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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감옥에 갇혔는가?

- 한부선 선교사가 남긴 책, 언약의 노래 -

 

                                                                                                                    이 윤 호(선교지평 발행인)

 

 

 

       한부선(Bruce F. Hunt) 선교사가 쓴 언약의 노래: For a Testimony라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은 미국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가 한국인들에게 보낸 선교사 한부선이 19411022일부터 194261일까지 8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김윤섭, 박의흠, 최씨 노인,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함께 만주감옥에서 겪었던 일들을 간증형식으로 적은 글모음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짧은 시간 안에 담겨 있는 장면들이 우리의 선교관을 되짚어보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태도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더 크기도하다.

        나는 이 책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 책 자체만 해도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동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시간과 공간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반 만주 땅과 선교사 한부선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하려는데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이 책은 대략 8개월 동안 한부선 선교사가 보고 느낀 것을 주로 기록하고 있어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 시대적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 않으므로 독자들은 옥중수기(獄中手記)가 흔히 그렇듯 힘든 옥고를 치렀다.”는 고생담에만 눈이 쏠릴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분명한 역사적 지식을 가져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보다 바람직한 감동과 교훈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한부선 선교사는 1941년 그가 살던 만주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안동과 하얼빈의 감옥에서 고통과 감사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왜 감옥으로 끌려갔을까?

 

만주국, 신사참배

 

        만주 땅 하얼빈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 도시는 순간적으로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우리들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늘 만주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던 일본과 함께 거론된다. 그들이 그곳을 탐내던 러시아를 제압하고 이미 정복의지를 드러냈을 때다. 1909년 근대 일본의 영향력 있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러시아 측과 회담을 위해 만주를 방문했을 때 안중근은 바로 하얼빈 역에서 그를 저격했다. 일본을 향한 이런저런 저항이 꾸준히 있었지만 당분간 그들의 야심을 막아 낼만한 집단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본은 꾸준히 세력을 다져나가더니 1931년이 되자 군사력을 동원해 만주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이듬 해 이곳에 만주국(滿洲國)이 세워진다. 1911년 중국역사에서 사라졌던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만주국의 최고 통치권자로 추대된다. 이 나라에서 정치를 맡은 사람들은 중국인이었지만 그것은 겉치레일 뿐 실제로는 일본군대가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국정을 휘어잡고 있었다. 일본의 괴뢰국가라 할 수 있는 만주국은 1945년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만주국이라는 정치체제는 지금 우리가 살피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데, 사실상 만주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가장 셀 때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침략해서 권력을 행사할 때 경제적 이익을 얻고 군사적 거점을 확보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지배 민족들의 정신까지 얻고자 했고, 그것을 위한 노력들 중 하나는 신사참배였다. 이렇게 해서 지배체제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은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이다. 그 중심에는 천황(天皇)이 있다. 천황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을 존경하지 않고 숭배했다. 일본인에게 그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신()들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로서 온 세계 위에 군림하는 천황이다. 그러므로 일본군대가 점령한 땅에서 태양신과 천황숭배를 강요하는 것은 자기들 나름대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사참배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 자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더니 일본군대가 침략해서 얻은 땅에서는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는데 사용되었다. 이렇게 신사참배는 한국 땅에서도 만주 땅에서도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정통장로교회 선교사

 

        한부선 선교사는 1903년 미국북장로교 소속 선교사 한위렴(William Hunt)의 아들로 한국의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성한 후에도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여러 번 회고 한바 있다. 그는 1919년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1924년 미국장로교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던 프린스턴 신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미국북장로교회는 신학논쟁으로 어지러웠다. 논쟁의 핵심은 자유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현대주의 신학이었다. 이 강력한 신학사조는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게 했고 정통교회의 근본적인 교리를 부정하게 했다. 진화론을 수용하거나 사회주의 이념을 교회에 이식하려는 노력도 함께 일어났다. 현대주의를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립했을 때 무게의 중심은 오히려 찬성하자는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특히 한부선 선교사가 프린스턴에 입학한 1924년에는 현대주의자들이 오번선언서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냈고 이것을 통해 집결하고 있었다.

        한부선은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으로 파송 받아 청주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그 동안 미국북장로교 내에서는 현대주의로부터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새로운 신학교를 세우고 해외독립선교부를 만들었다. 한부선은 첫 안식년을 맞아 바로 이 새로운 신학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을 했으며 현대주의 사상에 빠져있던 미국북장로교를 탈퇴해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게 된다. 나중에 이 교단은 미국정통장로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한부선은 사역지를 만주로 옮기고 거기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나갔다.

 

한국교회의 신사참배와 장로교인 언약

 

        신사참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외국 선교사들을 포함한 우리 교회지도자들은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판단하려 애썼다. 일본 관리들이 신사참배와 우상숭배는 아무 상관없다는 식으로 설득했지만 교회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저항했다. 그렇지만 일본 경찰이 강요의 수위를 높여나가자 교회도 처음과 같지 못했다. 오랫동안 저항했던 장로교회도 한계에 이른 조짐이 보였다. 1938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27회 조선 장로교총회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일본당국은 무력으로 협박을 해서라도 장로교회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회의 전부터 비쳤고 결국 그들의 뜻대로 일은 진행되었다.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하면서 교회는 천황과 태양신을 숭배하는 의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은 만주에서도 똑같이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그곳의 교회도 공권력에 공공연히 저항할 형편은 아니었다. 만주선교사 한부선은 어땠을까? 그는 신사참배의 본질과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히 했고 실천에 옮겼다. 사실 그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1938년 조선 장로교총회에 참석해서 일본경찰을 곁눈질하며 얼렁뚱땅 회의를 진행하던 의장을 향해 공정한 절차를 밟도록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참된 교회는 사람을 신()으로 여길 수 없고 다른 신을 숭배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한부선은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까지 충성을 권면하면서 천황이 신()으로 숭배되는 신사에 절하느니 차라리 어떠한 고통도 감수하자고 격려했다(이 책, 69). 결국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도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았고, 몇몇은 퇴학을 당하거나 아예 정규교육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했다(이 책, 70).

        한부선은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말씀을 가르치던 성도들이 이 문제를 명확히 이해하여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고백문서를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가 지도하던 교회지도자들이 1940년 하얼빈에서 모여 장로교인 언약을 작성했다. 여기서 신사참배는 명백한 우상숭배임을 선언했다. 김윤섭, 박의흠, 박인지, 김경락, 최용삼, 계승수, 김성심 같은 이들이 이것을 만드는데 참여했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 경찰은 한부선을 구속한다. 물론 뜻을 같이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투옥된 터였다.

 

그들은 왜 감옥에 갇혔는가?

 

        그들이 투옥된 것은 일본 당국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한국지배나 만주지배에 저항한 것은 아니다. 오직 자신들이 신앙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옥에 갇히는 고난을 감내하면서까지 지키려했던 것은 무엇일까?

        법정에서 재판관이 한부선의 죄에 대해서 다룬 두 가지 중요한 문제는 천황숭배와 종교통제법을 거부한 것이었다(이 책, 99). 종교통제법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 일본 당국의 허락과 통제를 받아야 했다(이 책, 104).

        한부선과 그의 형제 된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 갇힌 것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도 아니고 단순히 기독교식 예배에 참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이 갇힌 것은 신사참배와 종교통제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경찰의 칼 앞에서조차 지키고자 했던 것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다.”는 신앙고백이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예배였다. 재판관 앞에서 한부선이 성경은 하나님 이 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천황이든 사람이든 거기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재판관은 그에게 많은 기독교인이 신사에 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이 책, 99). 이것은 사실이다. 그들도 다른 교인들처럼 시대적인 형편에 맞게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한부선과 그와 형제 된 성도들은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선언하는 문서에 장로교인 언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부선의 머릿속에는 신사참배를 행하는 한국과 만주의 장로교회에 속한 교인들과 신학적 포용주의를 받아들이는 미국의 장로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들은 주위 환경을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장로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고백과 그 고백에 근거한 예배 없이 합당한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선교사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파가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알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전파된 내용이 교회를 통해 생명력이 발생하도록 소망하고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말씀을 들은 자들이 신앙고백에서 이탈했을 때, 그들이 속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격려하고 책망하는 것은 중요한 선교사역이다. 이 일을 위해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들이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소중한 역사가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한부선 선교사가 남긴 책 언약의 노래는 우리가 선교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시대형편에 적절히 편승하면서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글은 선교지평’ 25호에 실린 글인데 허락을 받아 개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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