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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받으려면

 

 

본문: 갈라디아서 3:1-7; 로마서 16:25-27
설교자: 안재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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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교회가 너무나 크게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절기입니다.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부탁하여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을 역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지 않으셨다면 성령께서 오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성령강림절은 부활절기의 절정입니다. 부활절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성령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성령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는데, 우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령님은 이미 오셨지만 계속적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라고 구해야 합니다.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성령께서 오실 수 있을까요? 오늘 갈라디아서 3장 말씀에도 보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성령께서는 행위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하신다’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자랑할만한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받은 믿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믿음도 성령의 역사이고요.

     세 가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령은 첫째로, 약속을 믿게 합니다. 둘째는 듣고 믿게 합니다. 셋째는 믿고 순종하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약속을 믿게 하고, 잘 듣게 하고, 잘 순종하게 합니다.
 


1. 약속을 믿게 하는 성령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아주 격앙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절도 보십시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헛될까 걱정한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으로부터,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용두사미가 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시작은 잘했는데 끝이 흐지부지한 것이지요. 시작하지 아니한 만 못한 상황이 될 지경입니다. 사도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하냐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시작과 과정도 끝도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로 마친다는 것은 육체를 의지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자기 자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율법 때문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합니다.

     사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도 여전히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사도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옳다고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훨씬 이후에 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기 전에 믿음을 통해 자기 백성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 외부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사실, 성령께서 오셔서 이 믿음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총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방언을 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너무나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아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요, 성령께서는 이런 믿음을 주십니다.  

 

 


2. 듣고 믿게 하는 성령

사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묻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다가 무언가를 덧붙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할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살라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그들끼리 따로 살았습니다. 유대인이 사는 곳을 게토라고 부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부정함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고기를 잡아서 먹을 때도 자기들 방식대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푸주간을 따로 운영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필사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기 위해서 그렇게 했으니까요.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으니까요.

     인종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백인인종주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나치처럼 게르만인종주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종주의도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인종주의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사도 베드로를 책망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들이닥치자 그 식사자리를 황급히 떠납니다. 이에 바울이 말합니다. “당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유대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방인을 보고 유대인답게 살라고 하느냐?” 그렇습니다. 특정 인종이 구원받기에 유리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그게 인종주입니다. 특정 계층이, 특정 성별이 하나님을 믿는 일에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그게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아닙니다. 개혁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인종주의와 다를 바가 아닙니다.

     사도가 3장 1절에서 십자가를 말합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왜 십자가 이야기를 합니까?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율법의 행위를 말하지 않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율법의 행위를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수치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입니다.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는 자랑거리입니다. 율법을 지킨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수치와 자랑거리의 대조입니다.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믿는 사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율법 등에 의지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에 속한 사람입니다.

     사도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기독교인이 된 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따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역사없이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인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교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례를 받아야 기독교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너희가 세례 받은 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 때문이냐, 아니면 듣고 믿었기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당연히 답은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사도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를 들었습니다.

     사도가 묻습니다. 너희가 세례 받은 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 때문이냐, 아니면 듣고 믿었기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당연히 답은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듣고 믿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듣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듣는 것은 가장 수동적인 것입니다. 가장 수동적인 들음을 통해 믿음에 이릅니다. 믿음을 적극적인 그 무엇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앞서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끌고 가시고 우리는 그 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지 않으면 믿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들음을 통해 역사합니다. 귀가 얇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이 들려지는 자리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예배자리가 바로 그 자리가 아닙니까?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설교는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입니다.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요. 목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요. 자신의 설교가 지금도 계속되는 예언이 되니까요. 우리는 복음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지 않으면 세상 소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유행과 풍조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들음을 사용하십니다.

 

 


3. 믿고 순종하게 하는 성령

사도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켜서냐, 복음을 듣고 믿어서냐’ 라고 묻습니다. 사도는 행위와 믿음을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되고 행함은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믿고 나면 행위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말만 하면서 아무런 행동이 없다면 그게 뭐가 믿는 것입니까?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인데 각종 세미나에서 제일 큰 인기를 끄는 주제가 바로 ‘이신칭의’입니다. 이신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이신칭의 교리는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교리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가 로마서를 통해 바로 이신칭의 교리를 깨닫고 믿음의 큰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고행으로도 해결되지 못한 구원의 감격이 그에게 넘쳤습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자신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 그를 자유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신칭의’가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한국교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냐고 말합니다. 이신칭의가 한국교회를 망쳤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행칭의’로 바꾸어야 합니까? 오직 행함으로 의로워진다고 바꾸어야 합니까? 구원이 우리의 행함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사도는 왜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는 것을 대립시킬까요? 왜 행위와 믿음을 대립시킵니까? 왜 행위와 믿음을 싸움시킵니까?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다른 행위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입니다. 행함과 믿음의 대조 배경에는 율법과 복음의 대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 복음과 대조됩니까? 원래는 대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율법도 복음이었습니다. 율법은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아서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자기들의 자랑거리로 삼아 교만해진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랑거리가 생기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할례, 안식일 등이 자랑거리였습니다. 지금도 안식교가 있지 않습니까? 주일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굳이 자랑하려면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지요.

     사도는 행위와 믿음을 단순히 대조시킨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공로로 삼는 행위를 은혜로 받은 믿음과 대조시켰습니다. 믿음에는 행위가 따릅니다. 신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신자는 신자가 아닙니다. 말만 가지고는 모릅니다. 말은 청산유수같이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을 보아야 압니다. 그 사람이 신자인지 아닌지는 순종을 보아야 합니다. 순종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순종은 조건이 아닙니다. 순종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해야 성령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나의 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그러면 나의 순종이 필요 없습니까? 아닙니다. 순종이 필요합니다. 신자에게는 순종이 따라오는데, 그 순종은 믿음에서 우러나온 순종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시작과 끝에서 믿음에서 나오는 이 순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 5절에 보면 바울 자신이 은혜를 받고 사도의 직분을 받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를 세우신 이유는 이방인들도 믿어서 순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어 순종한다는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오늘 두번째 본문인 로마서 마지막 부분인 16장 26절에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의 비밀이 지금까지 감취어 왔는데 이제 드러났다고 합니다. 복음으로 선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전체를 앞뒤에서 감싸고 있는 것이 ‘믿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로마서의 주제입니다. 로마서는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오직 믿음으로 순종에 이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어 순종했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에 신자도 믿어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순종도 믿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순종이 있습니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생할에서 경험하는 바가 아닙니까? 주고 받는 것 말입니다.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따르겠다고 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내어 놓은 것만큼 달라고 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감사하면서 순종해야 하지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순종하는 것은 참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은 성령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믿어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이 ‘성령을 받으려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성령받는 조건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설교는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했습니다. 성령께서는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것을 듣고 믿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믿어 순종케 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셨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됩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소상하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3번 문장처럼 ‘성령은 그리스도께 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적용)하십니다.’ 성령은 ‘적용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성부께서 작정하시고 성자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시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적용하십니다. 우리가 누리게 하십니다. 성령을 구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다 누리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믿게 해 주십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오셨기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고,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 성찬상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상이고, 그리스도처럼 되는 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아주 격앙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믿음에 관해 무엇을 말합니까?
3.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을 말하면서 십자가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4. 성령을 받은 것에 있어서 복음을 ‘듣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 봅시다.
5. 율법의 행위와 듣고 믿는 것을 대조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6.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말해 봅시다.
7. 성령충만한 삶으로서의 ‘오직 믿음’을 삶에 적용해 봅시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율법은 자랑하게 만든다, 맞습니까?
2. 순종이 성령받는 것의 조건이다, 맞습니까?
3. 성령은 그리스도께 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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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4.09.05 By개혁정론 Views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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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모델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5월 11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마 19:16-22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달려와서 영생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
    Date2014.06.02 By개혁정론 Views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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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하나님 없는 수고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5월 4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시 127:1-2 시 127:1-2절은 인간 역사에 관련하여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요약해 준 말씀입니다. 이 말씀...
    Date2014.05.30 By개혁정론 Views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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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슬픈 자에게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4월 27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눅 24:17-20, 31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11번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
    Date2014.05.28 By개혁정론 Views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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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밥상을 위한 기도(시 69:19-29)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본 설교는 금년 4월 13일에 온생명교회에서 수행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우리가 사는 삶에 있어서 먹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건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도 잘 먹는 것입니다. 잘 먹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
    Date2014.05.04 By개혁정론 Views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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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주를 위해 받은 욕(시 69:7-18)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명예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비방이 큰 문제가 됩니다. 십계명에 9계명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풍문...
    Date2014.04.30 By개혁정론 Views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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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버림받은 자의 기도(시 69:1-12)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교회가 흔히 묵상하는 시편이 시편 22편입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 당하시면서 내내 묵상하셨던 시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
    Date2014.04.29 By개혁정론 Views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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