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2017년 3월 27일(월) 제5회 지역교회 교회학교 활성화를 위한 교회교육 세미나 (고신대학교 비전관)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
개혁교회 어린이 예배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Ⅰ. 서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1)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다. 어린이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 즉 어린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어른은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어른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뒤이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예외가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우리는 ‘받든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받는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받는 입장에 있다.2) 이것은 수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생존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품과 젖이 생명이다. 이것처럼 신자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치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먼저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그 분을 받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를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잘 받는 것이 관건이다.
어린이 예배가 따로 필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어른예배’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지만 어쨌든 어른예배에서 어린이들을 제외시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어린이들을 배려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어린이들을 배제하기 위함일까? 어린이 예배를 과연 따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어린이 예배를 따로 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구약시대 때부터라고 해야겠지만 교회역사를 보면 교회는 항상 어린이와 함께 예배했다. 어린이를 예배에서 배제시키고서 어른들만 예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선교지적인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입된 주일학교, 어린이 예배가 이제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어린이만이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잘게 나누어져서 예배하고 있다. 예배가 수없이 나누어진 것이다. 한 교회에서 말이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우리는 언약의 관점에서 우리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예배를 바라보아야 하겠다.
Ⅱ. 언약에 근거한 예배와 어린이
1. 신자는 언약의 백성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시는 은혜로운 관계를 ‘언약’이라고 부른다.3) 기원전 1500년 경 고대 근동의 히타이트 족속이 맺었던 계약이 있었는데 이것은 종주국과 종속국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이었다. 쉽게 말하면 종속국의 왕이 복종하겠다고 하면 종주국의 왕은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다.4)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언약관계는 이렇게 당시 근동의 계약을 본 딴 것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이 다른 민족, 다른 종교들의 계약과 얼마나 다른가? 금방 표현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것을 언약이라고 부른다면,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계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계약이 어떻게 체결되는가?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수없이 계약을 하며 살지 않는가? 계약은 계약의 쌍방이 서로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내어놓으면서 시작된다. 무상으로 무언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겠지만 계약이라는 것은 쌍방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철저하게 주고받는 거래관계인 것이다. 종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종교인이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무언가를 드리면, 그 신이 그것을 보고는 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어 준다. 진노와 저주를 막아 준다든지, 아니면 복을 준다든지 한다.
언약은 계약과 다르다. 계약은 쌍방 계약자들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맺자고 하시는 것이다.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시다는 뜻이다.5)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쥐고는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을 맺자고 하신다. 그러면 아무런 자격이 없는 이들이, 아무 것도 내어놓을 수 없는 이들이 언약의 파트너가 된다. 언약이 체결되면 비로소 언약의 약속과 요구, 언약의 저주며, 언약의 복이 선포된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주의 백성은 요구앞에 직면하고, 그 언약의 요구를 지키지 못하면 언약의 저주가 임하고, 그 요구를 이루면 언약의 복이 내린다. 언약의 저주와 복이 철저하게 응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 가운데 베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언약을 깨뜨릴 때에도 신실하셔서 그 언약을 다시 회복하신다.
하나님과 그 백성간에 맺은 언약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기도 한다. “언약이란 하나님과 주님의 백성과의 살아있는 관계이며, 이 관계 안에서 여호와께서는 주님의 우리를 돌보실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시고, 또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길 그분의 백성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6) 즉, 언약의 전형적인 문구가 바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 26:12; 겔 11:20; 36:28; 37:27; 렘 7:23; 11:4; 계 21:7)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의 아름다운 관계, 교제하는 관계를 언약이라고 부른다.
2. 공예배의 중요성
언약백성인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불변하는 기관으로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7) 언약백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즉 예배할 때에 교회가 이 지상에 우뚝 선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배하면서 계속해서 생겨난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예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는 예배하면서 자신을 표현한다.8) 교회는 예배하면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건물이나 교인의 삶이 교회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예배가 교회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신자들이 모이는 어떤 모임이든지 예배라는 용어를 갖다 붙인다. 그런데 공예배는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예배이면 그 어떤 것도 예배가 아닌 것이 되어지니 말이다. 위에서 언약에 대해 언급했거니와 기독교회의 예배는 철저하게 언약적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내려주시는 하행선이 있고, 회중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상행선이 있다. 하행선이 먼저이다. 그리고 상행선이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철저하게 상행선이 우선적이다. 신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니 말이다. 교회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이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만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이것이 예배이다.
공예배는 말 그대로 공적인 것이기에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신자들의 특정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과외(?)활동을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가 하는 예배가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예배를 성경적으로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도 ‘언약’이다.9) 언약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예배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오전과 오후예배를 공예배라고 특정한다. 회중이 모이기만 하면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직분자들이 활동해야 한다. 직분자들의 활동이 없이는 예배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신다. 그것이 바로 목사, 장로, 집사이다. 예배는 모든 직분자들이 총동원되어서 하나님과 회중을 섬긴다. 특히 목사가 다른 직분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은혜의 방편을 시행하는 자리가 예배이다. 우리는 모든 직분이 일차적으로 예배를 위해 부름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공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내려주신다.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교회는 예배 하나만 잘 해도 된다.
3. 교회의 회원임을 보여주는 세례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이며, 신자의 가정은 ‘언약가정’이요, 언약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언약의 자녀’이다. 우리는 언약이 선택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10) 언약의 자녀는 선택받은 자녀이기에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총리까지 지냈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주장대로 언약의 자녀는 중생받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듯이 우리는 언약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고, 에서도 할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약속의 자녀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해서 사색해야 하는 선택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맺으시는 언약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바로 이렇게 언약의 자녀로 대해야 한다.
언약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언약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회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세례’이다. 유럽의 개혁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베풀 때 부모가 서약하는 것이 있는데 첫째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아이들이, 비록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여서 모든 비참함을 겪고 심지어 영원한 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으며, 따라서 교회의 회원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십니까?”11) 이 서약에서 언약의 자녀들의 세 가지 상태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도 다른 불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여서 모든 비참함이며 영원한 심판까지 받을 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언약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다. 그리고 교회의 회원이기에 세례를 받는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유아세례 받게 하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기 아이가 천사와 같다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나중에 자라서 자기 입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비로소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입교를 해야 비로소 교회교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그 언약의 중보자가 바로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언약자녀의 신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이 성인들과 똑같이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받아 선다는 사실 말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갱신할 때에 유아들이 하나님 앞에 함께 서 있었다(신 29:10-13). 그렇다면 시내산에서 ‘내 백성을 모으라’(신 4:10)고 하셨을 때에도 유아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체결하실 때, 그리고 언약을 갱신하실 때 유아들도 함께 그 자리에 참여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난 지 8일만에 행하라고 하셨으니 유아들도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유아세례 받은 아이는 공동의회 회원이 되어 선거권을 가지지 못하고, 성찬에 참여하지도 못한다. 어떤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아이성찬’paedocommunion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절반만 교회회원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완전한 회원이다.12) 그들은 다른 회원들처럼 나눌 것이 있다.
Ⅲ. 어린이의 예배체험
1. 구약시대의 체험
구약시대에 예배는 아주 구체적인 표현을 가지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섬기는 일을 예배라고 부를 수 있었지만 사실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한꺼번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예배였다. ‘여호와 앞에 섰더라’는 표현이 바로 예배 장면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대상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여기에는 어린이도 포함된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어린이가 예배에 참여한 수많은 경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비로소 공예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후에 어린이들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것들만 몇 가지 들어 보자. 약속의 땅에서 정복전쟁 하던 와중에 있었던 일이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서의 실패와 승리 이후에 이스라엘을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양쪽에 절반씩 세우고는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을 말씀들을 낭독했다. 이때 아이들도 서서 그 말씀을 들었다(수 8:30-35). 유다 왕 여호사밧 때의 일이다. 그는 개혁을 일으키지만 북 왕조 이스라엘의 아합과 연합하는 잘못을 범한다. 아람이 쳐들어오자 왕은 모든 백성들과 함께 성전 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도와 달라고 말이다. 이때 어린이들도 함께 서 있었다(대하 20:1-13). 이제 바벨론 포로귀환 후의 일이다. 이스라엘로 귀환한 학사 에스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읽어준다.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후에 귀환한 이들이 에스라에게 율법을 들려달라고 요청하여 일어난 일이다. 에스라는 남녀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그 율법을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율법을 읽었다(느 8:1-5). 이렇게 구약시대에는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대동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섰다. 그 어린이들이 알아듣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배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린이의 예배체험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기 자녀를 언약의 자녀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생생하게 돌아보는 절기들이 있었기에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 개별 가정만이 아니라 온 성이 함께 기뻐하는 절기였다. 더 나아가 성인 남자는 이 중요한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됨을 누렸다.13) 이렇듯 구약제사와 절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나그네와 외국인들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절기였다. 예들 들어, 유월절이 되면 어린 양을 잡아서 먹는데 아이가 부모에게 왜 이 양을 잡느냐고 물으면 부모는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을 말해준다. 가정이, 부모가 공예배를 위한 기초가 되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2. 신약시대의 체험
신약시대도 어린이들이 예배를 체험했다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했을 때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는 약속이 자녀에게도 주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였다(행 2:37-42). 세례가 기본적으로 예배체험이었으며, 이 세례체험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고대교회 예배는 1부 말씀예전과 2부 성찬예전으로 나누어졌는데, 어린이들이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말씀예전에서 어린이드이 복음서 낭독을 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14) 재미있는 것이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목소리와 달리 낭낭하고 순수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순수한 복음을 낭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고대 교인들은 어린이들이 시편송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그 결과 어린이 성가대가 생겨났다.15)
중세교회로 접어들면서 예배는 어른들에게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원죄에 대한 강조로 인해 어린이들은 죄인으로 취급받아서 예배에서 밀려나 버렸다. 중세에도 유아세례를 베풀었지만 세례가 세례받기 이전의 모든 죄를 씻는 성례로 인식되면서 세례 이후에 짓는 죄가 문제되기에 세례를 미루는 경향이 생겼다. 예배에서 어린이들의 위치는 점점 더 소외되기에 이른다.16) 종교개혁시기에 개혁자들이 믿음을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언약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지기 전에는 어린이들의 예배참여가 부분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재세례파가 등장하여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다시금 어린이들을 예배에서 밀어내어 버리는 자리에 이르렀다.
3. 주일학교의 체험
오늘날 소위 말하는 주일학교에서 하는 어린이 예배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져가던 상황에서 아이들조차도 노동에 내몰리는데, 그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가 심했다.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공장과 광산에서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이에 쉬는 날인 주일에 그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해 주일학교가 시작된 것이다.17) 그리고 그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기초적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돌봄과 교육은 주일오전예배가 마친 후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시행되었기 때문에 예배적인 요소를 띌 수밖에 없었다.18)
주일학교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사회 봉사적이고 기초 교육적인 특징이 희박해졌다.19) 교회와 국가의 역할이 엄격하게 분리되었기에 주일학교는 우선 교리문답교육에 집중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이 경험한 주일학교 교육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선교지적인 상황에서 주일학교를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어린이들을 깨우치는 교육이며 전도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 주일학교는 어린이들의 교리문답 교육보다는 간단한 예배와 교사들에 의한 분반공부로 방향을 잡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Ⅳ. 어린이 예배의 실제20)
1. 별도의 어린이 예배를 할 경우
언약에 근거하여 신자의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예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한국교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교지적인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별도의 어린이 예배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학생이 되면 공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조차 기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고, 중고등부예배가 따로 있으니 말이다. “영아부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를 제외한 주일학교의 별도 예배는 허용되지 않으며, 중학생 이상은 반드시 일반 공예배에 참석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21) 심지어, 주일에 1부, 2부, 3부 등 예배를 여러 번 하는 교회들의 경우 마지막 예배는 주일공예배를 빙자하여 청년부예배를 한다.
현실적으로 어린이 예배를 따로 하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예배를 굳이 예배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그 예배의 책임은 주일학교와 그 기관담당 교역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규정을 보라. “한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초등 예배 및 청소년 예배(학생신앙운동 SFC/Studend for christ)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당회의 지도하에 인도하여야 한다.”22) 개 교회 예배에 대한 문제는 신령한 일에 관한 것이기에 당회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당회는 주일학교의 별도 예배를 지도해야 한다. 당회는 어린이 예배의 모든 부분을 기획해야 하고, 그 예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독해야 한다. 당회의 제일 중요한 일이 바로 예배를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회는 당회원 중 한 명이 돌아가면서 주일학교의 별도의 예배에 참석하여 그 예배를 지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목사가 그 예배를 인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담임목사가 한 번씩 가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좋겠다.
별도의 어린이 예배를 한다고 할 때에 교사는 부모와 함께 언약의 자녀를 양육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즉, 교사가 언약의 자녀를 양육하는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렇다면 주일학교와 교사는 부모를 위하여 비켜 서 주어야 한다. 주일학교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주일학교는 부모를 어떻게 자녀교육에 동참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시간 이상으로 부모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도 당회의 지도를 받아서 해야 할 일이다.
어린이 예배는 어린이들의 형편에 맞게 모든 것을 기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성경공부나 가르침, 설교가 도덕적인 교훈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23) 교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들은 목사가 아니지만 어쨌든 가르치는 사명을 받았기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주일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공과)가 성경인물들을 본받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을 만드는 것이기에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일학교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해야 할까?
2. 통합예배를 할 경우
모든 세대가 다 함께 예배를 할 경우에는 이것 저것 고려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세대별로 잘게 나누어서 예배를 하고 있는 경우에 세대통합예배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세대별 맞춤식 예배를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니 세대통합예배를 하면 각각의 세대가 다른 세대를 너무나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인도하는 목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어느 세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른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도 없고 말이다.
통합예배를 하더라도 방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아이들이 예배 전체에 다 참여할 수 있다. 이때 제일 힘든 것은 무엇보다 설교일 것이다. 그래서 통합예배를 하더라도 설교 전까지 같이 있다가 설교시간에 어린이들이 나가서 옆 공간에서 성경이야기를 듣는다든지, 몇몇 활동을 하다가 설교가 끝나는 시간에 들어와서 예배를 함께 마치는 방식이 있다. 이때에 목사는 그 예배에서 할 설교본문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그 말씀을 간단하게 해설한 후에 내어 보낸다. 어린이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설교할 성경본문을 봉독하는 것을 들었고, 그 설교본문을 가지고 간단하게 해설하는 것을 들었기에 동일한 말씀을 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가족예배’를 기획할 수도 있다.24) 주일에 여러 번의 예배로 나누어 하는 경우에 한 번의 예배를 가족을 중심한 예배를 할 수 있다. 매 주일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힘들기에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분기당 한 번씩 할 수도 있다. 매주일 함께 예배하기가 힘들다면 이렇게 가족예배를 기획하는 것이 언약가정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세대통합예배를 할 경우에 문제는 너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예배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온 이들이나, 교회회원이 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 이들도 어린이들이 자신들과 함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 심히 당혹해 한다.25) 이렇듯 부모가 자녀와 함께 예배하는 것이 싶지 않다는 것을 안 한 교사가 아래와 같은 안내문을 만들어서 돌렸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지만 예배순서해설로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실어 본다. 교인의 입장에서 주일오전예배순서를 잘 해설했기에 말이다.
아이들과 처음 예배드리는 분들을 위한 안내서
온생명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온생명교회는 갓난 아이로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같은 시간, 한 공간에서 함께 예배드립니다. 처음 아이를 데리고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을 위해 아이들을 위한 예배 순서 소개 및 아이와 함께 예배드리는 요령을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1. 하나님을부름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편 124:8)를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면 따라 말합니다. 2. 하나님의인사 (자리에서 일어서서) 성경말씀으로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복의 인사를 전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장 7절) 3. 신앙고백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도신경”은 성경책 앞 표지 안을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두 가지 중 새번역이라고 쓰여진 것을 아이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보여 주세요. 4. 경배찬송 (자리에서 일어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찬송을 합니다. 아이들이 순서지에 나온 숫자대로 찬송가에서 악보를 찾도록 도와주세요. 찾으신 후엔 가사를 따라 부르도록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불러주세요.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입니다. 5. 십계명 성경책 뒷 표지 안을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소리내어 읽어보세요(어떤 경우에는 십계명을 교독하기도 합니다). 십계명은 ‘언약의 열가지 말씀들’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말씀의 요약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들을 지킬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6. 죄고백 십계명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기도를 하는 시간입니다. 7. 사죄선언 목사님께서 우리 죄가 예수님으로 인해 깨끗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브리서 7:24,25). 8. 감사찬송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찬송을 합니다. 아이들이 순서지에 나온 숫자대로 찬송가나 시편찬송가에서 악보를 찾도록 도와주시고 가사를 따라 부르도록 손가락~☞ 9. 기 도 교회의 직분을 맡으신 분들이 교회를 대표하여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으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로 구할 수 있음을 아이에게 알려주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10. 성경봉독 (자리에서 일어서서) 교인들이 정해진 순서를 따라 오늘 목사님이 설교할 성경구절을 읽습니다. 성경책 옆을 보시며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순서지에 나온 글씨와 같은 것을 찾아보게 해 주세요. 성경을 읽을 때에 자녀들이 잘 따라가도록 손가락~☞ 11. 설 교 목사님께서 오늘 성경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주시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알려주시고, 중간에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하면 간단한 간식(사탕, 초콜릿)을 주시거나, 잠시 물을 마시고 올 수 있게 지도해 주세요. 12. 응답찬송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감사하며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찬송가에서 악보를 찾도록 도와주시고 가사를 따라 부르도록 손가락~☞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세상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13. 헌 금 준비해 오신 물질이 있으면 미리 준비된 봉투에 넣어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아이도 마음이 있다면 헌금을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14. 성도의교제 순서지 뒷면을 보시면, 교회 소식이 나와 있습니다. 교회에 관련된 광고 및 교인분들에 대한 소식 등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15. 마침찬송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이들이 시편찬송가에서 시편찬송 1장을 찾도록 해 주세요. 어떤 경우에는 다른 시편(시편 23편)을 부르기도 합니다. 찾으신 후엔 가사를 따라 부르도록 손가락~☞ 16. 강복선언 (자리에서 일어서서)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복을 선포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눈을 뜨고 목사님의 들려진 손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감사하세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수기 6:25-26). 온생명교회 교인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아이와 함께 복된 예배를 드려보세요.^^ |
Ⅴ. 예배를 위한 교회와 부모의 협력
1. 교회의 협력
예배에 대한 문제는 당회의 소관사항이지만 온 교회가 함께 이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당회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있으면 안된다. 당회가 세대통합예배를 원하다고 하더라도 교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예배가 너무나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하면 당장 여러 가지 불평 불만들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어린이들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세대통합예배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하게(?) 예배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어린이들로 인해 예배가 조금 시끄러워지더라도 언약의 자녀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예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부모를 포함하여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을 기뻐해야 하겠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어린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예배팀의 역할도 중요하다. 예배의 순서들에 어린이들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26)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 말씀: ‘성경봉독’을 회중이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데, 이 순서에 어린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
- 기도: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예배 중 기도에 동참시킬 수 있는 방식은 ‘기도문’을 활용하는 것이다. ‘죄고백의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 찬송: 고대교회처럼 어린이들이 찬양대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고, ‘교송’(交誦, antiphon)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헌금: 헌금은 집사의 사역인데, 어린이들을 헌금당번으로 정하여 같이 헌금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할 수 있겠다.
순서에 대한 이런 배려만이 아니라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아이들을 환대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뿌듯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예배 잘 했다고 칭찬도 해 주고 말이다. 비단 예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혁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교회 자녀들에게 요리문답을 가르쳐서 공적신앙고백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리문답반을 구성하여 주중에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담임목사는 모든 교인들의 목사이기에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27)
2. 부모의 협력
많은 부모들은 주일에 자신이 예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녀를 주일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심지어 자신이 소속한 교회의 주일학교가 잘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이 잘 준비되지 않아서 자기 자녀를 잘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것이다. 주일학교가 잘 되는 교회들을 거명하면서 그런 교회 가서 배워 오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한다. 주일학교에 자기 자녀를 맡겨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는 유아세례식에서 서약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유아세례 예식문의 마지막 세 번째 서약을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28)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책임, 본이 되어야 할 책임, 그리고 기도해야 할 책임을 말하고 있다. 이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같이 예배하는 것이다.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Ⅵ. 결론과 과제
사실, 개혁교회에서는 어린이 예배라는 것이 없다. 어린이 예배를 따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위한 성경공부 프로그램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예배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배는 하나이다.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예배를 따로 해야 한다면 당회가 어린이 예배를 주관해야 할 것이다. 목사후보생 등이 예배사회자가 되어서 설교(?)를 한다고 하더라도29) 예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 당회가 주관하는 것이 합당하다. 특정한 세대의 이름을 딴 예배가 하나님의 언약의 회중을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분열시키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우리는 언약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약가정에서 태어난 언약의 자녀는 세례를 통해 교회회원이 된다. 신자들은 유아세례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세례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언약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즉,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아이가 믿음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활동과 공로를 내세우고자 하는 어른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 그 약속이 믿음보다 우선한다는 것, 즉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30) 구약시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예식을 종종 했듯이 예배는 지금도 계속되는 언약갱신예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언약갱신예식에는 어린이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31)
그동안 한국교회는 세대별로 잘게 나누어서 예배하고 교육한 것 때문에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는 그것이 도리어 한국교회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32) 부모는 언약의 자녀를 자신과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의 회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고, 교회는 언약의 자녀와 함께 예배하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자녀교육의 핵심은 언약의 신앙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언약신앙이 보존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한 주의 자녀를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방편이 된다. 교회의 사명은 주님이 맡겨주신 말씀을 마지막 날까지 변질시키지 않고 순전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주의 택한 백성을 남김없이 불러 모으는 길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언약의 자녀들을 어떻게 예배에 동참시킬 것인가를 논했지만 사실 주일학교의 ‘전도적 사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와 교회는 언약의 자녀들을 돌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아이들을 전도해서 그들에게도 말씀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 주일학교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별도의 어린이 예배가 필요하다면 이런 전도의 목적도 분명히 있고 말이다. 불신 어른들의 경우 그들을 공예배에 참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불신 아이들의 경우는 공예배에 참석시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것이 모순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불신자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기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예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하는 인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 세대가 다함께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과 기쁨으로 교제할 때에 세상은 자신들의 죄됨과 자신들이 예배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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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2). 26.
16) 세례 이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고해성사’이다.
17) 크리스티안 그레트라인. 『교회의 아이들』. 181.
22) 위의 책. 고신교회의 헌법 예배지침(제35조, 주일학교의 예배)에 이것 역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31) 안재경. 『종교개혁과 예배』. (서울: SFC출판부, 2016). 20-23. 예배는 지금도 계속되는 언약갱신예식이다. 그 언약갱신예식에는 아이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섰다.
32) Rich Melheim and Friends, Let's Kill Sunday School: before it kills the church. (MN: Faith Ink, 2014). 이 책 제목은 주일학교가 교회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과장하듯이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언약에 근거하여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와 견해를 같이 하는 이들이 아래와 같은 자료를 제공한다. http://homegrownfaith.net/wp-content/uploads/2013/10/CROSS-GEN-Resources-3.15.pdf
주일학교가 교회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일의 공예배가 경직되어 있기에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https://faithgeeks.wordpress.com/2016/06/29/lets-stop-blaming-sunday-school-for-killing-the-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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