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동방박사의 대화
송영목 교수
(고신대 신학과)
들어가면서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맞이하여 고신신학의 정체성과 특성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은 의미 있다. 아직까지 세부 전공들과 통전적 관점에서 고신신학이 무엇인지 정립된바 없다.1) 고신의 1세대 신학자인 고려신학교 설립자 박윤선 박사의 신학이 2세대와 3세대를 거쳐 지금까지 통시적으로 어떻게 전승, 발전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연구도 오늘날 고신신학의 뿌리와 앞으로의 과제를 파악하는데 유익하다. 고신교회에 소속한 이라면 충실한 개혁신학을 탐구하기를 소망하지만, 완벽한 신학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시대의 아들이며, 신학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교회에 귀한 보수개혁주의 유산을 남겨준 분들이 있다.2) 고려신학교 5회 졸업(1951) 동기생들인 홍반식(1918-1993), 이근삼(1923-2007), 오병세(1926-2016) 교수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 불린다.3) 세 박사는 고신교회의 ‘제2세대 신학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 홍반식과 오병세는 미국 유학을 마친 후 1961년에 총회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1963년에 복교된 고려신학교 교수진에 합류했고, 이근삼은 1962년에 칼빈학원 교수로 잠시 있다가 역시 복교된 고려신학교 교수진에 합류했다. 고신신학의 정초를 놓은 시발점에 박윤선 박사(1905-1988)의 기여가 있다면, 세 박사는 30여년에 걸쳐 고신신학의 기초를 견고히 만들었고 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다.
본 연구는 세 동방박사 간의 대화를 들어보고, 스승 박윤선 교수 및 제자들과도 대화를 나눈 세 박사의 신학적 경향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세 박사의 신학이 고신신학에 미친 영향과 고신신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과제도 살펴본다. 본 연구의 한계는 구약 전공자인 홍반식 교수와 오병세 교수와 교의학 전공자인 이근삼 교수를 일대일 대입식으로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러나 홍반식 교수는 교회사를, 그리고 오병세 교수는 신약학을 가르치며 본인의 전공을 넘어 타 전공까지 교수한 예가 있으므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삼 박사의 전공인 구약학과 교의학 연구가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다른 주요 관심 주제들(설교학과 신약학, 그리고 기독교 대학 설립)의 발전도 살필 것이다.
1. 박윤선 박사의 신학적 대화
박윤선 박사는 고신을 넘어 총신과 합신의 경건한 신앙 인격에 기초한 신학 훈련 및 무엇보다 성경신학의 기초를 놓았다.4) 박윤선 교수에 대해 간하배 선교사는 ‘한국 장로교 보수 신학의 가장 훌륭한 한 분’으로, 오병세 교수는 ‘생명이 약동하는 능력 있는 신학자’라고 평가했다.5) 박윤선 박사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진리를 보수하는 것을 ‘보수주의’라 정의하고, 교리들이 내포하는 핵심 요소들을 명확히 깨닫고 해석하는 것을 ‘개혁주의’라 불렀다. 그는 성경주석 학자로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 한다”는 가장 중요한 원칙하에 저자의 의도를 밝히는데 힘을 썼는데, 생활 중에 경건을 유지하고 기도하면서 주석을 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6) 박윤선 박사는 칼 바르트, 자유주의, 양식비평, 중간주의[자유주의와 정통주의의 중간적 입장], 주지주의(主知主義)를 비판하면서, 신앙고백서를 참고하여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7) 화란개혁주의 자료(특히 헤르만 리덜보스, 헤르만 바빙크, F.W. 흐로쉐이드)를 처음으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박윤선 박사는 그 당시 학적 수준이 높지 않은 대다수 목회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주석을 썼다.8)
이근삼 교수는 박윤선 박사가 소천 받은 후 추모사를 썼는데, 스승의 경건과 학문의 존경심을 표했다.9) 박윤선 박사처럼 이근삼 교수도 경건과 신학의 통합을 주장했다. 박윤선 박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1946년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와 1980년 합동신학교 설립 취지서에도 ‘경건과 학문의 통합’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舊 프린스턴신학교의 찰스 하지교수의 경건을 박윤선 박사가 계승한 결과로 보인다.10) 유해무 교수도 신학의 기본적 방법은 “구원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불러 감사하고 사귀는 기도 그리고 받은 것을 전수하는 전도다”라고 주장한다.11) 이런 경건한 신학 방법론이 신학 연구에 접목되기 위해서는 신학자 자신의 지난한 자기부인의 과정과 경건 훈련을 통과해야 함은 두 말 할 것 없다. 신대원의 M. Div 3년 과정만으로는 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경건한 목회자 양성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고려신학교가 예과 2년 그리고 본과 3년 총 5년 과정으로 시작한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12) 신학교의 설립자의 신학이 후임과 제자에 의해서 계승 발전된 경우는 많다.13)
2. 홍반식 교수의 신학적 대화
홍반식 교수는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수학 후(Th.M. 논문: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 나라』), 유대교 전통의 드랍시 대학교에서 『히브리 성경에 나타난 저주형식과 고대 셈족 문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Ph.D, 1961)를 취득했다.14) 참고로 1907년에 개교한 드랍시 대학교는 200여명의 박사를 배출한 후 1986년에 폐교되어 팬실베니아 대학교에 통합되었다.
2.1. 성경관과 성경해석
1947년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 교수의 성경관과 신학에 반대하여 제33회 장로교 총회에 호소문을 제출했는데, 학생들은 신앙은 보수적이되 신학은 자유라는 조선신학교의 이념에 반대했다. 또한 1959년 합동과 통합의 분열의 기저에 성경관의 차이가 있었는데, 통합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받아들인다고 천명하고 성경 무오를 믿지만 축자 영감은 수용하지 않고 필요시 역사비평을 수용했다.15) 이런 성경관이 초래한 논쟁들을 인지했던 홍반식 교수는 성경의 영감성을 강조하면서, 사회복음주의나 불건전한 신학 사조를 비판했다.16) 홍반식 교수는 성경 번역에 관심을 보였는데, 형식적 일치와 역동적 등가 사이의 균형 그리고 더 큰 맥락에서 한 단어의 의미 결정과 같은 중요한 번역 이슈가 대두되었다고 평가했다.17) 그리고 그는 석사논문에서 다룬 천국 개념의 연장선에서 하나님을 ‘우주의 주인이자 심판자’라고 강조하는데, 이런 강조는 오병세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와 유사하다. 따라서 세 동방박사는 서로의 신학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홍반식 교수는 다수로부터 탁월한 설교자로 인정을 받았다.18) 그는 설교자가 해석한 본문을 성경 전체의 교훈에 비추어 성도의 생활에 교훈을 주는 ‘성경본문설교’에 충실한 설교를 하는 대신, 상담자나 교회경영자가 되어 교회의 외형적 확장에 힘쓰는 그 당시 행태를 지적했다.19) 그렇다면 성경본문설교가 안 되는 이유는 (1) 설교자 자신의 사색에서 나온 제목설교, (2) 성경주해의 어려움과 현대 적용점 파악의 어려움, (3) 청중이 성경 내용을 알고 있기에 내용을 반복해서 소개하는 것을 피하려함, (4) 설교가 성경본문적이든 아니든 성경의 교훈 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본문중심설교를 위해서 “예수님의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 중심이요, 인간의 구원 중심이라는 역사적 전통적 신앙을 확실히 제시하게 될 때” 설교자는 확신과 권위를 가질 수 있다.20) 성경본문설교를 위해서 사용할 ‘방언(方言)역사학적방법’(grammatico-historical method)은 성경 본문의 그 방언이 무슨 뜻인지, 그 말씀이 전달된 그 시대의 형편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의 원방언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잘 모를 경우 번역성경과 주석을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게할더스 보스가 설명한 성경신학적 통찰이 필요하며,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드러내려는 의도를 살펴야 한다. 구속사적 메시지가 결여되면 한낱 윤리도덕의 담화로 격하된다.21) 구약본문은 신약의 복음과 연결하여 전해야 한다.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계시의 발전과 모형론적 관련성을 찾아야 한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서에 머물거나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성경의 중심사상이신 예수님에 관한 약속과 예언의 복음으로 가득하다. 구약 안에서도 약속과 성취가 있고, 신약 안에서도 약속과 성취가 있다. 본문이 청중의 가슴을 찔러주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감화력을 갖추어 하는데, 설교의 적용을 청중에게 맡길 수 없다. 설교자는 설교된 말씀이 청중의 삶에 적용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요약하면, 홍반식 교수는 구약의 문법-역사적 해석과 기독론적 성경신학적 주해를 통과한 현대적 적용을 강조하는데, 이런 주장은 전형적인 개혁파의 구원계시사적 해석원칙에 일치한다.22)
2.2. 셈족 배경 연구와 창세기 연구
홍반식 교수는 셈어 전문가답게 히브리어 교본을 출판했다.23) 그리고 그는 히브리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결혼 및 족장 시대의 생활상(예. 아내를 누이라 부름, 장자권을 형제간에 매매함 등)을 고대근동의 생활상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24) 따라서 이 연구는 구약의 역사적 배경 이해에 도움을 준다. 그는 자유주의신학과 고등비평을 비판하면서, 고고학이 성경의 역사성을 지지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보면서, 모세가 쓴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BC 4004년이나 수십 억 년 전에 있었던 것은 아니며, 노아 홍수는 전 세계에 미쳤다고 이해한다.25)
홍반식 교수는 구약의 경우 주로 창세기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했는데, 유대교 학교 드랍시대학교의 한계를 이사야서의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강조함으로써 넘어선다.26) 참고로 최근에 강화구 박사는 전형장면(type-scene) 방법으로 창세기의 족장들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소개한 사건들의 상관성을 연구했다.27) 그리고 고려신학교의 부족한 교수진을 감안할 때, 올 라운드 플레이어처럼 구약분과를 넘어 신약과 교의학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 것은 자연스럽다.28)
3. 이근삼교수의 신학적 대화
이근삼 교수는 고든대학(B.A.)과 카버넌트 신학교에서 수학 후(B.D, Th.M. 논문: Bultmann’s Kerygmatic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and Existentialism, 1957),29)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잠시 수학 후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J.H. Bavink교수의 지도로 작성된 『기독교와 신도민족주의의 대결: 메이지 유신과 2차 대전의 끝 사이[1868-1945] 일본에서의 기독교와 신도의 대결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 (The Christian Confrontation with Shinto Nationalism: A Historical & Critical Study of the Conflict of Christianity and Shinto in Japan in the Period between the Meiji Restoration and the End of World War II, 1868-1945)로 박사학위(Th.D, 1962)를 취득했다. 한상동 목사에게 헌정된 이 박사논문의 서언은 기독교재건주의자 R.J. Rushdoony가 썼으며, 빌라델피아의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총 270페이지, 1966)에서 출판되었다.30) 박윤선 교수처럼 이근삼 교수는 미국과 화란의 개혁신학을 섭렵했는데, 후자는 전자의 신학을 수용 및 발전시켰다.31)
3.1. 신도주의 비평
이근삼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에 맞추어 신사참배 거부의 몇 가지 동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유일신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과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신뢰, 진리를 변증하고 증거하여 교회와 국가에 책임을 다하는 것, 순교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께 영광.32) 그는 고려신학을 중심으로 개혁신학의 발전을 다룬다고 밝힌 논문에서, 고신신학교 설립 배경과 신사참배 반대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자부심을 분석하지만, 고신신학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발전은 언급하지 않는다.33) 그에 의하면, 일제치하에서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 된 말씀에 순종해야 했기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했다.34) 즉 성경관이 투옥과 순교라는 실천으로 이끌었다. 덧붙여 그는 삼위일체를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계시의 점진적 발전의 관점에서 다루면서,35) 계시록 1:4에서 기도를 받으시는 성령님을 찾는데, 이는 근거가 빈약하다.
3.2. 한국장로교회의 신학과 교회에게 주는 제언
이근삼 교수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이 추구해야 할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위 하나님 중심의 신학, 성경 중심의 신학, 거룩한 공교회의 신앙고백을 수용하는 신학, 예정교리,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구별, 사변적이지 않은 실제적 학문, 기도와 성령의 조명하에 수행되는 지혜로서의 신학.36) 그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부흥회보다는 사경회를, 주일 저녁 예배는 교리문답 해설을, 학습교인에게는 교리훈련을 시행할 것을 권면하여 교리체계가 부족하여 탈선경향을 보이던 그 당시의 교회를 계몽하려고 했다.37)
3.3. 문화변혁과 기독교대학
이근삼 교수는 리차드 니버의 문화변혁적 기독론을 크리스챤의 문화명령 수행과 연결하여 이해한다.38) 이런 문화변혁사상은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1946)에도 명시된 것처럼 고신대학교를 기독교종합대학으로 발전시키려는 그의 노력으로 이어졌지만, 후대에 비판을 받았다. 그는 1975년에 포쳅스트룸 대학교에서 열린 국제기독교 고등교육기관회의에 참석했으며, 기독교대학의 이론적 틀을 놓으려 노력했다.39) 그는 기독교대학의 4가지 요건을 제시한다: (1) 기독교 신앙신조를 고수함, (2) 기독교적 전망으로 과학을 연구함, (3) 성숙해 가는 학생들이 제기하는 많은 문제들에 생철학의 용어로 답을 제공함, 그리고 (4) 전문 직업인을 양성함.40) 이를 위해서 그는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의 필요성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철학을 기독교대학과 연결한다.41) 이런 노력은 특히 그의 제자 이환봉교수의 기독교대학에 대한 관심과 개혁주의 성경관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42) 그런데 유해무 교수는 이근삼 교수가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기독교대학의 주요한 기초(예. 기독학부모가 주체가 된 기독교학교, 유아세례, 기독교학교운동, 기독초중고등학교)를 잘 파악하지 못했으며 ...... 기독교대학의 본질의 문제나 교회와 국가의 관계 문제에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 일반은총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이 사상이 지니고 있는 낙관적인 함정을 간파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 폐단도 경고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한다.43) 하지만 화란의 기독교학교 모델이 한국의 표준적 모델이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종합대 안에 신학과를 운영)와 캄펜신학교(교단 직영으로 신학과만 학사에서 박사과정까지 운영)의 모델 가운데 어떤 것이 한국 실정에 더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3.4. 칼빈주의 신학
이근삼 교수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즉 신지식에 관한 고찰에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는 상호 보완적이며, 예수님은 최종 계시이자 계시의 절정이며, 말씀과 성령이 신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중요인이라고 설명한다.44)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의 발전을 다루는 성경의 유기적이며 만전영감설을 반대하는 성경해석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45) 이런 주장 역시 이환봉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46)
종말론과 관련하여, “종말론은 신국내림, 육체부활, 영생, 재림, 이스라엘의 미래 등을 포함해서 신의 창조물, 마지막 날들, 미래에 대한 약속, 약속으로 인한 대망과 희망에 대한 신의 최후적, 결정적 행동을 취급하는 것이다.”47) 따라서 종말론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인간 역사의 미래에 발생할 일들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하면서, 무엇보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라고 본다.48) 하지만 단순한 미래주의자들의 종말론과 구별되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재림이라는 미래를 대망하는 것 곧 ‘시작된 대망의 종말론’(inaugurated-expectation eschatology)을 주장한다.49) 따라서 그의 종말론은 미래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가진 실현된 종말론이라 할 수 있다.50)
3.5. 실천적 관심
교의학적 관심을 넘어, 이근삼 교수는 아동교육에 관하여 연구하여 주일학교와 아동의 신앙교육을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51) 또한 그는 교회성장을 다루며, 교회의 숫자적 성장을 긍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숫자적 성장을 위하여 권징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비판한다.52)
4. 오병세교수의 신학적 대화
오병세 교수는 카버넌트신학교(B.D.)와 컨콜디아신학교(S.T.M. 논문: The Doctrine of Man in Genesis, 1959)에서 수학 후, 컨콜디아신학교 석의신학 분과에서 『구약에 나타난 우주적 구주를 위한 주제로서의 야웨의 왕권』(The Kingship of Yahweh as a Motif for the Universal Savior in the Old Testament)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Th.D, 1961)를 취득했다.53) 흥미롭게도 박사논문의 1-5페이지에서 한국인의 종교와 문화를 다룬 후, 중국과 일본의 황제를 간략히 언급한다.54) 그리고 애굽,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가나안의 왕권을 비교 연구를 위해서 배경적으로 다룬 후 이스라엘의 왕권과 기능과 특징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유일신 야웨의 왕권의 특징(언약 백성의 왕, 신년 축제에 나타난 왕권, 구원과 창조와 섭리에 나타난 우주적 왕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믿은 사람들의 예배 언약적 감사의 반응)을 연구한다. 그런데 박사논문에서 야웨의 우주적 왕권이 기독론 및 성령론의 빛에서 볼 때 신약교회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55) 대신 박사논문 마지막 페이지에서 야웨의 왕권이 궁극적 성취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두는데, 우주적 왕권의 기독론적 의미를 다루었으면 더 나은 계시사적인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병세 교수는 1957년에 박윤선 박사의 주도로 설립된 개혁주의 신행협회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대한성서공회의 성경 번역을 통해서 고신교회를 넘어서서 개혁주의 연대를 펼쳤다.56) 한정건 교수는 고신대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고신대 신대원의 구약 연구를 평가하면서, 구약학 연구의 태동기는 박윤선 교수에게서, 안정기는 홍반식 교수에게서, 발전기는 박종칠 교수에게서 찾지만 오병세 교수는 연구 실적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제외한 바 있다.57) 하지만 오병세 교수의 학문적 성과는 과소평가될 이유가 없다.
4.1. 하나님의 왕권과 언약
오병세 교수는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의 연장선에서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왕직과 세계사를 주관하시는 참 왕이시자 언약 백성의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관련성에 관해 연구했다.58) 이사야서 전체의 이사야 저작을 변호하면서 야웨의 우주적 왕권을 강조했는데,59) 이 연구도 박사학위 논문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60) 그의 언약에 대한 이해는 다음 구절에서 잘 볼 수 있다: “(하나님의 自主張인)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고, 사람의 협력은 기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언약에 있어 인간의 협력이 있어 보이는 것도, 실은 은혜로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응답에 불과하다. ... 하나님의 언약에는 엄숙한 순종이 언약을 받는 자들에게 요구된다. 언약에 순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 언약을 범하는 것은 ...주어진 은혜에 대한 불충성이다.”61)
4.2. 사해사본
오병세 교수는 그 당시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던 사해문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62) 사해문서와 ‘요한신학’ 및 기독론적 연결을 염두에 두면서. 사해사본은 신약 배경 연구에 도움을 주며, 신약계시의 탁월성을 입증한다고 본다.63) 그리고 그는 구약 본문 비평과 70인역에 대한 연구를 간략히 소개했다.64)
4.3. 선교와 신약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
오병세 교수는 아담에게 주어진 문화명령에서부터 성경의 선교적 근거를 찾는데, 선교 상황에 대한 실제적인 통계적 분석은 물론 의료선교와 같은 구체적인 선교 방안을 제시했다.65) 그리고 그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연구하면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도구요 관리인으로 본다.66) 그리고 그는 요한계시록이 도미티안 황제 치하에서 기록되었다고 보면서, 계시록은 성도-박해자, 그리스도-적그리스도, 하나님-악 사이의 전쟁 중에서 결국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의가 종국적으로 승리할 것을 보여준다고 이해한다.67) 이런 해석은 계시록의 후기 연대에 근거한 이상주의적 해석에 가깝다. 참고로 고려신학교 7회 졸업생(1953년)으로 노쓰랜드대학교(1965-1968), 미네소타무어해드주립대학교(1968-1989) 그리고 합동신학교(1989-1996)에서 가르친 홍창표 교수(b. 1928)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박사논문(Israelite-Judaic Ideas of Inheritance in the New Testament, 시카고대학교 Ph.D. 1964)을 발전시켜 신약을 ‘상속’ 개념으로 연구하되 전반적 주제들(예. 하나님 나라, 비유, 감람산강화, 수사학적 해석, 메시아비밀, 천년왕국, 영지주의, 고고학, 신약과 문화)과 특히 요한계시록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 3박사와 더불어 홍창표 교수가 고신에서 활동을 했다면 ‘4동방박사’가 되었을 것이며, 고신의 신약학은 훨씬 더 발전했을 것임에 분명하다.68)
오병세 교수는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생각할 때 구원을 받을 대상, 영혼의 위치, 하늘백성, 그리고 교회라는 점에서 남녀의 위치차이는 없다. 그러나 그 역할, 기능에 있어서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협조적인 것이다.”69) 여성도는 성경공부, 자녀교육, 전도, 여성단체와 협력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고신교회가 여성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성 지도자에 여 목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견해는 홍창표 교수에게서도 볼 수 있다.70)
5. 나오면서
세 동방박사는 먼저 스승 박윤선 박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다음 3박사는 한국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3박사는 사후에도 제자들과 오늘 날 고신의 신학자들과 계속하여 저술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박윤선 박사의 대를 이어 고신신학 형성에 끼친 세 동방박사의 많은 공헌 가운데 두드러지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의 성경중심의 보수신학을 계승 및 발전시킴으로써, 성경의 유기적 만전 영감성에 근거하여 고등비평을 반대하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잘못된 신학 사조를 비판하며, 교회의 문화적 사명을 중요하게 여기며, 장로교/개혁주의 신앙고백을 강조한 점을 들 수 있다.71) 3박사의 신학은 상호협력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었는데,72) 직계 제자들인 3세대와 그 이후 고신 안팎의 최근 신학자들의 저술 안에 발전된 형태로 감지된다.73)
3박사의 공통점과 특이점은 아래의 표와 같이 요약된다:
공통점 |
홍반식 |
이근삼 |
오병세 |
박윤선 박사의 신학을 수용하여(전천년설은 제외), 성경의 유기적 영감과 점진적 계시의 발전을 강조1) |
구약의 문법-역사적 해석과 성경신학적이며 기독론적 해석을 강조 |
성경의 기독론적 해석을 강조 |
구약의 왕권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기독론적 해석을 강조 |
당시 신학 사조나 이단에 대한 비판 |
가톨릭,2) 유대교, 신복음주의, 종교사학파, 사회복음주의자, 자유주의자, 에큐메니칼운동, 윤리도덕적 담화 수준의 설교 등을 비판 |
가톨릭, WCC,3) 급진적 종말관, 칼 바르트, 사신신학, 조선신학교 김재준교수 등을 비판 |
자유주의, 양식비평,4) 사신신학,5) WCC 등을 비판 |
문화적 사명 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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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명령을 수행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기독교대학을 강조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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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와 개혁주의의 교차적 사용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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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분과에 대한 연구 |
신약학, 교의학 |
교회성장, 교육학 |
신약학, 선교학, 칼빈주의 |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 |
석사학위논문과 석의에서 강조함 |
문화명령을 통해서 강조함 |
박사학위논문의 주제임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강조 |
1971-72년 동안 기존 번역을 검토함 |
1971-72년 동안 기존 번역을 검토함 어거스틴, 칼빈,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의 연속성을 강조함 |
1971-72년 동안 기존 번역을 검토함 |
웨스트민스터신학을 번역하여 소개 |
E.J. 영의 구약총론(1976) |
반틸의 칼빈주의 문화관(1972) |
E.J. 영의 구약총론(1976) |
교회의 문제와 이슈를 고신대 부설 교회문제연구소를 통해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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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주의, 반주지주의 |
성도의 기도,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 |
최근 신학의 동향과 최신 자료를 활용하는데 있어 미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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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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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관심 분야 |
히브리어문법, 성경번역, 고대 근동학, 유대인과 메시아 사상 |
신사참배와 신도국가주의에 대한 평가, 기독교대학,8) 아브라함 카이퍼, 기독교철학, 기독교대학, 칼빈주의 전반에 대한 입장 정립 |
사해사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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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연구 성과 |
기독교사상 등에 논문을 기고함 |
박사학위논문이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문교부의 연구 지원비를 수주했고, 기독교사상, 통합연구, 신학정론, 신학지남, 월간목회 등에 논문을 기고함 |
기독교사상, 월간목회, 개혁사상 등에 논문을 기고함 |
목회 및 기타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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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로교회 담임 목회, 고신 총회장, 개혁주의신행협회 조직 및 대한성서공회의 성경번역9) |
3박사의 공헌과 귀한 유산 덕분에, 한국 장로교회와 마찬가지로 고신교회의 신학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74) 그런데 학파(學派)는 시간과 인재가 쌓일 때 형성되는데,75) 이제 ‘고신학파’가 형성될 기초는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주의 고신학파가 형성되기 위해서 다음 사항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1) 통합적인 방법론을 동원하여 연구의 틈(research gap)을 매우고 기존 연구를 심화시키는 더 엄밀한 학문적 연구,76) (2) 복음주의/보수주의를 넘어선 풍성한 개혁주의 신학의 확립,77) (3) 신학의 최신 이슈와 경향을 읽고 평가하는 안목의 확립, (4) 한국 교회와 사회의 이슈에 대한 신학적 해답 제시,78) (5)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주제들(예. 성령의 은사, 계시록 해석 방법, 천년왕국설, 여자 목사 안수)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 가동과 공개 토론의 장 마련, (6) 학부와 신대원의 신학연계교과과정 시행,79) (7) 교회와 세상에 소망을 주는 선도적인 신학,80) (8) 고신신학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권위있는 학회에서 논문 발표 및 게제 활성화,81) (9) 고백적이며 전제주의적 신학의 강화, 확산82) 및 생활에 적용,83) 그리고 (10) 신학생들의 성경주석 능력 함양84) 및 고신 성경주석 발간. 현재 두 권이 출판된 ‘고신교단 설립 60주년 기념 주석’은 2017년 말에 교회개혁 500주년에 맞추어 한국복음주의신학회가 출판할 성경주석시리즈와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타 기관, 교단, 신학교에서도 성경주석 시리즈를 출판했으며 계속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고신교회의 주석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오래된 자료보다는 최신 자료를 활용하여 적확하고 세밀한 주해와 적용을 담아내야 한다. 고신교회가 지난 70년 동안 성경 주석을 거의 가지지 못한 점은 너무 아쉬운 대목이기에,85) 주석 출판은 분발해야 할 현재 진행형 숙제다.
또한 고신신학은 서구 신학 의존증을 벗어나 한국적 개혁주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86) 한국 신학계는 세계 신학계에서 ‘AD 130년 로마의 기독교인’처럼 무게에 있어 소수이며 미래가 다소 불투명해 보인다. 한국에서 개혁신학과 교회가 만개하지도 못하고 지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Thinking Churches’라 불리는 일본개신교는 1930년대 바르트신학에 열광했고, 신학출판계는 2000년대에도 ‘Germanic Captivity’ 상황에 처해 있는데 번역서와 서구적 주제가 대부분이다. 비슷하게 ‘Praying Churches’라 불리는 한국개신교 신학은 ‘American/Britain Captivity’에 처해있는 거 같고, 신학자들은 수많은 번역과 서구 주제를 즐겨 다룬다. 따라서 이제는 한국 사회의 고민과 이슈와 주제를 성경적으로 더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87) 신학의 ‘서울 의존증’도 극복 과제다. 서울 의존증을 극복하려는 좋은 예로, 영남중심의 2007년에 설립된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2014년에 설립된 ‘한국기독교교육실천학회’, 그리고 2015년에 설립된 ‘영남신약학회’를 들 수 있다.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써, 고신신학의 정체성이 더 뚜렷해지고, 국내외적으로 발전해 갈 것을 소망한다.
앞으로 고신신학은 신학생의 신학과와 신대원 지원이 급감하는 현실과 목회자 수급의 불균형 문제를 뼈저리게 진단해야 한다.88) 고신교단이 존재하고,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이 있고, 교수들이 나름대로의 연구 성과를 내고,89) 학교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면 계속해서 신학생들이 자동적으로 몰려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해외 개혁교단의 신학교들이 통폐합되는 실정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90) 학부와 신대원이 힘을 합쳐 교회학교에서부터 신실한 신학 자원들을 발굴하여 관리하고, 신학 교수들이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성령충만과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써 목회해야만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들이 양성될 것이다. 바로 그 때 고신신학이 교회와 세상을 섬기고 발전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 개혁신학이 표출되는 현장인 고신교회도 개혁교회의 요소를 강화해 가야 한다.91)
1) 구(舊)프린스턴과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신학교가 보수신학의 보루, 개혁신학의 산실, 회개와 순교적 신앙을 강조했다는 역사적 분석은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 김의환, “고신신학의 역사적 조명”, 『기독교사상연구』 3 (1996), 141-60을 보라. 이 글은 고려신학교의 태동에서 합동으로부터 환원까지 다룬다.
3) 물론 예수님의 탄생 후 찾아온 동방박사가 3명이었는지 알 수 없다(마 2:1). 찬송가(한국찬송가공회, 2006)에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는 표현은 없는데, 116장은 이전의 ‘동방박사 세 사람’을 ‘동방에서 박사들’로 정확히 교정했다.
4) 김길성, “박윤선 박사의 신학과 사상”, 『신학지남』 77 2010 (3), 43. 참고로 허주(2000), 정승원(2004), 유영기(1989), 박형용(1989) 등이 박윤선 박사의 신학에 대해 논문을 썼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박윤선 박사는 합동신학교에 재직하던 초기에 계시록에 대한 논문을 썼다는 점인데, 그가 이해한 전천년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계 12:17-13:18장은 大적그리스도와 그의 거짓 선지자의 활동을 가리킴, 환상의 사건들은 반복되지 않고 시간적으로 전개됨, 아브라함 카이퍼처럼 19:20은 예수님의 재림 때 적그리스도가 처치되는 장면으로 봄(참고로 B.B. Warfield는 19:20을 재림 구절로 보지 않음; 카이퍼는 천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천년왕국 기간을 재림 이후의 복음전파와 회개가 발생하는 과도기로 보는데 박윤선 박사가 거의 동의함), 신약시대가 천년왕국의 평화시기라고 볼 수 없고 재림 이후에 평화가 임함, 천년왕국 말기에 교회의 원수인 곡과 마곡(러시아를 포함한 악한 나라)이 지상에 전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하여 결국 악에 대한 우주적 심판이 임함(20:8-9), 벧후 3:13은 지구 소멸이 아니라 갱신을 가리킴, 그렇지만 천년의 문자적 혹은 상징적 해석 때문에 성도는 싸우지 말아야 함. 박윤선, “천년왕국문제”, 『신학정론』 1 (1983, 2), 184-205. 박윤선 박사의 전천년설을 세 동방박사는 따르지 않는데, 역사적 전천년설을 지지하는 한정건 교수에게서만 볼 수 있었다. 합동신학교의 계시록 전공자인 김추성 교수도 박윤선 교수의 전천년설을 따르지 않는데, 그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계시록에서 단순한 반복과 시간적 전개 둘 다 반대하고 주제적 연속에 주목함. 6:12-17; 11:15-19; 16:17-21; 19:11-21은 재림 사건임, 20:1-3의 예수님이 아니라 천사에 의한 사탄의 결박은 초림-재림 사이의 사건이 아니라 재림 시의 사건임, 1000년은 상징적 기간임, 20:4-6은 지상이 아니라 천상이 무대이기에 지상에서 일어날 사건으로 보는 전천년설과 무천년설 모두 오류를 범함. 김추성, “천년왕국(Millennium)에 대한 재 고찰”, 『신학정론』 32 (2014, 2), 237-62. 하지만 계시록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1:1; 22:6)을 주 내용으로 하면서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주요 교훈(11:15; 12:11)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할 환상을 통해 제시하기에, 상징적 기간인 1000년 동안 그리스도의 통치가 소아시아 7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5) 참고. 박영희, “韓國의 註經神學과 朴允善 註釋의 意義”, 『신학정론』 7 (1989, 2), 407; 오병세, “박윤선 신학이 한국 주경신학에 미친 영향”, in 『박윤선 신학과 한국신학』 (백합출판사, 1957), 82; 권성수, “박윤선 박사의 성경해석학”, 『신학정론』 7 (1989, 2), 249-51(이 글에서 박윤선박사가 성령의 조명으로 영적인 깊은 의미[sensus plenior]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언급함).
6) 최명국, “성경주석학자 박윤선 목사”, 『신학정론』 7 (1989, 2), 368, 370.
7) 박윤선, “성경의 권위”, 『신학지남』 38 (1971, 1), 6-19.
8) H.M. Conn, “Studies in the Theolog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An Historical Outline, Part IV Conflict and Division-1945 to 1954”,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30 (1968, 2), 136-37. 이 논문에서 고려파와 고려신학교의 형성 배경을 상술하는 하비 콘 박사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에 조선의 복음주의 분위기 안에서 로레인 뵈트너와 그레샴 메이첸의 책들이 번역되어 개혁주의 신학을 상당히 이해한 이들이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하비 콘 박사는 박윤선 박사가 특정 분야에 한정된 근본주의적 요소를 가진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고려신학교가 더 넓은 칼빈주의적 관점에서 발전시키려고 했다고 본다. 하비 콘 박사는 1966-68년 동안 한국(조선) 신학의 전개를 시기별로 나누어 4개의 논문을 기고했는데, 중요한 영문 자료다. 참고로 신학 포털 사이트인 ATLA에서 ‘Koran Theology’를 검색해 보면, 주로 민중신학이나 한국 여성신학 관련 논문이 소개된다. 한국식 개혁주의 신학이 세계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세계에 소개되지 못한 결과다.
9) 이근삼, “그 기도소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신학정론』 72 (1989), 325-26; “경건과 학문의 통합을 위하여”, 『미스바』 17 (1992), 24-25.
10) 문정식, “찰스 하지와 정암 박윤선의 개혁신학 계승 연구”, 『신학정론』 31 (2013, 2), 99-100, 109-109.
11) 유해무, 『개혁교의학』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7), 34, 38.
12) 조성국, “경건을 형성하는 신학교육: 한국 장로교 신학교육과정의 인식변화를 위한 제안”, 『고신신학』 8 (2006), 65-97.
14) 홍반식 교수의 박사논문을 요약적으로 볼 수 있는 글은 “구약에 나타난 저주의 대상과 고대 문서”, 『고려신학보』 12 (1986), 9-30이다. 레 26장과 신 28장에 근거한 선지서의 저주 연구로는, 기동연, “포로후기 선지서들의 언약의 저주”, 『개혁논총』 29 (2014), 55-92. 더불어 황창기 교수의 석사(The Significance of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D. 70] in the Synoptic Gospels, 웨스트민스터신학교. Th.M. 1981)와 박사논문(The Judgement of the Lord in the Sermon on the Mount, PUCHE. Th.D. 1985)도 언약의 저주 곧 심판이었다. 참고. 송영목, “황창기 교수의 신학”, in 『황창기 교수 은퇴 기념 논문집』 (고신대학교 출판부, 2008), 78-105.
15) 이 단락은 김지찬, “웨스트민스터 신조, 한국장로교회, 그리고 성경관”, 『장로교회와 신학』 4 (2007), 13, 15, 17에서 요약함. 성경 축자적-만전적 영감을 믿으면 신학도 거기에 맞추어 전개되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신앙과 상충하는 신학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혁주의는 고사하고 복음주의도 아니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신학은 자신이 믿는 바를 논리적으로 진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7) 홍반식, “聖書 飜譯의 새로운 趨勢: 東南亞 聖書飜譯子 세미나아에 參加코”, 『기독교사상』 10 (1966, 11), 44-49.
18) 전광식, “고신의 스승, 홍반식교수님”, 『월간고신』 5 (2007), 39; 허순길, “‘개혁신학과 교회’ 창간호를 홍반식교수 은퇴 기념호로 내면서: 권두언”, 『개혁신학과 교회』 1 (1991), 7. 오병세 교수도 홍반식 교수가 3박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설교자였다고 증언한바 있다. 홍반식 박사는 귀국 인터뷰에서 미국교회의 설교를 ‘죄에 얽매인 영혼들을 소생시키는 박력이 부족하며 사회생활 강좌’와 같다고 평가했다. 참고. “오병세, 홍반식 박사 귀국소감을 듣다”, 『파수꾼』 114 (1961), 63. 『파수꾼』은 1951년에 창간된 고려신학교 월간지다.
20) 홍반식, “구약과 설교”, 14. 제목설교도 적절한 성경 본문과 성경해석을 동반한다면 성경적 설교라고 보기에, 제목설교를 배제하지 않는다.
21) 박윤선 교수는 설교 시 성경의 모범 혹은 윤리적 언급도 총체적인 구원론과 구속사의 입장에서 강조했다. 이문식, “정암 박윤선의 목회신학으로 본 최근의 제자도 논쟁”, 『신학정론』 31 (2013, 2), 66.
22) 하지만 ‘구원선 방주’(창 7:1-12)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방주의 창문처럼 우리 심령에도 신앙의 창문을 가져야 하며, 다니엘도 이 창문을 통하여 은혜의 공기를 호흡했다”고 풍유적으로 설교한다. 홍반식,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 (총회교육위원회, 1989), 255. 구속사적 해석과 설교라는 올바른 원칙으로 시작하지만 모범적이거나 풍유적 적용으로 마칠 가능성이 크다.
23) 홍반식, 『히브리어 교본: 히브리성경 속성 해독』 (부산: 영음사, 1973).
24) 홍반식, “히브리 사람들의 社會 生活: 創世記를 中心하여”, 『고신대학 논문집』 1 (1969), 51-70.
25) 홍반식, “創世記의 原始歷史”, 『고신대학 논문집』 1 (1969), 7-8, 11, 17, 28. 보다 발전된 고고학적 연구는 신득일 교수의 번역서에서 볼 수 있다: 『고대근동문화』 (CLC, 2012)와 『이집트와 성경 역사』 (CLC, 2010).
26) 홍반식, “유대인과 메시아예언”, 『고려신학보』 19 (1990), 16-21. 그리고 메시아 예언이 많은 이사야서 연구로는 홍반식, “The Political and Social Background of Isaiah”, 『미스바』 7 (1982), 82-96. 비슷한 맥락에서 이사야서의 고난당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신적 메시야를 통해서 기독교의 독특성과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변증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정건, “이사야서에 나타난 메시야의 신성”, 『성경과 신학』 11 (1992), 35-97을 보라. 더불어 이사야 1-66장을 한 권의 문학적-구조적-신학적 통일성을 갖춘 책으로 읽고(이점에서 한정건, 최윤갑교수와 일치함), 성경 안에서 이사야의 위치(내적 간본문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서는 구약 전체 주제를 집대성함)를 인식하며 읽고, 현대 독자에게 주어지는 의미를 독자 비평적으로 찾으며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최만수, “이사야 읽기를 위하여”,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17 (2001), 59-65. 최만수박사의 주장은 자료나 전승비평의 한계를 인식하여 성경의 통일성을 학문적으로 밝히고 구약 안의 간본문성과 현대 독자를 고려하여 해석학적 폭을 넓힌 연구다. 그리고 최윤갑교수의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박사학위 논문(To comfort All who mourn: The Theological and Hermeneutical Function of Isa. 61-62 in th Book of Isaiah; Ph.D, 2016)도 참고하라.
28) 예를 들어, 성경통신대학 교재인 홍반식, 『신약성경의 핵심교훈』 (총회교육위원회, 1989), 109-117은 요한계시록을 다루는데, 최신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H.B. Swete의 1906년판 요한계시록 주석만 참고했는데, 이미 출판된 박윤선 박사의 계시록 주석을 활용하지 않은 점은 의아하다. 그리고 홍반식,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 “일반 은총과 개혁주의 신앙고백: 미국 기독교 개혁파 교회가 채택한 3개 교리조문을 중심으로”, 『고신대학 논문집』 3 (1974), 49-63. 이 논문의 경우 논문에 ‘결론’이 없고 구약과 신약 성경 구절 인용으로 마무리하는데, 따라서 마지막 페이지만 본다면 논문의 논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근삼, “개혁주의 성례론”, 『교회문제연구』 6 (1990), 168에서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3박사에게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학술적 논문은 많지 않은데, 강의, 설교, 원고 기고에다가 학교 행정을 맡았기 때문이다.
29) 참고. 김성린, “Bultmann神學에 있어서의 實存思想: Heidegger에서 Bultmann으로”,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185-204.
30) 베트남 종교학자 Joseph N’Guyen van Phong은 이근삼교수의 박사학위에 관해 Archives de Sociologie de Religions 28 (1969), 215-16에 서평을 실었다.
32) 이근삼, “神社參拜 拒否에 대한 再評價”, 『기독교사상』 16 (1972), 50-52. 이 내용은 이근삼교수의 박사논문 The Christian Confrontation with Shinto Nationalism, 183-194에서 볼 수 있다.
34) 이근삼, “신사참배 문제를 재검토 한다”, 『신학정론』 13 (1995, 1), 20. 참고. 최덕성,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본문과 현장사이, 2000). 더불어 최덕성, The Roots of the Presbyterian Conflicts in Korea, 1910-1954, and the Predominance of Orthodoxy(에모리대학교 Ph.D. 논문, 1992)
35) 이근삼, “三位一體 神論”, 『고신대학 논문집』 13 (1985), 56, 67. 민 6:24-26의 아론의 축복을 삼위일체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참고로 이근삼 교수는 1951년에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후 히브리어 강사를 역임했다. 참고로 홍반식은 소위 ‘축도’(祝禱)를 ‘복의 선언/강복선언’ 대신에,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기도’라고 본다. 홍반식,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 (고신출판사, 1989), 304. 비슷하게 박윤선 박사도 축도를 기도라고 보면서, 명령조의 권위적 뉘앙스를 가진 ‘있을 지어다’ 대신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가 옳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생활”, 『신학정론』 5 (1987, 1), 25. 하지만 축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의 말씀을 선언하는 것이다. 고재수(N.H. Gootjes), “축도에 관한 고찰”, 『교회문제연구』 6 (1990), 169-78. 고재수 교수는 강복선언 시 기도하듯이 눈을 감지 말라고 권면한다.
36) 이근삼, “韓國長老敎會의 神學과 信仰告白의 定着化”, 『고신대학 논문집』 7 (1979), 5-48.
37) 이근삼, “韓國長老敎會의 神學과 信仰告白의 定着化”, 44.
38) 이근삼, “기독교와 문화와의 관계”, 『신학지남』 39 (1972, 1), 28, 31.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문화와 만유를 변혁하시고 갱신하신다고 보면서, “사탄의 나라로 제시한 이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40) 이근삼, “기독 지성사와 기독교 대학운동”, 『통합연구』 1 (1988, 1), 10-11. ‘자연을 관통하는 은총 유형의 기독교대학교’에 관하여 조성국, “기독교대학교의 유형과 상황”, 『고신신학』 7 (2005), 105-134도 참고하라.
41) 이근삼,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의 필요성”, 『고신대학 논문집』 1 (1969), 71-100. 이 논문에서 기독교 철학의 바탕 위에 1880년에 설립된 화란 자유대학교를 언급한다.
42) 이환봉, 『개혁주의 성경관』 (고신대출판부, 2005); “이근삼 박사의 개혁주의 교회론”, 『고신신학』 10 (2008), 203-223. 이근삼교수는 반틸, 베르까우어, 바빙크, 도예베르트, 폴렌호번, 스토커로부터 교의학과 기독교세계관을 배웠다. 그리고 이환봉교수는 이근삼교수가 교회의 사명과 기능을 중요시하는 기능적 교회론을 경계하고,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본질적 교회론을 강조했다고 본다. 덧붙여 이근삼교수와 이환봉교수는 저서를 통해 한상동목사의 기여를 밝혔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을 통해서 마틴 부처와 존 칼빈의 교회론을 연구한 황대우교수의 아플도른신학대학교 박사학위 논문도 참고하라: Het Mystieke Lichaam van Christus: De Ecclesiologie van Martin Bucer en Johannes Calijn(2002).
43) 유해무, “고신교회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가?: 고신교회의 역사와 신학”, 『개혁신학과 교회』 22 (2009), 113-17.
44) 이근삼, “神知識에 관한 考察: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157, 162.
46) D.L.F. Schulze교수의 지도로 작성된 이환봉, Historical Criticism of the Bible: A Critical Evaluation of Its Validity as a Recognized Principle for Biblical Hermeneutics (Th.D. Thesis. PUCHE, 1992). 이 논문의 감사말에 한국인 교수 가운데 이근삼 교수가 제일 먼저 언급된다.
47) 이근삼, “現代 神學的 終末論 理解”, 『고신대학 논문집』 3 (1974), 32.
49) 이근삼, “現代 神學的 終末論 理解”, 33. 참고로 1982년 3월 18일 고신대 신학과 재학생 문부식 등이 미문화원을 방화한 후 부산일보(3월 31일)에 실은 총회장과 이사장 명의의 사과문은 방화사건을 ‘적그리스도의 계교’라고 칭했다. 이것은 요한일·이서에만 등장하는 이단을 가리키는 ‘적그리스도’를 임의로 확대 적용한 고신교회의 시각을 보여주는데, 박윤선 박사의 계시록 주석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참고. 이상규, “고신대학교 50년(1946-1996) 약사” in 『基督敎大學과 學問에 對한 聖經的 眺望: 高神大學校 設立 50週年 및 漢石 吳秉世 博士 隱退 記念 論文集』 (고신대학교 출판부, 1996), 28. 교회와 국가는 일원론적(둘 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원화를(각각의 권위와 기능을 가짐)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성린, “敎會와 國家의 관계에 대한 硏究: 칼빈主意를 中心하여”,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5-38.
50) 계시록을 해석할 때 현재의 억울함에 대한 반성 없이 단지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자기 불만적 미래추구를 위해 천년왕국을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경적 말세론 연구에 현대 미래학의 통찰이 접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보민, “기독교 신학적 미래학: 그 가능성에 대한 소고”, 『성경과 신학』 2 (1984), 202-204. 그리고 신원하, “종말론과 사회윤리: 위르겐 몰트만과 리차드 마우 신학윤리학의 비교연구”, 『성경과 신학』 27 (2000), 365-88을 보라.
51) 이근삼, “아동의 본능 운동과 교육”, 『파수꾼』 32 (1953), 28-31. 오병세 교수도 이근삼 교수의 칼빈주의가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생활에 구체화되도록 강조했으며, 고신교단의 교육목적 작성 시에 그의 공로가 컸다고 밝힌다. 오병세, “축사”, in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이근삼 박사 사역 50주년 기념 논집』 (총회출판국, 2002), 16.
53) 야웨의 우주적 왕권은 한정건, The Restoration of Israel in Covenant Perspective: An Exegetical and Revelation-Historical Study on the Prophecies of the Promise (PUCHE, Th.D. 논문, 1989), 319에도 나타난다. 한정건 교수는 무천년적 해석이 구약의 언약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보며, 신약 교회가 유대인들을 대체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전천년설에 근거하여 야웨의 우주적 왕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우주적 왕권은 지구 역사의 끝에 유대인들의 회복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54) 참고. 독자반응비평을 적용한 최만수, The Old Testament and the Reunification of Korea: Reading the Old Testament from the Korean Christian Perspective from 1975 to 1995 (퀸즈랜드대학교 Ph.D. 논문, 2001). 참고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문예비평과 서사비평 그리고 독자반응비평을 자유주의해석 방식으로 분류하여 배격한다: “자유주의 해석방식인 역사비평방법을 비롯하여, 문예비평, 서사비평, 독자반응비평에 이르는 성경비평을 거부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해석방식은 ...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를 재단하고 부인하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 조병수, “합신 신학의 재조명과 교회를 위한 합신 선언문”, 『신학정론』 28 (2010, 2), 291. 이런 태도는 현대 해석학의 발전과 통찰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반면, 총신대 신대원은 이런 현대의 방법론을 개혁주의 성경관에 입각하여 주의하여 수용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가 지난 2000년 동안 확립해 온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의 터전 위에서, 지난 200년 동안 발전해온 문학적 해석학, 상황적 해석학, 정경적 해석학을 통합하고 융합하며, 더욱 발전시켜 21세기 총신 구약학의 지평을 세계적으로 넓혀가야 할 것이다. ...... 우리는 1970년 이후에 발전된 수사적 분석과 서사적 분석을 개혁주의적 성경관의 큰 틀 속에서 성경해석의 주요 도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김정우, “21세기 총신 구약학의 정체성과 통전적 융합을 위한 모색”, 『신학지남』 75 (2008, 2), 18, 20. 김정우 교수와 유사한 입장을 김지찬 교수도 표명했다: “예장, 특히 합동측은 성경 무오와 축자 영감을 믿으면서, 문맥과 장르 등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자구에 매어달리는 경직된 근본주의적 해석에 매어달리는 우를 반성해야 한다.” 김지찬, “웨스트민스터 신조, 한극장로교회, 그리고 성경관”, 42.
55) 오병세 교수는 시 89:15의 ‘공의와 정의가 주님의 보좌의 기초이며’를 언급하는데, 황창기 교수도 종종 인용한 본문이다. 오병세, The Kingship of Yahweh as a Motif for the Universal Savior in the Old Testament, 146, 154.
56) 오병세·정홍원, “宣敎的 側面에서 본 改革主義神學: 韓國을 中心하여”, 『고신대학 논문집』 5 (1977), 22-23.
57) 한정건,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전망”, 『하나님 앞에서』 1 (1996), 44-82.
58) 오병세, “新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123-41; “舊約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王職과 하나님의 主權”, 『고신대학 논문집』 4 (1976), 70-71, 74, 77. 첫째 논문에서 눅 17:21은 주님을 둘러싸고 질문을 제기한 불신 바리새인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autobasileia)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둘째 논문에서 구약 양식비평학자들이 제시하는 문학적 양식의 존재에 대해 비판한다.
60)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16에서 오병세교수의 장례식에서 전광식총장이 낭독한 추모사 전문을 볼 수 있다(2016년 7월 24일 접속).
61) 총회신학교 교수로 봉직 당시 오병세, “創世記에 나타난 하나님의 言約”, 『기독교사상』 6 (1962, 9), 6-14. 그리고 오병세, “출애굽의 구속과 십계명”, 『개혁신학과 교회』 3 (1993), 7-35도 참고하라.
62) 오병세, “死海 하박국註釋 硏究”, 『고신대학 논문집』 16 (1988), 37-52. 성도의 기도를 하박국주석으로 다룬 연구는 오병세, “성도의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 『기독교사상』 12 (1968), 157-61.
64) 오병세, “구약 본문비평과 70인역: 개혁신학과 한국의 성경신학”, 『改革思想』 2 (1989), 72-85. LXX에 대한 연구는 임마누엘 토브교수의 지도로 작성된 김하연, Multiple Authorship of the Septuagint Pentateuch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Ph.D. 논문, 2006)를 보라.
65) 오병세·정홍원, “宣敎的 側面에서 본 改革主義神學: 韓國을 中心하여”, 10, 14-15, 18, 30, 34. 이 글에서 오병세는 ‘보수주의’ 혹은 ‘보수정통신학’을 ‘개혁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교차로 사용한다. 칼빈주의 교육관(1977)에도 관심을 가진바 있는 오병세는 이 논문에서 이근삼의 저서 『칼빈, 칼빈주의』 (고신대출판부, 1976)를 참고하여 선교를 설명한다. 참고로 필자가 1989년에 신학과 신입생 때 이근삼교수의 이 책이 ‘칼빈주의’라는 과목의 주교재였는데, 그는 『기독교강요』를 완독하면 중간·기말고사와 상관없이 학점 A+를 부여했다.
66) 오병세, “新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123-41; “하나님 나라에 대한 理解”, 『고려신학보』 9 (1984), 20-26.
67) 오병세, “요한계시록의 특색”, 『개혁신앙』 7 (1978), 64-65; 『신약개설』 (총회교육위원회, 1986), 162-63. 일반 성도를 위한 성경 안내서인 『신약개설』에 각주나 참고문헌이 없다. 오병세 교수는 계 19:11-16을 재림으로 이해한다. 오병세, “新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고신대학 논문집』 14 (1986), 130. 그런데 홍반식은 계 17장의 머리 7개 달린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보면서 ‘네로 황제’의 박해를 언급한다. 홍반식, 『신약성경의 핵심교훈』, 112, 115. 하지만 홍반식 교수는 계시록 내용은 장차 있을 미래의 일이 대부분이라고 보면서 미래주의적 입장에서 이해한다. 그리고 계시록의 미래적 해석과 계 1-3장 주해는 양승달(1934-1981), 『주님 오실 때까지』 (한국성서협회, 1979)에서도 볼 수 있다. 덧붙여 계시록의 이른 연대에 근거한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은 송영목, 『요한계시록: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통한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 (SFC, 2013)를 보라.
68) 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총 3권』 (크리스챤북, 1999); “요한계시록의 이해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주제 설명(1)”, 『신학정론』 16 (1998), 53-86. 역사적 예수와 선포된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 옹호와 고등비평에 대한 비판은 홍창표, “성경권위에 입각한 편집비평에 대한 평가”, 『신학정론』 3 (1985), 264-94를 보라. 영문 저서로는 Eschatology of the World Religions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76), To Whom the Land of Palestine belong (Exposition Press, 1979); Israel in Ancient Near Eastern Setting (Research Press, 1980; 이 책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Th.M. 논문과 동일함); A History of the Future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1).
69) 오병세, “교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 『교회문제연구』 4 (1985), 19. 네덜란드 교회의 ‘여성 직분에 관한 역사적 고찰’(tracing the woman in office)은 임경근 박사의 아펠도른신학대학교 박사학위(Th.D.) 논문을 참고하라: Het Spoor van de Vrouw in het Ambt (Kampen: Kok, 2001). 그리고 임경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제와 한국 교회의 과제”, 『진리와 학문의 세계』 11 (2004), 61-86. 임경근 박사는 여권(女權)의 신장과 같은 상황(현실)이 여성의 직분을 언급한 성경 본문(원리)의 해석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我田引水 방식의 성경 해석을 주의해야 하며, 투표가 성경보다 우위에 있어서 안 되며, 성경은 시기에 제한된(time-bound)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섬기는(time-serving)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여성의 직분에 관한 논의는 결국 성경관과 성경해석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다룰 때, 1차 독자의 상황과 현대 독자의 상황의 차이를 ‘구원계시사적’으로 파악한 후 ‘혁신적이고 일관성’(innovation and consistency; 이것은 N.T. Wright의 표현임)있게 현대에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P.H.R. Van Houwelingen, “Meaning and Significance of the Instruction about Women in 1 Timothy 2:12-15”, Sárospataki Füzetek 19 (2015, 4), 59-71. 하지만 Houwelingen의 설명은 원칙적으로 옳지만, 논문이 조심스럽게 열린 결론으로 끝나기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는 행간을 읽고 결정해야 한다.
70) 특별히 창조질서에 호소하여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한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신학정론』 8 (1990, 2), 299, 352.
71) 이근삼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를 번역했고, 1970년 제 20호 고신총회가 채택했다. 3박사는 1971년 제 21회 고신 총회의 위임으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의 기존 번역을 1년 동안 교정했다. 이근삼, “韓國長老敎會의 神學과 信仰告白의 定着化”, 44. 1991년에 재미 고려신학교에서 3박사를 초청하여 미국과 캐나다에서 종말론 특강을 했다. 홍반식 박사 설교문집 편집위원회, 『위대한 용서: 홍반식 박사 설교문집 및 논술집』 (고신언론사, 2007), 7. 참고로 일반 성도가 교리를 쉽게 접하도록 하기 위한 이성호, 『특강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상, 하』 (흑곰북스, 2013).
73) 이 논문에서 고신대나 신대원에서 수학했거나 가르친 홍창표, 양승달, 김성린, 허순길, 이보민, 황창기, 박종칠, 박성복, 고재수, 김진섭, 최덕성, 한정건, 이환봉, 이상규, 박영돈, 유해무, 전광식, 신득일, 조성국, 신원하, 김하연, 김열, 최만수, 김은수, 이신열, 임경근, 기동연, 황대우, 김성수, 김진흥, 이성호, 김재윤, 송영목, 채경락, 강화구, 최윤갑, 우병훈, 문화랑(그리고 총신의 박영희, 권성수)의 글을 살폈다. 그런데 홍반식 교수의 영향은 드랍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백석대 김진섭교수에게서도 감지된다. 고신신학은 고신교단 밖에서 활동하는 고신 출신 신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로 2000년대 초에 최덕성 교수(현 브니엘신학 총장)를 중심으로 ‘고신신학회’가 잠시 활동한 바 있는데, 이 모임에 고신 출신으로 타 교단에서 활동하던 신학자들도 포함되었다.
74) 타 교단 역시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신학 연구가 시작되었다. 참고. 송영목, “한국장로교회 100년 회고와 전망: 4개 장로교단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중심으로”, 『개혁논총』 22 (2012), 33-70.
76) 구약의 다차원적 해석은 김열 박사(A Study of Wisdom Psalms in the Old Testament; 노스-웨스트대학교 Ph.D 논문, 2008)의 논문을 참고하라: “Reading Psalm 78 Multidimensionally”, Scriptura (3편의 논문이 2000, 2003, 2005년에 게재됨).
77) 고려신학교 설립자들(박윤선, 한상동, 주남선)의 신학을 ‘현장의 신학이자 성경중심적 보수주의’라고 보는 유해무, “고신교회가 존속할 이유가 있는가?”, 『개혁신학과 교회』 22 (2009), 92, 108. 3박사는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의 신학에 깊이와 폭을 더했다. 참고로 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은 칼빈 연구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를 개혁신학으로 정립 중이다. 덧붙여 고신대와 신대원 70년 역사 동안 설교학 박사학위 소지자가 전임교수로 있었던 적은 불과 몇 년 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이건 납득하기 어려운데, 신학은 결국 석의와 설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고신대 신학과 실천신학에 채경락 교수(The Validity of the Propositional Theme in Expository Preaching, 남침례신학교 Ph.D 논문, 2008)가 재직 중이다.
78) 19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 후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1960-1990년대의 군부독재와 한국 사회의 혼란과 격동기에 고신신학은 성경적 입장을 표명하여 기준이 될 만한 견해를 제시한 바가 거의 없이 침묵했다. 이유를 추론해 보면, 3박사는 하나님의 ‘왕권’을 공통적으로 강조했지만,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참고로 남아공 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 van Suid Afrika)의 경우 성경영감설이 훼손될 경우 전국 일간지에 영감론을 변증하는 입장을 광고로 내기도 했다.
79) 참고. 이환봉, “교단 신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기독교보』 573 (2002년 8월 3일).
80) “기독교는 수많은 적의 파상공격 앞에서 허물어지지 않고 내려왔다. ...... 이 전쟁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전쟁이다. 세상 종말에는 모든 적들이 그것의 우두머리와 함께 사라지게 되는 선지자적 낙관론의 전쟁이다.” 전광식, “신학의 길과 신학함의 길”, 『고신신학』 8 (2006), 62-63. 선지자적 비관주의가 힘을 얻어온 시대에, 고난 가운데서라도 ‘승리의 종말론’을 견지해야 하는 것은 비단 신학자와 목회자 뿐만은 아니다. 그리고 김성수, “전도서로 우울증 극복하기”, 『개혁신학과 교회』 26 (2012), 35-63도 참고하라. 캄펜(Vrijgemaakt)에서 공부한 박성복은 다른 캄펜신학교(Oudestraat)의 헤르만 리덜보스의 신학을 비판하는 논문을 썼다: “빌 2:5-11의 주해적 연구: 빌 2:5-11을 중심한 Ridderbos의 바울의 기독론 비판”, 『고신대학 논문집』 4 (1976), 78-85. 남의 연구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지만, 연구의 틈(research gap)을 메우는 선구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더 요청된다.
81) 예를 들어, 신득일, “The Translation of the Hebrew Term NIR: David’s Yoke?”, Tyndale Bulletin 67 (2016, 1), 7-21; 문화랑, “A Liturgical Comparison of the Conservative and Liberation (Minjung) Churches in South Korea and Their Impact on Korean Society”, Worship 89 (2015, 3), 214-37; “Liturgical Theology: Considerations for Worship in the Korean Protestant Perspective”, Australian Journal of Liturgy 15 (2016, 1), 25-36; 우병훈, “The Understanding of Gisbertus Voetius and René Descartes on the Relationship of Faith and Reason, and Theology and Philosoph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5 (2013, 1), 45-63. 고신대 신학대학은 영문 저널 Coram Deo를 2010년 4월에 한 번만 발행한 후 중단했는데, 총신대(학부의 Chongshin Review, 신대원의 Chongshin Theological Journal; 논문 1편 기고 시 연구비 300만원 지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신학저널』; 2016년 8월 3일에 학진등재후보지로 신규 선정됨) 그리고 연세대(『신학논단』; 권위 있는 국제지에 논문 1편 기고 시 2000만원 지원) 등은 오랜 기간 동안 영문 저널을 발행 중이다. 2016년 7월초 연세대에 열린 SBL International Meeting에 고신의 신구약 전공자들의 논문 발표는 없었지만, 고신대에서 영어 M.Div. 과정과 Th.M.(신약학)을 마친 Deolito Vistar Jr.(뉴질랜드 오타고대 Ph.D. cand.)가 ‘요한복음의 표적’에 관해 발표했다. Deolito는 고신신학이 세계를 섬긴 좋은 예다.
82) 신학이 목회자와 성도를 찾아가는 예는 2007년에 설립된 한국동남성경연구원(원장: 김하연박사)에서 볼 수 있는데, 성경신학적 주해와 설교를 추구하며 겨울세미나에서 성경 주석에 근거한 주제(구원, 교회, 종말, 하나님나라, 성령)를 다룬 후 『본문과 설교』를 출간하고 있다. 참고. www.kosebi.org.
83) 칼빈과 웨스트민스터교준문서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수백 년 전의 작품이 완전한 신학 체계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딤전 5:17의 ‘presbyteros’를 칼빈과 웨스트민스터총회가 치리 장로를 배제한 것의 문제를 지적한 허순길, “개혁주의 교회정치사에서 본 장로직”, 『고신대학 논문집』 2 (1978), 66. 고신신학이 칼빈과 웨스트민스터문서를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84) 성경주석학자 박윤선 박사의 유산이 고신 교회에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주석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차 2등칸을 타고 여행하시고, 성경 구절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반찬을 들지 않고 밥만 기계적으로 잡수시고, 길 가시다가 생각에 잠겨 전봇대를 들이받으시고, 물가는 이승만만큼이나 모르시고 ......” 최명국, “성경주석학자 박윤선 목사”, 367-68.
85) 고신교회의 첫 번째 주석은 박윤선 박사의 『요한계시록』 (1949; 재판은 1955)인데, 계시록을 일제의 억압을 받던 조선인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소망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에 주석 가운데 가장 먼저 출판한 것으로 보이다. 더불어 칼빈주의 주경신학을 발전시킨 박윤선 박사의 고백을 들어보면, “나는 성경을 주석할 그 마음으로 늘 뜨거워 있다. 나에게 성경 주석 사업(총 11,602페이지)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참고. 박영희, “韓國의 註經神學과 朴允善 註釋의 意義”, 410, 413.
86) 참고. 김은수, “한국 장로교의 조직신학 교육과 연구역사(1901-1980)에 대한 고찰”, 128.
88) 국내외에서 경기 침체 및 교회의 쇠락과 맞물린 신학교의 생존이 화두다. 관련 자료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볼 수 있다.
89) 학술진흥재단(KCI)에 등록된 논문 통계는 다음과 같다: 고신대 신학과(10명; 비정년교수 3명 포함)는 약 57편, 기독교교육과(7명; 비정년교수 2명 포함)는 약 45편, 국제문화선교학과(4명; 비정년교수 1명 포함)는 약 14편, 그리고 신대원 교수(14명; 비정년교수 1명 포함)는 약 54편. 참고. https://www.kci.go.kr/kciportal/main.kci(2016년 7월 31일 접속). 참고로 용인 소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의 경우 교수 16명에 약 72편이다. 현재 고신대 신학대학과 신대원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학진등재(후보)지는 재정 확보와 투고 논문 모집이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90) 남아공의 프레토리아대학교는 화란개혁교회(Nederduitse Gereformeerde Kerk)와 다소 진보적인 개혁교회(Nederduitse-Hervormde Kerk)의 신학생을 ‘Section A’와 ‘B’로 나누어 함께 훈련시킨바 있다. 캄펜신학교(Oudestraat)는 Protestant University에 통합되어 2012년에 암스테르담과 흐로닝언으로 옮겼고, 현재 다른 캄펜신학교(Vrijgemaakt)와 기독개혁교회(CGK)의 아펠도른신학교는 학생 모집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2017년 9월에 공동으로 운영하는 개혁신학대학교를 출범시키기 위해서 논의 중이다. 고신교회도 외국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받고 대비해야 한다. 참고. http://reformedjr.com/(2016년 7월 31일 접속).
91) 수적 성장과 신비주의에 몰입하려는 합동교회가 순복음교회와 구분이 잘 안 되기에 칼빈주의적 개혁교회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진단은 정훈택, “우리는 장로교/깔뱅주의/개혁신학인가?”, 『신학지남』 73 (2009, 3), 7. 오늘날 고신교회도 합동교회와 대동소이하지 않는가? 참고로 고신신학은 구 프린스턴의 전통을 이어 받아 개혁신앙의 고백과 실천 즉 信行의 평행은 물론 지적 요소와 감정적 요소의 평행을 이룬 서구 의존적 신학이 아니라 ‘독자적인 신앙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주지주의의 냉랭함에 빠진 서구 교회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적극적 주장은 최덕성, “고신교단설립 40주년 조명-평형의 신학”, 『월간고신』 131 (1992), 57-58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