과 관련한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본문은 디모데전서 2:9-14이다. 이승구, “교회에서의 여성 사역의 문제에 대한 한 고찰,”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서울: SFC, 2005), 240-241; 참조. Wayne Grudem(웨인 그루뎀), Evangelical Feminism (Wheaton: Crossway, 2006), 조계광 옮김, 『복음주의 페미니즘』(파주: CH북스, 2020), 62-67.

[15] 이광호, “여자목사 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 2009년 9월 14일 브니엘총회 공청회

[16] 참고로 성경에서는 ‘복종’(obey)라는 단어를 부모-자녀, 남편-아내, 주인-종, 위정자-시민 등 모든 관계에 대해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Jochem Douma, De Tien Geboden: Handreiking voor het Christelijk leven (Kampen: Van den Berg, 1992), trans by Nelson D. Kloosterman, The Ten Commandments: Manual for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P&R, 1996). 182.

[17] www.icrconline.com

[18]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Conference_of_Reformed_Churches

[19] http://reformedjr.com/5806 네덜란드 교회들의 여성임직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임경근 박사의 학위논문에서 잘 다루고 있다. Koen Kyungkeun Lim, Het spoor van de vrouw in het ambt (Diss; Kampen: Kok, 2001). 귀국 후 이를 요약하여 정리한 논문으로 다음을 보라. 임경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제와 한국교회의 과제,” 『진리와 학문의 세계』, 제11권, (경산: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 2004).

[20]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0741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8245

[21]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유교문화의 양존음비(陽尊陰卑)에 근거하여 가부장적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근본주의 교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U. Rosenhäger and S. Stephens, Walk, My Sister-The Ordination of Women: Reformed Perspective, 장상 옮김,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개혁신학의 이해』 (서울: 이화여대 출판부, 1995), 28, 67;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인문학논총』 15 (2010, 1), 176; 조윤희, “한국교회의 여성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한국여성신학』 19 (1994), 36, 39, 44,

[22] http://reformedjr.com/6046 반면 스위스 개혁교회(1918), 프랑스 개혁교회(1949), 미국 장로교회(PCUSA, 1956), 화란 개혁교회(NHK[국가개혁교회], 1966; GKN[개혁교회], 1969; 해방파, 2017), 남아공 화란개혁교회(NHKA, 1976; NGK, 1990), 미국 기독개혁교회(CRC, 1995) 등은 여성 임직을 허용한다. 전 세계 교회들의 여성 안수 현황은 에큐메니칼적 단체인 세계 개혁주의 교회 연맹(WARC) 소속의 U. Rosenhäger and S.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199-205를 참고하라.

    CRC는 1984년에 여집사를 허용했으며, 1997년에 북미 장로교회-개혁교회 연합회(NAPARC)는 여성 목사안수를 허용한 CRC의 회원자격을 박탈했고 그 결정은 현재도 유효하다. 또한 NAPARC는 CRC가 1973년에 공포한 성경관이 역사적 개혁주의 견해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성경관이 여성 안수와 직결됨을 보여준다. T.J. Van Dyken, “Reformed Orthodoxy and Gendered Authority: The Christian Reformed Church 1945-1984”, CTJ 51 (2016), 77. 1973년에 PCA가 남부장로교회(SPC)에서 분리할 때 비성경적 결혼과 이혼 및 여성안수 반대가 중요 명분이었다. 역시 성경관의 차이가 교회 분열을 낳았다. 참고. WTS 출신인 F.J. Smith, “Petticoat Presbyterianism: A Century of Debate in American Presbyterianism on the Issue of the Ordination of Women”, WTJ 51 (1989, 1), 67, 72-73. Contra 성경관에 있어 보수적인 오순절 교회가 여성 안수를 쉽게 허용한 것을 예로 들면서, 성경관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노스 파크 신학교의 K.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Covenant Quarterly 67 (2009, 2), 27.

[23] Grudem, 『복음주의 페미니즘』, 79.

[24] Grudem, 『복음주의 페미니즘』, 18. 하버드 대학의 Krister Stendahl 등이 대표적이다. Clowney, “교회에서의 여성의 사역”, 『교회』, 241.

[25] 이민지,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파주: 들녘, 2020), 10.

[26] 이민지,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 66, 68.

[27] Clowney, “교회에서의 여성의 사역”, 『교회』, 241.

[28] 국외에는 고든 피(Gordon D. Fee)가 대표적이다. 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Eerdmans, 1987).

[29] 이광호, “여자 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 김세윤 교수의 주장을 우려하며”, 『진리와 학문의 세계』, 제11권 (대구: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 2004), 15.

[30] Bryan Chapell, Each for the Other: Marriage As It's Meant to Be (Grand Rapids: Baker, 1998), 윤혜경 역, 『피차 복종하라』(서울: 그리심, 2003), 43-44, 46.

[31] ESV Study Bible (Wheaton: Crossway, 2008), 2206.

[32] 이 주제가 성경관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여성임직을 반대하는 이들의 보편적인 주장이다. 이광호, “여자목사 제도는 성경적인가,” 7-17; Van Dam, The Elder, 217; Grudem, 『복음주의 페미니즘』, 18, 21, 23, 28, 32, 37, 42, 55.

[33] http://reformedjr.com/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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