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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지난 5월 30일(화)에 있었던 서울포럼에서 발표된 논문과 논평입니다. - 편집장 주 -

  

 

 

교회의 일체성에 대한 개혁파 신학의 입장

: 역사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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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교수

 

서론: 개혁파 신학의 특성

 

        교회의 일체성을 다루기 전에 개혁파 신학의 기본적인 특성을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개혁파 신학은 신학 방법에 있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1)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모든 교리들을 철저하게 성경에 의존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간단히 말하면 신학 원리상 개혁주의는 어떤 특별하고 새로운 교회론이 아니라 성경에 충실한 교회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성경적 교회론은 아무 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성경 연구만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수많은 신학 논쟁 속에서 잉태되었다.2) 그렇기 때문에 개혁파 신학은 성경을 절대적 규범으로 인정하면서도 재세례파와는 달리 교회사 속에서 제정된 신조들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개혁파는 종교개혁의 전통들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적 전통들도 성경에 일치하는 한 자신의 전통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개혁신학이 이해하는 교회 일체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은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적 논의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개혁신학이 교회의 일체성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역사신학적 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는 이 짧은 글에서 이것과 관련된 모든 교회론적 논쟁을 다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개혁파의 교회 일치의 견해에 영구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나 신학적 논쟁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성경적 고찰

 

“교회는 하나다.”―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성경적 진리이다. 이 명제를 거부하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성경은 또한 그 교회가 어떻게 하나인지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가르침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에베소서 4: 5-7)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성경적 가르침은 니케아 신경(381년)에서 보다 정형화되어,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의 하나됨을 이야기하지만 교회의 하나됨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도전을 받았다.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면서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사도행전 15: 39).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고린도교회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서로 분쟁하고 있었다(고린도전서 1:12). 이러한 예들을 볼 때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다.”라는 명제는 “교회에서 분리하는 것은 죄,” 더 나아가 “교회에서 분리하면 그 자체로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는 논리적 결론이 도출된다. “교회는 하나다.”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며, 여러 교회로 분리된 현상은 인간의 죄의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정당화하는 신학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교회의 하나됨(unity)이 교회의 획일성(uniformity)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다양성”의 이름으로 교회의 분리를 쉽게 정당화하는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

        성경이 교회의 하나됨을 이야기하면서도 또한 ‘분리’3)를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하나됨은 ‘잡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교회의 연합운동이 혼합주의를 옹호하거나 조장하는 것으로 가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는 예수의 이름 안에 온갖 세속주의, 물량주의, 기복주의 등등이 들어와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보다는 교회의 정체성까지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명한다(딤후 3:5).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악을 행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라고 명하였다(고전 5:13). 이것은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의 일체성이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교회의 거룩성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을 때, 신자는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든지, 아니면 그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성경은 분리 자체를 정죄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서는 분리를 신자들에게 엄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분리가 정당한지, 또한 어떤 분리가 정죄를 받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세심한 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에서 성경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과 교회의 거룩성 사이에 어떤 긴장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보게 된다. 교회의 거룩성을 강조하게 되면 교회의 분리로 이어지고,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면 교회의 거룩성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사실, 교회 역사 속에서 이 긴장감이 교회의 일체성을 둘러싸고 서로 간의 격렬한 논쟁이 되었다.

 

2. 고대교회에서의 교회의 일체성4)

 

사도들이 교회를 다스렸을 때, 교회는 그야말로 사도들이 다스리는 한 교회였다. 그 당시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교회는 그 자체가 교회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참 교회를 결정하는 기준이 점차적으로 필요해졌다. 특히 영지주의, 몬타니즘, 그리고 마르시온과 같은 고대교회의 이단들의 등장으로 교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기준들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그 결과 교회와 교회가 아닌 모임을 판별하는 기준들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들은 크게 신앙의 준칙(the rule of faith), 정경, 주교 혹은 감독직으로 구분될 있는데, 신자들은 사도신경과 같은 공개적인 신앙의 준칙을 통하여 신비적 신앙 전통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교회에서 분리시켰고, 정경의 확립을 통하여 구약을 부정하는 마르시온주의자들을 교회에서 정죄하였고, 계시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몬타니스트들에 대하여 교회의 공적 직분인 감독직을 사수함으로 응전하였다.5)

        콘스탄틴 황제의 전환(313년)을 통하여 교회의 일체성 역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황제는 더 이상 교회를 박해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교회를 보호하고 하나됨을 지키는 수호자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실제로 광대한 제국에 분포되어 있는 수많은 개별 교회들을 실제로 하나로 묶는 것은 강력한 교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세속 권력에 의한 교회의 하나됨은 종교의 관용이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여질 때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황제에게서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게 되자 교회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기만 하고 해결되지 못하였던 여러 가지 신학적 논쟁들에 휩싸이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성자(聖子)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였다. 이 아리우스주의는 기존의 신앙의 준칙, 정경, 감독직으로 교회의 분열을 해결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들도 신앙의 준칙, 정경, 그리고 감독직을 다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교리를 성경에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성경에 호소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문제는 황제가 소집하고 황제가 주관한 두 차례의 세계적 공의회(니케아 공의회: 3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년)에 의해서 해결이 되었다.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일체성의 확보는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성경만 가지고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공의회는 하나의 전례가 되어서 교회 안에 새로운 성격의 분열이 있을 때마다 공의회에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동방교회는 공의회의 결정을 무오한 것이라고 보았고, 니케아 신경이후 통틀어 개최된 주요한 7개의 세계 공의회의 결정을 성경과 더불어 교회의 일체성의 최종적 근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일체성은 황제라는 절대적인 세속 권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1054년에 동서방교회가 공의회를 통해서 교회의 일치를 보지 못한 것은 교리적인 차이도 있었지만, 두 교회 모두를 관할 할 수 있는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큰 이유였다. 이것은 교회 일치에 있어서 세속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5세기에 오면, 교회는 또 다른 성격의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분열은 교리적인 문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징(discipline)과 관련되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도나티스트(Donatist)라고 불린 이들은 카톨릭파6) 교회가 배교자들에 대해서 관대한 조치를 취하자 자신들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거룩한’ 교회를 구성하였다. 그들은 더 나아가 카톨릭파에서 받은 세례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그곳에 소속된 교회에서 이명한 신자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다. (물론 도나티스티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재세례가 아니라 최초의 세례이다) 도나티스트파들이 카톨릭파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카톨릭파의 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하여 서방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은 도나티스트들의 세례를 인정하였는데, 이것은 오히려 도나티스트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세례를 인정한다면, 자신들의 교회됨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세례와 교회를 조심스럽게 구분하였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세례의 ‘유효성’과 세례의 ‘유익성’은 구분된다. 세례 그 자체가 세례의 재료와 형식에 있어서 올바로 시행되는 한, 비록 그 세례를 시행한 사람의 도덕적 자질이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유효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교회에서 분리된 어떤 집단에서 세례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세례 자체는 유효하다. 따라서 그 사람에게 나중에 다시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세례를 받은 사람이 계속 그 집단에 머무는 한 그 세례가 주는 유익, 즉 중생과 죄사함의 은혜는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은혜는 오직 하나의 카톨릭 교회만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할 것이 있다. 도나티스트는 교회의 거룩성을 강조하고 어거스틴은 교회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이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결코 교회의 하나됨 때문에 교회의 거룩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재세례를 거부하였다는 것이 교회의 거룩성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무자격자’의 세례가 교회의 분열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세례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교회의 분열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거스틴의 주장을, 교회가 우상숭배와 배교자로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 교회에 무조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배교자의 권징에 대한 어거스틴의 기준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구원론이나 삼위일체론과 같이 중요한 부분에서 어거스틴의 신학을 대부분 수용하는 개혁파 신학은 교회의 일체성에 대하여서도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개혁파 신조가 로마 교회를 거짓교회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들이 시행한 세례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중세 교회에 있어서 교회의 일치7)

        

중세 교회사에서 교회 일치와 관련되어 일어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점차적인 분리와 서방에서 교황권의 증가였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리는 교리와 권징의 2가지 핵심 문제를 안고 있었다. 교리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성령에 관한 필리오케(filioque)의 문제였다.8) 비록 니케아 신경에 필리오케의 문구가 없었으나 서방은 점차적으로 성령의 발출을 필리오케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점차적으로 서방의 지역 공의회의 신조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동방교회는 이것을 격렬하게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는 서방교회가 임의로 아무런 적법한 절차 없이 신조에 이 문구를 삽입하였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필리오케의 교리 자체가 삼위일체 교리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9)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교리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권징에 대한 부분에서도 심각하게 대립하였다. 그것은 교황의 지위에 관한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교회의 사법적 수위권(judicial supremacy)에 관한 것이었다. 동방교회는 은사와 영예에 있어서 교황의 우위성(primacy)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들은 서방교회가 베드로의 사도직을 있고 있다는 것, 베드로가 다른 사도에 비해서 특별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방교회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주교좌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지위를 누리여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영예와 은사의 우위가 사법적 우위를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즉, 교황은 모든 동등한 주교들 중에 순서상 첫째일 뿐이지(primus inter pars) 최고의 수장은 아니다.10)

        결국 이 두 교회는 중세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 민족적, 문화적 대립을 겪다가 1054년에 서로를 파문하면서 분리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교회 일치에 대해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는데, 교리와 직분의 본질적인 요소에 있어서 합의가 있지 않으면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서방교회와 분리한 이후 동방교회는 7대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결정을 중심으로 교회의 가시적 일체성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서방교회와 같은 종교개혁을 경험하지 않았고, 교회의 분열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체교회(particular church)11)는 주교를 중심으로 피라미드 형의 계급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체교회들 사이에서는 상호간의 평등에 의한 일체성을 강하게 발전시켰다.

         1054년 이후 동방교회가 서방교회의 사법권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교황을 머리로 하는 로마교회는 서방교회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동방교회의 정치체제가 원로회(senate)라면, 서방교회의 정치체제는 왕정(monarchy)이었다. 이것은 서로마제국의 몰락이후 권력의 공백기를 교황이 점차적으로 메웠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서유럽에서 황제의 권한이 커졌을 때도 교황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지는 않았다. 서방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중세기간 동안 자신들의 일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서방교회는 동방교회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서방교회가 교황에 의한 일체성을 유지하였지만, 이 일체성을 너무 강조하여서는 안 된다. 서방 교회는 교황 밑에 너무나 다양한, 심지어 모순적인 신학 사조들이 섞여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도미니칸 학파와 프란시스칸 학파의 대립,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립, 어거스틴주의와 세미 펠라기안주의의 대립 등 중세는 통일된 신학을 제시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국가간의 정치적 대립은 두 교황 혹은 세 교황의 대립으로 나타났다(The Great Schism, 1378-1417). 이 분열은 최종적으로 고대교회와 같이 공의회를 통하여 해결을 보았다. 이 점에서 공의회는 교회의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이 역사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 역사적 선례는 이후의 서방교회의 공의회 운동(Conciliar Movement)들의 원천이 되었다.12)

        하지만, 일단 공의회가 끝난 후 교황이 선출되자 교황은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교회를 강압적으로 자신의 통제 하에 두었다. 이런 교회 정치는 교황이 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세속적 군주가 그 권위에 순종하고, 교황의 통치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다는 조건 속에서 가능하였다. 실제로 우남상탐(Unam Sanctam, 1302)은 교회는 절대적 의미에서 하나이고, 그 교회에서만 구원이 있고, 그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이며, 그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기 때문에 황제를 비롯하여 “모든 인간들이 교황에 순종하는 것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였다.13) 우남상탐은 공의회 운동이 있기 전에도 하나의 선언문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점차적으로 로마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었고 로마 카톨릭교회에 있어서 교회 일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입장이 되었다. 

 

4. 종교개혁 시대에 있어서 교회의 일치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은 중세적 교회 일치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교황과 공의회는 더 이상 교회 일치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개혁가들에게 분명해졌다. ‘오직 성경’은 교회론에 적용되었을 때 ‘오직 그리스도’라는 문구로 표현되었다. 로마교회가 ‘성경 전통’ 그리고 ‘그리스도 교황’을 이야기하였다면,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였다. 로마 교회가 그리스도를 불가시적 머리(invisible head), 교황을 가시적 머리(visible head)로 구분하고 교황에 대한 순종을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선언한 것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은 그런 구분자체를 거부하고 오직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 결과 종교개혁과 교황의 분리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해서 거짓 교회에서 스스로를 분리시켰으며, 더 나아가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거짓 교회인 로마교회를 참 교회(자신들의 교회)에서 분리시켰다고 생각하였다.

        종교개혁은 로마교회와 분리를 하게 되자 당장 교회의 일체성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종교개혁은 로마 교회와 분리하면서 교회의 일체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부인한 것은 교회에 대한 로마식 이해, 즉 교회의 일체성이 가시적 머리인 교황에 근거하고 있다는 교리였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교회의 일체성을 교황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종교개혁에 있어서, 순수한 말씀의 설교와 그것에 따는 성례의 신실한 집행은 참 교회의 주요한 표지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두 표지는 교회의 실제적 하나됨을 이루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순수한 말씀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비록 이 표지가 로마 카톨릭 교회를 거짓 교회로 정죄하는 것에는 성공하였지만, 순수한 말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종교개혁은 크게 루터파, 재세례파, 개혁파, 영국교회로 나뉘게 되었는데, 서로를 로마교회에게 하듯이 거짓 교회로 정죄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한 교회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각 개신교회들은 순수한 말씀이 교회의 주요 표지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것을 자신들의 신조 혹은 신앙고백서에 표현하였다. 심지어 성경만을 인정하고 신조 자체에 거부감을 강하게 가졌던 재세례파들까지 점차적으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신조를 보유하거나 존중하게 되었다. 즉, 개혁파 교회는 로마교회가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 다른 개신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신앙고백을 통한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개혁파 교회는 다른 개신교 교회들과 교회의 일체성에 있어서 독특함을 보인다. 재세례파의 경우 그들 전체를 아우르는 신조를 가지지 않고 느슨한 교회의 일체성을 유지하였고, 루터파의 경우에는 합심서(Book of Concord, 1580)를 통하여 한 국가를 뛰어넘는 교회의 일체성을 추구한 반면, 개혁파 교회들은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조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개혁파 교회는 하나의 신앙고백서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여러 개의 신앙고백서들을 가지게 되었다: The Belgic Confession, The Scottish Confession, The Gallican Confession, The Irish Confession, The Westminster Confession.14) 즉, 개혁파 교회들은 다른 개혁파 교회들의 신조를 참조를 하고 상당 부분 가지고 오기도 하였지만, 그 신조가 좋다고 하여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신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개혁파 교회를 루터파나 재세례파 교회를 대하듯이 다른 교회로 보지도 않았다. 비록 신조 자체는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 신앙조항의 본질적 내용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한 교회라고 생각하였다.

        이로 인해 개혁신학에 있어서 교회의 일체성은 여러 가지 주요한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먼저, 로마교회나 동방교회와는 달리 개혁파 교회는 신앙고백의 일치를 통하여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즉, 교회의 하나됨은 무엇보다도 신앙고백의 일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일치는 신조의 획일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루터파 교회론과도 다르다. 개혁파 교회들은 각기 다른 고백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루터파 교회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즉 신조의 내용에 있어서는 본질적 일치를 추구하였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다양성을 허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혁파 교회가 이런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개혁파 교회는 민족적, 국가적 교회의 다양성을 루터파 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즉, 그들은 기본적으로 국가교회를 추구하였으며, 국가 교회의 강한 제도적 일체성 속에서 다른 국가교회와는 형제애적인 일체성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회의 일치는 오직 정교일치의 상황 속에서만 실천될 수 있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5. 종교개혁 이후 시대15)

 

종교개혁 이후 모든 개혁파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일종의 국가교회(national church)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 개혁파는 루터파와 재세례파의 중간의 위치를 차지한다. 개혁파 교회는 재세례파와는 달리 국가를 악한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았고, 루터파 교회와 같이 국가의 지나친 간섭도 용인하지 않았으나 국가의 보호 없이 교회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 역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였고, 권징(출교)16)의 권한이 국가가 아니라 교회가 행사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지만, 제네바 교회에서 장로들은 노회나 공동회의가 아니라 시의회에서 선출되었다. 개혁파 교회가 국가 교회의 형태를 취하게 되자,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큰 숙제가 되었고, 이것은 교회의 일체성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영국 교회에서 보다 철저한 개혁교회를 추구한 그룹들은 청교도라고 불리게 된다. 처음에 이들도 국가교회라는 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신자였던 제임스가 영국의 왕이 되자 영국 청교도들은 왕에 호소하여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였다(1000인 청원: Millenary Petition, 1603년). 그러나 그것이 헛된 소망이었음이 금방 드러나자 의회를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은 차알스 시대에는 시민 혁명으로 발전하였다. 시민 혁명 당시 청교도들은 신조에서는 서로 간에 거의 완벽한 일치를 보았지만, 교회 정치에 대해서는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하고, 노회파와 회중교회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이들의 분열과 그로 인한 세력의 약화는 결국 주교제를 토대로 하고 있는 왕정복고로 이어졌고, 교회 개혁에 대한 그들의 꿈은 영구적으로 좌절되었다. 청교도의 실패를 통해서 개혁파 교회는 교회 일체성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다시 한 번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교회의 일치는 단지 신조의 일치뿐만이 아니라 직분에 있어서도 일치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하나의 개혁된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실패하게 되자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은 종교의 관용(toleration)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 국가에는 한 교회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다수의 견해였다. 종교적 관용은 교회의 일치를 무너뜨리고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사탄적인 생각으로 간주되었다. 즉, 관용은 분리주의(schism)와 동의어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떠났던 청교도들도 자신들만의 교회와 그 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를 세웠지, 여러 교파가 화목하게 공존하는 하는 오늘날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더 지날수록 다 민족으로 이루어진 미국에서 한 정부에 하나의 종교만 허용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하게 되었다. 종교의 관용은 더 많은 지지자를 얻게 되었고,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인해 종교적 관용이 영구적인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들도 이것을 점차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종교의 관용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었고, 더 이상 국가가 강제적으로 교회를 하나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였다. 이론적으로, 어떤 교파가 기존 교회에 불만을 품고 분리한다면, 공공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어떤 법적인 제제를 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파주의(denominationalism)는 불가피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 훨씬 심해졌는데, 미국은 유럽과 달리 최종적으로 독립적인 여러 주의 연합의 정치 형태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더 이상 한 종교를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국가로부터의 교회(종교)의 독립은 미국 건국이념의 중심 사상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교파주의는 대각성 운동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웨슬리의 선언은 전통적인 교구제도와의 결별을 의미하였고, 그 결과 개 교회는 전도의 무한한 자유는 획득하였으나 교회들끼리의 무한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교회의 하나됨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개혁파 신학의 또 다른 지류인 화란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개혁파 교회도 영미교회와 거의 동일한 문제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17) 원래 화란 개혁교회는 강력한 국가의 통제 밑에서 한 교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의 유입으로 인해서 교회와 신학교 안에서 성경이 아니라 이성이 절대적인 권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록 교회는 전통적인 개혁파 신조를 형식상 고백은 하고 있었으나 그것에 대한 해석은 전통적인 것과 너무나 다르게 되었고, 심지어 복음의 본질까지도 흐려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더 이상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구속주가 아니라 하나의 훌륭한 도덕적 스승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교회정치적으로 국가는 목사들을 임명하고 배치하는 것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러한 조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에 교회는 영적으로 너무나 무기력하였다. 결국 국가에 의한 교회의 하나됨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한 하나됨을 추구하기 위해서 화란 교회는 두 차례에 걸쳐서 큰 분리를 겪게 되었다(분리: Afscheiding 1834, 애통: Doleantie 1886). 그 결과 여전히 국가의 통제를 따르는 그룹과 그것을 거부하고 교회의 자율성을 추구한 그룹이 나뉘게 되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6. 현대 개혁파 신학에 있어서 교회의 일치

 

20세기 들어오게 되면, 교파주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중요한 신학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개혁파 교회들은 분열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나 다양한 교파들이 개혁파 안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개혁파 교회의 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한국 장로교회, 특히 합동계열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장로교회는 이런 교파주의의 폐해를 교회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신사참배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논쟁과 같이 중요한 신학적 혹은 권징적 이유로 인해 교회가 분열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 대다수의 교회분열은 교회 정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교권의 장악(헤게모니)에 관한 문제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국 장로교회에서 “하나의 교회”는 그야말로 명목상의 고백으로만 남아 있고 신자의 삶 속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한국 장로교회는 교회의 일체성에 있어서 무능함을 보여 주었으며, 이것은 죄의 문제이고 회개해야 할 문제지 신학적 변명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한국 개혁파 교회에 있어서, 교회의 하나됨은 심지어 같은 교단 안에서도 제대로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혁파 교회의 일체성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신조 자체가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혁파 교회 안에서도 신비주의, 은사주의와 같은 비개혁파적인 전통이나 실천들이 실용주의, 성공주의의 이름으로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즉, 같은 교단에도 행정적으로 하나됨을 이루고 있으나(겉으로만 하나로 묶여 있으나) 실제적인 하나됨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일체성을 언급할 때, 제도적 하나됨과 실질적인 하나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강조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개혁파 교회의 하나됨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거대한 세속화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신자들은 교회의 하나됨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해졌다. 이것은 실제로 교회의 이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떻게 하면 다른 교회와 차별화되어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개성있는 독특한 이름들이 난무하고 있다(예: 또감사교회, 참아름다운교회). 개교회주의, 성공주의, 물질주의, 자유주의 등 거대한 세속적 물결에 맞서서 참된 교회의 일치를 이루라는 사명이 한국의 개혁교회들에게 엄숙히 주어져 있다.  

          

잠정적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에 대하여 개혁파 신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고찰해 보았다. 교회가 하나라는 명제에는 모든 기독교회가 동의하지만, 어떻게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 교파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개혁파는 신학적 논쟁을 통하여 교회의 일체성에 대한 자신들의 독특한 이해를 발전시켜왔다.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한국 장로교회는 성경을 절대 권위로 보지만, 재세례파와 달리 성경만을 교회의 일치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또한 로마교회와 정교회와 달리 교황과 공의회를 무오하다고 보지 않기에 그것들을 교회의 일치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또한 교단을 강력하게 통솔할 수 있는 주교제나 감독직을 거부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루터파나 성공회식의 교회 일치를 추구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강제적 교회 일치는 아예 불가능하다.

        앞에서 밝혔듯이, 여러 가지 역사적 상황의 결과 오늘날 개혁교회에 있어서 교파주의는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교파주의는 종교개혁의 신학자들이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그렇다고 이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하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초대교회나 중세교회, 심지어 종교개혁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결국 개혁파 교회에서 교회의 일체성은 공통의 신조에 대한 자발적이고 충성된 동의에 의해서만이 확보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장로교회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교회의 연합 및 일치를 추구하여야 하고 이 신조의 틀 안에서 다양성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교회의 일체성은, 역사를 통해 드러났듯이, 어느 한쪽 교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질 수 없고 각 교단들이 함께 노력할 때 그 노력한 만큼만의 교회의 일체성을 가시적으로 그리고 제한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주일날 사도신경을 통해서 한 교회를 고백한다. 예수를 믿지만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면, 그 사람은 이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하나됨을 부인하거나 ‘신중’이라는 구실로 하나됨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불충성하는 행위이다. 겉으로는 교회 연합을 말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우리끼리 잘 지내면 되지 굳이 다른 교단과 연합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선이다. 따라서 교회 역사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교회의 하나됨 자체가 아니라 그 하나됨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하나됨의 당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하나’니까 무조건 서로 합치자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발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연합이라는 당위와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동시에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의 연합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적인 것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하나됨이 잡탕을 의미할 수 있고, 내적인 것만 강조되면 실체없는 환상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교회 역사 속에는 좋은 연합도 있고 나쁜 연합도 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연합을 통해서 교회의 하나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연합을 통해서 각 지교회들이 영적인 유익을 얻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교파주의의 늪에 빠져 있으며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에게는 로마교회와 같은 교황도 없고, 동방교회와 같은 공의회 전통도 없으며, 성공회와 같은 주교제가 없다. 개신교에 있어서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은 각 교회의 자발성이다. 하지만 이 자발성에 의한 연합은 실제적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거나 야합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주의로 인해 교회의 하나됨은 심하게 훼손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거룩성도 심각하게 위험하게 되었다. 교파주의는 이전과 달리 교회의 거룩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속화를 초래하였다. 교파간의 경쟁은 자격미달의 목사들을 양산하였고 성도들에 대한 권징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교파주의의 늪 속에서 각 교회들은 스스로 교회의 하나됨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비록 법적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각 교회가 바른 신앙고백을 설교하고, 그 고백을 성도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그 고백에 따라 예배하고 찬송한다면 비록 소속된 교단은 다르더라도 실제적 내용에 있어서는 교회의 일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시적 하나됨을 추구하면 추구한 만큼 교회는 하나됨을 부분적으로 실현하게 된다.

 

 

 

 

 

 

 

교회의 일체성에 대한 개혁파 신학의 입장: 역사신학적 고찰

이성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논찬: 김진성 목사(진리와제자교회)

 

 

1. 논문의 주제

 

   교회의 일체성(이후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과 거룩성에 관하여 성경을 근거로 고대, 중세, 종교개혁과 그 이후 시대를 역사신학적으로 고찰하고, 현재 한국 장로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과 대책에 관하여 제안하였다. 이성호 교수가 제안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교회의 하나됨은 공통의 신조에 대한 자발적이고 충성된 동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② 예수는 믿지만 교회의 하나됨을 부인한다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불충성하는 행위이다.

   ③ 대각성운동 이후 심화된 교파주의(denominationalism)로 인하여 교회의 하나됨과 거룩성을 함께 지키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④ 로마 가톨릭교회와 같은 조직이나 국가체제를 통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이룰 수는 없다.

   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근거로 하는 바른 신앙고백을 통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고, 스스로 교회의 하나됨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논평

 

   이성호 교수의 논문과 제안한 잠정적 결론을 중심으로 하는 논문에 공감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제안한다.

 

   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토대로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한국신앙고백을 작성한다. 특히 한국적 신앙과 교회문화에 대한 성경의 해석과 적용을 포함한다.

        - 종교개혁 이후부터 여러 나라에서 신앙고백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제1스위스 신앙고백(1536), 제네바 교리문답(1536), 프랑스 신앙고백(1539), 스코틀랜드 신앙고백(1560), 제2스위스 신앙고백(1560), 벨기에 신앙고백(1561),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 39개 신조(1563), 도르트 신경(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1647)

 

        - 1788년 미국장로교회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을 신조로 채택하였으며, 이후로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였다.

        - 1907년 한국장로회가 설립될 때 당시 인도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12신조(교회, 교회정치, 교리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 제외)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을 신조로 채택하였다.

        - 그러나 이성호 교수가 분석하였듯이,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을 신조로 한다는 고백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교회에서 신조를 가르치고 적용하는 대신 담당 목회자가 선호하는 신학교재나 서적을 활용하고 있다.

        -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이 주로 17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로마가톨릭교회의 거짓교리로부터 교회를 개혁하고 지키는데 주안을 두고 작성되었기 때문에, 한국장로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실질(천)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함으로 각 교회의 자체 노력을 통해 발전시켜왔다고 판단한다.

        - 이로 인하여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하나됨에 적신호가 켜졌다.

        - The church reformed and always reforming.

        - 한국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한국신앙고백이 말씀을 토대로 제정 적용되었다면, 교회의 거룩성과 하나됨을 보다 성경적으로 지켰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 한국신앙고백에 포함될 예상주제는 다음과 같다.

                - 유교적-기복적 자세에 대하여(예: 장례문화)

                - 반기독교적 가치관의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 다단계에 대하여

 

   ② 한국신앙고백을 만들기 위한 교단(회)-기관-개인을 중심으로 신학협의체를 구성한다(미국의 예: Alliance of Confession Evangelicals, TGC(The Gospel Coalition)).

        -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국신앙고백 제정

        - 정기적인 개혁신학 논의, 공동 수련회 개최

        - 설교강단 교류

        - 장차 한국신학 발전

 

   ③ 고려와 고신의 교단통합은 동일한 신앙고백의 교회가 통합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교회의 하나됨으로 인한 유익을 체험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미자립교회에 대하여 재정지원 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을 1~2년 지원함으로 교회의 하나됨을 나타낸다.

 

 


1) '오직 성경‘ 성경만 있으면 되고 다른 것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한 개혁파의 정확한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라. Anthony Lane, “Sola Scriptura? Making Sense of a Post-Reformation Slogan,” in ed. Philip E. Satterthwaite and David F. Wright, A Pathway into a Holy Scripture (Grand Rapids: Eerdmans, 1994), 297-328.

2) 교회론의 역사에 대하여 그동안 가장 일반적인 서술은 Eric G Jay의 Church Its Changing Image Through Twenty Centuries (Atlanta: John Knox Press, 1980)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로마 카톨릭 신학자 Roger Haight가 Christian Community in History: Comparative Ecclesiology (New York: Continuum, 2005)를 출간하여 이 부분에 가장 큰 권위있는 연구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종교개혁 직후의 교회론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서가 나오지 않았다. 

3)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분리에 대해서 세밀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하나는 separation이고 다른 하나는 schism이다. 후자는 항상 정죄를 받는 부정적인 교회론적 용어이지만, 전자는 경우와 상황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결정되는 중립적인 용어이다.

4)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서가 아직도 중요한 연구서로 남아 있다: S. L. Greenslad, Schism in the Early Church (London: SCM Press Ltd., 1964).

5)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일체성을 유지함에 있어서 교리뿐만이 아니라 직분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교회 연합에 있어서 직분에 대한 논의를 제외시키는 것은 역사신학적 통찰을 거부하는 것이다. 직분의 통일 없이 교회연합이 불가능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 영국 청교도 사이에서 노회파와 회중교회파가 결국 하나되지 못한 것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6) 여기서 말하는 카톨릭은 로마 카톨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주의자에 대한 정통 교회를 의미한다. 도나투스와 어거스틴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 연구서를 참조하라. W. H. C. Frend, The Donatist Church: A Movement of Protest in Norman North Africa (Oxford: Clarendon Press, 1952).

7) 중세 시대, 특해 서방 중세 시대에 있어서 교회론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중세 스콜라 신학에 있어서 교회론은 성례론이었으며 교회는 독자적인 주제로 다루어지 않고 다른 주제들 속에서 분산되어 다루어졌다. Cf. Jaroslav Pelikan, Reformation of Church and Dogma(1300-1700)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71.

8) 동방교회의 역사와 신학에 대해서는 Timothy Ware, The Orthodox Church (London and New York: Penguin Books, 1997; new edition)을 참조하라.

9) 동방교회는 서방교회 달리 삼위일체의 근원을 본체(substance)에서 찾지 않고, 성부의 위격에서 찾는다. 따라서 필리오케를 인정하게 되면, 두 개의 원천을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삼위의 하나됨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10) 나중에 개혁파는 이 원리를 모든 직분자, 특히 목사에게 적용시켰고, 모든 말씀의 사역자가 다같이 동등한 목사라는 이해는 직분론에 있어서 종교개혁이 (성공회를 제외하고)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이기도 하였다.

11) 개신교에서 개체교회는 주로 신자들이 출석하는 통상적 교회(congregation)을 의미하지만, 로마교회나 동방교회에서 개체교회는 주교를 머리로 하는 주교좌(cathedral) 교회를 의미한다. 규모면에서 우리나라 장로교의 큰 노회 혹은 작은 총회급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12) 실제로 종교개혁으로 인해 서방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었을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공의회를 통해서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려고 하였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개혁파 교회가 알미니아니즘으로 인해 분열의 위기를 맞았을 때 도르트 총회를 개최함으로 일체성을 확보하였다. 영국교회에서는 청교도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49)를 통하여 교회의 일체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13) Furthermore, we declare, we proclaim, we define that it is absolutely necessary for salvation that every human creature be subject to the Roman Pontiff.

14) J. 캄파위스, 개혁그리스도인과 신앙고백의 특징 (서울: 성약출판사, 2005). 특히 제2장.

15)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파 교회론에 있어서 교회의 일치와 분리에 대해서는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All Subjects of the Kingdom of Christ: John Owen's Conceptions of Christian Unity and Schism (Ph.D. Diss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2007)을 참조하라: 특히 54페이지 이하.

16) 칼빈은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보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개혁파 안에서 권징도 말씀에 부속되는 중요한 표지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권징에 대한 개혁파의 이 이해는 교회론에 있어서 루터파와 큰 차이를 보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개혁파에 있어서 권징에 대한 공식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교회가 분리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Cf. Gleen Sunshine, "Discipline as the Third Mark of the church," Calvin Theological Journal 33 (1998), 469-480.

17) W. van't Spijker, 칼빈의 유언과 개혁신앙 (서울: 성약출판사, 2009). 특별히 제4장,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역사”부분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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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교회의 일체성에 대한 개혁파 신학의 입장 : 역사신학적 고찰

    아래의 글은 지난 5월 30일(화)에 있었던 서울포럼에서 발표된 논문과 논평입니다. - 편집장 주 - 교회의 일체성에 대한 개혁파 신학의 입장 : 역사신학적 고찰 이성호 교수 서론: 개혁파 신학의 특성 교회의 일체성을 다루기 전에 개혁파 신학의 기본적인 특...
    Date2017.06.02 By개혁정론 Views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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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논문] 구약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현대적 적용: 역대기의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중심으로

    “구약에 나타난 종교개혁과 현대적 적용 -역대기의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중심으로” 김성수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 서론 역대기는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기록한 책으로 보일 정도로 성전과 예배, 그리고 종교의 개혁에 많은 초점을 맞...
    Date2017.05.07 By개혁정론 Views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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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우리 교단 내 목사 장로의 바른 역할과 협력 사역에 대한 고찰

    우리 교단 내 목사 장로의 바른 역할과 협력 사역에 대한 고찰 -목사와 장로의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며-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1. 서론: 장로회 정치의 핵심은 ‘장로회’(‘장로의 회,’ 디모데전서 4:14)를 구성하는 목사와 장로...
    Date2017.04.26 By개혁정론 Views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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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목회적 관점에서 본 한국 장로교 정치 체제의 장단점

    이 논문은 지난 4월 20일(목) 서문교회당에서 열린 신학포럼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목회적 관점에서 본 한국 장로교 정치 체제의 장단점 : 타 교단이나 세계 교회와 비교하여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여기서 개혁은 무엇을 뜻하...
    Date2017.04.24 By개혁정론 Views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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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논문] 개혁교회 어린이 예배

    아래의 글은 2017년 3월 27일(월) 제5회 지역교회 교회학교 활성화를 위한 교회교육 세미나 (고신대학교 비전관)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개혁교회 어린이 예배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Ⅰ. 서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
    Date2017.04.11 By개혁정론 Views2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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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논문] 왜 한국교회는 교리교육을 잃어버렸는가?

    아래의 글은 2017년 개혁신학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춘계학술대회(2017년 4월 8일, 총신대학교)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내 교리교육의 부재와 딜레마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 탐구” 논문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왜 한국교회는 교...
    Date2017.04.10 By개혁정론 Views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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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논문]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아래의 논문은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무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12월 3일 서울 금란교회) "85차 정기논문 발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한 것이다.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김영무 목사 (남아...
    Date2016.12.14 By개혁정론 Views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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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논문]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주기철 교수 (고신대 신학과 신약학) 들어가면서 본 글의 목적은 2016년 고신 교단 설립 70주년에 즈음하여 그간 교단 내에서 발간 된 ‘고려신학보’, ‘...
    Date2016.12.13 By개혁정론 Views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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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논문]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김 순 성 교수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Date2016.11.28 By개혁정론 Views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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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No Image

    [논문]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김영종 교수 (고신대 교양학부 조교수, 교목)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의 고신신학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
    Date2016.11.17 By개혁정론 Views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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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논문]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1938년 제 27회 대한예수교장...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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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논문]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미셸 조네 박사(Dr. Michel Johner)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장칼뱅대학 학장 A. ...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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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논문]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허 순 길 박사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전 원장)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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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최윤갑 교수 (고신대 신학과)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70년의 세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지난 70년의 세월 속에 고신대학교와 함께 하...
    Date2016.11.11 By개혁정론 Views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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