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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15:43

속죄일의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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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문은 새언약교회(조재필 목사)의 2021년 1월 첫 주일 신년예배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속죄일의 절차 (레위기 16:11~22)

 

 

조재필 목사

(새언약교회 담임)


 

 

속죄일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이제 실제 절차들이 진행됩니다. 속죄일은 크게 세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첫째, 수송아지와 숫염소를 잡아 피를 성막 세 곳에 뿌립니다. 둘째, 성소에 들어가서 향단에 향을 피워 올립니다. 셋째, 숫염소 한 마리를 광야로 몰아냅니다. 이 절차들을 통해서 깨닫는 복음의 원리들을 묵상하고, 이 원리를 2020년도를 보내고, 2021년도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 삶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제물의 피를 뿌림

 

   첫 번째 절차는 희생제물의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먼저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세 군데에 갑니다. 성막 뜰에 있는 제단, 성소 안 휘장, 마지막으로 지성소의 속죄소입니다. 그 세 곳에 피를 뿌리거나 바릅니다. 또 다시 숫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동일하게 반복합니다. 수송아지의 피는 제사장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숫염소의 피는 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피를 뿌리는 절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본문이 알려줍니다. 16절에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9절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절차의 목적은 더러워진 회막과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피 뿌림이 있기 전에 회막과 성소는 더려워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더러워졌습니까?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난 일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으로 임재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의 죄가 성막을 더럽혔던 것입니다.

 

   오늘 이 규례를 적용하기 위해서 성막에 관한 개념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닮아 있습니다. 세상을 하늘과 땅과 바다로 세 부분으로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은 성막을 세 부분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집이 더러워졌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입니다. 기억해 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습니다. 그러자 동산이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더러움을 일으키는 장본인인 아담과 하와가 좇겨났습니다. 에덴동산도 하나님의 집이고,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의 집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그 집을 돌보는 직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집을 더럽혔습니다.

 

   성막 역시 하나님의 집입니다. 에덴동산을 회복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간은 죄인입니다. 제사장도 범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범죄 합니다. 그래서 성막이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담과 같이 좇아내시지 않습니다. 대신 집을 정화시키십니다. 방법은 짐승의 피를 통해 그 집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와 레위기의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구속사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더 넓은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단지 성막만 아니라 온 세상을 정화시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정화시키십니다. 이 때도 피로 정화시킵니다. 이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닙니다. 바로 아들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로 더러워진 세상을 정화시키십니다. 이로써 이 세상은 다시금 하나님의 집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다시금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레위기 규례는 장차 있게 될 이 구원에 대한 예고편입니다. 특히 제단의 네 뿔에 제물의 피를 바르는 모습은 십자가에서 사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다릅니다. 수송아지와 수염소의 피는 성막만을 정결하게 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온 세상은 정결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세상을 당신의 처소로 인정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의 피흘리심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계는 바이러스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실 몸과 영혼을 겸하여 죽이는 죄가 몸만 죽이는 바이러스 보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포스러운 죄를 예수님의 피가 제거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의 집인 나 자신과 우리 가정과 온 세상을 정화시켜 주실 것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 향로에서 향을 피워 올림

 

   다음 절차는 성소에 있는 금 향로에 향을 피우는 것입니다. 향로는 성소 안, 휘장 바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향로를 성막 뜰로 가지고 나와서 제단에서 사용되는 숯불을 가득 담고, 거기에 귀한 향을 태워서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 절차의 효과를 13절에서 가르쳐줍니다.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우리 성경에는 향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구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향기의 구름입니다.

   이 향을 피우는 목적은 단 하나 입니다. 대제사장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보존합니까? 하나님의 진노로 부터 보존합니다. 그러니까 향로에서 향연이 피어오르면 이것이 하나님의 시선을 가리게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허물을 가리고, 목숨을 보존하고, 그래서 백성들을 위한 속죄 사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향로의 이런 효과는 민수기에서도 발견됩니다. 고라 자손이 반역했을 때 갑작스러운 역병이 백성들을 덮쳐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 이 때 아론이 급히 달려가서 향로를 들고 와서 백성들 가운데 들어갑니다. 이 때 백성들을 넘어뜨리던 역병이 그쳤습니다. 여기서도 향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가로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향기의 구름이 피어오르면 하나님은 이 연기에 가려서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연기로 하나님의 시선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죄인 가운데 하나인 대제사장을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향기의 구름은 복음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신약 성경에서 향연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3~4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여기서 향로의 연기를 성도들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레위기와 계시록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는 능력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기도가 이 정도의 효력이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러한 예들을 보여 줍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내릴 진노를 가로막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광야에서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약 5:16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향연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능력을 나타냅니다. 읽어드린 말씀 바로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요한계시록의 기도는 고난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배교한 유대교와 세상으로 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심판이었습니다. 불과 우레와 번개와 지진의 심판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불러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무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이런 능력과 효력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가 죄악된 세상에 내리지 않도록 가로막는 중보자의 역할을 교회가 하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교회가 기도 가운데 죄악된 세상을 엄중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코로나 시기에 이 기도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과 머무는 장소를 단순히 외출하지 못하는 감옥으로 여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성소로 삼으십시오. 기도하는 집으로 삼으십시오. 가정의 제사장이 되십시오. 백성을 위해 중보자가 되십시오. 그래서 기도의 향기 구름을 하나님 앞에 올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자리를 이 시대를 살려주시는 출발점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향연의 두 번째 복음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향연의 원문이 ‘향기 구름’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성막에 구름이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성소는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땅과 하늘의 수직 구조를 수평 구조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지성소 안, 속죄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소는 땅이요, 특별히 예배하고 기도하는 영역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구름이 드리워 있습니다.

 

   이러한 성막의 모습은 우리 예수님이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기억해 보십시오. 부활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내 구름이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가렸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계신 하늘 성소 아래 구름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름 아래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모습은 향연이 피어오르던 레위기 성막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향연을 통해 속죄소에 들어가듯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 성소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구름 위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로막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에게 향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인 교회는 구름 아래 머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다스림과 보호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대입니다. 우리의 좌우를 살펴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는 연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위를 올려 보십시오. 예수님의 영광 구름이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친히 서셔서 우리의 형편을 살피고 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사형장에서 바로 이 장면을 보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도 가운데 구름 위에서 계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시면서 이 고난이 엄습한 연말연시를 지나시기 바랍니다.

 

 

3. 속죄 제사를 위한 짐승의 준비

 

   이제 마지막 남은 속죄일 절차가 있습니다. 염소를 광야로 내모는 것입니다. 속죄일에 온 백성의 죄를 위해서 숫염소 두 마리가 준비됩니다. 염소 두 마리의 머리에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안수를 합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제단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고, 한 마리는 광야로 몰려 갈 것입니다.

 

   두 마리 다 속죄를 위한 제물입니다. 두 마리 다 백성의 죄를 전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가 방식이 다릅니다. 한 마리는 죽이고, 한 마리는 추방합니다.

 

   죽임 당한 염소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추방당하는 두 번째 염소에 대해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아사셀이 무엇인지 대략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히 돌 절벽이 있는 황량한 광야 지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봅니다. 또 하나는 마귀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봅니다. 바알세붑이 성경에서 마귀를 가리키는 이름인데, 이 이름은 원래 이방신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마귀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아사셀도 이런 경우와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10절에 ‘아사셀을 위하여’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고 말합니다. 9절에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에서 희생으로 드려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사셀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아주 어렵게 됩니다.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만 아니라 마귀에게도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더불어 묵상하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두 가지 방향으로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값을 치르시기 위해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마귀와 사망에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마귀가 인간에게 어떤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 마귀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적인 세계관에서 광야는 마귀의 영역입니다. 모든 자연세계가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성경은 광야의 메마름과 극단적인 절박함을 마귀의 영향력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게 여깁니다.

 

   한 염소는 이 광야에 자리를 잡은 아사셀, 즉 마귀에게 끌려갑니다. 실제 이와 같이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죄인들의 운명이었지만, 예수님이 그 고난을 대신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마귀와 사망에게 넘겨지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외면당하셨습니다. 가장 극심한 광야가 바로 골고다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사망은 또 다시 예수님을 붙잡아둘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죄가 없으신 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염소가 광야로 내몰릴 때 아무도 그 염소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성문 밖 골고다 십자가에 끌려가실 때 아무도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속죄일에 아사셀의 염소는 광야에서 죽고 끝나버렸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광야에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광야를 정복하듯이 마귀와 사망을 정복하고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삶의 터전이 광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 안은 안전하고 성 밖은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성 안에서도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살릴 분은 광야를 정복하고 살아서 돌아오신 예수님 뿐입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송구영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주님께 기도의 향연을 올려 드리며 송구영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급한 시대에 주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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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인도, 그 절박한 유혹 설교본문: 출애굽기 32:1-6; 요한계시록 7:13-17 설교자: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질문 한 가지 해 보겠습니다. 과거의 속박이 무섭습니까, 미래의 압력이 더 거셉니까? 똑같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발목 잡혀서, 또한 미래에 저...
    Date2017.04.04 By개혁정론 Views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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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설교] 의(Right)와 공도(Just)를 행하게 될 나라

    [설교] 의(義, Right)와 공도(公道, Just)를 행하게 될 나라 설교본문: 창세기 18:16-19 설교자: 손재익 목사(한길교회) 서론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서의 그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교회답...
    Date2017.03.12 By개혁정론 Views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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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설교]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교회

    [설교]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교회 성경본문: 에베소서 1장 20-23절 설교자: 황대우 목사 우리 교회는 “0000교회”입니다. 여기서 ‘교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오늘날 신학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정...
    Date2017.03.10 By개혁정론 Views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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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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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