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조회 수 526 추천 수 1 댓글 0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64408_492524150827014_524017541_n.jpg

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최근 우리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태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최순실 세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사건을 방치한 대통령의 역사적인 무념무상의 행태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국정을 이끄는데 필요한 건강상의 치명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도 아닌 미용주사나 맞고 있는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고난의 현실을 살아가는 백성의 저변과는 동떨어진, 뭔가 좀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현실성 있는 삶을 살아보거나 행정을 통괄하는 실제적인 정치를 해보지 않은 문외한 대통령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런 속빈 권력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봐주면서 그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역사의식이 부재한 하부권력자들의 사욕 때문이기도 하다.

     무늬만 대통령이지 실제로는 은행을 통해서 세금을 납부하거나 김장을 해서 먹거나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거나 불필요한 과외비 문제로 고심을 하거나 결혼적령기의 청년자녀를 두고 고민하거나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끙끙대며 살아보거나 직접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기관을 전전하며 사투를 벌이거나 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일종의 진공 상태 혹은 무중력 상태에서 살아온 이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을 업고 정치인 코스프레를 해 본 경험은 있지만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실제적인 정치를 엮어간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오히려 외통수 선언적 정치로 점수를 얻은 이에게 소통을 근간으로 한 정치를 기대하는 우리의 꼴이 우습기까지 하다.

     미국과 세를 나란히 형성하면서 급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실제적인 입지를 조성해나가야 하는 지가 국가의 미래와 깊이 연관된 관심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년 전 대미 외교 중심성을 벗지 못하는 성급한 정책결정을 보면서, 브레인의 부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성공단사태나 사드배치나 북핵문제나 한일군사협력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적 대의나 미래 한반도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정책 결정의 와중에서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깜짝깜짝 놀랐던 때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사태들이 대통령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되는 통치철학의 거대담론부재 때문이라면 너무 지나친 평가일까 싶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도의 문제 분석은 3류 일간지에서조차 더 나은 형태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이러한 정부 혹은 국가 안에 서 있는 교회 때문이다. 이 정부가 이렇게까지 되어오는 과정에 소위 하나님과의 관계에 서기를 힘쓰고,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위하여 기도해온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국가가 이렇게 썩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부나 국가와의 관계에서 해야 할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곤경이 직면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벨직신앙고백서와 같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이 밝히 말하듯이, 교회와 국가는 상호 체크 앤 밸런스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정상적인 교회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어야 하고, 교회는 그러한 국가의 건강한 통치를 위하여 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국가의 권력 혹은 정부가 하나님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나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힘을 다하며, 고와와 과부가 학대를 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선정을 펼쳐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것에서 일차적으로 찾아져야 하고, 이것이 세속정부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기대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큰 흐름에서 벗어난 권력의 실행이 눈에 보일 때는 교회는 그런 왜곡된 권력을 향하여,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외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큰 맥락에서 국가의 시책이 창조세계 그 자체에 반영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동성애라든가 이혼이라든가, 낙태라든가 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시도들에 대하여는 교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런 정책들이 입안되지 않도록, 혹은 그런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교회의 권리가 제한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국가나 정부의 정책을 감독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정책은 보수내지는 진보적인 국가나 정부에 편향되지 않도록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고지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실현의 과정에서 감시와 감독의 직무를 의식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특별히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삶을 세워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친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오늘의 이런 사태를 보면서도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특별히 국가나 정부가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의 부패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교회는 국가의 권력의 동향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주시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권력이 실행될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부에게 위임된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또한 감시해야 하는 책임이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의 삶은 어떠한가? 교회가 과연 국가와 그 권력을 올바르게 노정하거나 혹은 책망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가 앞장서서 부를 증식하여 세습하고, 목회 자체를 세습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기는커녕 자신의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지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국가와 그 권력을 감시하고 계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함께 기득권을 누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혀서 부를 찬양하고 부자가 되도록 고무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싶은 것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프라다를 추구하는 삶을 고무하지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배와 신령상의 일을 통하여 한 나라의 시민이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백성들을 일깨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지만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또한 주님의 마음이 가난한 자와 과부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섬기며 사회적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은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안목을 상실하고 말았거나 혹은 오히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솔선해서 부추기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도록 설교에서 자극하고 있으니, 도대체 사회적인 불의를 누가 감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싶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예배가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예배는 이러한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치유되는 현장이기도 하고, 이러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회개를 통해서 바른 삶을 새롭게 견지하는 기회를 얻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에 한 영혼이, 그리고 한 영혼의 삶이 온전하게 드러나게 될 때, 설교를 통하여 그 영혼과 그 영혼이 형성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그 영혼은 회개하거나 혹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영혼의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삶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삶의 갱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매주일 일어나는 교회여야 하고, 이러한 일들이 실존적으로 일어나는 예배가 교회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책임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회중의 삶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목회자다. 하나님 앞에서 회중의 생사간의 사정을 살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는 사람, 그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세상의 근심과 슬픔과 절망을 짊어지고 말씀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을 들고 회중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와 함께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권력이나 재력이나 명예에 굴종하지 않고서 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사실 교회는 촛불을 들고 평화의 행진에 동참하는 것도 외면해서는 안 되지 싶다. 오히려 동참하는 것이 시대적인 불의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제자도의 한 방식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단순히 국가나 정부의 통수권자의 무능과 실정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교회로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직시하고, 국가나 정부를 향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뼈저리게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저 어떤 인물을 힐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나타난 결과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그 행렬의 어느 한 지점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한반도의 미래를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깊은 차원에서 교회가 한반도와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백성들을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세속의 도성(Civitas mundi) 사이의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적 우리의 선배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긴장 구조 속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여 답을 모색했듯이, 이 시대의 교회가 보다 깊은 측면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며 통과해가는 하나님의 도성이 수행해야 할 시대를 향한 도전이 무엇인지 다시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 삶을 노정하려는 담대한 시도들을 전개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사도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비전을 다시 확증하면서 교회로 하여금 세속도성에서 두 증인의 삶을 살도록, 왕적 제사장(Kingly priest)의 삶을 살도록 도전하며 격려했듯이,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내는 교회가 되도록 지혜로 삶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notice

    기독교보(1499호, 2022년 8월 6일) 기사를 읽고

    <기독교보>(1499호, 2022년 8월 6일) 기사를 읽고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고신 교회 정론지 <기독교보>가 1500호를 맞는다. 오는 8월 11일(목) 오전에 있을 기독교보 1500호 발행 감사 예배를 앞두고 이번 1499호(2022년 8월 6일) 신문은 고신 언론사 사장...
    Date2022.08.06 By개혁정론 Views530
    read more
  2. 영화 ‘루터’를 보고 (성영은 교수)

    영화 ‘루터’를 보고 성영은 교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1) 중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10월 18일 (재)개봉될 ‘루터 (2003년작)’ 영화를 미리 볼 기회가 있었다. 좋은 영화를 본 감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집에 오자마자 루터 전...
    Date2017.10.15 By개혁정론 Views5069
    Read More
  3. “총회교육원과 출판국을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안재경)에 대한 반론

    “총회교육원과 총회출판국을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안재경)에 대한 반론 황성국 목사 본인은 최근 개혁정론에 올라온 “총회교육원과 총회출판국을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안재경)라는 글을 읽고 출판국의 입장을 몇 자 적는 것이 ...
    Date2017.09.14 By개혁정론 Views935
    Read More
  4. REFO500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교수 인터뷰

    REFO500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교수 인터뷰 인터뷰이: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교수 인터뷰어: 임경근 박사(다우리교회) 이 글은 2016년 11월 14일 한국을 방문했던 필자의 박사학위 지도 교수인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교수와의 인터뷰이다. 셀더르하위스 교수는 ...
    Date2017.07.23 By개혁정론 Views808
    Read More
  5.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제와 한국 교회의 과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성임직 결정이 한국교회에 미칠 영향이 화두다. 이에 이 분야에 전문가인 임경근 박사의 글을 싣는다. 이 글은 대구의 한 목회자 모임에서 2004년 9월 13일 발표한 내용이며,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가 발행하는 『진리와 학문의 세계』1...
    Date2017.07.15 By개혁정론 Views3610
    Read More
  6. 심방 참관 소감문

    이 글은 부산 유은교회(담임 윤석준 목사)에서 2017년 전반기에 했던 심방 사역(2.28-6.15) 이후, 심방을 참관한 강도사가 기록한 소감문이다. - 편집장 주 심방 참관 소감문 노희태 강도사 (유은교회) Ⅰ. 심방의 실제 1. 심방 일정 및 준비 본 교회에서는 일...
    Date2017.07.12 By개혁정론 Views1485
    Read More
  7. 여성안수와 성경해석

    여성안수와 성경해석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고신교회와 자매관계에 있는 화란개혁교회가 최근 여성안수(보다 정확한 용어로는 여성임직)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였던 이 교회의 이탈로 인하여 이제 고신교회는 이...
    Date2017.06.30 By개혁정론 Views10702
    Read More
  8.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에는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대한 조항이 담겨 있습니다.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필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
    Date2017.06.28 By개혁정론 Views698
    Read More
  9. 우리 자매 교회 네덜란드 해방파 교회가 직면한 도전

    우리 자매 교회 네덜란드 해방파 교회가 직면한 도전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개혁정론 운영위원장) 예장 고신 교회와 자매 교회인 네덜란드 해방파 교회 총회가 지난 주말에 1944년 교단 설립 이후 ‘역사적인’ 혹은 ‘혁명적인’ ...
    Date2017.06.21 By개혁정론 Views1453
    Read More
  10.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요 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
    Date2017.05.09 By개혁정론 Views13760
    Read More
  11. [기고] 감사, 겸손, 위로, 그리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감사, 겸손, 위로, 그리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 "효력있는 부르심"에 대하여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은 ‘효력 있는 부르심’에 대해서 말합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하나님이 그분의 경...
    Date2017.03.08 By개혁정론 Views608
    Read More
  12. [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의 중요성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 성경 묵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나 성도의 교제나 신앙...
    Date2017.03.02 By개혁정론 Views3290
    Read More
  13.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와 우리의 삶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와 우리의 삶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성경을 읽는 근본적인 목적이며 신학 본연의 주제이다. 즉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며, 신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하나님...
    Date2017.01.30 By개혁정론 Views923
    Read More
  14. [기고] 성숙한 시민의식과 성숙한 교인의식

    성숙한 시민의식과 성숙한 교인의식 황대우 교수(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 2016년 대한민국 최대의 화재거리는 단연 ‘촛불’과 ‘탄핵’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민심은 ‘광화문 촛불’로 봉기했다. 주말마다 봉...
    Date2017.01.22 By개혁정론 Views593
    Read More
  15. 작은 거인, 허 순길 박사님

    작은 거인, 허 순길 박사님 -눈물로 부르는 思師曲 이운연 목사 (여수충일교회 담임) 무슨 사연인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제가 학교에 입학할 때는 호주에서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신대원 1학년 가을 학기에 들어오셔서 첫 경건회를 인도하시는데, 와아.. 그...
    Date2017.01.11 By개혁정론 Views1487
    Read More
  16. 개혁신학자 허순길 박사님을 회고하며

    개혁신학자 허순길 박사님을 회고하며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허순길 박사님께서 2017년 1월 10일 오전 3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작년 6월 말 폐 기능이 약화되면서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시던 중 성탄 직전에 넘어지는 사고...
    Date2017.01.11 By개혁정론 Views2563
    Read More
  17.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이상규 교수 (고신대 신학과) 방금 허순길 교수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 한 사람의 고신교회 지도자를 잃게 되었고, 필자 개인으로는 또 한 사람의 은사를 잃게 되었다. 일생동안 고신교회와 고신대학...
    Date2017.01.10 By개혁정론 Views904
    Read More
  18. [기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2017년 새해가 밝았지만,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가 많은 시점에서 새해를 맞이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특별히 올해는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좀 더 진중한...
    Date2017.01.05 By개혁정론 Views3061
    Read More
  19. [기고]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최근 우리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태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최순실 세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사건을 방치한 대통령의 역사적인 무념무상의 행태뿐...
    Date2016.12.08 By개혁정론 Views526
    Read More
  20. [기고]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황대우 교수 로마서 1장 17절에 근거한 이신칭의(以信稱義)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결정적인 교리이기도 하다. 이후 모든 개신교도들은 ...
    Date2016.12.01 By개혁정론 Views1258
    Read More
  21. [기고]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미가서 6:10-16) 우병훈 교수 (고신대학교)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Date2016.11.08 By개혁정론 Views452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사설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사설] 고신언론사 순환보직시행, ...
칼럼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기고
고신 교회 정체성을 부인하는 ‘명예...
교회학교인가? 주일학교인가? -헌법...
SFC, 여전히 필요한 고신의 학생운동
헌법개정안 중 권징조례 초안 비평 ... 1
우리는 지금 어떤 교회를 꿈꾸고 성...
이름, 그 의미
유월절, 맥추절, 성령강림절 1
교회에서의 선거와 민주국가에서의 ...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가정예배
독학으로 시작한 가정예배의 성장 ...
논문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
한국 교회의 위기: 노회의 기능과 역할
한국 장로교회 헌법, 어디로 가야 ...
시찰 없이는 노회는 없다: 노회의 ...
한국장로교회헌법, 어디로 가야 하...
고신 교회 70년과 ‘재판권을 부여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