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김영종 교수
(고신대 교양학부 조교수, 교목)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의 고신신학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의미가 있는 이유는 고신 교단 안에서 신약학에 대하여 처음있는 자기 성찰적 노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1) 사실, 일반 신약학계에서는 지금까지의 학문적 성과를 영역별로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던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다.2) 따라서 고신 학자들의 연구를 중심으로 고신 신약학의 역사와 흐름을 정리해 보려는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선배 신학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의하여 생겨난 학문적 유산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고신신학’의 미래를 목표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3)
현재 고신의 고등교육기관에서 발행되고 있는 학술지는 두 종류가 있다. 고신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발간되는 『고신신학』4)과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의 논문집인 『개혁신학과 교회』5)이다. 이들은 모두 고신의 신학을 대표하는 소중한 영적, 학문적 자산들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고신의 대표적 신학 학술지라고 할 수 있는 『고신신학』과 『개혁신학과 교회』에 게재된 연구들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할 것이다.
동시에 지금은 발행이 중단되었지만 『고신신학』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에 수록된 신약학 자료들도 함께 연구하려고 한다.6) 아울러 의미 있는 학술지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1980년부터 고려신학대학원 원우회에서 발행하였던 『고려신학보(高麗神學報)』 1-30집에 수록된 신약학 관련 논문들 역시 연구 자료로 활용하였다.7)
신약학에서 복음서 연구는 신약신학 방법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물들과 함께 비평학 및 성경 해석학의 영역들도 포괄적으로 개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제1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네 종류의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에 발표된 신약학 연구들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 대하여 고찰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성령’과 ‘하나님 나라’를 포함하여 몇몇 핵심 주제들에 관한 연구를 살펴볼 것이다. 제4장에서는 고신의 신약학이 가지는 특징적 요소들을 간략하게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고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가 가지는 장단점과 앞으로 고신의 복음서 연구의 과제를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고신대학교의 신약학 교수들이 다른 신약학 저널에 기고한 연구물들을 다루었다.
1. 고신 신약학 연구의 유형 분석
먼저 정량적으로 네 종류의 간행물에 수록된 논문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고신신학』과 『개혁신학과 교회』에 발표된 전체 422편의 논문가운데 신약을 연구한 논문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먼저 『고신신학』에 게재된 신약학 논문은 전체 논문 118편 중 16편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자면 약 13.6%에 지나지 않는다. 구약학 논문이 13편인데 비하면 조금 더 많은 분량이다. 신구약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약학 연구를 세부적으로 분류해 보면 그 사정은 좀 다르다. 16편의 신약학 관련 연구들 가운데 서신서를 주제로 한 연구가 7편인데 반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단 한편에 불과하다.8)
한편 『개혁신학과 교회』는 『고신신학』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개혁신학과 교회』는 지금까지 모두 305편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그중에 신약학 연구는 48편으로 약 15.7%를 차지한다.9) 우연의 일치겠지만 구약학 연구 역시 48편으로 동일한 비중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개혁신학과 교회』 역시 서신서 연구에 편중된 현상을 보여준다. 전체 48편의 신약학 연구들 가운데 서신서가 24편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다루는 연구는 5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신신학』보다는 『개혁신학과 교회』에서 복음서 연구가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두 종류의 학술지 모두가 서신서 연구에 편중되고 있다는 점은 고신의 신약 연구와 발전이 편중되어 온 것은 아닌가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염려는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어진다. 32편의 신약학 연구들 중에서 9편이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이다. 분명히 앞선 2개의 학술지 보다는 수량 면에서 나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고신 교단 안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10)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고신의 신학을 이끌어 나가는 교수들의 연구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대한 연구가 소외되어 있었다면, 신학대학원 학생들을 중심으로 발행되었던 『고려신학보』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려신학보』에 수록된 신약관련 연구는 39편인데 그 중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관한 연구는 모두 19편이다. 약 48.9%에 달한다. 물론 『고려신학보』에 실린 19편의 연구 결과물에는 교수들의 논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신학보』에 수록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관련된 연구물의 분량은 신약 교수들을 중심으로 발행되는 학술지의 3배를 넘어선다.
2.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2.1. 복음서 연구
고신의 신약학에서 복음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이는 아마도 소위 1세대와 2세대 학자들 가운데 신약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11) 복음서 연구의 중요성은 다른 신학적 이유와 학자들의 주장을 떠나서 가장 최근에 발간된 『개혁신학과 교회』 29호에 수록된 길성남 교수의 글을 통하여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음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설교한다는 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알려주고 설명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생명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의 강단에서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를 듣기 어렵다 ... 올바른 복음서 설교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복음서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서 저자의 의도에 맞게 전하는 것이다”12)
그의 지적은 지극히 당연하다. 복음서 설교의 중요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설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동시에 복음서 연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을 연구하는 일의 중요성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2.1.1. 마태복음
고신의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경은 마태복음이다. 모두 9편의 연구가 발표되었다. 황창기 교수가 4편, 나머지는 강용원, 류기철, 변종길, 이승미, 한정건 교수가 각각 1편씩이다.
황창기 교수의 마태복음 연구는 대부분 그의 초기 저작들이다.13) 1984년부터 1990년까지의 연구에서 그는 주로 ‘사고구조 분석법’을 연구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다.14) 적어도 학문적 활동의 초기에 황창기 교수는 후일 그의 신학 방법론에 있어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방법보다는 ‘사고구조 분석법(an analysis of the thought structure)’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15)
황창기 교수에 의하면 ‘사고구조 분석법’는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석의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그는 그의 연구방법에 문학적 방법론의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문학비평에서 사용하는 ‘구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한다.16) 그가 주장하는 ‘사고구조 분석법’과 ‘구조주의’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사고구조 분석법’이 성경을 성령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데 있다.17) 성경을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성경 연구를 시작하는 개혁주의 성경신학적 입장은 박윤선 박사로부터 시작된 고신의 모든 신학자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기도 한다.18)
이처럼 황창기 교수가 ‘사고구조 분석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문학비평이 완성된 성경의 최종본문에 권위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을 인간의 작품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시도는 길성남 교수의 글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19) 길성남 교수는 기존의 개혁주의적 성경해석방법인 역사적-문법적 방법론의 관점에서 역사비평과 문학비평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특히 문학비평에 대하여는 문학비평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위험 요소들을 지적함으로써 현대 신약학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작품으로 대할 수 있는 요소를 애초에 차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관련하여 다른 학자들에서 독창적인 학문적 성과나 신학적 특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연구 주제들이 개별적이고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각의 연구들은 개혁주의 성경신학이 추구하는 몇몇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20) 먼저 변종길 교수의 ‘가난한 자’에 대한 연구는 석의적으로 균형 잡힌 시도를 보여준다.21) 성경해석에 충실함으로써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주해를 통하여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학문적이면서도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실용성 있는 연구로 평가된다. 이런 종류의 연구가 교단의 신학자들로부터 계속 될 때 현장의 목회자들이 도전받을 수 있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용원 교수의 “마태복음에 나타난 구약인용의 문제”는 마태가 도입형식으로 인용한 11개의 구약 인용문과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인용하신 부분들을 비교 검토하였다.22) 인용문들을 MT와 LXX를 활용하여 비교 검토함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본문비평을 시도하였다. 류기철 교수는 마태의 구약 예언 인용이 예언과 성취라는 구속사적 해석의 틀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주장하면서 구약의 배경과 마태의 컨텍스트를 비교하였다.23)
이승미 교수는 마태복음 16:28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난해 구절가운데 하나인 이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 넓게는 마태복음 16-17장과 좁게는 마태복음 16:13-28을 간본문적으로 다룬다. 특히 그는 마태복음 16:28과 마태복음 16:16-19절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를 통하여 마태복음 16:28에서 ‘인자의 오심’이 종말에 이루어질 예수님의 재림이라기보다는 부활 이후에 일어나게 될 성령의 오심과 교회의 설립 등과 같은 구속사적 사건을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신 것이라고 잘 논증하였다. 문맥적 읽기와 간본문적 접근을 통하여 난해 구절을 구속사적으로 잘 해석한 좋은 예라고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마태복음 연구는 독특하게도 구약학자인 한정건 교수에 의한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 나타난 종말에 대한 재해석”은 종말론에 대한 그의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24) 그는 소위 ‘감람산 강화’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24장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마태복음 24장의 예언이 미래적임을 분명히 한다.25) 이는 박윤선 박사나 다른 개혁주의 신약학자들의 견해와는 상충되는 것으로 좀 더 면밀한 주석적 작업을 통한 학문적 대화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26)
2.1.2. 마가/누가복음
1970년대 이후 한국 신약학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논의된 성경이 마가복음이었다.27) 또 누가-행전 연구는 서구 신약학계에서 ‘태풍의 눈(A Storm Center)’로 간주되어 왔다.28)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4종류의 자료를 통틀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본문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구가 각각 1편 밖에 없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아쉬운 점은 이 마가복음-누가복음의 연구가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의 신약학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원의 학생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이다.29) 물론 연구의 범위를 조금 확대하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서로 비교하여 연구하였던 길성남 교수의 연구를 하나 더 찾을 수 있다.30) 그러나 이 역시 길성남 교수가 신학대학원 3학년 시절 작성한 학생 논문이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은 교단의 대표적인 학술지에서 신약학자들에 의하여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학문적으로 연구된 결과를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31)
이와 같은 현상은 누가복음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 대한 성경신학적 접근 역시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교단 신약학자들의 연구에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소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긍정적으로 이해하자면 결코 의도하지 않은 우연의 연속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현재 교단에서 성경 각권에 대한 주석을 연구하여 출간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지난 시간들 속에서 이 두 복음서 연구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아쉬움과 상실감은 적지 않다고 하겠다. 바라건대 이런 아쉬움과 상실감이 오히려 앞으로의 고신의 신약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2.1.3. 요한복음
마태복음 다음으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된 분야가 요한복음이다. 물론 요한복음을 연구한 학자는 이승미 교수가 유일하다.32) 흥미로운 것은 이승미 교수 역시 연구방법론으로 ‘사고 구조분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요한복음 20:22의 ‘La,bete pneu/ma a[gion(성령을 받으라)’을 해석하면서 요한복음 20:19-23의 구조 속에서 문맥적 읽기를 시도한다. 이는 그가 마 16:28의 ‘인자의 오심’을 해석하면서 사용했던 방법과 비슷하다. 동시에 황창기 교수의 연구 방법론과의 공통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이승미 교수는 신학대학원에서, 황창기 교수는 학부에서 가르쳤지만 적어도 방법론에 있어서 두 신약학자들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승미 교수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생명(영생)’을 연구하기 위해 어원적 분석을 시도한다. 이는 그가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성경해석방법인 문자적-역사적-문법적 해석방법을 사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승미 교수는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시도한다. 요한복음 20:22에 관한 연구가 내용적으로 약속과 성취의 패턴을 취하고 있음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요한복음 20:22이 포함된 요한복음 20:19-23까지의 단락이 이미 요한복음 14-17장에서 예언된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서술과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 분석하여 요 20:22이 포함된 단락의 주제가 예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이 앞으로 계속 증가되어야 한다는 이승미 교수의 주장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단어 수의 증가와 복음의 확장과의 관계성을 다른 성경에서 확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연구의 논지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생명(영생)”에 관한 연구에서 그는 양적 분석과 내용적 분석을 통하여서 ‘생명’이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동시에 공관복음에서의 ‘하나님 나라’와 동일한 개념임을 주장하였다. 요한복음의 신학을 공관복음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며 어원 분석적인 접근과 문맥적 읽기를 병행하여 사용함으로써 논지의 신뢰도를 높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승미 교수의 연구들을 통하여 추측해 볼 수 있는 그의 신학적 관심사는 ‘성령’과 ‘하나님 나라’인 듯하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 ‘성령’을 다룬 연구가 2편, ‘하나님 나라’가 주제인 연구가 2편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복음은 학생들에게도 주목받은 성경이었다. 길성남 교수가 신학석사(Th.M) 과정 중에 요한복음에 나타난 표적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요한복음에 나타난 보혜사 성령에 관한 연구도 찾아볼 수 있다.33)
2.2. 사도행전 연구
사도행전을 배경으로 한 연구는 3편이다.34) 그런데 사도행전 연구를 살피는 것이 상당히 애매하다. 3편의 연구들이 사도행전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엄밀하게 분류하면 이승미 교수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서신을 비교하여 연구하였고, 임영효 교수의 연구는 오순절을 부흥운동으로 이해하고 오순절의 특징을 제시한 실천신학적 접근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길성남 교수의 연구 역시 사도행전 신학과 본문에 초점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 연구를 통한 설교의 구조와 모범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고신 교단 안에서 사도행전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길성남 교수의 연구를 사도행전 연구로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사도행전 연구는 1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있었던 ‘성령론 논쟁’과 관련이 있지 않나 추축해볼 뿐이다. 성령론 논쟁이 사도행전의 다른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잠식해버린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으로도 불리지만, 교회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복음의 역동적인 확장을 보여주는 성경이다. 어떻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했으며, 어떻게 이방인들에게로 복음이 확장되어 나갔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신 신약학에 있어서 사도행전 연구의 부재는 사도행전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인 누가 신학과의 연계성을 약화시켜 버렸다. 어쩌면 누가복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누가는 이방인 선교를 통한 새로운 이스라엘의 회복을 염두에 두었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통하여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누가-행전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관련하여 교회의 본질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3. 핵심 신약 주제들
3.1. 성령
신약학 연구와 관련하여 고신의 연구물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제는 ‘성령’이다. 성령론과 관련된 연구는 모두 21편이다.35) 단일 주제로는 가장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고신 교단이 경험했던 1992년의 성령론 논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신의 신약학 연구에 있어서 성령론은 아주 뜨거운 주제였던 것이 틀림없다.36)
허순길 교수는 1992년에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극대화되었던 성령론 논쟁이 안영복 교수의 개인적인 신학적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7) 그에 의하면 안영복 교수의 성령론으로 인한 문제는 이미 1987년부터 교단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8) 이에 대하여 허순길 교수는 “구약분야에서 히브리어를 담당해 오던 안영복 교수가 1986년부터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의 성령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성령세례를 주장하기를 시작했다”고 설명한다.39) 이는 안영복 교수와 성령론 논쟁을 벌였던 고재수 교수가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에서 성령에 관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고재수 교수는 교수논문집 14집(1986)과 15집(1987)에서 연이어 성령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40) 고재수 교수와 안영복 교수의 논쟁은 『고려신학보』 13집(1987)과 16집(1988)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41) 1988년부터는 총신의 차영배 교수가 논쟁에 동참하여 이 논쟁은 『고려신학보』 20집이 발간된 1991년까지 지속된다.42) 하지만 고신의 성령론 논쟁은 1991년 『개혁신학과 교회』 2호와 3호에 연이은 ‘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성령론 보고서가 발표되고 총회차원에서 성령론 논의가 정리되면서 마무리된다.43)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신의 학자들이 오순절주의 신학과의 학문적 대화를 통하여 개혁주의 성령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킴에 있어서 신약 성령론 논쟁의 가장 핵심적인 본문들로 가득 차 있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대한 주해로 그 노력들을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다. 물론 고재수 교수의 “성령으로의 세례를 지적하는 본문들에 대한 주석적 고찰”은 서구 신약계의 성령론의 흐름을 읽어가면서 주해 중심적인 논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이승미 교수의 “성령으로의 세례”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오순절주의 신학과의 성령론 논의가 ‘누가의 성령론’이라는 보다 넓은 차원으로 연결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44) 대부분의 학문적 대화가 신약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교의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따름이다. 그러나 고신의 신약학자들이 적절한 본문비평을 위한 사본학적 이해와 원문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주해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감안하다면,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신약 성령론 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대화와 저작물을 성령론 연구에 활용하지 못한 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신약 성령론 논쟁은 현대 신약학계가 다루는 다양한 논점들과도 상당히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 P. 샌더스(Sanders)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N. T. 라이트(Wright)가 그 핵심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 바울의 새 관점 논쟁에서는 1세기 유대문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다. 마찬가지로 신약 성령론 논쟁, 특히 오순절 학자들과의 학문적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누가 성령론의 영역에서도 1세기 유대교의 성령 이해가 핵심적인 논쟁점이 되고 있다.45)
3.2.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가운데 하나이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잘못된 신약의 종말론을 바로잡는데 아주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처럼 신약 특히 복음서에서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된 것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신약학자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하나님 나라 신학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하나님 나라가 보편적인 연구 주제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 신학 안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일찍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오병세 교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는 1984년에 고려신학보에 수록된 아주 짧은 논문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을 잘 개괄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며 우리가 그의 축복의 지배를 체험하기 위해서 지금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해야만 오는 미래 영역(a future realm)을 말하기도 한다.”46)고 정의함으로써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 사이의 신학적 균형을 잘 견지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하나님 나라를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다.
변종길 교수 역시 균형 잡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시각을 강조한다.47) 하나님 나라 이해에 대한 그의 신학적 특징은 현재와 미래라는 하나님 나라의 두 측면을 ‘조화’와 ‘순연’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오스카 쿨만의 종말론적 개념을 하나님 나라 이해에 적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했던 것과 비교된다. 그가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조화와 순연’의 핵심에는 성령이 사역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3.3. 기타
먼저 비유 연구이다. 비유에 관한 글은 2편이다. 하나는 신득일 교수가 화란 깜뻔(Kampen)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J. Van Bruggen(판 브럭헌)의 소논문 “Exegese van Gelijkenissen”을 번역하여 ‘비유 주석’48)이라는 제목으로 『고려신학보』에 기고한 것과 길성남 교수가 마 13:51절을 중심으로 비유 해석사와 비유 해석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 글49)이다. 내용적인 면에서 두 글들은 매우 유사하다. 다만 길성남 교수의 글은 교회를 위하여 실천적인 관점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제목 그대로 비유를 이해하는 좋은 지침이라 하겠다.
또한 안식일에 관한 연구가 있다.50) 주의 날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통하여 안식일과 주의 날의 차이점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동시에 주의 날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제시함으로 한국 교회가 취해야 할 주의 날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의 개념을 주의 날에 투영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 외에도 『개혁신학과 교회』에서는 ‘가정교회’51), ‘장로직 제도’52), ‘동성애’53), ‘예배’54)와 같은 주제들을 다루었고, 『고신신학』에서는 ‘개혁주의 종말론’55), ‘신약의 경건’56), ‘의도적 죄’57), ‘칼빈의 영성’58), ‘신약의 구약 사용’59), ‘세월호 재앙’60) 등과 같은 주제가 관심사가 되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인자(the Son of Man)’에 관한 글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모두 영문으로 작성되었고 5편 가운데 4편이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에서 한기태 교수가 발표한 것이고, 나머지 1편은 『고려신학보』에 수록된 김세윤 교수의 기고논문이었다.61) 복음서 연구의 중요한 주제중 하나이지만 이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4.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명제는 고신대학교의 설립이념이다. 고신대학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는 신학적으로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위에서 출발했다.62) F. A. 클루스터(Klooster)에 의하면 개혁신학의 특징은 성경에 대한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오직성경(sola scriptura)’에서 머무르지 않고 ‘성경전체(tota scriptura)’를 지향하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63) 이는 개혁신학이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개혁주의 성경신학은 단순히 신구약 성경의 유기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성경의 어느 한 부분도 더하거나 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신 4:4; 행 20:27).64)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고신 신약학의 특징은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관점과 성경연구 방법론 및 성경해석의 원리에 가장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성경관을 제시한 연구와 신약학 연구와 관련된 성경연구 방법론과 해석원리에 대한 연구만 22편이라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65)
4.1. 확고한 개혁주의 성경관
개혁주의 성경관에 기초한 고신의 성경관이 무엇인지 제시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변종길 교수와 이환봉 교수이다. 먼저 변종길 교수는 ‘칼빈의 성경관’에 대하여 다루었다.66) 그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함에 있어서 칼빈이 성경의 자증과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강조했음을 제시한다. 동시에 그는 ‘성령의 내적 증거’라는 용어가 가질 수 있는 주관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다른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견해를 통하여 정리함으로써 개혁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매우 잘 논증하였다.
연이어 변종길 교수는 ‘고신의 성경관과 설교’라는 글을 통하여 고신의 성경관을 정립하려는 시도를 한다.67) 아마도 고신의 성경관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려했던 학문적 노력은 이것이 유일해 보인다. 물론 이 글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동시에 교육적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68)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신의 성경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앞선 선배 신학자들이 어떤 성경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명료하게 제시해준다.69)
반면, 이환봉 교수 역시 개혁주의 성경관을 바로 세우는 일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관과 학문적 대화를 시도한다. 이를 통하여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고신이 추구해야 할 성경관은 어떤 것인지 제시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특히 그는 칼 바르트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론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하여 지적한다. 이환봉 교수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는 “성경관이 모든 신학적 논쟁의 관망대”라는 표현에 잘 녹아 있다.70)
4.2. 본문비평 중심의 방법론
18세기부터 시작된 성경신학 영역의 핵심적인 논점은 역사비평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였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역사적 접근을 성경 해석의 방법으로 수용한 학자들은 자신들의 방법론은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이라고 부르고 전통적인 성경연구 방법이었던 본문비평(Text Criticism)을 하등비평(Lower Criticism)으로 평가절하하였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성경의 원문을 찾아나갈 뿐 아니라 본문의 의미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려는 본문비평은 성경해석의 가정 기본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변종길 교수가 현대 사본학의 동향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논의를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71) 그는 UBS와 NA로 대변되는 현재 사본학의 흐름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비잔틴 본문의 가치에 대하여 변호하였다. 뿐만 아니라, 올바른 헬라어 성경을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안한다.
동시에 현대 성경 비평학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길성남 교수의 연구도 개혁주의 신학을 토대로 한 고신의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현대 비평학의 출발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아쉬운 점은 개혁주의 신학이 역사적-문법적-신학적 해석을 핵심적 방법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보완적 수단으로 문학비평 혹은 사회과학비평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예를 들어, 송영목 교수는 개혁주의 학자들 가운데서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를 제시한다.72) 또 허주 교수와 총신의 심상법 교수가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 내러티브 비평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방법론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73)
4.3. 그리스도 완결적 성경해석
성령에 의한 성경의 신적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문법적 해석은 구속사를 만나면서 더 풍성해진다. 화란 출신의 고재수 교수74)와 구약학의 박종칠 교수75)가 고신 신학에서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확산에 기여한 바를 간과할 수는 없으나 신약학자로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주도했던 사람은 황창기 교수이다.76) 일반적으로 구속사를 이해할 때 대부분은 계시 역사의 발전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구속사를 언약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77) 이런 성향은 고신의 학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78)
그러나 황창기 교수에 의하여 소개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은 구속사적 성경 해석을 더욱 완성시키려는 목적을 가진다. 물론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 황창기 교수의 독자적인 주장은 아니다.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라는 말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였던 피터 엔스(Peter Enns)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79) 계시사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구속사가 그리스도 ‘중심적’ 이라면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 교회적(whole Church person)이고 만유적인 인격(panta person)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해 진다. 이를 위하여 황창기 교수는 그레이다누스(S. Greidanus)가 제시한 7가지 방법과 출애굽 주제, 클라우니 4각형, 언약의 중첩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80)
결론
고신대학교가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고신의 신학을 돌아보고 있다. 특히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의 고신의 신학적 성과는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발전해 온 것이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훌륭한 믿음의 선배 학자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70주년을 넘어 고신의 신학과 신앙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어떻게 세워져야 할지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지금까지 고신의 복음서 및 사도행전 연구가 보여준 장단점들을 제시하면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먼저 몇 가지 장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실제적인 학문을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적어도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연구한 저자들은 고신 교회가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에 나름대로 답하려고 노력한 모습들을 보인다. 대부분의 연구가 단순히 학문적이기만 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신학을 다루면서도 설교자들을 염두에 둔다. 대표적으로 변종길 교수의 “영적해석 왜 필요한가?”81)와 길성남 교수의 “복음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는 복음서 본문을 중심으로 성경에 대한 해석과 설교 작성의 실제를 제시하고 있다.
둘째, 개혁주의 신학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는 점이다. 고려 학원의 설립 목적은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올바른 신앙인을 배출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70년 동안 이 설립 목적에 충실하게 학자들의 연구는 진행되어 왔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관점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인본주의 신학과 맞서왔고 교회와 소통하면서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해왔다. 동시에 앞서간 선배들의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전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균형 잡힌 연구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성경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다. “ ... 네 복음서 모두에 공정하게 귀를 기울어야 하며, 어떤 한 책을 다른 책보다 강조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82) 이 원칙은 길성남 교수가 복음서를 설교함에 있어서 4개의 복음서가 각각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님의 사역을 통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신약을 연구함에 있어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길성남 교수는 칼빈의 비유 해석이 가진 약점을 지적한다.83) 이는 적어도 고신의 신약학자들이 교조주의적이거나 편파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현대 신약학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지 못한 점이다. 길성남 교수는 현대 신약 비평학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잠시 다룬 바 있다. 그러나 현대 신약학계의 주요한 흐름중 하나인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관심에서 특히 고신이 지향하는 신학적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아쉬움은 다른 연구 영역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84)
둘째, 세상속의 교회에 대한 방향성 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신의 신약학자들이 학문을 통하여 교회에 봉사하려고 노력한 점은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고신 교단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또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송영목 교수의 “세월호 재앙을 구속하기”는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성경신학적인 대답을 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85)
이제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 있어서 ‘고신신학’의 미래를 위한 과제는 분명하다. 적어도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성경의 어떤 책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영역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복음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마가복음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개선의 차원을 넘어 상당히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 점은 앞으로 고신의 신약학자들이 복음서 연구에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 교단 내의 복음서 전공자들의 학문적 연구를 위한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동남성경연구원’과 같은 곳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격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고신대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이 함께 뜻을 모았던 학진등재(후보)지의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홍반식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그의 고백은 비록 구약학자이지만 고신의 신약학 연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구약학이 그 발전 과정에서 기존하는 개혁주의 전통과 상치되는 점을 별로 만나지 못하지만 앞서간 학자들의 학설을 넘어서 더욱 깊게, 그리고 넓게 진전해야 한다는 경험을 느껴보는 바이다”86)
부록: 새로운 기대- 고신대학교 신약학 교수들에게서 다시 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앞선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볼 때 고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는 고신대 신학과보다는 신학대학원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의 숫자가 줄곧 2-3명 선을 유지해 온 반면에, 고신대 신학과의 신약학 교수는 황창기 교수의 정년퇴임 이후에야 송영목 교수가 임용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숫적인 열세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물의 범위를 고신 교단과 관련된 학술지나 간행물에서 한국 신약학계로 넒히게 되면 오히려 고신대학교 신약학 교수들의 활동이 더 활발했음을 알게 된다.87)이런 맥락에서 고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신 교단의 학술지 뿐 아니라 다른 몇 종류의 신약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까지 함께 포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신약학계에서 발행되는 대표적인 학술지는 복음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약연구』와 복음주의 이외의 학자들까지 포함하는 『신약논단』이 있다. 그리고 신구약에 관한 성경신학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한국성경신학회의 『교회와 문화』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술지들에 나타나는 고신 신약학자들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는 어떤 모습일까?
무엇보다 긍정적인 요소는 고신 신약학자들에 의한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의 활발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선 연구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고신 신약학자들의 의미 있는 연구물이 거의 없음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가 상당히 소외된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하지만, 다른 신약학 학술지에서의 고신 신약학자들 특히 고신대학교 교수들에 의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대한 연구 활동은 꽤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마태복음 연구에서는 황창기 교수와 송영목 교수의 활동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황창기 교수의 연구로는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에서 보여주었던 사고구조분석법을 그대로 활용한 연구인 “마 7:13-27의 구조적 특징”과 출애굽 주제를 통하여 구속사적인 해석을 시도한 연구인 “‘포도원 일꾼 비유’의 해석 열쇠”가 있다. 그리고 송영목 교수에게서는 3편의 마태복음 연구를 찾을 수 있다.
송영목 교수의 마태복음 연구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연구의 통일성이다. “마태복음의 지시성과 수사학”88)은 남아공의 화란 개혁교단 소속 신약학 교수인 H. J. Bernard Combrink(베르나르트 꼼브링크)의 논문을 번역한 것이지만, 다른 2편의 논문은 주제와 방법론에 있어서 그의 신학적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감람산 강화의 전환적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부분적 과거론을 주장하는 그의 방법론과 일치한다.89) 동시에 감람산 강화는 주제에 있어서 종말을 다루는 요한계시록과도 연결된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태공동체의 관련성”은 송영목 교수가 주로 활용하는 간본문적 연구 방법론을 보여준다. 내적 간본문적 접근과 함께 복음서들 사이의 간본문에 대하여서도 연구함으로써 본문비평을 통한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90)
한편, 누가복음 연구에서 황창기 교수는 누가복음 18:1-8의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 연구가 가지는 의미는 고신 신약학자에 의한 최초의 누가복음 연구라는 점과 고신 성경 해석학의 모델로서의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연구이다.91) 황창기 교수는 소위 강청하는 기도의 비유로 알려진 누가복음 18:1-18을 단순히 기도에 관한 교훈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아가 구속사적인 이해를 넘어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 왜 이 비유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여 현대 교회에 올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황창기 교수에 의해서 시작된 누가복음 연구는 송영목 교수에 의해서 더욱 활발해 진다. 송영목 교수는 누가복음과 관련하여 2편의 영문 연구와 1편의 한글 연구를 발표하였다.92) 그의 누가복음 연구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인 The Eschatological Exodus Theme in the Three Canticles in Luke 1-2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93) 흥미로운 것은 누가복음 1-2장의 출애굽 주제를 종말론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누가복음이 미래적 종말론보다는 실현된 종말론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그가 출애굽 모티프를 통하여 누가의 종말론이 단순한 개인의 복과 연결되기 보다는 우주적 구원을 제시함을 논증한 점은 매우 긍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원 이해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누가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사도행전 연구로까지 이어진다. 사도행전에 대한 연구자로는 송영목 교수가 유일하다. 그가 사도행전 연구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계시사’이다. 계시사적 관점에서 사도행전에 인용된 시편들을 다루고, 누가 성령론 분야에서 핵심 본문이기도 한 사도행전 19:1-8을 계시사적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특히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인용한 시편에 대한 연구에서는 본문의 계시사적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암시’와 ‘인용’이라는 문학적 기법을 활용한다. 동시에 LXX를 사용했던 누가의 변용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누가의 신학적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구원 계시사의 큰 흐름 속에 있는 본문에 대한 문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 공로가 인정된다. 사도행전 19:1-8에 대한 연구 역시 계시사적 메시지를 찾는 작업을 되풀이 한다. 물론 이 연구에서는 신학적 전제가 먼저 설정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는 없으나, 누가-행전의 큰 해석적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구속사라는 관점에서 난해한 본문을 언약의 중첩이라는 개념으로 풀어 나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송영목 교수에 의하여 조금 더 전문적이고 다양하게 다루어진 복음서는 그의 전공 분야와 연결되어 있는 요한복음이다. 송영목 교수는 요한복음에 관련된 5편의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의 요한복음 연구는 그의 신학적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한다. ‘간본문적 읽기를 통한 신구약의 통합적 이해’94), ‘본문비평 중심의 해석학’95), ‘부분적 과거적 종말론에 대한 이해’96) 등은 여전히 그의 요한복음 연구에 있어서 핵심적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볼 그의 연구는 2편이다. 하나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선지자직에 맞추어서 요한복음 8장에 나타나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 대한 내러티브를 죄에 대한 용서보다는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에 맞춘 연구이다.97) 그는 먼저 본문비평을 통하여 왜 이 내러티브에서 예수님의 선지자직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 타당한지 논증한다. 그리고 요 1-7장과 요한복음 7:53-8:11에서도 예수님은 선지자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요한의 의도임을 논증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구약과의 간본문적 시도를 통하여 요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창조’ 주제에 관한 연구이다. 그는 창조 주제를 출애굽 주제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또한 그의 중요한 신학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이 연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고신 신약학 학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1세기 문헌에 관한 연구가 시도되었다는 점이다.98)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볼 때, 고신대학교의 신약학 교수들에 의한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는 고신 교단이라는 범위에 제한되지 않고 한국 신약학계에서 오히려 더 왕성하고 풍성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논문들이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들에 의하여 더 많이 연구되어졌음을 뜻한다.99) 또한 이러한 연구들은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전하려는 진전된 시도들을 보여 주었다.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고신의 신학이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 있어서 현대 신약학계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더 풍성한 결과들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 『개혁신학과 교회』는 1991년에 창간한 이래로 지금까지 모두 29호를 발행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논문의 숫자는 305편에 달한다.
9) 신약관련 연구는 전체 305편 가운데 48편이다. 이중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5편, 나머지는 신약일반이 4편, 신약주제연구가 15편, 서신서 연구가 24편이다.
12) 길성남, “복음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개혁신학과 교회』 29 (2015), 74-75.
16) 황창기, “예수님 족보(마 1:1-17)의 구조적 특징,” 139.
19) 길성남, “현대 성경 비평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신약성경연구를 중심으로”, 『개혁신학과 교회』 25 (2011), 39-63.
21) 변종길, “심령이 가난한 자”, 『개혁신학과 교회』 7 (1997), 91-123.
22) 강용원, “마태복음에 나타난 舊約引用의 問題”,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 11 (1983), 161-78.
23) 류기철, “메시아 예언 성취의 성격과 의미”, 37-62.
24) 한정건, “마태복음 24장에 나타난 종말에 대한 재해석”,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 17 (1989), 93-116.
27) 조태연, “공관복음 연구”, 신약성서개론: 한국인을 위한 최신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512.
30) 길성남, “마태 8:5-13절과 누가 7:1-10절 비교: 백부장이 왔는가, 그 벗들이 왔는가?”, 『고려신학보』 13 (1987), 207-22.
35) 여기에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연구 보고서 2편이 포함되어 있다.
36) 허순길, “SOLA GRATIA의 고려신학대학원 50년 약사”, 하나님 앞에서: 개교 50주년 기념논문집 (부산: 고려신학대학원, 1996), 39-40.
37) 허순길, “SOLA GRATIA의 고려신학대학원 50년 약사”, 39.
38) 허순길, “SOLA GRATIA의 고려신학대학원 50년 약사”, 39.
46) 오병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고려신학보』 9 (1984), 22.
48) 신득일, “비유 주석”, 『고려신학보』 14 (1987), 147-58.
49) 길성남,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마 13:51): 비유 해석사와 비유 해석을 위한 지침”, 『개혁신학과 교회』 24 (2010), 89-122.
50) 길성남, “신약 성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주의 날”, 『개혁신학과 교회』 16 (2004), 31-68.
51) 변종길, “가정교회는 성경적인가?”, 『개혁신학과 교회』 21 (2008), 33-69.
52) 변종길, “장로직 제도에 대한 성경적 조명”, 『개혁신학과 교회』 21 (2008), 153-69.
53) 변종길, “상관적 진리 개념과 동성연애”, 『개혁신학과 교회』 13 (2002), 52-65.
54) 송영목, “신약성경의 예배에서 배우기”, 『개혁신학과 교회』 27 (2013), 52-69.
55) 황창기, “개혁주의 종말론 이해의 새로운 전형”, 11-48.
56) 황창기, “신약 ‘경건’의 기독론적 이해”, 『고신신학』 2 (2000), 13-36.
57) 임영효,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의도적인 죄에 대한 고찰”, 『고신신학』 3 (1991), 199-220.
58) 송영목, “칼빈의 영성 이해: 기독교 강요와 그의 신약 주석을 중심으로 필요성과 활용”, 『고신신학』 13 (2011), 287-317.
59) 송영목, “칼빈의 신약의 구약 사용 이해”, 『고신신학』 15 (2013), 35-56.
60) 송영목, “세월호 재앙을 구속하기: 신약의 관점에서”, 『고신신학』 16 (2014), 27-50.
65) 성경관에 대한 논문이 5편, 성경 비평학에 관한 논문이 6편이고 나머지 성경해석과 관련된 논문들이 11편이다.
66) 변종길, “칼빈의 정경관: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중심으로”, 『개혁신학과 교회』 23 (2009), 118-19.
67) 변종길, “고신의 성경관과 설교”, 64-92.
68)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논문이 2008년도 6월에 개최된 하기목회대학원의 강의안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변종길 교수가 2011년 『개혁신학과 교회』에 발표한 논문은 2008년 하기목회대학원의 세미나에서 강의안으로 사용한 원고와 거의 일치한다. http://www.kts.ac.kr/ww2/bbs/board.knf?boid=d04&wid=185.
70) 이환봉, “G. C. Berkouwer의 聖經觀 批判”, 『고신대학교 교수논문집』 11 (1982), 180.
76) 송영목, “한국장로교회 100년 회고와 전망”, 52.
77) 류기철, “메시아 예언 성취의 성격과 의미: 마 2장에 나타난 해석학적 전제와 예언 성취의 성격 연구,” 『고신신학』 11 (2009), 37-62.
79) 황창기, “애원하는 과부의 비유(눅 18:1-8)의 그리스도 완결적 이해”, 『신약연구』 3 (2004), 122.
80) 황창기, “구속사적인 성경해석의 기둥들,” 『고신신학』 11 (2009), 35.
81) 변종길, “영적해석 왜 필요한가?” 『신학과 목회: 신학포럼논문집』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2012), 78-99.
82) 길성남, “복음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77.
83) 길성남,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마 13:51),” 107.
85) 송영목, “세월호 재앙을 구속하기: 신약의 관점에서,” 33-48.
86) 홍반식, 『구약총론』 (서울:성암사 1978), ⅱ.
89) 송영목, “감람산 강화의 전환적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 『신약연구』 6(3) (2007), 493-525.
90) 송영목,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태공동체의 관련성: 마태복음 23:34를 중심으로”, 『교회와 문화』 34 (2015), 81-102.
94) 송영목, “요한복음 7:38의 구약 사용”, 『교회와 문화』 32 (2014), 69-96.
95) 송영목, “요한복음 1-12장에 나타난 P66과 P75의 용례 분석”, 『신약 연구』 14(2) (2015), 183-205.
96) 송영목, “요한복음 14장의 거주지의 성격”, 『신학논단』 79 (2015), 225-55.
97) 송영목, “간음하다 잡힌 여자 사건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지자로서의 정체성(요 7:53-8:11)”, 『신약연구』 12(3) (2015), 517-46.
98) 송영목, “요한복음의 창조 주제”, 『교회와 문화』 23 (2009), 15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