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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역[1] (1부)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개혁주의적 이해를 위한 5인의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들(캘덜먼, 볼트, 쿠퍼, 훌스터, 스미스)의 대담[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캘덜먼: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무엇이 특히 중요한가?  

 

훌스터: 성령의 사역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 – 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우리 안에서의 그리고 우리를 통한 성령의 사역이다.

 

쿠퍼: 그것을 또다른 방법으로 생각해 보면, 성령이 창조의 모든 일과 재창조의 모든 일 배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명한 화란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성령은 창조세계의 모든 구석구석에, 심지어 기독교 교회를 넘어 관계한다고 가르쳤다. 만약 나무들이 살아 있다면, 만약 아돌프 히틀러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면,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다.

 

볼트: 성령의 사역은 여전히 남겨진 기독교 교회의 의제들 중 하나이다. 초대교회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회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교리들을 수행했고, 중세시대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를 수행했으며, 종교개혁시대에 칭의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었다. 하지만 성령론에 관한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작업과 합의 같은 것은 없었다. 그 후 20세기가 도래하고 우리는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운동 계열의 기독교가 성장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령에 대한 증거로 충만하다.

   성령이 지난 백 여년동안 극적인 방법으로 역사해 왔다는 대단히 많은 경험적인 증거가 있다. 그것은 왜 방언이나 예언 같은 특별한 은사들이 단지 사도시대를 위한 것이었다는 관점을 간단히 방어할 수 없는 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것은 성령의 경이롭고 강력한 역사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받아들여 져야 한다는 걸 의미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성경이 그것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는 지 분별하도록 부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의 강력한 증거를 우리의 신학적 팔로 감싸야 한다.

 

캘덜먼: 수년 전 어떤 이가 나에게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을 살펴보면서 성령이 언급될 때마다 밑줄을 그어보라고 말했다. 성령이 어떻게 삶과 구원의 모든 면에 관계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매우 놀랍다. 그렇다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이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축복에 동참하게” 하신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볼트: 그 첫번째 문구[‘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서 그에 의해 성취된 유익으로, 죄에 대한 완전한 대가의 지불이다. 그리스도의 유익에 동참한다는 것은 죄 용서를 받는 것과 우리가 인간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자들이 되기 위한 힘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쿠퍼: 그것은 또한 중생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것은 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이다. 비록 옛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옛 본성은 새 본성으로 변화된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고, 그것은 성령의 역사 – 초자연적 기적 – 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중생이고 기독교 교회에서 항상 일어난다.  

 

 

캘덜먼: 성령의 열매 또한 초자연적 역사에 의한 기적인가?

 

훌스터: 그렇다. 그것은 중생의 모든 부분이다. 성령에 의한 그 기적[중생]이 없이는 우리 중 누구도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를 소유할 수 없다. 어떤 사람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바로 참된 기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내 일어나고 있다!

 

 

캘덜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 “말씀과 성령”이라는 문구가 자주 나타난다. 왜 개혁주의 신자들은 그 두 단어를 짝짓는가?

 

훌스터: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은 “성령이 나에게 저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제안하는 개선책 중 하나는 말씀과 기독교 공동체와 대면해서 그것을 검증해 보라는 것이다

 

쿠퍼: 우리는 또한 삼위일체 때문에 말씀과 성령을 언급한다. 삼위일체 – 성부, 성자, 성령 – 는 창조, 구속, 그리고 재창조와 연관된다. “말씀과 성령”은 단지 성경과 성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씀은 삼위일체에서 두번째 위격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 하며, 두번째와 세번째 위격들은 첫번째 위격과 함께 일한다. 기독교 내에서의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성자와 성령 없이 성부의 종교를, 혹은 다른 두 위격들 없이 성자의 종교를 취할 때 발생한다. 오순절운동의 위험성은 성령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성부와 성자를 뒷전에 남겨두는 것이다.   

 

볼트: 우리는 또한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즉,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능동적인 역사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

 

캘덜먼: 나의 신학교 교수였던 핸리 스탑 (Henry Stob) 은 “성령은 성경의 등에 올라탄다”라고 말했다.

 

쿠퍼: 맞는 말이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의 등위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둘은 공생의 관계이다.

 

캘덜먼: 개혁주의 신자들은 가끔씩 성령에 매우 취약한 이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을 잘 살펴보면 그것은 성령에 대해 매우 풍성하다. 우리가 스스로의 신학에 충실하지 못한 게 아닐까?

 

볼트: 우리 자신의 신학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우리가 성령에 취약한 이들로 간주되는 이유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회에 다녀온 후 해변을 달리며, 그 후 갑자기 피서를 가고, 책을 읽거나 위기를 맞은 후, 그들의 과거나 그들의 교회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나는 지금 갖게 된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이전엔 갖지 못했었다” 라고 생각하는 신자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실로, 우리가 만일 지속적으로 교회에서 성령충만한 삶을 촉진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반응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쿠퍼: 나는 오늘날 우리가 성령에 대한 일상적인 관점이 부족하다고 본다. 성령은 주님이고 생명의 수여자이다. 창세기 1장에 성령이 나온다. 성령은 나무가 자라게 하고 심장이 뛰게 한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지성과 예술적 공학적 재능들을 주며 농부에게는 어떻게 농사를 짓는 지 가르친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깊이 경건하고 영적이었는 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경건 저서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To Be Near Unto God)』 는 기독교 전통의 어떤 것 못지 않을 만큼 영적이고 카리스마적이며 신비적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개혁주의 인물들에 충분히 필적하지 못하고 그들이 성령에 대해 행한 바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전통에 대한 망각이다. 아주 경건하고 영적인 그들 또한 힘든 삶을 살았고 소박하게 하나님을 의지했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했고 매우 힘든 일을 하러 갔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을지 혹은 그들의 건강이 내년에도 괜찮을지 혹은 자녀들이 다음해에도 살아있을 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루에 여섯 시간동안 기도하지 않았고 방언과 지식의 말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영적 에너지가 폭발할 정도로 충만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살아있는 믿음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았던 수많은 성도들의 ‘삶을 견디고 지탱해가는 신앙’이며,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나는 그것이 번쩍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낮춰 보지 않을 것이다.

 

캘덜먼: 이것은 정확히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메시지이다. 그는 자신이 영성의 교사임을 인정하지만 우리가 가장 우선 행할 필요가 있는 일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 단어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07년 가을 호에 “The Work of the Holy Spirit”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Forum에 있습니다.

 

[2] 듀엔 캘덜먼(Duane Kelderman)은 전 칼빈 신학교 부총장, 존 볼트(John Bolt)는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존 쿠퍼(John Cooper)는 철학신학 교수, 메리 훌스터(Mary Hulst)는 전 설교학 교수, 그리고 케이티 스미스(Kathy Smith)는 교회정치 조교수이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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