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교회사 산책
조회 수 2249 추천 수 0 댓글 0
설요한 기자

현대기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세미나가 진행중이다. 지난 9월 18일부터 시작한 세미나는 한국 개신교 역사를 조망하며 한국 복음주의의 정의, 기원, 확장, 분화, 변절, 분열, 부패 등을 다룬다.

9월 25일에 있었던 두 번째 강연은 초기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통해 한국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시간이었다. 강사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재근 교수(선교학).

강연 내용과 질의응답을 임의로 하나의 글로 정리하였다.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 역사

이재근.jpg 한국에 들어온 초기 장로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원래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형태를 잃었다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보수적이어서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타협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협력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목적은 복음주의적인 교회, 즉 성경을 중심으로 회심, 십자가, 전도를 강조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원래 순수(purity)와 연합(unity)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양보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선교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난 사례다.

보통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한국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로스 역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미 한국에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을 통해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의 손에는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이 있었다.

1884년에 조미통상조약을 통해 선교사가 들어올 기반이 형성되는데 이 때 처음 들어온 인물이 앨런(Horace Newton Allen)이다. 앨런은 외교관이자 의사로 들어왔고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앨런은 원래 1883년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지만 동료들과의 불화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권유로 1884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참고로 미국 북장로교에서 공식적으로 파송한 첫 복음전도 선교사는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다.

1884년 12월에 조선 내 개화파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민비의 외척으로 주요 권력 인사 중 한 명인 민영익이 중태에 빠진다. 앨런은 서양의학 기술을 가지고 민영익을 치료한다. 갑신정변이 끝나고 국가에서는 기독교를 호의적인 종교로 보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미국 선교사들이 한결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한국에 들어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국가에서는 병원을 설립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 의료기관인 제중원이다.

앨런은 한국을 떠날 때까지 개인적으로 누군가에 복음을 전한 적이 없었다. 앨런은 직접 전도를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신중했다. 이런 점은 나중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열정과 상충하였다. 언더우드와는 직접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개신교의 성격

1885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가(Henry Gerhard Appenzeller) 들어온다. 1889년에는 호주 장로교, 1892년에는 미국 남장로교, 1899년에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가 들어온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교단의 역량이 탄탄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의 선교는 전도-의료-교육의 삼각형(triangle) 구조로 선교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의 신학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는 않았다. 세상을 거부하는 형태의 기독교가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질서와 체계를 강조하는 기독교였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 중 약 80% 정도가 미국의 장로교단과 감리교단 출신이었다. 보통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전 세계 선교 역사에서 미국계 선교사와 영국계 선교사(호주, 캐나다 포함)의 비중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미국계 선교사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전반적으로 미국적인 데에는 이러한 영향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장로교단의 교세가 우세한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서 장로교단 교세는 침례교, 루터파, 감리교보다 작다. 장로교가 없는 나라도 많다.

원래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에서 형성된 교파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는 세계의 주류가 된 적이 없다. 19세기 후반 미국 개신교의 40%는 침례교, 40%는 감리교로 이루어진다. 미국과 같이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복음주의의 뜨거운 정서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감리교도나 사람이 모이면 바로 교회를 형성할 수 있는 침례교회를 통해 선교가 이루어졌다. 성공회는 미국에 정착하기에는 너무 세련되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소수의 특권층으로 남게 된다. 장로교는 미국 내에서 후발 주자였다. 아무래도 스코틀랜드 이민자 중심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로교 역시 정적인, 즉 교리 중심적이고 지성적인 종교였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전파되기 어려웠다. 미국 내에서 장로교의 성장 기반은 약했다.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는 왜 17세기형 장로교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17세기형 장로교인이라면 애당초 선교사가 되지 않는다. 대개는 부흥 경험을 통한 회심을 한 이들이 선교를 했는데 이러한 정서는 원래 장로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복음주의가 갖는 뜨거운 회심이라는 정서를 공유하지 않으면 성공회건 장로교건 선교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를 갖고 선교를 한다는 것은 원래 장로교성, 엄밀한 의미의 개혁주의성을 일부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는 장로교단에 속해 있었지만 엄밀한 의미의 장로교인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감리교 선교사들과 동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16세기 유럽에는 오늘날과 같은 전도나 선교의 개념이 없었다. 유럽 전체가 기독교사회였다. 그렇지만 선교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이 일종의 선교운동이었다. 제네바에서는 브라질에 신앙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파송을 하기도 했다.

복음주의와 제1, 2차 대각성 운동

오늘날 복음주의를 말할 때 이는 흔히 영미 부흥운동을 통해 형성된 신앙으로 본다. 이때 복음주의의 4요소는 성경주의, 회심, 십자가 중심주의, 행동주의다. 영미 부흥운동은 대개 1차 대각성과 2차 대각성으로 나누어 말한다. 1차 대각성 운동은 1730년대, 2차 대각성운동은 1790-1840년대에 나타났다. 3차 대각성 운동도 있는데 말하기가 불분명하다.

1차 대각성 운동은 영국에서는 감리교의 탄생, 미국에서는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부흥운동과 관계가 있다. 영국 감리교 내에서는 웨슬리(John Wesley) 그룹과 휫필드(George Whitefield) 그룹으로 나뉜다. 2차 대각성 운동에 기여한 사람은 미국의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프란시스 에즈베리(Francis Asbury)다. 에즈베리는 미국에서 감리교 부흥에 기여한 사람이다.

1차 대각성 운동은 영국과 미국 일부에서 일어난 운동이었고 소수의 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이것을 대각성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다. 하지만 2차 대각성 운동은 대규모 부흥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영국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났고 호주와 캐나다에서도 일어났다. 1차 대각성 운동이 교회의 개혁이나 신앙을 깨운 것에 그쳤다면 2차 대각성 운동은 노예해방 운동, 금주 운동, 여성해방 운동 등 사회개혁 운동으로 나타났고 선교운동으로도 나타났다. 1차 대각성 운동 당시 에드워즈나 휫필드는 노예제도를 용인했고 웨슬리의 경우에는 노예제도를 반대했다. 2차 대각성 당시 피니 등 부흥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노예해방 등의 사회개혁을 외쳤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들이 남부의 교인들이었고 특별히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은 피니 등이 인간의 자유의지 등에 대해 열려 있는 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했던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러한 사회개혁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은 흔히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침례교인들은 주로 농부들이었고 생계 때문에 참여할 여지가 없었다. 장로교는 신파와 구파로 나뉘는데 구파는 개혁주의자, 신파는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예외 없이 신파였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교회가 나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신파로서 사회개혁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중에 선교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개혁된 사람이었다. 다른 인종에 대하여 우월감을 갖지 않고 지적 능력이나 영적 능력이 같다고 생각해야 유색인에게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는 것이다. 1869년 이후에야 북장로교 안에서 신파와 구파는 하나가 된다.

에드워즈까지의 1차 대각성 운동을 어거스틴주의나 칼빈주의적인 참된 부흥으로 보고 2차 대각성 운동은 찰스 피니의 영향으로 인해 세미-펠라기우스주의적이고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잘못된 부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적인 다양한 문맥을 보면 이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아마 피니와 무디(D. L. Moody)가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계기는 엄밀한 칼빈주의자가 아니라 복음주의자에 의해 형성되었다. 피니에 대해서 칼빈주의적 관점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공헌이나 역사적 가치, 선한 영향력까지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실제 피니의 『부흥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발제를 시킨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반응은 “피니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구상으로 보면 어느 부분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 같은 부분이 있지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식하며 살았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피상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무디는 세대주의자로서 전도운동을 한 사람이다. 무디의 전도운동에 장로교 신파의 지도자인 아서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이 합류한다. 피어선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이하 SVM)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통해 교파와 관계 없이 헌신된 사람이 모여 선교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3, 4천 명의 선교사가 나왔는데 이 중 70%는 SVM 집회를 통해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단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지에 가서 타 교단 선교사와 협력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초기 선교사의 유대관계는 매우 끈끈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공통의 분모를 가진, 즉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복음주의자의 선교 방식은 여러 군데에서 비슷하다. 성경을 번역하고, 부흥운동을 일으키고, 말씀을 전하여 개종시키고, 가슴의 종교를 형성한다. 그래서 각 선교지에서는 기본적으로 복음주의 신앙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황제 숭배와 카타콤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15)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그리스도인이 핍박 받았던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단다. 본래 로마는 왕을 신으로 섬기지 않았어. 그런데 동방 여러 나라를 침략해서 속국으로 만들고 그곳으로부터 왕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를 수입했단다. 처음에는 죽은 황...
    Date2015.08.22 By개혁정론 Views2023
    Read More
  2. [교회사 이야기] 그리스도인에 대한 편견과 박해!

    그리스도인에 대한 편견과 박해!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처음에는 로마인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 그리스인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지. 유대교의 한 분파이겠거니 했단다. 또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지. 그런데 분위기가...
    Date2015.04.08 By개혁정론 Views1781
    Read More
  3. 쇠퇴와 다원화 앞에 선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

    설요한 기자 21세기를 맞은 한국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망과 분석, 대안이 나오고 있다. 현대 사회에 더욱 잘 적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교파별로 개신교회 전통에 충실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진...
    Date2014.12.10 By개혁정론 Views2020
    Read More
  4. 교회의 핍박은 시작되고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10)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 터툴리아누스 유대인의 핍박 교회는 수적으로 성장해 갔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아졌단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 유대인이 식사도 같이 하지 않았던 ...
    Date2014.12.03 By개혁정론 Views1616
    Read More
  5. 산업화 시대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의 성장과 부패

    설요한 기자 1960-80년대는 전쟁 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가 산업화를 이룬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 교회는 빠르게 양적인 성장을 이루고 외형상 사회의 중심부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가 있다. 11월 6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있었...
    Date2014.12.01 By개혁정론 Views2028
    Read More
  6. 해방 이후 한국 개신교의 분열 양상

    설요한 기자 현재 한국 개신교 내에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교회 등 많은 교파가 있고 각 교파 내에서도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 교회의 교단 분열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까. 10월 30일에 서울영동교회에서 있었던 현대기독연...
    Date2014.11.21 By개혁정론 Views2682
    Read More
  7. 키프리아누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교회의 감독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1. 생애 카르타고(Carthago)의 감독 키프리아누스(Cyprianus = 키프리안 Cyprian)의 본명은 타스키우스(Thascius)이며 기독교에로의 개종 시에 카에킬리우스(Caecilius)라는 이름을 얻었다. 카에킬리...
    Date2014.11.21 By개혁정론 Views2344
    Read More
  8.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교회, 신사참배의 굴복과 저항의 역사

    설요한 기자 현대기독연구원에서 주관하고 이재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학, 사진)가 강의하여 진행하는 “20세기 한국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5주차 강의에서는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문제를 다루었다. 이번 강의에서는 1930년대부터 강화되...
    Date2014.11.12 By개혁정론 Views1823
    Read More
  9. 예루살렘의 멸망!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9)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최강 로마 군대가 자그마한 유대인에게 패배하고 쉽게 물러났을까? 그럴 리가 없지! 로마는 더 강력한 군대를 보내 유대인의 반란을 제압하려 했단다. 로마 장군은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였어...
    Date2014.11.11 By개혁정론 Views2748
    Read More
  10. 유대전쟁!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8)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본래 게시우스 플로루스 총독은 돈은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그러나 자기가 다스리는 유대인은 미워했단다. 그는 로마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유대인에게 부과했지. 유대교를 멸시하...
    Date2014.11.07 By개혁정론 Views1994
    Read More
  11. 한국 초기 개신교의 발전과 분화

    설요한 기자 10월 16일 서울영동교회에서는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네 번째 시간이 있었다. 이번에는 한국 초기 개신교와 민족주의 운동과의 관계, 교단의 분화를 다루었다. 강사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재근 교수(선교학 강사, 스코틀랜드...
    Date2014.10.28 By개혁정론 Views2007
    Read More
  12. 한국 선교 초기 교회 성장의 동력은

    설요한 기자 현대기독연구원에서 하는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세미나가 서울영동교회에서 계속해서 진행중이다. 이 세미나는 한국 개신교 역사를 조망하며 한국 복음주의의 정의, 기원, 확장, 분화, 변절, 분열, 부패 등을 다룬다. 10월 2일에 ...
    Date2014.10.16 By개혁정론 Views2012
    Read More
  13. 한국 초기 선교사들이 전수해 준 복음주의 개신교

    설요한 기자 현대기독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세기 한국 복음주의 지형도 그리기” 세미나가 진행중이다. 지난 9월 18일부터 시작한 세미나는 한국 개신교 역사를 조망하며 한국 복음주의의 정의, 기원, 확장, 분화, 변절, 분열, 부패 등을 다룬다. 9월 25일에 ...
    Date2014.10.11 By개혁정론 Views2249
    Read More
  14. 세계기독교 관점으로 바라보는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사

    설요한 기자 “세계기독교 관점에서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역사를 조망한다.” 9월 18일(목), 서울 강남구 소재 서울영동교회에서는 현대기독연구원이 주최한 “20세기 한국복음주의 역사지형도 그리기”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있었다. 강사는 이재근 교수(스코틀랜...
    Date2014.09.19 By개혁정론 Views2868
    Read More
  15. 예언은 반드시 기다려야 해!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7)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후 예루살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았단다. 유대인은 나사렛 출신 랍비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했었어. 한 마디로 실망했지! 유다 지파에서 위대한...
    Date2014.08.14 By개혁정론 Views1901
    Read More
  16. 교회는 점점 퍼져가고!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6)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사탄의 공격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은 점점 누룩처럼 퍼져 나갔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어떻게 로마에까지 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단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어보...
    Date2014.07.06 By개혁정론 Views1959
    Read More
  17. 거룩한 교회에 가라지가!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5)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거룩한 교회에 가라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인자한 분이란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많은 유대인들도 제자들이 전하는 복...
    Date2014.06.19 By개혁정론 Views7532
    Read More
  18. 복음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전파되고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4)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그림설명: The Conversion of Paul, Tempesta Antonio Etching, Second half of 16th century, 360*529mm) 핍박 가운데 복음은 전파되고 이렇게 핍박이 있자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뿔뿔이...
    Date2014.05.07 By개혁정론 Views2385
    Read More
  19. 예루살렘 교회 - 임경근의 교회 역사 이야기 (3)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예루살렘 교회는 어땠니? 갓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했단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런 용기와 힘이 생긴 거야. 예수님의 제자, 곧 사도들이 먼저 복음...
    Date2014.04.22 By개혁정론 Views2994
    Read More
  20. 부활절의 유래?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이스터(Easter)’? 영어권에서 부활절을 ‘이스터’(Easter)라고 부른다.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언제부터 부활절을 이렇게 부른 것일까? 역사가들은 기독교의 주도권이 로마에서 게르만족으로 ...
    Date2014.04.18 By개혁정론 Views1101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사설
실력에 속지 말라
[사설]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1
[사설] 부목사도 노회원이다
[사설] 거짓 증거를 경계하자
[사설] 순장 총회와의 교류를 적극 ...
[사설] 제67회 고신총회에 바란다
[사설]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사설] 총회 직원 순환보직이 악용...
[사설] 작금의 국정농단사태, 어떻...
[사설] 역사의 교훈을 경시해서는 ...
칼럼
영원한 은혜 (2)
영원한 은혜 (1)
지속되는 은혜 (2)
지속되는 은혜 (1)
[해외칼럼] 지키시는 은혜 (2)
[해외칼럼] 지키시는 은혜 (1)
[해외칼럼] 귀한 은혜 (2)
[해외칼럼] 귀한 은혜 (1)
[해외칼럼] 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
[해외칼럼] 찬송가 뒤에 있는 이야...
기고
화란개혁교회와 고신총회의 관계에 ...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의...
[대담] “진리를 말하고 삶으로 진리... 1
개혁신앙인은 현대과학을 어떻게 볼... 1
시대 상황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1
칼빈의 창조적인 교회력 수정
미래 목회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거울 뉴런 발견자와 르네 지라르의 ...
[기고] 명성교회의 세습을 슬퍼하며
우리는 무엇을 팔고 있는가? (재미...
논문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종교개혁과 교리개혁: 사도신경을 ...
수도권의 교회연합 가능성 모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