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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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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요한 기자

1960-80년대는 전쟁 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이룬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 교회는 빠르게 양적인 성장을 이루고 외형상 사회의 중심부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가 있다.

11월 6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있었던 현대기독연구원 주관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세미나” 일곱 번째 시간에서는 산업화 시대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를 다루었다. 강사는 이재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강연의 대략을 아래에 정리하였다.

성장과 부패: 자본주의와 독재 앞에 선 기독교

3.jpg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간은 1950년대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 신자수가 크게 늘어난 시기였다. 분열로 인해 각 교단 간 경쟁 체제가 형성되어 교인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급격한 산업성장과 독재의 시기에 자본주의 및 독재정권의 소극적 방관자 혹은 적극적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1. 성장: 현상, 배경, 원인

1960년대 개신교의 특징은 개척교회 수가 증가하고 각 교회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었다. 1960년대 인구대비 2.5%였던 개신교 교인 수는 1970년에 10.1%, 1980년에 19.2%에 이르게 된다. 이후에는 성장세가 둔화되어 감소와 증가를 반복하여 1995년에는 19.7%에 이르게 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천주교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시기였다. 1985년에 개신교 대비 신자비율이 30%도 되지 않았던 천주교 신자비율은 1995년에는 37%, 2005년에는 60%까지 증가하게 된다.

많은 역사가와 사회학자는 1960년대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교회 성장의 배경에 분단 구조 및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즉 물량적 경제성장의 추진 및 결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야기한 생존경쟁과 배금주의는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각 개인의 인간성 상실을 낳았다. 전통적인 종교사회학 이론에 따르면 산업화가 진행 중인 도시사회에서 소외감과 정체성 위기를 느낀 이들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회복시켜 줄 새로운 공동체를 찾는데 여기에 부합하는 것이 종교 집단이다. 산업화 시대 한국 도시 상황에서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전통을 강조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불교나 유교보다는 서구적이고 개인적이라는 인상을 주면서도 공동체의 친밀함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더 큰 매력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는 도시와 농촌에서 모두 성장하였으나 상대적으로 도시에서 더욱 급속하게 성장한다. 도시 지역에 메가-처치(mega-church) 현상이 나타날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난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현세적인 물질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고 설교하는 교회의 성장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요인과 더불어 교회가 추진한 적극적인 성장 노력 및 효율적인 정책이 당시 시대 상황과 분위기에 잘 들어맞은 것도 성장의 요인이었다. 1970년대 이후 각 교단은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없이 거의 모든 교단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교회 성장 운동에 돌입했다. 특별히 대형부흥집회는 한국 교회가 뜨거운 전도열과 동시에 외적 성장에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1965년 개신교 선교 80주년을 맞아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1974년 엑스플로 74 대회, 1977년 민족복음화 대성회 등 초대형 전도집회가 등장했다. 각각 총 참석인원이 수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큰 외적 성공을 거둔 대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전도 중심 대형집회에 대한 비판이 있다. 이러한 집회가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한국 사회의 정치 갈등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야를 영적으로 돌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고 실제로 그 역할을 일정 부분 감당했다는 것이다.

대형집회 현상과 더불어 부흥회를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의 행사로 만들어 한국 기독교인의 타계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신비주의 집착 신앙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기도원 현상이었다. 기도원 현상은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인의 습성과 결합해 토착화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기도원은 역사적으로 여성의 활동이 제한적이었던 한국에서 여성이 자신의 신앙을 표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70년대 한국교회 성장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상 중 하나는 교회성장이론이었다. 교회성장학은 1960년대 풀러신학교에서 도널드 맥가브란이 정립한 후 피터 와그너 등을 통해 확산된 이론으로 선교학의 한 주제였다가 독립된 영역으로 연구되었다. 원래 이 이론은 전도에 관한 사회현상을 사회학, 인류학적으로 연구하여 개종, 교회 성장, 선교의 외연 확장 등에 활용하는 이론이다. 따라서 단순히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매뉴얼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이 이론의 기저에 있는 선교학, 사회학적 논의 대신 실용적, 실제적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데 관심을 두고 그렇게 소개되고 퍼져 나갔다.

오히려 실제로 한국 교회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사고는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기독교적으로 변형시킨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의 목회 방식이었다. 인간의 희망을 강조하는 나긋나긋한 신학, 듣기 좋은 설교, 관계 중심적 전도 등으로 대변되는 이 방식은 오늘날 메가처치 현상의 기원이 된 소비자 중심 교회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과 같은 류의 책도 이 연장선에 있다.

이러한 요소와 더불어 대학생과 청년의 신앙 각성을 도운 선교단체 역시 한국 교회 성장에 기여한 하나의 요소였다. 원래 선교단체는 19세기 미국 2차대각성 이래 사회참여와 선교를 목표로 등장한 자원단체(voluntary societies)에서 기원했다. 19세기 복음주의는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을 모두 강조하는 총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을 겪으며 보수 복음주의 단체와 진보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나 YMCA/YWCA 등의 진보 진영 선교단체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외국에서 IVF, CCC, 네비게이토(Navigators), 예수전도단(YWAM) 등이 도입되고, 한국에서 SFC, 죠이선교회(JOY), UBF, 한사랑선교회 등이 탄생하면서 한국 내 기독교 청년학생운동의 주도권은 보수 복음주의 단체가 쥐게 된다. 복음주의 선교단체는 주로 성경공부, 소그룹, 제자훈련, 찬양, 개인전도 등을 통한 복음을 개인적으로 수용 및 적용하는 특징을 가졌고, 당대의 독재와 반민주에 저항하는 일반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이후 복음주의 학생운동 내에서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1986년 기독교문화연구회 등 진보적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분화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보수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정치적 분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복음주의 단체 중 CCC는 상대적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IVF는 진보적이다.

2. 부패: 자본주의와 독재 앞에 선 복음주의 기독교

1960-70년대 개발독재에 따른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 주요 도시마다 대규모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이들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들을 대상으로 산업선교, 도시빈민선교, 농민선교에 나서는 이들이 생겼다. 1957년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전도, 예배, 성경공부, 봉사활동 등을 목적으로 산업선교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들어 산업선교 지도자들은 노동자 교육, 노동조합 지도자 훈련, 노동조합 조직 지원 등으로 선교의 방향을 바꾸었다. 노동현실과 유리된 전도와 예배가 복음의 본질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68년부터 도시산업선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을 시작했다.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이들의 활동은 정부 및 기업과 갈등을 겪었고 공산주의자, 소위 빨갱이로 취급되어 중앙정보부나 경찰 등의 공안기관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시 이들을 지원하며 국가의 폭력에 저항한 단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였다.

아울러 1972년 유신헌법 공표 후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인의 운동도 있었다. 1973년 11월에는 NCCK가 인권선언을 채택하여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민주화운동 세력이 만나는 물꼬를 트기도 했고 1974년 9월에는 기장, 예장 통합, 감리교가 각각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60-70년대, 이후 1980-90년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인권탄압이나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교회 집단은 진보 에큐메니컬 진영이었다. 정치와 종교의 유착을 통한 혜택을 많이 입은 보수 복음주의 진영의 교회는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세워진 정권에 대한 절대복종이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했다. 일부 양심 있는 인사들은 기도를 통해 통수권자가 바른 길을 가도록 하되 적극적인 사회변혁 활동에는 참여하지는 않는 소극적 저항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 진영 기독교 지도자들은 독재정권이 행하는 폭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축복하였다. 대표적인 행사가 국가조찬기도회였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에 국회 내 원내 조찬기도회로 시작되어 매년 진행하다가 1976년부터 국가조찬기도회로 이름을 바꾼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 상황에서 나타난 이런 현상에 대해 보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여기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친 행위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단순한 종교행사는 아니었다는 것은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당시 조찬기도회에서 활동하는 한국 관료 가운데에 뇌물 수수나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이 있었고, 조찬기도회가 정교유착 및 부패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70년대의 유신 찬양, 반공주의에 이어 1980년에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축복하기도 했다. 김준곤, 한경직, 신형균, 김신명, 김창인 등이 조찬기도회의 대표 인물이었다.

물론 1960-80년대의 교회의 모든 대외활동이 진보 에큐메니컬 진영과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1981년에 김명혁, 손봉호 등 보수 진영의 학자들이 조직한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온건한 형태로 비판적 시국인식을 드러냈다.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1987년 12월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1989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탄생했다. 이전의 대다수 복음주의 진영이 비정치를 주장하며 무분별하게 독재를 용인, 옹호했던 모습과는 달리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렇지만 1960-80년대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는 폭발적인 교인 수와 부의 성장이라는 산업화, 도시화 시대의 축복이라는 열매를 따 먹으면서도 그 축복을 공평하게 누릴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당한 자에게 열매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근원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데는 실패했던, 게다가 부패한 집단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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