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축은 교회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이자 구원의 방편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참되게 예배하는 교회를 이 땅에 항상 있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 가운데 개혁주의 장로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목회자들 또한 항상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회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수고와 고민을 소개하고,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생존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건물과 장소에 관하여
양명지 목사
(두레교회 부목사)
교회가, 특히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싸워오고 있는 주제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교회 건물과 관련된 것이다. 교회의 건물을 교회라고 생각하는데서부터 아예 성전이라고 부르고 믿는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문제가 있다. 다르게는 실제적인 목회 현장과 관련해서 건물과 장소의 위치나 사용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가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는 건물과 장소와 관련해서 교회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교회를 잘 세워가기 위해서 함께 생각하는데 부족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1. 교회당입니다.
교회의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신자의 모임이 교회다. 교회가 예배와 교회 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건물을 우리는 교회당, 혹은 예배당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OO교회’는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OO교회당’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회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국교회 안에 아직도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을 두고 성전 건축이라고 부르고 성전 건축헌금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새 언약 시대의 도래로 성전이 파괴되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아직도 성전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얼른 바꾸어야 할 일이다.
우리의 말만 아니라 교회 생활에도 영향을 주어서 교회당을 필요 이상의 의미로 구별하거나 특별히 성스럽게 생각하는 의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예배당은 예배를 위해 사용되는 건물과 공간이지 건물과 공간 자체가 거룩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목사가 하는 말과 성찬식 때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가 언제나 다 설교와 성찬이 아니다. 오직 예배 때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될 때 설교와 성찬으로 구별되듯이 교회의 건물과 공간도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교회당 안에서 예배하는 처소로 사용하는 장소를 본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예배실로 바꾸는 것으로 제안해본다. 본당은 천주교회와 불교에서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고, 본당이라는 단어가 예배하는 공간 자체를 특별하게 보게 하는 그동안의 배경을 생각할 때, 다른 용어로 예배당과 관련된 정리된 의식을 담아보는 것도 좋겠다. 교회당은 교회 생활을 위한 건물이며, 예배실은 예배하는 공간이지 그 자체의 무슨 거룩한 능력이나 효과가 신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 건물을 장소와 공간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교회당과 관련해서 교회 생활의 변화의 작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교회당 안에 묶어두지 않을 수 있고, 교회당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실제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예배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교회가 규칙적으로 예배하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회당과 예배실을 지나치게 신성시하지 말자는 말이지 공간과 건물이기만 하니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 몸이기에 특정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이 있는 지역을 떠나 이사하거나 어릴 때 자랐던 고향에 도착해서 느끼는 정서는 사람이 전인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의 건물과 공간을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이해하되 교회당과 예배실을 떠올릴 때, 염려되고 걱정스러운 기억이나 정서가 생기지 않는 범위와 수준을 잘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신성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의 현실과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중립적인 공간과 건물로만 생각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공간을 특정한 목적에 맞게 유지하고 사용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이해와 교회의 정서를 두루 살펴야 가능한 일이다.
2. 우리는 이런 교회라서요.
‘교회당의 건물은 어떠해야 하고, 장소는 어디가 좋은가’는 사실 정답이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해답이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교회당은 신도시에,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고, 주차할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실제 교회 생활을 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반대의 이야기도 있다. 전원교회를 생각하는 교회는 오히려 교외로 나가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를 찾는다. 각 교회가 어떤 성격과 방향을 갖고 어떤 교회 생활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장소와 건물은 ‘우리는 이런 교회이고, 이런 방향과 성격의 교회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로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장소를 도시 안에, 혹은 교외로 정했을 때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준비한 장소를 교회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공공재로 제공하여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그 역할을 교회당의 건물과 공간을 통해서도 드러낼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어느 수준에서 허용하고 제공하고 공유할 것인가? 이것도 결국 목회자와 교회가 함께 고민하여 교회 정체성을 정리하면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따라 주중에 교회당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열고 공유하고, 제공하는 일을 고려하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마저도 교회당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여건과 상황이 다를 것이다. 대체로 주일에만 교인들이 모이는 경우라면 좀 더 적극적인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혹은 교회의 재정적 형편을 고려할 때, 교회가 감당할만한 정서와 정도의 용도로 대여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교회 건물과 공간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수도 있다. 여러 여건 중에 특히 경제적인 여건으로 많은 교회가 자체 건물을 갖기 어렵고, 앞으로 교회 쇠퇴기를 고려할 때, 충분히 고민할 문제다. 사실 한국교회 전체 상황을 볼 때, 대부분의 교회가 그런 고민을 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실제로 여러 교회가 한 예배 처소를 공유하고 있는 사례도 들린다.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교회와 목회 현실과 현장도 다양한 모양과 시도를 하고 있다. 예배를 위한 일관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한 가지 모양만을 고집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정답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원리를 붙들고 총회, 노회, 교회가,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현장에서 고민하고 씨름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정답은 아니라도 과정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향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길을 찾고 해답을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물리적인 시공간을 점유하고,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 모인 교회는 이 땅에서 적정한 시공간에 정규적으로 모여 예배하고, 교회 생활을 통해 신앙을 유지한다. 교회당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지만 신성한 공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여느 다른 장소와 공간과 똑같이 취급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성격과 현실, 시대적 상황과 요청을 고려하면서 장소와 건물을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의식이나 신념의 동의로만 구성되는 모임으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부동산이 복잡하게 과도, 과밀하게 되어 있는 현실 가운데 건물과 장소와 관련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개교회의 심사숙고만 아니라 교단 전체의 연구와 고민이 함께 있어야 바르고 건강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노회와 시찰이 교회의 영적인 실상을 잘 돌아보는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며 돕는 동역을 잘 감당해나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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