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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Reformed Theology and the Public Role of Christians)

 

 

Roel Kuiper 박사

(캄펀 신학대학교 총장, 네덜란드 국회의원)

 

 

서론: 도전적 전망

 

   지난 세기에 한국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가 계속 새로 설립되고 있으며 어디에나 엄청난 수의 기독교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기독교는 터전을 확실히 잡았고, 전도 활동은 큰 성과가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2차 대전 동안 일본의 지배에 저항하도록 하였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인해 많은 희생도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개혁교회와 개혁신학에 봉사하기 위하여 설립된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기뻐하고 두 기관 사이의 협력에 대해서 즐거워하면서 미래에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지금 말할 주제는 사회 속에서 감당해야 할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입니다. 개혁신학은 교회 안에서의 삶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삶도 다룹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사적인 존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아시아의 젊은 기독교인들은 (예를 들면 중국) 유럽을 바라보면서 유럽 국가들이 상당히 기독교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변화가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물론 서구의 급속한 세속화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지만, 이와 동시에 서구 문화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에 의해서 깊은 영향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기독교적인 흔적들은 여전히 곳곳에 존재합니다. 이것들은 건축물이나 기독교적 상징, 절기, 공적인 법뿐만 아니라 공적인 정서, 기독교 학교, 병원, 책임 있는 시민의식에서도 존재합니다. 교회와 국가는 이 부분들에 있어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 와 같은 이유 때문에 어떤 이는 서국 국가들을 “세례 받은 국가들”이라고 부른 적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화가 앞으로 미래가 열려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특징이 될 수도 있을까요?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도 하나의 도전적인 전망은 되지 않을까요? 이 전망이 국가와 민족의 삶을 다룰 수 있을까요? 개혁파 공공신학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몇몇 사람들이 제에게 오늘 이런 질문들을 다루면 좋겠다고 제언을 하였고, 저는 이제 그것을 다루려고 합니다.  나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위한 소명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개혁신학이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성경적 믿음은 우리가 이웃의 시민들과 함께 우리의 국가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기업 윤리, 정치적 결정, 과학과 교육에도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치세계가 더럽고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계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지상의 위정자들을 자신의 “종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우리의 시민적 의무와 책임감을 다해야 하며 공적인 정의를 증진시키고 그 정의에 따라 법을 실행해야 합니다.

   저는 개혁파 신학자이고 최고의 지성인이자 당대에 기독교 정치 지도자 중에 한 명으로 네덜란드에서 개혁파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정치적이고 공적인 역할을 감당하도록 했던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의 공헌을 요약함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카이퍼와 아시아

 

   1898년 가을, 아브라함 카이퍼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칼빈주의라는 주제로 일련의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때 어렸던 한국 장로교회는 15살에 지나지 않았고1) 선교 초기 단계에 있었으며 미래가 아직 불투명할 때였습니다. 비록 카이퍼는 아시아의 기독교에 대해서 몇몇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관심은 그 당시 이 지역에서 확산되고 성장하는 이슬람과 이방 종교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문명의 충돌을 미리 보았습니다. 그 당시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처럼 카이퍼는 아시아로부터 다가오는 어떤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의 강연 시리즈를 마치기 바로 직전, 마지막 강연에서 카이퍼는 세계의 문제는 아시아에서 최종적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그는 아시아 세계는 기독교 신앙과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예상한 것은 서구 기독교와 나머지 이방인의 충돌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이 지역에서 새로운 잠재적 패권국가로 등장하자 카이퍼는 아시아에서 심지어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하였습니다. 이 우려는 아시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에너지와 기술에 대한 찬사의 표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에 [왕을 위하여](Pro Rege)라는 세 권으로 된 저서에서 카이퍼는 지난 세기에 유럽인들의 선교가 보다 효과적이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슬람과 불교가 아시아에서 기독교 신앙이 침투하는 것을 좌절시키고 막아낼 정도로 성장하였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기독교가 더 뿌리를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그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하여 살아가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겼을 것이라고 그는 답했습니다. 개신교 사상의 영향력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삶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이 모든 것들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우리는 파괴적인 세계전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전쟁은 “최후의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하였지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무신론적 정치 이데올로기였던 공산주의는 자유 세계에 치명적인 원수라는 것이 드러났고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패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치적 영향력과 교조들은 다른 곳에서는 붕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과 인도와 같이 급성장하는 신흥 세력들이 존재합니다.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이 거대한 국가들의 점증하는 정치/경제적 개방은 기독교 신앙의 확산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개종자들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같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달되었고, 선교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변화시키는 능력

 

   내부로부터 아시아의 일부 국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명의 충돌은 국가 내에서 문화적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은 선구자였습니다. 19세 말에 기독교는 한국에서 환영받았고, 급격하게 성장하였으며, 근대 아시아 세계에 그 영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사회적 삶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독교는 자유와 민주적 변화를 가져왔고, 가정생활과 교육과 일터와 사회적 윤리에 대하여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들이고, 아마도 이것은 이 자유와 정신이 요구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세계사의 흐름을 예견함에 있어서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역사에 예견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는 옳았습니다. 그가 언급했던 기독교 세계관은 사회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카이퍼가 논증하듯이, 특별히 칼빈주의 세계관은 자유로운 사회가 출현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한 분파였던 칼빈주의가 교회의 자유와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 않았던가요? 카이퍼는 미국의 강연 여행에서 이 세계관이 가진 변혁의 힘을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유를 향한 노력이 이 변혁의 힘에 중심에 서 있으며 이 노력은 개혁신학과 사상이 이와 같은 자유를 물질화시키는 정치/사회적 삶에 대한 원리들을 제공한다는 사실에도 적용됩니다. 이와 같은 자유를 실천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공공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유기체로 존재합니다.

   개혁파의 핵심 개념들과 사상들은 모든 인간의 상황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공신학”을 개혁신학의 자연스러운 한 가지(branch)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도 약속을 한다고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나는 정치적이고 공적인 참여에 대해서 개혁파적 개념과 사상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그 다음에, 나는 거의 모든 문화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세계적인 트렌드의 몇 개를 둘러보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개인화, 공동체와 사회의 세계화의 결과들, 서로를 향한 돌봄, 취약자들, 동정과 책임감에 대한 도덕적 질서에 대한 조건들, 그리고 자유의 정치 질서는 우리 세계에서 제기되는 이슈들입니다. 불안한 세계 속에서 질서와 틀을 제공하고 발전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개혁주의 세계관이 지닌 잠재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서  강의의 마지막에서 저는 아시아의 상황에 대하여 이와 같은 생각들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개혁적 정치사상과 공공신학의 핵심개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칼빈주의의 중심 특징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고 왕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지혜의 시작이고 따라서 정치적 지혜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정치적/사회적 삶의 개념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지니고 있는 3가지 중요한 결과를 지적하려고 합니다.

   어떤 권력도 절대적일 수 없고, 그것은 정의라는 보다 큰 개념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에서 서로 섬기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서로 다른 사회적/도덕적 실천들은 적절한 권위와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첫째, 하나님이 참되시고 유일한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어떤 권력도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의 주권은 상대적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통치만이 최고이며, 지상에는 어떠한 절대 권력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뜻을 통하여 설립된 피조물이나 권력으로서 하나님과 관계합니다. 어떤 권력이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나 하나님 사이에 간섭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정해진 분수를 뛰어넘게 됩니다. 어떤 권력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자신의 권한만으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모든 권력은 본성적으로 제한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값없는 은혜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 존재하는 거리는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존경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하는 이 내적인 자유야말로 양심의 자유의 기초입니다. 이 자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민주적인 공적 생활을 위한 “헌법적” 자유라고 여기는 모든 다른 자유의 “어머니”입니다. 인간은 양심과, 신앙과 사상에 있어서 자유로우며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하여 강요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력은 제한되어야 하고 통제되어야 합니다. 어떤 권력의 실행도 제한된 영역 안에 있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권력을 “상쇄시키는 (다른) 권력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필수적입니다. 시민들과 정부들은 모두 실패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으며 교만에 빠져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 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상쇄시키는 권력분만 아니라 지켜져야만 하는 올바른 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권위들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주권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결국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말씀과 뜻 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뜻과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르고 투명한 모든 권력에 대하여 칼빈주의가 그리는 그림입니다.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법의 규범(rule of law)”의 기초입니다. 모든 권력은 그것들이 복종해야 하는 더 큰 정의에 순종해야 합니다. 정의는 각자의 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조작될 수 없으며 최고의 가치이고 거룩합니다. 이것들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이 중심을 차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함께 일하는 봉사자로 정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직업과 소명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모두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노력하는 종입니다. 지위와 위계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그분의 법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동등합니다. 이 기본적인 개념은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결과들을 야기합니다. 그것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세우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사회는 왕이나 권력자의 손에 있는 어떤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회는 레스 퍼블리카2)(공동의 기업)이고 백성은 공동생활자 혹은 공동노동자들입니다. 몸과 몸의 지체의 개념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철학자들이 사회를 계약으로 보았을 때,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를 언약으로 보려고 하였습니다. 1603년에 칼빈주의 학자였던 존 알튀시우스가 표현하였듯이, 언약 백성들은 서로를 공동의 삶을 함께 하는 파트너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홉스가 "레비아단"에서 명시하였듯이 영국 계약사상가들은 인간을 서로를 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계약과 강한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 계약을 통하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합니다. 하지만 알튀시우스는 다른 그림을 제공하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섬김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치 없다고 보아서는 안 되고, 우리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해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Politica, 22-23). 이와 같은 개념들은 이타주의와 아가페에 기초한 “시민적 사회”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의 가장 강력한 지주를 제공합니다. 진정한 시민적 사회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에 기초하며,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공적인 권력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 시민사회의 유형은 약한 자들을 돌보고 언약적 관점에서 사회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의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셋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회적 책임과 사회에 기여하는 서로 다른 공헌들의 가치를 분별하도록 도와줍니다. 비록 사회는 공동의 기업이지만 서로 다른 책임들로 엮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와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적절하고 규범적이고 진정성을 가집니다.  즉, 그것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 걸맞는 규범적 행동을 요구합니다. 사회에서 권위는 여러 가지로 구분됩니다: 부모의 권위, 교회 지도자의 권위, 학교 이사회의 권위, 사역자들의 권위, 시의회의 권위, 등등. 이 권위는 공동의 책임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영역 주권”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서로 다른 권위들은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한계를 가집니다. 따라서 사회에서 하나의 권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위가 존재하며 그것들은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모든 권위는 (그것이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이든 학교이든) 서로에게 어떤 독립성을 가집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에게 권위를 주는 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시장에서 결정권을 교회나 대학이 행사할 수 없습니다. 최종 결론은, 모든 권세가 자신의 주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풍성한 사회적/연합적 삶에 많은 여유를 제공합니다. “영역주권”의 개념은 기독교 학교와 교회의 자유와, 교회나 국가에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하여 고안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개인적/사회적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핵심 개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영역주권의 개념은 책임의 실천을 확립하고 이 실천들과 연결된 규범적 원리들을 드러냅니다. 책임있는 교육가, 교사, 목사, 간호사, 기업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이와 같은 실천들에 속한 규범적 원리에 대응하는 가운데서 가르쳐져야 합니다. 기업가는 경제를 다루어야 하지만 윤리적이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원리들도 다루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기업가를 만드는 것은 모든 규범적 원리들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입니다. 영역들은 책임있는 인간의 행동들을 요청하는 실천들을 확립하는 구조적 환경입니다. 그것들은 우리들이 분화된 사회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책임들을 보게 하고 실천에 상응하는 규범적 원리들에 일치하도록 그것들을 격려합니다. 

 

 

변하는 세계, 변하지 않는 헌신

 

   이 세 가지 중심 개념들(모든 권력은 상대적임, 공동 기업으로서의 사회, 그리고 영역주권)은 내가 믿기에 개혁파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것들의 영향은 적어도 북서부 유럽과 북미 개신교 국가에서 강력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은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법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통치의 중요성과 같은 헌법적 원리들

- 공동 기업으로서의 시민 사회의 개념을 둘러 싼 사회적 응집

- 규범적 행동을 필요로 하는 분화된 사회 속에서 구분된 책임들 사이의 간격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도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외부와 내부에서 여러 비평적 평가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정부로부터 너무 많은 책임있는 행동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기독교인들이 이 모든 원리들을 진심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카이퍼가 인정한 것처럼 너무 자발적인 선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이것들은 그 “신 뒤르껭(neo-Durkheim3))”적 야심, 즉, 차알스 테일러(Charles Taylor) 식으로 설명하자면, 모든 사회적 구조 속에서 너무 높은 기독교 윤리의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는 아닌가? 저는 이 시간에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른 여러 환경들, 지구화의 위력을 지적하기를 원하는데 이것들은 제가 기술한 큰 개념들의 기능에 대하여 어떤 도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혁신학과 사상의 중심적인 정치개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지구화가 진행되는 세계 속에서 이런 개념들이 보다 더 깊은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에 저는, 권위, 사회성, 책임, 지구화, 개인주의화에 대한 전체 그림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 강력한 변화를 다루려고 합니다.

   첫째, 지구화는 새로운 종류의 유토피아주의를 제공하고 세계적으로 권위의 기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이 설명했듯이 “평평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공간은 더 이상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지구화는 통신기술에 의존하고 사업에 기회를 주고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퇴출시키고,  동일한 행동 규칙과 모든 문화에 있어서 국제적인 표준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지구화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독재적인 경제관을 가지는 권력들을 출현시키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적인 권력 기구들은 다민족성, 은행, 전체 경제 중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정치권력들에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지구화시키는 권력들을 결합시킬 수도 있고(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그들과 경쟁할 수도 있고(중국이 하듯이), 그것들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쿠바나 북한처럼).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지구화는 지역적/문화적 환경들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정의를 요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법적인 표준들을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법의 규범을 유지하는 정부가 필요하고, 정의의 표준들을 계속 유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정한 권력 기구들로 이루어지는 지구화 속에서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에 권력들이 제멋대로 하고 국가를 뛰어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것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통제하고 지도하는 이런 힘들은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곳에서만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다 “언약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필요들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직면하면서 우리의 삶을 삽니다. 심지어 지구화라는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작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과제입니다. 개혁사상은 결코 유토피아적 꿈을 따라가지 않았고, 일상적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책임있는 행동은 이런 환경들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정의를 행함으로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필요들을 이야기하고, 정치/사회적 책임들을 서로 긴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다루고자하는 두 번째 도전은 개인화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하게 창조된 모든 인간에 대해 성경이 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참 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독립적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주의가 해체시키는 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서구에서 사람들은 자기 성취의 유토피아적인 꿈을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공동체나 사회적 책임에 매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해체의 결과들을 보고 있습니다. 자율적 개인이라는 사상은 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율의 “뽑아버리는”(안토니 기든이 말했듯이) 효과는 사회적이고 도덕적 자본(즉 서로 돕는 능력과 사회성과 준비성)에 대해서 토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부터 시작하여 온갖 종류의 공동체를 항상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세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모든 삶에서 책임있는 행동의 실천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세계 모든 곳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구화의 배타적 힘을 자신들의 삶에서 느끼는 그룹들과 함께 자기  주위에서 도심에서 자원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새로운 환경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개혁신학의 기본정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공적인 역할을 지원하도록 사려 깊은 적용을 요구합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주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행동의 영역으로 인도합니다. 그것들은 진정한 시민사회에서 정의와 자비의 신앙과 표준으로 지키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들을 요청합니다.

   따라서, 제가 이해하기에 개혁신학은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의 공적인 역할을 지원하고 장려합니다. 물론 교회도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학교의 개교기념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교회를 섬기도록 학생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킵니다. 교회는 공적인 삶에 있어서 세 가지 역할을 합니다. 교회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타락한 세계를 향해 설교하고, 설교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정부와 권세에게 외칩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들의 권위를 행사해야 한다고 상기시킵니다. 둘째, 교회는 교회의 회원이 아닌 자들에게 전도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낙심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돌아보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선포하였습니다(디도서 2:11).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지상에 있는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사역을 확장시킴으로 이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는 교회의 회원들이 공적인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설교와 모든 종류의 교육과 실천 속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 공적인 역할에 대한 비전을 발전시키도록 합시다. 평화를 가져 오는 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 됩시다. 이런 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본보기와 모범들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직장에서, 정치에서, 사회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수종드는 일에서 우리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마태복음 25장을 통해 압니다.

 

   저는 이 강의가 이 학교에도 축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타락한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라는 큰 비전이 여러분과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적인 삶과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할 때, 이것은 모든 나라에서 내부로부터 변혁시키는 힘이 될 것입니다. 다수가 아니라 가장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습니다. 복음을 마음 속에 두어 확신을 가진 자들은 또한 가장 평화로운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내부로부터 평화로운 변화

 

   [문명의 충돌(1996)]이라는 유명한 책을 사무엘 헌팅턴이 출판했을 때, 그는 세상에서 미래의 충돌은 문명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충돌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일어납니다. 냉전은 끝났다고 그는 선언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문화를 서로 상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히 동방의 이슬람과 중국 문화와 서방의 문화의 충돌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동남 아시아는 이 그림에 맞지 않습니다. 첫째, 동남 아시아는 여러 문화들이 함께 녹아 있는 용기와 같습니다. 불교, 유교, 이슬람, 기독교가 나란히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충돌은 문화들 사이가 아니라 문화들 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아시아 세계에 보다 많이 침투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이 평화를 가져올까요, 아니면 전쟁을 가져올까요? 카이퍼나 헌팅턴이 우려했듯이 서방과 동방의 충돌을 일으킬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개혁파의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사상들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장 핵심적 요소에서 시작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분과 관계를 가진다는 확고한 믿음에 뿌리박은 양심에 대한 존중. 양심의 자유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행해져야만 하는 모든 일에 대한 기초가 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그들 자신의 믿음에 따라 삶을 살아가도록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제스처입니다. 그와 같은 제공은 아마도 집단적이 행동과 거의 절대 권력에 익숙한 문화에서는 새롭고 이상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위하여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인간과 사회와 권위와 책임에 대한 개혁주의 사상들은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기 위해 고안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사상들은 문명 내에서 평화적으로 변혁을 일으키는 힘을 형성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복음에 따라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 복음이 아시아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고 내부로부터 나라들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영역주권에 대한 참고문헌 (Literatuur over Soevereiniteit in eigen kring)

 

        Jonathan Chaplin, Herman Dooyeweerd. Christian Philosopher of State and Civil Society (Indiana: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11)

        Peter Heslam, Creating a Christian Worldview. Abraham Kuyper’s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Eerdmans, 1998)

        Roel Kuiper, Moreel kapitaal. De  verbindingskracht van de samenleving (Amsterdam: Buijten en Schipperheijn, 2009)

        Roel Kuiper, Dienstbare Politiek. Voor een verantwoordelijke samenleving en een rechtvaardige overheid (Amsterdam: Buijten en Schipperheijn, 2011)

        Richard Mouw and Sander Griffioen, Pluralisms and Horizons. An Essay in Christian Public Philosophy (Grand Rapids: Eerdmans, 1993)

        A. Rouvoet, Reformatorische Staatsvisie. De RPF en het ambt van de overheid (Nunspeet, 1992)

        H.E.S. Woldring en D. Th. Kuiper, Reformatorische maatschappijkritiek. Ontwikkelingen op het gebied van sociale filosofie en sociologie in de kring van het Nederlandse protestantisme van de 19eeeuwtotheden(Kampen: Kok, 1980)

        Albert M. Wolters, Creation Regained. A transforming view of the world (Eerdmans, 1985, Intervarsity Press, 1986)

 

 


1) 알렌이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한 해는 1884년이다.

2) republic이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음.

3) 에밀 뒤르껭: 프랑스 사람으로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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