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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현대적 적용

      -역대기의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중심으로”

 

 

김성수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

 

 

서론

 

 역대기는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기록한 책으로 보일 정도로 성전과 예배, 그리고 종교의 개혁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윗이나 솔로몬, 히스기야나 요시야와 같은 선한 왕들에 대한 기사들 대부분은 정치적인 선정이나 개혁보다는 성전 건축 준비나 성전 건축, 성전 예배를 위한 조직 정비, 타락한 종교에 대한 개혁에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역대기에서는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이 포로귀환공동체에게 이상적인 미래의 왕의 모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들의 실수나 범죄에 대한 기사는 거의 다 생략되고 ‘하나님나라’의 참된 왕이신 여호와께 철저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회복시키는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윗이 사울 시대의 어두움을 걷어내고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견고한 하나님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을 세웠다면,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통해서 명실상부한 하나님 중심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완성하였다. 다윗과 솔로몬뿐만 아니라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도 메시야의 선명한 그림자로 그려지고 있다. 역대기 기자는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끊임없이 다윗과 솔로몬과 연결시키면서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왕국을 재건했는지를 강조한다. 이전 시대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어두움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개혁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을 회복시켰다. 그 중심에는 종교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역대기에서 그려내는 이러한 종교개혁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참된 종교, 참된 예배의 회복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뿐만 아니라 역대기가 특별히 강조하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한 하나님나라 회복의 모습은 오늘날의 교회 개혁에 많은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본고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부패한 교회를 말씀으로 개혁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시조들이자 선배들로서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통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온 세상에 복이 되는 아름다운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거듭나는 길을 탐색할 것이다.

 

 

1.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1.1. 열왕기하의 히스기야와 시대적 배경

 

히스기야는 주전 716년부터 687년까지 유다를 통치한 다윗 왕가의 왕이다. 아마도 부왕인 아하스의 시대인 주전 729년부터(왕하 18:1 “호세아 제삼년”) 섭정을 했을 것이다.1) 히스기야 왕의 통치에 대한 기사는 열왕기하 18-20장, 이와 거의 유사한 이사야 36-39장, 그리고 본고가 다루려고 하는 역대하 29-3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세 본문들 중에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은 역대기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에 의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피폐해진 유다에 대해서 대대적인 개혁을 수행한다. 특별히 열왕기하 18장 9-12절에서 강조하듯이 히스기야가 섭정을 하던 제7년에 일어난 사마리아의 함락은 히스기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을 여호와의 말씀과 모세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으로 생각하고(왕하 18:12) 이런 관점에서 유다의 개혁에 박차를 가했을 것이다.

열왕기하에서는 히스기야의 순수한 종교개혁 기사는 18장 4절 한 절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반드시 앗수르에 대한 반란의 행위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히스기야가 앗수르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정치적인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2) 5절은 그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하고, 또 6절에서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열왕기하에서의 히스기야 기사의 초점이 여호와에 대한 의지와3)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히 여호와에 대한 의지는 7절에서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라는 평가를 만들어낸 중요한 히스기야의 자질이 되었고, 이러한 측면이 13절부터 19장 끝까지 기록된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침략 사건에서 부각되고 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굴복하여 유다를 앗수르의 봉신 국으로 만들었지만(왕하 16:7-9)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앗수르를 배반하였다. 열왕기하 20장의 히스기야의 질병 치료를 위한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바벨론 사신들 영접 사건에서의 히스기야의 교만과 회개도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

 

1.2. 성전정화를 비롯한 예배 개혁

 

역대하 본문은 히스기야를 다윗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를 하면서 그의 통치 기사를 시작한다(대하 29:2). 그러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그의 통치로서 성전을 수리하고 정화한 것을 소개한다(대하 29:3-36). 이러한 히스기야의 행적은 성전 건축을 준비한 다윗의 통치뿐만 아니라 성전을 건축하고 온 백성들과 함께 기쁨으로 봉헌한 솔로몬의 업적과도 연결된다. 역대기 기자는 의도성을 가지고 다윗과 솔로몬의 패턴을 따라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기록한다.4) 역대기 29장은 성전의 정화와 재봉헌을 다음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대한 교육과 제의적 정결(29:3-15) -> 성전의 정화(29:16-19) -> 성전의 재봉헌(29:20-30) -> 백성들의 참여(29:31-36)5)

성전 정화와 재봉헌은 히스기야의 주도에 의해서 그가 즉위한 후 새해 첫 번째 달(대하 29:3)에 시작된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성전 정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6) 29장에서 ‘여호와의 전’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3, 5, 15, 16, 17, 18, 20, 25, 31, 35절에 12번, 5, 7, 6절에서는 ‘성소’로 표현됨) 역대기 기자는 성전 정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3절에서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했다.”는 표현은 전체 기사에 대한 요약이다. 성전 문을 열었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선왕이었던 아하스에 의해 닫혀졌던 문(대하 28:24)을 열었음을 의미한다.7) 즉, 히스기야의 개혁은 이전 세대가 닫아버린 예배의 중심지를 다시 엶으로써 시작된다. 성전 문을 닫았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의 왕으로 성전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왕권(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하나님의 처소, 대하 6:2, 언약궤는 ‘하나님의 발판’ 대상 28;2)을 거부하고 그에 대한 예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다시 그들의 왕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전을 정화하기 전에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연설을 한다(대하 29:4-11절). 연설의 핵심은, 성전 예배를 폐한 선왕들의 죄악으로 인해(6-7절)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아람과 북이스라엘, 앗수르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당했기에(8-9절), 다시 성전을 성결하게 하여(5절) 성전과 성전예배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언약 갱신 의식이자8)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맹세하는 의식이기도 했다.9) 이 연설에 대해 다윗 시대에 등장했던 레위 지파 지도자들의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후손들은 특별히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즉각적으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자신들을 먼저 성결하게 할 뿐만 아니라(15절)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한다.”(15절). 그들의 정화 작업은 주로 성전 안에 있는 불법적인 제단이나 제의 도구들을 기드론 시내(계곡)로 가져가서 불태우는 것이었으며(16절; 30;14; 왕하 23:4, 6, 12), 번제단과 제사에 사용되는 그릇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었다(17-19절). 성전 정화를 다루는 단락인 5-19절에는 ‘성결하게[거룩하게] 하다’(5, 15, 17, 19절에 7회) ‘깨끗하게 하다’(15, 16, 18절에 3회)는 히브리어 동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정화 작업을 강조한다. 모든 성전 정화 작업은 16일 걸린다(17일).

유월절 절기 이후에는 이러한 성전 정화가 전국적인 종교개혁으로 확산된다.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와 북이스라엘 온 땅과 성읍에서 “주상들(제단 옆에 세워진 돌기둥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아세라를 상징하는 나무 기둥들)을 찍으며,”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앤다.”(31:1; 왕하 18:4; 신 7:5). 이것은 아하스의 악행(28:25)을 정화하는 것으로 백성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10)

성전 정화가 끝나자마자 히스기야는 성읍의 지도자들과 레위인들과 온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서의 제사와 예배를 성대하게 재개한다(20-36절). 사실상 이것은 성전의 재봉헌이기에 이 분위기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을 떠올리게 한다(대하 6,7장). 성전 정화를 위한 속죄제는 ‘온 이스라엘’(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11))을 위해 드려졌는데(21, 24절) 이것은 아하스 통치 하의 배교와 부정함을 속죄하는 것이었다.12) 성전에서의 속죄제와 번제는 악기 연주와 찬양과 더불어 드려지고 있는데(25-30절) 이 또한 솔로몬 성전 봉헌식(대하 7:1-10)과 유사하다. 이 부분에 특별히 ‘다윗’의 이름이 네 번이나 등장하고,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25절) 악기를 연주하고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30절) 했다는 언급은, 누구보다 올바른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다윗 시대의 중심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준다(대상 22:8; 28:4-7, 19; 23:5 참조).

성전 재봉헌에는 백성들도 자발적으로 동참했는데 번제와 감사제물, 화목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로 인해 기뻐한다(대하 29:31-36절). 많은 번제물들(370 마리)과 백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다른 제물들(3,970마리)의 양(32-33절), 제사장들과는 다른 레위 사람들의 즉각적인 순종(34절), 하나님께서 짧은 기간의 성전 정화와 봉헌에 모든 것을 공급하신 은혜(36절)는 온 백성들의 기쁨이 된다(솔로몬의 성전 봉헌의 기쁨, 7:10). 35절의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는 표현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사와 요시야의 유월절 기사를 연상시킨다(대하 8:16; 35:16).13) 왕과 관리들과 레위인들과 온 회중들의 자발적인 성전 정화와 예배 개혁은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은 다윗, 솔로몬, 모세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출 36:6-7; 대상 29:6-9; 대하 7:7).14) 특별히 29-31절에는 ‘회중’이라는 단어가 열네 번(29:23, 28, 31, 32; 30:2, 4, 13, 17, 23, 24, 25, 31:18)이나 등장하여 온 백성들의 참여를 강조한다.

 

1.3. 유월절 준수(대하 30장)

 

율법에 기록된 이래로 구약성경에서 유월절 준수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한 예는 역대하 30장의 히스기야 왕 때의 유월절이 처음이고 역대하 35장의 요시야 왕 때의 유월절이 마지막이다. 히스기야 왕이 온 백성들을 모아서 준수한 유월절은 다음과 같은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먼저, 그는 ‘온 이스라엘’, 즉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에브라임, 므낫세, 아셀, 잇사갈, 스불론까지의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6절)에게까지 사자들을 보내어 유월절에 초대한다(1, 5, 6, 10, 11, 12, 18, 21, 25절). 르호보암 시대부터 분열되었던 남북 이스라엘을 유월절을 통해서 다시 통일시키고 있는 것으로15) 이는 히스기야가 새로운 통일왕국의 왕임을 부각시킨다. 5절의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란 표현도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를 상기시킨다(삼하 3:10; 24:2; 왕상 4:25). 25절의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들”이 만약 북이스라엘 멸망 후에 앗수르 왕에 의해 거주하게 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면16)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실로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엄청난 통일을 이뤄내고 있는 셈이다.

둘째, 히스기야의 사자들의 말 속에서 역대기 기자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여호와께로 돌아오고 여호와의 진노를 떠나게 하는 회개의 행위임을 강조한다(6-9절, ‘돌아오다’는 어근이 여섯 번 사용됨).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구원받아 그를 왕으로 섬기는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징계를 받아서 포로로 잡혀갔다고 할지라도 유월절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누릴 수 있음을 말한다(대하 6:38-39; 왕상 8:48-50).17)

셋째, 히스기야는 방백들과 온 이스라엘의 회중들과 의논하여 율법에 정해진 것보다 한 달 늦은 둘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을 지키게 했다(2, 15절). 이유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3절). 첫째 달에 성전을 정화했기에 유월절을 지킬 여유가 없었고,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까지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위해 유월절에 대응하는 한 달 늦은 절기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북이스라엘의 달력에 맞추려고 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은 정황상 개연성이 적어 보인다.18) 이러한 율법의 탄력적인 적용은 민수기 9:6-13에 규정된 개인에 대한 규정을 공동체에 확대해서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19) 히스기야가 누구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고 기록하면서도(12절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16절) 그 법의 표면적인 준수보다는 궁극적인 의미를 지키려고 했음을 역대기 기자는 강조한다고 할 것이다.

넷째, 히스기야가 북이스라엘에서 온 백성들이 부정한 상태에서 성결케 하는 의식을 하지 않고 유월절 양을 먹어 규례(레 15:31)를 어긴 것에 대해 용서를 비는 중보 기도를 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백성을 고치신다(18-20절). 이 또한 표면적인 율법의 준수보다는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19절) 중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편, 히스기야의 중보 기도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의 중보 기도와 여호와의 응답을 상기시킨다(대하 6:14-42; 7:12-22).20) ‘기도하다’(18절), ‘구하다’(19절), ‘듣다’(20절), ‘고치다’(20절) 등의 어휘들은 역대기의 성전 신학을 담고 있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에서의 하나님의 말씀(7:14)을 정확하게 실현한다.

다섯째, 히스기야의 유월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모두 14일을 지켰다는 사실이다. 즉, 무교절을 한 번 더 지킨 것이다(23절).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솔로몬과 레위인들은 큰 즐거움과 감사와 찬양 가운데서 유월절을 지키고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는다(21-22절). 그런 즐거운 축제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일주일로 이어지고 있다(23-27절). 그 결과는 예루살렘의 큰 기쁨이며(26절) 백성들을 위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축복(27절; 레 9:22; 민 6:23-27; 신 10:8)과 하늘 성소에서의 여호와의 응답이다(27절). 이것은 역대하 7:8-9에 있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 때 초막절을 두 주간 동안 지킨 것과 유사한데, 역대기 기자는 히스기야를 제2의 솔로몬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21) 더불어 엄청난 양의 제물(22, 24절; 대하 5:6; 7:1, 4-5)과 기쁨과 찬양(21-26절; 대하 5:11-13; 7;1-3), 백성들을 위한 축복과 응답(27절; 대하 6장; 7:1-3, 12) 등은 모두 솔로몬 성전 봉헌식에도 나온다.22) 26절에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와 히스기야의 유월절을 비교하는 것은, 이처럼 통일된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서 기쁨으로 두 주간 동안 무교절을 지킨 것이 솔로몬 이후로는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23)

 

1.4. 율법에 따른 예배 제도의 개혁(대하 31장)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지킨 후에 율법을 따라 성전에서 일할 대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반열을 정비한다(2절). 이것은 일상적인 예배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솔로몬이 다윗의 지시를 따라 조직을 했던 것을 상기시킨다(대하 8;14).24) 예배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3절에서는 왕이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민 28-29장) 제물을 공급하는데(대상 16:37-40의 다윗처럼; 겔 45:17, 22; 46:2의 군주처럼25)) 이러한 기부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3-19절은 히스기야의 명령과 모범에 따라 백성들이 정규적인 제사를 위한 제물들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해서도 필요한 제물들과, 십일조, 소산의 첫 열매들을 바치고, 그것을 창고에 저장하고, 레위인들의 가족들을 따라 분배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민 18:4, 12-13, 21; 신 14:27-29). 이것은 아마도 아하스의 배교 기간 동안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제사 체계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개혁일 것이다(말 3:8-12; 느 13:10-13).26)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는 길이었다(4절). 이것은 성전에서 정확한 율법적 규례들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힘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칠십인역, “여호와의 집에서의 사역에 힘쓰게 하라.”),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로서 토라 공부에 힘쓰게 해야 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27) “이스라엘 자손”(5절), 즉 유월절로 하나가 된 남북의 이스라엘(6절 “이스라엘가 유다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은 제사장들을 위해서(민 18;12), 모든 것의 십일조는 레위인들을 위해서(민 18:21) 풍성하게 가져왔다(5-6절). 이러한 백성들의 기부는 곡식 추수를 마치는 달인 셋째 달부터(칠칠절, 출 23:16) 포도와 과일 추수를 마치는 달인 일곱째 달(초막절 혹은 수장적, 출 34:22)까지 계속된다(7절).28) 이와 같은 백성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헌신은 성막(출 36:2-7)이나 성전 건축 준비(대상 29:1-5; 대하 9:10-11)와 요아스의 성전 수리(대하 24:8-14) 때도 나타난다.29) 이러한 백성들의 헌신에 대해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송축하고 백성들을 축복한다(8절; 대상 16:2의 다윗의 축복, 대하 6:3의 솔로몬의 축복).

31장 11-13절은 헌물들을 쌓을 창고를 준비하고 관리 책임을 맡는 레위인들을 임명하는 기사이고, 14-19절은 임명받은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성 뿐만 아니라 모든 성읍에 있는 레위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성실하게 나눠주었음을 보도한다. 이러한 제도적인 개혁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회복을 통해서 예배가 “충실하게”(18절)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1.5. 종교개혁의 결과로 인한 전쟁에서의 승리와 번영(32장)

 

31장 20-21절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히스기야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면서(“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0절), 하나님과 율법에 신실한 그의 행동은 ‘형통함’에 이르게 했다고 결론 내린다. 이것은 역대기에 자주 등장하는 보응의 신학을 강조하는 것이다.30) 히스기야의 개혁은 결국은 개인과 국가의 번영으로 이어졌는데 그 구체적인 실례가 32장에 기록된 앗수르 왕 산헤립 군대의 패배(32:1-22)에서 나타난다. 그는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앗수르 왕을 거역하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했는데(7-8절) 이러한 신앙고백은 29-31장의 종교개혁의 결과이다. 히스기야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승리를 통해서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고(23절), 질병에서 나음을 입고(24절), 부와 영광을 누리게 되고(27-29절), 건축과 터널 공사를 성공적으로 하고(2-5, 30절)31), 죽을 때에는 백성들의 경의를 받는다(3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25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히스기야의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한” 것이나, 31절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는 표현은 개운하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역대기 기자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한 히스기야였다고 할지라도 교만했을 때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음을 넌지시 알림으로써 독자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세대의 강력한 종교 개혁과 영적인 부흥이 자동적으로 다음 세대의 부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 요시야의 종교개혁

 

2.1. 열왕기의 요시야와 시대적 배경

 

요시야는 주전 641년부터 609년까지 유다를 다스린 왕이었다(왕하 22:1; 대하 34:1). 요시야 통치 당시 앗수르 제국은 쇠락해가고 있었다. 주전 626년에 앗수르바니팔의 죽음과 더불어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신바벨론 제국의 건설자인 나보폴라사르와 메대의 동맹, 주전 655년에 앗수르로부터 독립한 애굽의 가나안 공격, 키메르인들과 스키타인들의 북쪽 경계 약탈 등은 그러한 제국 몰락을 부채질한 요인들이다.32) 이런 요인들은 요시야가 북 왕국의 남은 자들과 그들의 옛 영토에까지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을 제공한다.

열왕기하는 22장에서 성전 수리도 다루지만(3-7, 9절) 율법책의 발견과 그로 인해 여선지자 훌다에게 물어서 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길게 다룬다(22:8-20). 그러면서 23장에서는 그 ‘언약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어주면서 하나님 앞에서 다시 언약을 맺고(1-3절) 그 율법책을 따라서 요시야가 모든 종교적인 개혁을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4-25절). 히스기야에 대한 열왕기 기사가 히스기야가 하나님만을 의지한 점을 강조했다면, 여기서는 요시야가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에 신실하게 반응했는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요시야의 개혁에서 요시야가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율법책을 직접 낭독하면서 신명기의 표현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왕하 23:3; 대하 34:31)고 다짐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시내산 언약의 갱신을 하는 맹세를 백성들과 함께 한 후에 종교개혁을 시작하는 것도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따른 개혁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열왕기하는 이것을 매우 강조하는데 요시야의 모든 종교개혁이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기록한다(왕하 23:24).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도 신명기적인 용어를 써서33)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한다(왕하 23:25).34)

역대하에서 비교적 짧게 기록된 종교개혁은 열왕기하 23장에서는 훨씬 더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4절 이하에서 그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한다. 그의 개혁은 열왕기하 21장에 기록된 므낫세 왕의 우상숭배 목록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열왕기는 성전에서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숭배와 관련된 것들 제거, 유다와 예루살렘 주위 산당들에서 우상을 섬긴 제사장들 제거, 바알과 천체 숭배자들 제거, 남창의 집을 파괴, 예루살렘과 유다 전역에 세워졌던 여호와 숭배를 위한 지방 산당들 파괴와 그들의 제사장직 정지, 몰록 숭배 금지, 태양신 숭배 제거, 성전의 불법적인 제단들과 멸망산에 세운 이방신상들과 산당들 파괴를 기록한다(왕하 23:4-14). 특별히 벧엘에서 여로보암이 세운 제단과 산당을 헐고 사마리아 각 성읍의 산당까지 제거한 것도 기록하고 있다(왕하 23:15-20). 이에 더하여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무당과 점쟁이,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능한 것을 다 제거하였는데 이는 모두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을 지키기 위함이었다(23:24).

역대기 기자가 요시야가 유월절을 지킨 사건을 19절이나 할애하면서(대하 35:1-19)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열왕기 기자는 간략하게 세 절로 요약한다(왕하 23:21-23). 이 부분도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는 요시야의 명령(왕하 23:21)을 강조하고, 법대로 지킨 유월절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23:22).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관점도 역대기와는 다르다. 역대기가 요시야의 죽음이 애굽의 바로 느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불순종한 결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길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35:20-25),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별다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으며(왕하 23:29-30),35) 그의 선한 통치에도 불구하고 므낫세의 죄악이 너무 컸기에 유다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23:26-27).

 

2.2. 성전 정화와 예배의 개혁(역대하 34:1-13)

 

열왕기에 비해 역대기에서의 요시야의 종교적인 개혁에 대한 기사는 매우 짧은 편이다(34:3-7). 열왕기에서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을 요약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의지는 매우 강렬하게 기록되고 있다. 3절에서는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16세)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36)”고 하고, 제 십이 년, 즉 20세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열왕기와는 달리 요시야의 개혁이 율법책 발견 이후가 아니라 매우 이른 때부터 시작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마도 요시야의 개혁은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에는 개인적이었지만 율법책이 발견되고 훌다의 예언을 들은 후로는 공동체와의 언약을 통해 더욱 더 강력한 국가적인 사역이 되었을 것이다.37)

 역대기에 기록된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범위는 매우 넓다. 역대기에도 요시야가 예루살렘과 유다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38) 6절, “온 이스라엘 땅” 7절)까지 가서 우상들을 제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요시야의 개혁은 므낫세와 아몬 시대에 이루어진 극심한 종교적 타락에 대한 것이다. 4-5절에서는 요약적으로 요시야 왕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다른 우상들을 제거하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39)을 파괴하고, 제사장들의 뼈를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33장 19, 22절에서 므낫세와 아몬 왕이 세운 것들이다. 요시야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북이스라엘까지 나아가서 우상들을 파괴하고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출 32:20 참조)고 한다(6-7절). 시므온과 납달리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제일 남쪽과 북쪽까지 이르러 온 이스라엘을 정화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40)

성전 정화에 대한 기록은 율법책을 발견한 기사의 일부로 등장한다(8-13절). 요시야는 즉위 18년째, 그의 나이 26세에 땅과 성전을 정화시킨 후에 성전 수리를 시작한다. 왕은 고위 관리들에게 성전 수리를 지시하고, 그들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모금한 돈을 주어 신실한 레위인들과 목수들과 건축자들을 통해서 성전이 수리되도록 한다. 특별히 역대기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모금한 돈이 레위 사람들에 의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즉, 성전 수리는 모세, 다윗이나 솔로몬의 시대처럼 온 백성들의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12절에 나오는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성전 수리를 하는 동안 이들이 음악을 연주했음을 암시한다.41)

히스기야에게서처럼 요시야 왕에게도 가장 중요한 개혁의 대상은 성전과 예배였다. 이 성전과 예배의 개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궁전을 정화하여 그 거룩한 궁전에서 하늘 왕의 뜻을 따라 예배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2.3. 율법을 따른 개혁(34:14-33)

 

요시야의 개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따라 강력한 개혁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열왕기보다는 분량이 조금 적지만 역대기도 그 점을 매우 강조한다. 14-21절에는 율법책을 발견하여 왕이 읽고 탄식하는 장면까지 기록하고 있고, 15-28절은 요시야가 여선지자 훌다에게 신하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는 기사이며, 29-33절은 요시야가 백성들과 율법책을 읽고 언약을 체결하여 개혁을 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대기 기자에게는 성전에서 율법을 발견한 사건이 이전에 이루어진 요시야의 개혁과 성전 수리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으로 보였을 것이다.42)

성전 수리를 하던 중에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것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이었다(14절). 이것은 아마도 성전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로 된 원통형 모양의 자료였을 것이다. ‘율법책’이라는 어구가 신명기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신 17:18; 28:58,61; 29:20,21,27; 30:10; 31:24,26; 수 1:8; 8:31,34; 23:6; 24:3)43) 반드시 이 책을 신명기로 볼 필요는 없다.44) 모세오경 전체의 사본일 수도 있다.45) 요시야의 개혁이 신명기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전에서 신명기를 발견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요시야가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 보인 반응은 자기 옷을 찢으며 애통해한 것이다(19절). 왜냐하면 그는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진노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율법책이 성전에 감춰져 있었다는 것은 대적들의 침략을 대비해서 의도적으로 이뤄진 것일 수도 있지만, 아몬이나 므낫세 시대에 율법을 무시한 배교의 결과로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46) 선왕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에 불순종했을 때의 심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에 비해 요시야는 율법을 존중하고 불순종의 결과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요시야는 자신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선왕들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신하들을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보낸다. 아마도 요시야는 이 말씀의 실효성에 대해서보다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심판을 철회하시길 간청하려고 보냈을 수도 있다.47) 훌다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은 유다의 멸망(24-25절)과 멸망 전의 요시야의 평안한 죽음이었다(28절). 요시야가 유다의 멸망을 보지 않고 평안하게 죽을 것이라고 한 이유는 그의 태도가 성전 신학에서 요구하는 겸비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27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하 7장 14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의 조건에 맞는다.4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용서는 요시야 시대에만 한정된다. 그 이유는 요시야 이후 세대의 왕들은 여전히 율법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책을 발견한 이후의 요시야의 모습은 개혁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주고” 함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49)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을 말씀을 이루는” 언약을 맺는다(31-32절). 이런 국가적인 언약식을 통해 요시야는 더욱 더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고, 최소한 그가 사는 날 동안에는 백성들이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33절). 35장에 나오는 유월절 준수 기사도 율법책의 발견에 따른 결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역대기 기자는 지금까지 예배의 회복만이 포로후기 공동체의 진정한 회복을 위한 기초임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그러한 회복의 또 다른 조건으로 개혁과 회복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2.4. 유월절 준수(대하 35:1-19)

 

요시야 왕은 율법에 따라 유월절을 지킨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많은 비정상적인 경우들(한 달 늦게 지킨 것이나 부정한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은 것)이 있었지만 요시야의 유월절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다. 히스기야 때 중앙 성소에서 성대하게 지켜진 유월절이 요시야 때에는 율법을 따라 잘 제도화되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50) 그래서 역대기 기자는 레위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역할을 부각시키고(3절), “이스라엘 왕 다윗의 글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4절),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전하신 말씀을 따라”(6절),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12절), “다윗과 왕의 선견자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명령한 대로”(15절) 등의 표현을 반복하면서 유월절 준비부터 실행까지 모두 율법에 따른 것임을 매우 강조한다. 또 역대기의 유월절 기사는 열왕기하 23장 21-23절에 요약된 기사를 굉장히 확대시킨 것이다. 레위인들의 역할에 대해서 집중적인 조명을 하고 있고, 의식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51)

2-9절은 레위인들이 서열대로 준비하고(2-6절), 유월절 제물이 왕과 방백들에 의해서 공급되는(7-9절) 준비 과정을 묘사한다. 왕과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제물의 양은 엄청나게 많은데, 히스기야의 유월절의 그것보다 두 배 정도 많지만(30:24)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보다는 훨씬 적다(대하 7:5; 왕상 8:63).52)

10-16절에서는 레위인들이 주도적으로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며, 유월절 양을 굽고 다른 성물들을 삶아서 백성들에게 제물을 나눠주는 등의 역할을 하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피를 뿌리면서 저녁때까지 유월절 제사가 드려지는 과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15절에서는 레위인들이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레위인들을 위해서도 제물을 준비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노래하는 자들은 유월절 제사가 드려지는 동안 그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17-19절은 요시야 왕 때 지킨 유월절에 대한 엄청난 평가를 담고 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18절) 이것은 요시야 시대의 유월절 준수가 통일왕국 시대에도 이뤄내지 못했던 모세의 율법을 정확하게 따른 유월절 준수임을 강조한다.53) 또 이 평가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역할과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함된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54)

남북의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백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 된다. 통합된 이스라엘이 하나님나라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었던 축제가 바로 유월절이었던 것이다.55)

 

2.5.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좋지 못한 요시야의 결말(35:20-27)

 

35장 1-19절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절정을 보여주었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요시야의 삶의 결말은 매우 희망찬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가 묘사하는 요시야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하다. 역대기 기자는 요시야가 종교개혁과 유월절 준수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므깃도에서 애굽의 바로 느고와 맞섰다가 죽는 장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당시 바로 느고는 주전 610-595년 사이에 애굽을 다스린 제 26왕조의 두 번째 왕이다. 그는 신바벨론 제국이 가나안 땅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지막 전투를 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를 돕기 위해서 갈그미스로 가고 있었을 것이다(20절).56) 이러한 애굽이나 앗수르로부터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요시야는 느고를 막으로 나간다. 하지만 그 다음의 장면은 독자들을 당황케 만든다. 애굽 왕이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21절)고 말한 것은 자신의 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 나오는 22절에서는 역대기 저자가 직접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요시야가 듣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57) 이것은 매우 충격적으로 보이지만 역대기 기자의 분명한 시각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법대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왕이라고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역시 역대기 기자의 보응 신학의 타당성을 나타낸다.58)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대기 기자는 요시야가 변장을 하는 모습이나, 활쏘는 자들에 의해 중상을 당한 장면이나, 전쟁터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장면들을 묘사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악한 왕 아합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왕상 22:29-40).59) 이것은 물론 히스기야나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끝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유다의 미래를 더 강력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요시야가 전쟁터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죽어서 평안하게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갔음을 말하는 부분이나(24절), 24-25절의 요시야의 죽음에 대한 백성들의 비통한 애도나, 26-27절의 요시야의 선한 통치에 대한 평가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불순종은 그의 선한 통치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요시야 왕은 사실 온 백성들이 죽음을 애도한 유일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60)

요시야 왕의 좋지 않은 결말은 개혁된 하나님나라는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비해야 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강력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는 순간부터 쇠퇴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강조한다.

 

 

3.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왕들(요아스, 예후, 히스기야, 요시야)의 기사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61) 먼저, 그들은 모두 가나안 신들 혹은 이방 신들을 섬기는 선왕들을 승계했다. 둘째, 그래서 각 개혁들은 가나안 종교나 이방종교에 반대하는 것들이었고, 신명기에서 가증한 것들로 규정된 것들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셋째, 남왕국의 개혁들은 성전 수리와 성전 운영을 위한 조직의 정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넷째, 그러면서도 이들의 개혁들은 완벽하지 않아서 그들 이후 세대들이 타락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 개혁도 이와 유사한 점들을 갖고 있다. 첫째, 이들은 둘 다 악한 선왕들을 승계했지만 통치 초기부터 강력한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철저하게 우상들과 산당들과 그 제사장들을 제거하여 정화 작업을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하나님께 받은 징계와 이스라엘 전체의 고통에 대한 반성 때문일 것이다.

둘째, 둘 다 정치적인 개혁보다는 성전 정화와 예배의 개혁에 우선적으로 헌신했다. 이것은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예배하고 앗수르라는 강력한 제국을 의지한 선왕과 백성들에게 누가 참된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보여주어야 했기에 정확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개혁에서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이들을 직분에 따라 배치하여 사역이 효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생계의 걱정 없이 직분을 수행하도록 하는 일도 잘 지원하고 있다.

셋째, 이들은 둘 다 하나님의 율법을 중시하고 그 율법에 규정된 대로 타락한 종교를 개혁했다. 율법대로 성전을 정화하고, 율법대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직을 정비하고, 율법대로 우상들과 바알 제단들과 산당들을 파괴했으며,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지켰음을 역대기 기자는 강조하고 있다.

넷째, 이들은 공통적으로 남북 이스라엘의 재통일과 하나 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참된 신앙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벗어나버린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성전으로 초대하고, 그들의 지역들까지 정화한 것은 솔로몬 이후 분열된 하나님나라의 통합에 대한 노력이다. 이러한 ‘온 이스라엘’에 대한 노력은 포로귀환 공동체의 연합에 대한 강력한 시사점을 주었을 것이다.

다섯째, 이들은 둘 다 유월절을 성대하게 지켰다. 이것은 네 번째 공통점과 관련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는 길이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탄생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자요 왕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었다.

여섯째, 히스기야나 요시야는 둘 다 역대기에서 다윗이나 솔로몬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의 성전 관련 개혁이나 종교 개혁의 모습은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다윗과 솔로몬의 중심과 선한 통치를 반영한다. 이것은 역대기 독자들에게 이들의 개혁은 새로운 다윗, 새로운 솔로몬으로 오실 메시야에게서 온전히 완성될 것임을 알려주고,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집’으로서의 성전에 대한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열정이나 성전의 정화에 대한 그들의 노력은 모두 참된 예배를 회복시키러 오신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과 노력을 분명하게 예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개혁은 참으로 당대에 놀라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 이후에 그들은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연약함도 보인다. 이것은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나 강력한 부흥과 개혁을 경험한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함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이상의 공통점들에 비하면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보여주는 차이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먼저 환경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히스기야의 개혁이 여전히 살기등등한 앗수르의 침략을 눈앞에 두고 이루어진 반면에 요시야의 개혁은 앗수르가 쇠퇴해가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요시야의 개혁이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중심으로 더 강력하게 전개된 반면에 히스기야의 개혁은 이전 세대가 겪은 재앙과 심판에 대한 반성과 회개로부터 그 동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차이점은 그렇게 크지 않다. 히스기야의 기사에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개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요시야도 율법책을 읽고 이전 세대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인식하고 회개의 일환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유월절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히스기야의 경우는 상황을 많이 고려하여 둘째 달 14일에 지키고, 부정한 자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은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등의 엄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반면, 요시야의 유월절은 율법에 규정된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중요한 차이점은 아니다. 히스기야의 상황은 유월절을 지키기에 용이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는 유월절의 본질,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에 충실하고자 했다. 반면, 요시야의 유월절은 요시야의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유월절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네 번째로, 히스기야의 경우에는 종교 개혁의 결과로 산헤립의 침략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고,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는 등의 보응 신학의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요시야의 경우는 덜 명확하다. 오히려 요시야의 불순종으로 인한 죽음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보응 신학의 어두운 면을 더 강하게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히스기야가 분열왕국 이후에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세우는 솔로몬과 같은 왕으로서의 희망을 보여주었다면, 요시야는 이상적인 통일 왕국의 왕의 면모를 가졌으면서도 이후의 세대에 의해서 그 모든 것이 와해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했음을 강조하는 것 같다. 즉, 역대기에서의 이러한 차이점은 그들이 처한 시대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4.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이 한국교회 개혁에 주는 의미

 

4.1. 예배의 회복 - 하나님 중심적 삶의 회복

 

4.1.1. 우상숭배적 요소의 정화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의 개혁의 초점은 성전과 예배였다. 선왕들이 백성들을 이방신과 우상숭배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성전을 정화하고 하나님에 대한 제사 의식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래서 히스기야와 요시야 본문의 많은 부분에서 우상과 산당들을 제거하고, 파괴하고, 가루로 만들고, 불태웠다는 점을 매우 강조한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선왕들이 보여준 불신앙과 우상숭배는 하나님나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왕권, 하나님의 주권을 백성들 가운데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이 인간에게로 넘어간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께로 돌려드리고, 미신화되고 우상화된 예배를 개혁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즉, 그들의 정신은 Soli Deo Gloria 였던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주인은 삼위 하나님이신가? 성부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도록 부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히 실현되고 있는가? 교회 내에 인간의 권력이나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지는 않는가? 교회 내에 세상이 들어와 있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을 먼저 해야 할 때다. 교회 내에서 하나님보다 높아진 모든 것을 철저하게 제거하고 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먼저, 하나님보다 높아진 인간 권력들이 교회 내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총회나 노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과 불의하고 부정한 선거, 교회를 특정인의 기업처럼 사유화하거나 세습하는 일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직분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이 회복되어야 한다.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에 왕과 관리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오직 하나님 중심의 나라를 회복시키고,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직분에 헌신했듯이 목사, 장로, 집사 등의 모든 직분자들이 하나님이 교회와 온 세상의 주인으로 높여지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종교개혁과 기도를 통한 산헤립 군대의 전멸 이후에 히스기야가 스스로 교만했을 때 하나님나라에 닥쳤던 엄청난 위기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자랑, 인간의 권력, 인간의 영광이 철저하게 교회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돈과 건물과 재물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이 더 풍부해지고 더 큰 건물을 교회가 소유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가지고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 사용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 번째로 예배에서 미신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점쟁이들처럼 한 개인이나 공동체의 미래를 예언하는 일이 척결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단지 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축복을 위한 도구처럼 여기게 하는 모든 기복적인 기도들도 개혁되어야 한다. 기복적인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간구가 회복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교회 내에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물질로 전락시키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철저하게 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간적인 구호들이 난무하는 현란한 현수막들과 같이 하나님께로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도 제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가 필요하다. 히스기야의 보발꾼들이 온 이스라엘에 다니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던 것처럼 교회는 늘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모든 삶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회개를 해야 한다. 성도 개인과 교회의 부정, 불의, 세속화로부터 끊임없이 돌아서는 일, 이것이 교회 정화의 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강단은 회개 설교, 회개 복음을 더 외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도 회개였고, 루터나 종교개혁자들의 강조 사항도 죄로부터의 회개였다. 물론 고신 정신도 진리와 회개 정신이었다.

 

4.1.2. 하나님 중심적 예배의 회복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은 하나님 중심적 예배, 이스라엘 내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의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공예배의 모든 요소들은 하나님께로 집중되어야 한다. 찬양이나 설교나 헌금이나 성례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상기시키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찬양하도록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소위 은혜 받는 예배는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자들이 성찬이나 세례, 교회 음악 등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논쟁을 벌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기에 우리에게도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의 직분들은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교회에 필요하다고 도입한 것들 중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악기나, 프로젝터, 스크린, 주보, 찬양대 등 그 어떤 것들도 하나님께로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4.1.3. 예배를 섬기는 직분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가장 힘썼던 것 중의 하나는 예배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조직을 정비하고, 그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었다. 즉, 예배를 직접 인도하고 관리하며 섬기는 성직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이었다. 히스기야나 요시야처럼 당회나 제직회는 성직자들이 생계에 대한 염려 없이 올바른 예배 인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십일조’ 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그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지원한 것처럼 예배를 수종드는 사역자들의 처우에 대한 교단적 차원에서의 일관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단은 교역자 수급을 잘 조정하고 개 교회들에서 전임 사역자들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어서 사역할 수 있는 모델들을 제공해야 한다.

 

4.2.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요시야의 개혁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율법책의 발견과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이스라엘이 가장 이스라엘다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기되 그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가능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에 달려 있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의 정신도 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 이었다. 한국 교회의 개혁도 말씀의 개혁, 말씀대로의 개혁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학 교육이 더 강화되어야 하고, 교회 내에서의 말씀 교육, 설교가 철저하게 성경적이어야 한다. 종교개혁 시대처럼 교리교육이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확산될 수 있다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분명한 지표를 갖게 될 것이다.

 

4.3. 교회의 정체성과 하나 됨의 회복 - 세례와 성찬의 회복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국가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었다. 또 이들은 종교적인 정화에서뿐만 아니라 유월절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온 이스라엘’이 동참하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유월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탄생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절기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자부심을 회복시키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며, 제사장나라로서의 소명의식을 고취시키는 절기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 개혁에 있어서도 ‘유월절’의 회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성찬과 세례를 제정해주셨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애를 써서 회복시키려고 했던 성찬과 세례의 의미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성찬과 세례가 현재보다 더 강조되되 이 성례들의 신학적 의미가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왕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정체성, 자부심, 소명이 회복되는 시간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예식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라는 사실이 분명히 체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4.4. 목숨을 건 이전 세대의 개혁, 지속되어야 하는 개혁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오랜 기간 만연했던 악한 선왕들(아하스, 므낫세)의 부패를 개혁하는 것이었기에 목숨을 건 개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것에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게 하는 일은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과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고 백성들을 개혁하기 이전에 자신들을 먼저 개혁하고 자신들이 먼저 개혁에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이들이 종교개혁에 목숨을 걸고 헌신했을 때 국가와 종교의 지도자들도 자발적인 헌신의 모습을 보인다(31:1-5; 34:33; 35:7-9). 이들의 종교개혁은 아무리 부패한 교회라도 개혁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이 부패할 대로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목숨을 던졌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그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 교회의 상황도 아하스, 므낫세, 500년 전의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많은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개혁에 목숨을 던진다면 분명히 희망은 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 가지 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은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만이 아니라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기사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위대한 종교개혁과 국가적인 부흥이 일어난 이후에 히스기야의 교만, 요시야의 불순종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선왕의 개혁을 이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악하고 부패한 나라를 만들고 만다. 요시야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개혁과 반대되는 길들로 나아가다가 결국은 나라의 멸망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아무리 위대한 종교개혁도 자동적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끊임없이 우리 자신과 교회를 말씀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언제 교회는 므낫세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늘 개혁되어야할 오늘날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

 


1) 히스기야의 통치 연대를 주전 726-69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북왕국까지 나아가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북왕국의 멸망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섭정 기간을 인정하고 716년부터 공식적인 통치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Ralph W. Klein, 2 Chronicles,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2), 414.

2) T.R. 홉스, 열왕기하, WBC, 김병하 역(서울: 솔로몬, 2008), 492.

3) David Janzen, "The Sins of Josiah and Hezekiah", JSOT 37. 3(2013), 362

4) Klein, 2 Chronicles, 413; 레이몬드 B. 딜라드, 역대하, WBC, 정일오 역(서울: 솔로몬, 2005), 362-364 참조. 

5) 딜라드, 역대하, 370.

6) Klein, 2 Chronicles, 414-415.

7) Klein, 2 Chronicles, 415.

8) 딜라드, 역대하, 373.

9) Klein, 2 Chronicles, 417.

10) Klein, 2 Chronicles, 446.

11) Klein, 2 Chronicles, 422.

12) Klein, 2 Chronicles, 421; 딜라드, 역대하, 372.

13) Klein, 2 Chronicles, 425.

14) 딜라드, 역대하, 375-376.

15) 딜라드, 역대하, 385.

16) Klein, 2 Chronicles, 440.

17) Klein, 2 Chronicles, 435.

18) S. Talmon, "Divergences in Calenar-Reckoning in Ephraim and Judah," in Vetus Testamentum 8(1958, no 1), 58-62 참조.

19) 딜라드, 역대하, 386.

20) 딜라드, 역대하, 384.

21) Klein, 2 Chronicles, 439-440.

22) Klein, 2 Chronicles, 434.

23) Klein, 2 Chronicles, 441.

24) Klein, 2 Chronicles, 447.

25) 딜라드, 역대하, 395.

26) 딜라드, 역대하, 395; J. A. Thompson, 1,2 Chronicles, New American Commentary (Broadman & Holman Publishers), 358.

27) Thompson, 1,2 Chronicles, 358.

28) Klein, 2 Chronicles, 450.

29) Klein, 2 Chronicles, 449.

30) 딜라드, 역대하, 397, 411 참조.

31) 앗루르 왕이 아하스 시대에 성벽을 파손했는데 이것을 히스기야가 보수했다는 것은 앗수르 왕에 대한 정치적 반역을 의미했을 것이다. 딜라드, 역대하, 406.

32) T.R. 홉스, 열왕기하, 607.

33) 이것을 이사야는 그의 논문 “요시야의 신명기적 개혁운동에 나타나는 모세적 색채,” 문학과 신학 15(2010, vol. 6)에서 이러한 표현들이 요시야를 모세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34) 모세의 율법을 따른 선한 왕의 제의적 개혁은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로 잡혀간 다윗 왕가의 후손들에게 일종의 회복의 길과 소망을 주었다고 보기도 한다. Janzen, "The Sins of Josiah and Hezekiah" JSOT 37.3(2013) 362, 364 참조.

35) Janzen은 39세의 이른 나이에 죽은 요시야 기사를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보지 않도록 한 하나님의 자비에 의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The Sins of Josiah and Hezekiah", 364.

36) 개역개정에는 “비로소 찾고”로 되어 있지만 원문은 새번역처럼 “찾기 시작하였다”로 되어 있다.

37) Klein, 2 Chronicles, 494.

38) 이 지명들은 사마리아가 멸망당한 이후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남쪽으로 온 피난민들이 거주했던 성읍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열왕기의 기사들은 그럴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든다. T.R. 홉스, 열왕기하, 634.

39) 많은 번역본들(새번역)이 번역하듯이 이것은 분향단을 가리키는 것 같다. Klein은 ‘재실’로 번역한다. Klein, 2 Chronicles, 499.

40) Klein, 2 Chronicles, 497.

41) 딜라드, 역대하, 440.

42) Klein, 2 Chronicles, 502; 딜라드, 역대하, 440.

43) T.R. 홉스, 열왕기하, 612.

44) 딜라드, 역대하, 440에서는 신명기 혹은 신명기의 원시본일 것이라고 본다.

45) Klein, 2 Chronicles, 502.

46) Thompson, 1,2 Chronicles, 377.

47) Klein, 2 Chronicles, 503-504.

48) 딜라드도 여기에 동의한다. 역대하, 442.

49) 이런 신명기적 표현들은 신명기 6:17; 10;12; 11:13; 30:10 등에 등장한다.

50) Klein, 2 Chronicles, 516.

51) 딜라드, 역대하, 453.

52) Klein, 2 Chronicles, 520-521.

53) Klein, 2 Chronicles, 524.

54) Klein, 2 Chronicles, 524.

55) 딜라드, 역대하, 460.

56) Klein, 2 Chronicles, 524.

57) 딜라드, 역대하, 453.

58) 딜라드, 역대하, 458.

59) 딜라드, 역대하, 459; Klein, 2 Chronicles, 526-527.

60) Klein, 2 Chronicles, 528.

61) T.R. 홉스, 열왕기하, 60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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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논문]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아래의 논문은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무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12월 3일 서울 금란교회) "85차 정기논문 발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한 것이다.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김영무 목사 (남아...
    Date2016.12.14 By개혁정론 Views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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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논문]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주기철 교수 (고신대 신학과 신약학) 들어가면서 본 글의 목적은 2016년 고신 교단 설립 70주년에 즈음하여 그간 교단 내에서 발간 된 ‘고려신학보’, ‘...
    Date2016.12.13 By개혁정론 Views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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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논문]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김 순 성 교수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Date2016.11.28 By개혁정론 Views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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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No Image

    [논문]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김영종 교수 (고신대 교양학부 조교수, 교목)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의 고신신학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
    Date2016.11.17 By개혁정론 Views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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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논문]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1938년 제 27회 대한예수교장...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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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논문]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미셸 조네 박사(Dr. Michel Johner)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장칼뱅대학 학장 A. ...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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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논문]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허 순 길 박사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전 원장)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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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최윤갑 교수 (고신대 신학과)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70년의 세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지난 70년의 세월 속에 고신대학교와 함께 하...
    Date2016.11.11 By개혁정론 Views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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