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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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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요한 기자

현대기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세미나가 진행중이다. 지난 9월 18일부터 시작한 세미나는 한국 개신교 역사를 조망하며 한국 복음주의의 정의, 기원, 확장, 분화, 변절, 분열, 부패 등을 다룬다.

9월 25일에 있었던 두 번째 강연은 초기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통해 한국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시간이었다. 강사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재근 교수(선교학).

강연 내용과 질의응답을 임의로 하나의 글로 정리하였다.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 역사

이재근.jpg 한국에 들어온 초기 장로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원래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형태를 잃었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보수적이어서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타협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목적은 복음주의적인 교회, 즉 성경을 중심으로 회심, 십자가, 전도를 강조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원래 순수(purity)와 연합(unity)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선교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난 사례다.

보통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한국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로스 역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미 한국에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을 통해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의 손에는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이 있었다.

1884년에 조미통상조약을 통해 선교사가 들어올 기반이 형성되는데 이 때 처음 들어온 인물이 앨런(Horace Newton Allen)이다. 앨런은 외교관이자 의사로 들어왔고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앨런은 원래 1883년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지만 동료들과의 불화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권유로 1884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참고로 미국 북장로교에서 공식적으로 파송한 첫 복음전도 선교사는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다.

1884년 12월에 조선 내 개화파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민비의 외척으로 주요 권력 인사 중 한 명인 민영익이 중태에 빠진다. 앨런은 서양의학 기술을 가지고 민영익을 치료한다. 갑신정변이 끝나고 국가에서는 기독교를 호의적인 종교로 보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미국 선교사들이 한결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한국에 들어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국가에서는 병원을 설립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인 제중원이다.

앨런은 한국을 떠날 때까지 개인적으로 누군가에 복음을 전한 적이 없었다. 앨런은 직접 전도를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신중했다. 이런 점은 나중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열정과 상충하였다. 언더우드와는 직접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개신교의 성격

1885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가(Henry Gerhard Appenzeller) 들어온다. 1889년에는 호주 장로교, 1892년에는 미국 남장로교, 1899년에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가 들어온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교단의 역량이 탄탄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의 선교는 전도-의료-교육의 삼각형(triangle) 구조로 선교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신학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는 않았다. 세상을 거부하는 형태의 기독교가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질서와 체계를 강조하는 기독교였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 중 약 80% 정도가 미국의 장로교단과 감리교단 출신이었다. 보통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전 세계 선교 역사에서 미국계 선교사와 영국계 선교사(호주, 캐나다 포함)의 비중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국계 선교사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데에는 이러한 영향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장로교단의 교세가 우세한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 장로교단 교세는 침례교, 루터파, 감리교보다 작다. 장로교가 없는 나라도 많다.

원래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에서 형성된 교파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는 세계의 주류가 된 적이 없다. 19세기 후반 미국 개신교의 40%는 침례교, 40%는 감리교로 이루어진다. 미국과 같이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복음주의의 뜨거운 정서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감리교도나 사람이 모이면 바로 교회를 형성할 수 있는 침례교회를 통해 선교가 이루어졌다. 성공회는 미국에 정착하기에는 너무 세련되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소수의 특권층으로 남게 된다. 장로교는 미국 내에서 후발 주자였다. 아무래도 스코틀랜드 이민자 중심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로교 역시 정적인, 즉 교리 중심적이고 지성적인 종교였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전파되기 어려웠다. 미국 내에서 장로교의 성장 기반은 약했다.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는 왜 17세기형 장로교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17세기형 장로교인이라면 애당초 선교사가 되지 않는다. 대개는 부흥 경험을 통한 회심을 한 이들이 선교를 했는데 이러한 정서는 원래 장로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복음주의가 갖는 뜨거운 회심이라는 정서를 공유하지 않으면 성공회건 장로교건 선교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를 갖고 선교를 한다는 것은 원래 장로교성, 엄밀한 의미의 개혁주의성을 일부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는 장로교단에 속해 있었지만 엄밀한 의미의 장로교인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감리교 선교사들과 동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16세기 유럽에는 오늘날과 같은 전도나 선교의 개념이 없었다. 유럽 전체가 기독교사회였다. 그렇지만 선교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이 일종의 선교운동이었다. 제네바에서는 브라질에 신앙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파송을 하기도 했다.

복음주의와 제1, 2차 대각성 운동

오늘날 복음주의를 말할 때 이는 흔히 영미 부흥운동을 통해 형성된 신앙으로 본다. 이때 복음주의의 4요소는 성경주의, 회심, 십자가 중심주의, 행동주의다. 영미 부흥운동은 대개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으로 나누어 말한다. 1차 대각성 운동은 1730년대, 2차 대각성운동은 1790-1840년대에 나타났다. 3차 대각성 운동도 있는데 말하기가 불분명하다.

1차 대각성 운동은 영국에서는 감리교의 탄생, 미국에서는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부흥운동과 관계가 있다. 영국 감리교 내에서는 웨슬리(John Wesley) 그룹과 휫필드(George Whitefield) 그룹으로 나뉜다. 2차 대각성 운동에 기여한 사람은 미국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프란시스 에즈베리(Francis Asbury)다. 에즈베리는 미국에서 감리교 부흥에 기여한 사람이다.

1차 대각성 운동은 영국과 미국 일부에서 일어난 운동이었고 소수의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이것을 대각성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다. 하지만 2차 대각성 운동은 대규모 부흥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영국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났고 호주와 캐나다에서도 일어났다. 1차 대각성 운동이 교회의 개혁이나 신앙을 깨운 것에 그쳤다면 2차 대각성 운동은 노예해방 운동, 금주 운동, 여성해방 운동 등 사회개혁 운동으로 나타났고 선교운동으로도 나타났다. 1차 대각성 운동 당시 에드워즈나 휫필드는 노예제도를 용인했고 웨슬리의 경우에는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2차 대각성 당시 피니 등 부흥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노예해방 등의 사회개혁을 외쳤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들이 남부의 교인들이었고 특별히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은 피니 등이 인간의 자유의지 등에 대해 열려 있는 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했던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러한 사회개혁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은 흔히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침례교인들은 주로 농부들이었고 생계 때문에 참여할 여지가 없었다. 장로교는 신파와 구파로 나뉘는데 구파는 개혁주의자, 신파는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예외 없이 신파였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교회가 나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신파로서 사회개혁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중에 선교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개혁된 사람이었다. 다른 인종에 대하여 우월감을 갖지 않고 지적 능력이나 영적 능력이 같다고 생각해야 유색인에게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는 것이다. 1869년 이후에야 북장로교 안에서 신파와 구파는 하나가 된다.

에드워즈까지의 1차 대각성 운동을 어거스틴주의나 칼빈주의적인 참된 부흥으로 보고 2차 대각성 운동은 찰스 피니의 영향으로 인해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이고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잘못된 부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적인 다양한 문맥을 보면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아마 피니와 무디(D. L. Moody)가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계기는 엄밀한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복음주의자에 의해 형성되었다. 피니에 대해서 칼빈주의적 관점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공헌이나 역사적 가치, 선한 영향력까지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실제 피니의 『부흥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발제를 시킨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반응은 “피니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구상으로 보면 어느 부분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 같은 부분이 있지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식하며 살았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피상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무디는 세대주의자로서 전도운동을 한 사람이다. 무디의 전도운동에 장로교 신파의 지도자인 아서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이 합류한다. 피어선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이하 SVM)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통해 교파와 관계 없이 헌신된 사람이 모여 선교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3, 4천 명의 선교사가 나왔는데 이 중 70%는 SVM 집회를 통해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단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지에 가서 타 교단 선교사와 협력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초기 선교사의 유대관계는 매우 끈끈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공통의 분모를 가진, 즉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복음주의자의 선교 방식은 여러 군데에서 비슷하다. 성경을 번역하고, 부흥운동을 일으키고, 말씀을 전하여 개종시키고, 가슴의 종교를 형성한다. 그래서 각 선교지에서는 기본적으로 복음주의 신앙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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