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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석으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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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이클 데브리스(Michael De Vries)

(Kalamazoo 교회(PRC교단) 목사
번역: 김재한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편 61:2

 

 

우리가 이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는 동안 압도당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스트레스, 슬픔,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너무 많이 있다. 마치 전 세계가 우리 주변에서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무기력함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씁쓸함과 반항심, 심지어는 절망과도 싸우려고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견고한 어떤 것, 그 위에 설 수 있는 변함없는 어떤 것, 우리가 완전히 압도당하고 파괴되지 않게 지켜주는 어떤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반복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요 굳건한 반석이심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거듭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시편 46:1)이심을 경험한다. 우리는 다윗이 시편 62편에서 그러했듯이,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우리 앞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시편 61:2)은 인생의 재난 가운데서 절망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 구절은 약하고 무력한 희생양을 맹렬하게 쫓고 있는 강하고 무시무시한 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추격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것이었고, 적은 이제 목숨을 취하려고 재빠르고 다가오고 있다. 적은 무자비하고, 그의 목표는 먹잇감의 완전한 파멸과 멸망뿐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인다. 솟아날 구멍도 없다. 이런 적과 싸워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잠시 달아날 수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적의 추격은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일 것이고 흉포한 사자처럼, 그를 갈기갈기 찢은 뒤 삼켜 버릴 것이다. 공포, 두려움, 슬픔이 그의 영혼을 채운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앞에 솟아오르는 튼튼한 바위의 탑이 있다. 이 바위 위에 올라선다면,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는 확실한 피난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는 마음과 영혼에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절벽이 너무 가파르기에 오를 수가 없다. 이 바위는 너무 높다! 여전히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듯 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르짖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시편 저자가 하고 잇는 일이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아마도 이 장면은 끔찍한 악몽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때로 경험하는 삶의 실재이기도 하다. 살면서 겪는 많은 환경들이 이런 두려운 그림과 일치한다” 고난, 부상, 질병, 역경, 슬픔, 박해, 죽음.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와 죄책의 끔찍한 실재와 맞닥뜨렸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구절의 장면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끔찍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탈출할 수 없다. 구조도 없다. 유일한 대답은 시편 기자가 한 것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실수하지 말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돌아볼 곳은 아무데도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마음이 약해졌을 때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부르짖어라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우리를 들어올려 우리 발을 이 바위 위에 얹으시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긴급한 부르짖음
다윗 왕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구절을 썼을 때,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했다. 그는 자신이 인생에서 경험했던 위기, 즉 하나님께서 그를 두셨던 그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을 때의 그 경험에 대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신속하게 는 왕궁을 떠나야 했고, 충성스런 신하들도 음식도 거의 챙길 수 없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과 그의 왕좌를 훔쳤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여호와의 장막에서 추방당했다. 이제 그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으로 안전한 장소, 피난처를 찾으며 도망치고 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요압의 지휘 아래 있는 다윗의 작은 군대가 패배한다면, 다윗은 계속 유배지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추격당해서 결국은 살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만약 요압이 압살롬을 물리친다면, 그것은 그의 아들의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왕의 영혼은 이런 예감들로 어두웠다. 그의 마음은 두려움과 고뇌로 무겁게 짓눌렸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 이렇게 거친 현실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의 뒤에는 그를 추격하는 적들이 있다. 그의 앞에는 가파른,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어 보이는 냉혹한 얼굴을 한 돌로 된 탑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때로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무력하고 정말적인 느낌이다. 우리는 다윗과 함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이 바위는 무엇인가? 우리가 오르기에는 너무 높은 이 바위는 누구인가? 사무엘상 2장 2절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신명기 32:4에서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시편 18:2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의심할바 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이 반석이시다!   

 

   하나님이 반석이시라는 개념에서 표현된 이 생각은 매우 강력하며 위로를 준다. 이 생각은 우리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불변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확실한 분으로 그린다. 적들의 힘이 얼마나 강하든지, 그 공격이 얼마나 빈번하든지 관계없이, 여호와는 견고한 반석으로, 확실한 피난처로 서 계신다. 이는 그 분 안에 안전, 안심, 평화 그리고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이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반석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은 이런 것들과 동일한 영광스러운 특징들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강하고 무시무시한 적들이 나타나도, 죄와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압도할 때도, 고난과 슬픔이 우리를 낙담시킬지라도, 우리는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우리 구원의 반석 위에 선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부르짖는다. “나를 반석으로 이끄소서!”라고. 여기에서 그리고 있는 생각은 그가 자기 힘으로는 이 반석을 올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것의 높이가 제공하는 안전함과 안심을 즐길 수 없다. 그는 너무도 약하다. 그는 힘이 없다. 거기에 더해서, 이 바위는 그에게 너무 높다! 

   아마도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높으실 수 있는가?”라고.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 사실을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에서 그리고 우리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파악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그리고 우리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왜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는 이 반석을 오르지 못하는지, 왜 우리 자신을 그분께 연합시킬 수 없는지가 명확해진다. 하나님은 완벽하시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그분은 모든 선한 것들이 흘러나오는 샘이시다! 그분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어떤 죄와 타락도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안에 설 수 없고, 그분께 연합될 수도 없다. 

   그러면 우리,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저 비참한 죄인들일뿐이다! 죄라는 원수는 우리가 잉태될 때부터 우리를 괴롭혀 왔다. 마귀와 그 하수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죄책을 보고, 하늘과 땅을 지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눈부신 거룩함을 본다. 이로 인해 우리가 내리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반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높다! 

   더욱이, 우리의 괴로움들, 비참함들, 슬픔들이 우리에게 이 반석은 너무나도 높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우리 지성과 영혼의 혼란을 경험한다. 우리는 쉽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한다. “왜?” 우리는 주님이 행하시는 방법들에 대한 질문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반역의 정신이 그 추한 머리를 들려고 하는 것을 억제하려고 애쓴다. 약함 가운데서 우리는 시편 기자인 아삽과 함께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시편 77:9).” 그러나 우리는 영혼의 쉼을 그런 식으로는 찾지 못한다. 불평과 반역의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평화도, 안식도, 위로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 반석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높다!

 

확실한 피난처
   그러나 그의 모든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유일한 도움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앞의 구절에서 그는 주님께 간구한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다윗과 함께 우리는 이 바위가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시며 소망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시편기자가 자신을 이 바위/반석으로 이끌어달라는 이 요청을 할 때 그가 누구에게 이것을 말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때 이것이 분명해진다. 

   그는 반석 그 자체를 향해 말하고 있다! 구원, 해방, 도움, 그리고 힘이 바로 이 반석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반석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이 반석이시요, 교회의 귀한 모퉁이돌이시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이 반석의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음을 알게 된다. 구속, 완전하고 자유케하는 우리의 모든 죄로부로터의 용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 있다. 위로, 참된 위로, 사나 죽으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되는, 우리가 우리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위로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반석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에 속하는 일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분은 걸림돌이요 거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을 따라, 불순종하는 이들은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걸려 넘어진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귀한 분이 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요, 또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의 심장이 압도 당했다고 선언한다. 이것 역시 우리가 때때로 경험하는 것이다 - 압도당하는 것! 우리는 여전히 약하고, 무력하고, 이 바위는 여전히 높다. 믿음의 전투는 우리의 힘을 차츰 약화시킨다. 우리는 떨며, 무기력하게 그리고 고갈된 채로 남겨진다. 우리 앞에 놓인 이 길은 길고, 어둡고 무섭게만 보인다. 그러나 믿음은 세상과 우리 모든 원수들을 극복하는 승리이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 안에서 (엡 2:8), 우리는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게 되는데 이 간구가 바로 승리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비록 믿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그 믿음은 또한 우리 앞에 있는 이 반석, 우리의 힘이 되는 반석, 바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붙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반석을 바라본다. 우리는 도움을 얻기 위해 그분을 올려본다. 우리는 그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반석 위에 올려지고, 그 위에 서고, 건짐을 받는다. 복된 고요함이 우리 영혼에 내려앉는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쉼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합력해서 그분의 백성들의 선이 되게 하시는 것을 다시금 확신한다. 우리의 신뢰는 하나님, 우리 구원의 하나님,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시는 그 하나님께 고정된다. 

   우리는 우리의 순례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적들이 다시금 우리를 공격할 것을 안다. 우리는 인생의 냉혹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는 곤핍한 땅 위의 반석이시요 폭풍의 때의 쉼터”이심을 알고 전진한다. 그는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쉴 곳을 찾아 그에게로 피하는 모든 이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유일한 피난처이시다: “굳건한 반석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우리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자! 그분의 신실하심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전능하신 팔을 우리에게 펼치셔서 우리를 위험과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높이 드시고, 우리 발을 이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우신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노래하며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환난들이 내 마음을 덮쳐올 때
그 때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네
나를 안전한 곳, 반석으로 이끄소서
나보다 높은 바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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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포럼발기’에 대한 우려와 기대
심방 예배(설교), 꼭 드려야 하나?
종교개혁자들에게 심방이란 무엇이...
섭리와 기도
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칼빈주의
화란개혁교회와 고신총회의 관계에 ...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의...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