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오~ 당신의 율법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요![1]

 

 

 

 

 

21064.jpg

 

 

저자: 싱클레어 퍼거슨 (Dr. Sinclair B. Ferguson)[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2015년 10월에 있었던 프로 골퍼 협의회 (PGA) 투어 토너먼트 경기에서, 벤 크레인 (Ben Crane)은 두 번째 라운드를 마친 후 스스로 실격을 인정했다. 상당한 재정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그는 그렇게 했다. 크레인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그리 하지 않았을 경우에 자신의 손실이 더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크레인은 자신이 그다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골프의 규칙들 중 하나를 어겼음을 깨달았다. 만일 필자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는 자기 공을 급히 찾고 있는 동안, 자신의 골프채가 돌 위에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찾고 있던 공을 포기하고 그 공을 포기하는데 따른 벌점을 받았으며, 경기를 계속해서 자신의 라운드를 마쳤다. 그는 금요일 밤 술에 취해 그 일을 잊어버리길 원했다; 금전적인 유혹의 손짓을 따랐던 매우 성공적인 금요일. 그 다음 그는 생각했다: “내가 엉겁결에 나의 골프채를 지면에 닿게 한 것에 대한 벌점도 셈에 넣었어야 했는가?” 당연하다 (규칙 13조 4항). 따라서 그는 스스로 실격을 인정했다.

     크레인은 그 일로 인해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 속이 좁다는 식의, 악의가 있는 혹은 품위가 없는 사이버 상의 공격이나 혐오 메일의 쇄도는 전혀 없었다. 그 누구도 “벤 크레인은 심한 율법주의자다” 라고 말했거나 글을 썼던 것 같지는 않다.

     크레인이 골프 규칙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 것에 대해서는 그처럼 많은 찬사를 목격하지만, 삶의 규칙들, 즉 하나님의 훨씬 더 직설적인 율법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반응을,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목격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걸까?

 

 

문제

 

     예수님이나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다. 바울은 자신의 은혜의 복음이 율법을 지지하고 확립한다고 썼다 (롬 3:31) –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안돼” 라고 말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심지어 그 금지 형태의 하나님의 계명들조차도 (딛 2:11-12). 그리고 마태복음 5:17-19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율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성에 대한 시금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가인 존 뉴톤이 “율법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무지가 대부분의 종교적 오류들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라고 쓸 수 있었는지를 또한 자각한다. 여기에 심오한 이슈가 놓여 있다. 성경에 따르면, 은혜를 아는 사람은 율법을 사랑한다. (덧붙여 말하면, 반()율법주의를 대항한 단순한 논쟁들은 이 사실을 결코 제시하지 못한다.)

    벤 크레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라면 왜 골프의 그 복잡한 규칙들을 준수하려 했겠나? 그 이유는 당신이 골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하지만 이보다 더 숭고한 무언가가 신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율법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왜냐하면 율법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이 아름다운 성경의 단순성에 기초한다. 이제 세 사람 - 아담, 모세, 그리고 예수님 - 과 그들이 대표하는 세 “활동무대” 혹은 “시대”라는 측면에서 이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담

 

     창조 때에, 하나님은 계명들을 주셨다. 그 계명들은 하나님의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시고 관대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계명들은 늘 우리를 위한 최선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이시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으로 (대단히 중요한 진술 [창 1:26-28])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자 마자, 그분은 그들에게 지켜야할 계명들을 주셨다 (29절). 여기서 그 문맥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준다: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아담과 하와는 그분의 형상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을 나타내게 하셨다. 그분은 우주적 대군주이시고, 그들은 이 세상의 영주들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함께 하는 삶에서의, 서로와 창조세계에 대한 그들 상호간의 기쁨이다. (1:26-2:3).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출발점인 에덴 동산을 주셨다 (2:7). 하나님은 그들이 그 동산을 땅끝까지 확장하기를, 그리고 위대한 원형이신 창조주를 본받는 형상들인 작은 창조자들로서 그 동산을 기뻐하기를 원하신다 (1:28-29).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 명령들은 그분의 형상과 영광을 우리가 반영한다는 것을 그 의미 속에 담고 있다. 하나님 형상의 담지자들은 그분처럼 되도록 창조된다. 어떤 형태로나, 모든 하나님의 명령들은 그것들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이 원리를 지닌다: “너희는 나의 형상과 모양이다. 나처럼 되어라!” 이것이 그분의 명령에 반영된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여기에 내포된 의미는 하나님 형상의 담지자들이 그분을 나타내도록 창조되고 설계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외적인 율법들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그 율법들은 단지 하나님의 형상에 내재된 그 “율법들,” 즉 이미 양심에 새겨져 있는 율법들의 특별한 적용만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본받아 그분처럼 되려고 하는 것은 본능적인데 이는 그들이 그분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어린 셋(Seth)이 자신의 아버지, 아담의 모양 곧 그의 형상과 같았기에, 본능적으로 아담처럼 행동하려고 했던 것처럼 (창 5:3).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하지만 그때 인간의 타락이 발생했다: 죄, 하나님의 계시된 율법에 일치하는 것의 결핍, 그리고 그 형상의 일그러짐은 내적 인간본능의 오작동을 초래했다. 그 거울상(mirror image)은 하나님의 시선과 삶을 외면했고, 그때 이후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런 상황을 공유했다.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시다. 자신의 형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항상 동일하시다. 하지만 그 형상은 손상되어 있다. 흙을 정원으로 바꾸기 위해 피조된 영주는 흙 자체가 되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아 있고, 우리가 어떻게 최선의 삶을 살 지를 지도하는 율법은 변함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상했고 힘이 없으며, 내적으로 일그러졌고, 비뚤어졌으며,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아주 관대하게 우리를 부양하신 회사의 주인(성부와 성자)으로부터 도둑질해서만 생존하고 있는 부랑자들이다. 율법은 우리 내면에서 여전히 작용하고 있지만, 기껏해야 신뢰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는 율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4-15; 롬 7:7-25절도 보라)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초상 – 그분의 형상 – 이 원래대로 회복되길 원하신다.

 

 

모세

 

     본질에 있어서, 모세의 율법 – 십계명으로 요약된 – 은 창조 시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돌 비석에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율법은 타락한 인간에게 왔고 인류의 새로운 상황을 말해주기 위해 속죄 제물을 포함해야 했다. 모세의 율법은 한 특별한 지역에 있던 한 특별한 민족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창세기 3:15절에 약속된 그 구세주가 올 때까지 해당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율법의 표징들과 희생제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그날까지, 한 특정 지역에 있던 한 특별한 민족과 관련된 추가적 적용들과 함께, 대부분 금지의 의미를 지닌 어휘들로 주어졌다.

     율법은 미성년 자녀로서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갈 3:23-4:5) – 대부분 금지의 형태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전기가 작용하는 지를 설명하기 훨씬 전에 그들을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 (“드라이버를 전기 소켓에 찔러 넣지 마라!”). 그것은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율법의 부정적 진술들이 긍정적 명령들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옛 언약의 신자들에게도 분명했다. 부정의 형태인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한 완전한 색채의 고도로 발전한 그림을 함의하고 있었고, 2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그 그림을 구체화시켰다. 나머지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로 발전하게 되는 부정 명제들이었다.

     게다가, 동물 희생제물들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했기에, 그것들은 분명히 비율적으로 부족했고 그것들이 묘사했던 용서를 베풀 수 없었다. 구약의 신자는 이틀 연속 성전에 감으로 그 일을 행했다: 제사장은 여전히 제단에 서 있었고 계속 반복해서 희생제사를 드렸다 (히 10:1-4, 11). 마지막 충분한 희생제물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십계명이 그 땅의 백성들을 위한 시민적 적용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민족들에 흩어지게 되었을 때 이 지역적 법률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하나님 왕국의 보존과 진전 또한 더 이상 이 법률들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신앙의 가르침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잘 표현되어 있다: “도덕법”은 지속되고, “의식법”은 성취되었고, “시민법”은 폐기되었다 – 비록 우리가 분명히 의식적 그리고 시민적 법률로부터 많은 것들을 여전히 배울 수 있지만 (19:3-5). 비록 적은 선명도로써 이지만, 구약의 신자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직 십계명만이 하나님의 아주 적격한 성품과 마음의 표현으로서 법궤에 놓여 졌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에, 율법은 하나였음이 맞다. 하지만 모세의 율법은 획일적인 하나의 덩어리와 같지 않다 – 그것은 다차원적이었고, 기초와 또한 적용의 영역들을 가지고 있었다. 도덕법은 영원했다; 의식법과 시민법은 밝아오는 메시야 도래 시대까지의 잠정적 제도들이었다.  

 

 

 
 

 

[1] 헤리티지 개혁교단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발행하는 공식 교단 매거진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vol. 24, no 4 (July/August 2016): 164-165에, “Oh How I Love Thy Law!” 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시 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싱클레어 퍼거슨 박사는 다작의 작가이고 지금은 스코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대단히 저명한 강사이다. 이전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콜럼비아시에 있는 제일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겼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해외칼럼] 집사직에 관한 브라켈의 조언 (2부)

    집사직에 관한 브라켈의 조언 (2부)[1] 저자: 빌헬무스 브라켈 (Wilhelmus Brakel, 1635-1711)[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집사의 자격 사도는 집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기술한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
    Date2017.05.25 By개혁정론 Views823
    Read More
  2. [해외칼럼] 집사직에 관한 브라켈의 조언 (1부)

    집사직에 관한 브라켈의 조언 (1부)[1]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저자: 빌헬무스 브라켈 (Wilhelmus Brakel, 1635-1711)[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제정하신 세번 째 직분은 집사...
    Date2017.05.18 By개혁정론 Views126290
    Read More
  3. No Image

    [해외칼럼] 장로 심방에 관한 데이빗 딕슨 장로의 조언

    [해외칼럼] 장로 심방에 관한 데이빗 딕슨 장로의 조언[1] 저자: 데이빗 딕슨 (David Dickson, 1821-1885;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 장로)[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장로의 통상적 심방 빈도는 거리, 그의 재량에 맡겨진 시간, ...
    Date2017.03.20 By개혁정론 Views725
    Read More
  4. 칼빈의 일반은총론이 갖는 함의

    칼빈의 일반은총론이 갖는 함의 (“칼빈과 일반은총” 에서 발췌 (4)) 저자: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영문번역: 게할더스 보스 (Geerhardus Vos, 미국 구 프린스턴 신학교 성경신학 교수) 한글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
    Date2017.03.06 By개혁정론 Views1921
    Read More
  5. [해외칼럼] 칼빈의 예정론과 그에 대한 오해와 실상

    칼빈의 예정론과 그에 대한 오해와 실상 (“칼빈과 일반은총” 에서 발췌 (3)) 저자: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영문번역: 게할더스 보스 (Geerhardus Vos, 미국 구 프린스턴 신학교 성경신학 교수) 한글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
    Date2017.02.06 By개혁정론 Views2283
    Read More
  6. [해외칼럼] 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예정론

    루터, 츠빙글리, 칼빈의 예정론 (“칼빈과 일반은총”1)에서 발췌 (2)) 저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영문번역: 게할더스 보스 (Geerhardus Vos, 미국 구 프린스턴 신학교 성경신학 교수) 한글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
    Date2017.01.25 By개혁정론 Views2028
    Read More
  7. [해외칼럼] 칼빈과 일반은총 (발췌 (1))

    칼빈과 일반은총1) (발췌 (1))2) 저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영문번역: 게할더스 보스 (Geerhardus Vos, 미국 구 프린스턴 신학교 성경신학 교수) 한글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비록 로마 가톨릭교회는 다양하고, 심...
    Date2017.01.10 By개혁정론 Views1764
    Read More
  8. [해외칼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칼빈신학교 다섯 교수의 대담(2)

    성령의 사역 (2부)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개혁주의적 이해를 위한 5인의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들(캘덜먼, 볼트, 쿠퍼, 훌스터, 스미스)의 대담[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캘덜먼: 좀더 세계적인 관점에서 성령의 권능에 대해 ...
    Date2016.12.26 By개혁정론 Views966
    Read More
  9. [칼럼] 연약한 인간, 연약한 교회

    [칼럼] 연약한 인간, 연약한 교회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피조물이므로 창조주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마지막 피조물이므로 이전의 피조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타락한 죄인이므로 죄 짓지 않고...
    Date2016.12.22 By개혁정론 Views1041
    Read More
  10. [해외칼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칼빈신학교 다섯 교수의 대담(1)

    성령의 사역[1] (1부)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개혁주의적 이해를 위한 5인의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들(캘덜먼, 볼트, 쿠퍼, 훌스터, 스미스)의 대담[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캘덜먼...
    Date2016.12.19 By개혁정론 Views1148
    Read More
  11. [해외칼럼] 당신이 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8가지

    당신이 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8가지[1] 저자: 데이빗 머레이 (Dr. David Murray)[2] 번역: 태동열[3] 천국은 지극히 천상적이어서 지상의 피조물들에겐 그곳이 참으로 어떠한 모습일 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은 성경이 왜 자주 천국을 ‘어떤 것들이...
    Date2016.11.18 By개혁정론 Views1157
    Read More
  12. [해외칼럼] 교의의 드라마: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교리문답 부활의 필요성

    교의의 드라마: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교리문답 부활의 필요성[1] 저자: 레오나르드 판데르 지 (Len Vander Zee)[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필자는 북미 기독개혁교단(Cristian Reformed Church)에 있는 목사들과 장로들로부...
    Date2016.11.14 By개혁정론 Views644
    Read More
  13. [해외칼럼] 내가 바르트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

    내가 바르트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 저자: 리차드 멀러 (Richard Muller, 전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지난 한 해 (1986년) 동안 칼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20세기 신학에 기여한 그...
    Date2016.11.07 By개혁정론 Views4772
    Read More
  14. [해외칼럼] 오~ 당신의 율법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오~ 당신의 율법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요![1] 저자: 싱클레어 퍼거슨 (Dr. Sinclair B. Ferguson)[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2015년 10월에 있었던 프로 골퍼 협의회 (PGA) 투어 토너먼트 경기에서, 벤 크레인 (Ben Crane...
    Date2016.11.04 By개혁정론 Views640
    Read More
  15. [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속의 유아세례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속의 유아세례[1] 저자: 라일 비에르마 (Lyle Bierma,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및 박사과정 학장)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침례교 그리스도인들과 개혁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동일한 교리들을 ...
    Date2016.10.28 By개혁정론 Views1864
    Read More
  16. [해외칼럼]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 (2부)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 (2부)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조직신학 & 설교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4.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 1983년 웨스트민...
    Date2016.09.26 By개혁정론 Views974
    Read More
  17. [해외칼럼] 유아세례: 성경은 뭐라고 말하나?

    유아세례: 성경은 뭐라고 말하나? 저자: 윌버트 판 다이크 (Wilbert M. van Dyk, 전 미국 칼빈 신학교 학장 및 설교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교회에서 드려지는 주일예배의 한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라. 세례반(盤)이...
    Date2016.09.19 By개혁정론 Views3267
    Read More
  18. [해외칼럼]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 1부 (조엘비키)

    My Top Ten 청교도 저자들 (1부)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조직신학 & 설교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지난 40여년간 필자가 청...
    Date2016.09.12 By개혁정론 Views1941
    Read More
  19. [해외칼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1]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7) 저자: 데이빗 머레이 (Dr. David Murray)[2] 역자: 태동열[3] 필자가 어느 해 여름 영국에 있었을 때, 천장...
    Date2016.08.11 By개혁정론 Views1671
    Read More
  20. [해외칼럼]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은 ‘선교적’ 신학인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은 ‘선교적’ 신학인가?[1] 저자: 존 볼트 (John Bolt,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오늘날 우리는 교회는 반드시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한다는 주장을 정기적으로 듣는다. 이 주...
    Date2016.07.27 By개혁정론 Views434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고신총회설립 70주년 총회, 무엇을 ...
2022년 총회에 대한 우려...
힘들 때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가...
고신 교회 제7차 헌법 개정안 초안...
제7차 헌법개정에 나타난 교리와 예...
기독교보(1499호, 2022년 8월 6일) ...
고신 교회 정체성을 부인하는 ‘명예...
교회학교인가? 주일학교인가? -헌법...
SFC, 여전히 필요한 고신의 학생운동
헌법개정안 중 권징조례 초안 비평 ... 1
논문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
한국 교회의 위기: 노회의 기능과 역할
한국 장로교회 헌법, 어디로 가야 ...
시찰 없이는 노회는 없다: 노회의 ...
한국장로교회헌법, 어디로 가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