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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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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 성경 묵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나 성도의 교제나 신앙서적 읽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1)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보다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뜻을 알리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가장 분명한 수단입니다.2)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교회 안에 거하시며, 특별히 목사의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11-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가르치는 직분 즉,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3) 목사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가장 분명하고도 가장 온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와 수요 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 기도회 등 교회의 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종교개혁 신앙이 제시했던 참된 교회의 표지와 은혜의 수단은 말씀과 성례였지만 결국 설교로 집중되었습니다. 성경은 가르치는 직분자들에게 고상한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목사들에 대한 비난은 당회가 징계를 요청하기에 충분한 범죄로 취급한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4) 루터가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한다고 해서 목사직을 경솔하게 취급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루터는 공적으로 세움 받은 설교자의 권위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직의 권위를 아주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5)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은, 다수 대중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포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불러 말씀하시며 우리 특정 상황에서 정확하게 적용되는 특정한 말씀들입니다.6) 하나님은 주님의 양무리를 목사의 음성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설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는 것입니다.7) 제도 개혁조차도 루터와 칼빈에게 있어서는 설교에 수반되는 열매였습니다.8)

     하나님은 말씀의 선포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고 했는데(롬 10:17), 칼빈은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교라고 보았습니다.9)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에 교회의 거만한 태도가 없어집니다.10) 하나님은 질그릇에 선물을 담아 주십니다. 목사는 비록 질그릇과 같이 천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것에 순종하는 여부를 두고 하나님은 성도들의 겸손을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의 사역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복종을 철저히 검토하십니다.11)

     설교자의 진실함도 중요하지만,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태도도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초대 교회 문서 중 하나인 『디다케』 (4장 1절)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이를 밤낮으로 기억하고, 그를 주님처럼 존경하라. 주님의 주권이 설교되는 자리에 바로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설교단은 주님의 주권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사람의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엇보다 설교자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목사의 이 직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동시에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서 온전히 주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이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설교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설교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할수록, 그 설교자의 설교가 더 은혜롭게 들립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해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통해 신앙이 성장하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1) 칼 바르트는 하나님이 러시아의 공산주의나 플루트 연주나 꽃이 피어나는 관목을 통해, 혹은 이방인이나 무신론자를 통해, 심지어 죽은 개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1, trans. Geoffrey Bromiley (Edinburgh: T. & T. Clark, 1975), 55(독어판 55-56). 이어지는 글에서 바르트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말씀을 듣도록 명령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교회의 선포 즉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명령 받았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앞 책, 56[독어판도 56]). 하지만 바르트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평이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성경과 말씀을 자칫 분리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바르트/신준호 역, 『교회교의학』, I/2, 623이하 참조).

2) 마이클 호튼은 혼자서 성경을 읽는 것보다 설교가 훨씬 우위에 있으며, 설교에 비하면 개인 성경 읽기는 부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이클 호튼,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이용중 옮김; 부흥과 개혁사, 2011), 94-95.

3) 엡 4장.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 Calvin, Corpus Reformatorum 21:303, 413, 417.

5) Wilhelm Pauck, The Heritage of the Reformation (Boston: Beacon Press, 1950), 133.

6) 칼빈주석, 시편 12:5, Calvini Opera 31:129. Neque enim satis foret, Deum apud se statuere quid facturus sit in salutem nostram, nisi recta nos et nominatim compellet, nam inde nobis spes salutis affulget, quum Deus voce sua ostendit se nobis fore propitium(실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직접 이름 불러 모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의 구원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무엇을 하실지 결정하기에 불충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자신이 특별히 와 닿도록 보여주셔야지 바로 거기에 구원의 희망이 우리들에게 비춰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목사들의 말씀 선포는 적실성이 있어야 하며, 성경 공부도 개인의 체험을 깊이 있게 만져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교회에서 개별 심방이나 목회적 경험과 체험적 묵상이 기초가 되지 않은 설교자들의 설교가 가지는 무차별성과 무적용성을 칼빈이 여러 번 지적하였습니다. 이 글의 주제상 목사의 설교가 성경적 설교가 되어야 함을 많이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이 글의 전제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평신도 설교”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지만, 설교는 다만 성경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돌봄의 책무를 가진 사람이 해야 정당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목양이 없는 설교로 성도들을 온전히 양육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은사를 가진 자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고 해야 합니다. 목회를 하는 자만이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7) 칼빈주석, 시편 95:8, Calvini Opera 32:33.

8) 유해무,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개혁신학과 교회』 제 13호 (2002년), 146-168(특히 168).

9)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기독교강요』 4.8.9에 나오는 설명과 로마서 10:17에 대한 칼빈의 주석을 보세요.

10) P. Barth, “Calvins Verstädnis der Kirche,” in: Zwischen den Zeiten 3 (1930), 216-33(특히 219).

11) 칼빈, 『기독교강요』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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