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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목사 안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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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목

(고신대 신학과 교수)

 

 

한글 요약

 

   2003년경부터 여자 집사를 허용하는 남아공 개혁교회(GKSA)는 2016년 1월 12일부터 열린 특별 총회에서 여성 목사 안수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올 해 6월 중순에는 화란개혁교회(해방파)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했다.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진영에서도 여전히 논란 중인 여성 안수에 대한 올바른 결정은 교단의 전통이나 상황적 필요가 아니라, 무엇보다 성경 주석적 연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관련 신약 본문에 대한 주석적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서로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자부한다. 이 글은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구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를 차례로 다룬다. 이 글에서 “여성 안수는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함”을 논증할 것이다.

 

들어가면서

 

   앞으로 교회 사역은 목회자(klerikos)와 일반 성도(anthropos laikos) 간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열린 유기적 협업, 기계적 조직화보다는 건덕과 인격적 관계의 강화, 그리고 주종관계가 아닌 종의 리더십을 통한 역동적 제자화를 요청한다.1) 이를 위해 무엇보다 여성도의 재능과 역할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3년경부터 여자 집사를 허용하는 남아공 개혁교회(GKSA)는 2016년 1월 12일부터 열린 특별 총회에서 여성 목사 안수건(이하 ‘여성 안수’)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2) 복음주의나 개혁주의 진영에서도 여전히 논란 중인3) 여성 안수에 대한 올바른 결정은 교단의 전통이나 상황적 필요가 아니라, 무엇보다 성경 주석적 연구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4) 특히 관련 신약 본문에 대한 주석적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서로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자부한다. 이 글은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구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를 차례로 다룬다. 이 글에서 “여성 안수는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함”을 논증할 것이다.

 

1.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유니테리언파(Unitarian)는 물론, 중앙집권화된 교회정치 체제 대신 개교회의 결정을 중요시하는 회중교회에서 여성 안수가 일찍 시행되었다.5) 20세기에 들어와서 스위스 개혁교회(1918), 프랑스 개혁교회(1949), 미국 장로교회(PCUSA, 1956), 화란 개혁교회(NHK[국가개혁교회], 1966; GKN[개혁교회], 1969; 해방파, 2017), 남아공 화란개혁교회(NHKA, 1976; NGK, 1990), 미국 기독개혁교회(CRC, 1995)6) 등 개혁파와 장로파에서도 여성 안수가 허용됐다.7) 한국의 경우 1907년 장로교 독노회가 조직될 당시 목사와 장로는 남성으로 제한됐다. 장로교 22회 총회(1933)에서 성진중앙교회 김춘배목사가 여성 안수를 청원했다가 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장로교 24회 총회에서 박형룡박사는 김춘배목사가 남성 안수를 2천 년 전의 특정 풍습으로 본 것은 잘못이며, 남성 안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주장했다.8) 1930년에 감리교회가 여성 안수를 허용한 이래, 재건교회가 최덕지 여전도사를 (명예) 목사로 인정했다(1951).9) 감리교(1930), 기장(1974), 예장 통합(1994), 예수교성결교(2003), 침례교(2013), 성공회, 루터교, 예장 대신(백석, 2009),10) 기하성(교단 설립 때부터),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교단 설립 때부터), 구세군, 브니엘교회, 독립교회 등이 여성 안수를 시행 중이다.11) 이들 교회는 여목사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 총대의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기독교연합신문의 여론조사(2016년 7월)에 의하면, 전국 신대원생 85%가 여성 안수를 지지하며, 여성 안수를 시행하지 않는 교회의 신대원생들의 찬성 비율도 과반이었다(참고. 고신대 신대원생 100%, 총신대 신대원생 52.5%, 합동신대원생 56.3%).12) 따라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허용하는 것은 시간상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특별히 여성 안수를 불허하는 교회의 신학생들이 관련 본문에 대한 심도 깊은 주석적 연구를 접해봤는지 의문이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유교문화의 양존음비(陽尊陰卑)에 근거하여 가부장적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근본주의 교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13) 그리고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NCC여성위원회’와 같은 여권(女權)신장 단체의 활동과 더불어 WCC의 결정을 드는 경우도 있다.14) 여권신장과 상관없이, 미국의 경우 신식민지 지역에 여성의 선교 목회활동을 허락하게 된 것을 여성 안수의 계기라는 주장도 있다.15) 신앙과 세속 문화를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선 이들이 방어적인 전통적 신앙고백주의와 카이퍼의 반명제적(antithetical) 사상에 근거한 반(反)문화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분석도 있다.16) 최근에는 여성 안수를 넘어,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LGBT)에게도 목사직을 허용한 장로교회도 있다.17) 종합하면, 여성 안수를 찬성 혹은 반대한 배경에는 유교사상, 여권신장 운동, 성경해석방법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18)

 

2. 구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창 1:26-28은 남녀의 평등성을 강조하기에 여성 안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19)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녀평등이 여성 안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남녀는 동등하지만 상이한게 사실이며, 이것은 성 차별(sexism)이 아니라 성 구별이다.20)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으므로(창 2:18), 여자는 남자의 보조자 차원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 있는가? ‘돕는 자’(히. 에제르; 헬. 보에쏘스)는 이스라엘을 돕는 분이신 하나님에게도 적용되므로(참고. 출 18:4; 히 13:6), 여자의 열등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21)

   여사사 드보라(삿 4-5), 여선지자 훌다(왕하 22:14), 여선지자 노아댜(느 6:14),22) 지혜로운 여인들(삼하 14:2; 20:16-22)을 통해서 볼 때, 비록 여성은 공직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신적 권위와 지혜로 의미 있는 지도적 역할을 감당했다.23) 그리고 구약에서 여자는 회막에서 섬길 수 있었기에 제사장을 보조하는 역할도 감당했다(출 38:8; 삼상 2:22; 참고. 대상 25:5-6).

   구약에서 여자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허용되지 않은 세 가지 이유는 짐승을 죽이고 제사를 드리는 고된 노동, 부정한 월경 기간, 그리고 이방 신전의 창기를 닮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24) 여성 안수 지지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을 용납하셨고(막 5:25-34), 많은 정통 유대인들은 요람에서부터 월경하는 여인처럼 부정하다고 사마리아 여인을 간주했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고(요 4:1-42), 현대 목사의 직무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수행하는 힘든 노동과 다르며, 신약에는 신전 창기(娼妓)의 문제가 사라졌기에 신약의 변화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일부 특별한 경우에 여성이 활동한 것을 보편화시킬 수 없으며,25) 여성은 왕과 제사장같은 공적 사역에 종사할 수 없었다.26) 제사장은 선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선지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제사장이 되려면 여성이 아니라 완전한 남성이어야 했다(레 21:17-21). 이 원칙에 근거하여 신약의 목사도 남성 가운데 선발되어야 한다고 적용하는 이가 있다.27) 이렇게 구약의 여성의 역할을 살펴본 것으로는 여성 안수의 성경적 의미를 결정하는데 여전히 역부족이다.

 

3. 신약성경에서 본 여성 안수

 

   교회의 필요에 따라 여성 안수를 허용하거나 불허할 수 없다. 더구나 여성 안수는 페미니즘 운동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성경 해석에 근거한 결정이어야 한다. 복음서의 1차 삶의 정황인 AD 30년대에는 여성 안수에 관한 논쟁이 없었지만, 신약의 지역 교회가 설립된 이후 상활을 염두에 둔 바울 서신에는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교훈이 몇 번 나타난다. 신약 서신서에 의하면, 여성 안수는 구원론과 직결되지 않는 교회의 직제문제로 보인다.28) 그럼에도 여성 안수가 가볍게 취급될 주제가 아님은 이 주제는 성경관 및 성경해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3.1. 누가복음 8:1-3

 

   눅 8장의 여성들(마리아, 요안나, 수산나)은 소위 ‘정착 제자’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다닌 제자들이었는가?29) 과연 이 여성들이 여러 지역을 다니신 주님과 동행했는가는 분명치 않다. 『개역개정』의 번역처럼, 1절의 12제자는 주님을 따라다닌 제자들로, 2-3절의 여인들은 정착 제자들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1세기에 여성이 남성 스승을 장기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숙박을 같이했다며 큰 스캔들이기 때문이다.30) 누가는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사역을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펼치시는 동안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무렵 한시적으로 동행했던 것 같다(눅 23:49).31) 그 당시 유대 랍비들은 여자를 제자로 삼지 않았지만(참고. 요 4:27) 여성의 후원을 받기는 했지만(참고. 유대고대사 17:33-45),32) 랍비와 달리 예수님은 측근의 여성을 훈련시키셨다. 그렇다고 하여 이 사실이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12제자들은 모두 남성인데, 구약의 남성 제사장의 역할과 유사하다(참고. 롬 15:16).33) 주님이 남자 제자들만 선택하신 것을 1세기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양보’ 곧 여자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면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 일시적인 현상인가?34) 물론 주님이 제자 선택 시에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신 것은 옳지만, 이런 특수 상황에 사도의 남성성이라는 규범성이 있지 않는가? 주님의 승천 이후, 복음을 공적으로 증거하고 초대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담당한 것은 남성에게만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약의 선지자직은 일시적이었지만 남성이 담당한 제사장직은 종신직이었듯이, 남성 목사직도 종신직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가? 하지만 구약 제사장직이 아니라 선지자직이 신약의 목사직에 더 직결된다.

 

3.2. 사도행전 18장과 로마서 16:1

 

   롬 16:3에 의하면 브리스길라는 바울의 ‘동역자’(쉬네르고스)인데, 이 명사는 목사였던 디모데(롬 16:21)와 디도(고후 8:23)에게도 적용되었다(참고. 빌 4:3의 유오디아와 순두게). 더욱이 브리스길라가 아볼로를 가르쳤기에(행 18:26) 여성이 공적 직분을 맡아 지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35)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지 공적 설교가 아니다.36)

   여성신학자들 가운데 겐그레아교회의 뵈뵈(롬 16:1-2)를 ‘사도’ 혹은 ‘교회의 대표자’(프로스타티스)로 보는 이가 많다.37) 그녀가 여자 감독이나 여집사(RSV, AEB, NEB)라는 주장도 있지만,38) 여집사인지 확실치 않으며 여사도로 보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슈라이너(T.S. Schreiner)에 의하면, 뵈뵈를 여집사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딤전 3:11의 여집사 제도와 일치하고, 롬 16:1은 디아코노스가 하나의 특정 교회와 연결된 유일한 경우이며, 그리고 여성이 아니라 남성 명사(디아코노스)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39) 하지만 딤전 3:11이 여집사를 지지하는 구절인지 여전히 논란 중이며, 뵈뵈는 겐그레아교회에서 비공식적인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고 볼 수 있으며, 헬라어 어법상 남성 명사가 여성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뵈뵈를 베드로의 장모처럼 사도를 ‘섬기는 자/일꾼’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참고. 마 8:15). 덧붙여 바울과 아볼로가 ‘일꾼’(디아코노스, 고전 3:5)으로 불리기에, 디아코노스라 불린 뵈뵈도 사도들과 동급의 사역자로 보아야 한다고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40) 왜냐하면 헬라어의 단어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독자적 문맥 속에서 적절한 한 가지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3.3. 고린도전서 11:2-16

 

   고전 11장에서 여성이 예언과 기도하는 시간을 공예배 때로 볼 수 있지만(참고. 뒤따르는 11:17-34의 애찬/성찬),41)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기에 바울이 공적 모임을 염두에 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여자가 머리에 숄을 쓰는 것은(11:5) 바울 당시 (기혼 여성임을 표시하는) 로마 사회와 고린도에 국한되는 특수한 실재이지만, 여자(아내)가 자신의 머리(케팔레)인 권위와 지도력을 부여받은 남자(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영원한 원칙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11;3; 참고. 엡 5:23).42)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머리’를 ‘근원’(source)으로 본다면, 남자가 여자 존재의 근원이다(창 2:18-23). 하지만 성부께서 성자 존재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43) 성부와 성자는 동등하시지만, 성부가 성자에 대해서 권위와 리더십을 가지시므로 역할의 차이가 있다. 머리를 ‘권위’로 보면, 그 권위는 상대편의 필요를 섬기고 돌보는 것을 의미하지, 자기중심적인 권력의 남용은 아니다. 따라서 아내의 머리인 남편은 아내의 영적, 육적, 정서적 필요를 발견하고 돌보는 역할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44) 참고로 로마의 남성들은 종종 토가(toga)의 느슨한 주름 잡힌 부분을 당겨 머리를 감쌈으로써 신들에게 경건한 제의적 예를 갖추었기에, 바울은 고린도의 남자 성도가 이런 이방 제의적 관습을 따르지 못하도록 머리 덮개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면한다(고전 11:4).45) 물론 이 권면도 바울 당시에 국한 된 현상이다.

   고린도의 미혼 여성의 표지로서 혹은 특별히 창녀들이 머리를 풀고 다닌 바울 당시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런 문화적 상황 속에/위에 영구한 규범과 원칙이 있을 것이다.46) 마치 삼위 하나님은 동등하시지만 성부가 성자의 머리이신 것처럼(11:3), 존재적으로 남여는 동등하지만, 역할에서 남자는 여자의 머리다. 바울이 고전 11:9에서 타락 이전의 창조 질서를 언급한 것은 문화에 제약되지 않는 어떤 규범을 제시하기 원했기 때문이다.47) 그리고 신약에서 여성이 예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언자직과 목사/교사의 직분은 구분된다(엡 4:11).48) 즉 예언하는 이들 모두가 목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4. 고린도전서 14:34-3549)

 

   고전 14:26-40의 요점은 고린도교회의 공적 예배에서 방언과 예언을 질서있게 사용하라는 목회적 권면이다. 여성 안수 논의에 있어서 중요하게 취급된 “(결혼한) 여자들은 교회들에서 계속 잠잠하라”를 포함하는 고전 14:34-35는 몇몇 서방계열 사본들(D, E, F, G, 88)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고대 사본들이 이 구절을 현재의 위치에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이 구절의 표현들(예. 말하다[14:14-32], 잠잠하다[14:28, 30, 34], 교회 안에서[14:28, 35])은 전후 문맥에 등장하기에 사본상 별 문제는 없다.50) 따라서 34-35절을 40절 뒤에 배치한 일부 사본들을 근거로 하여 후대의 첨가로 볼 이유는 없다.51) 참고로 GNT5의 고전 14:34-35의 본문 비평등급은 {B}다.

   34-35절을 바울이 쓴 원본이라 결론을 내리더라도, “고전 11:5의 여자가 할 수 있는 기도나 예언과 14:34의 여자가 잠잠해야 한다는 명령은 상호 모순되는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52) 이 구절을 통해서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의 다양한 근거와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공예배에서(고전 14:26) 예언과 방언하는 것이 고린도교회의 여성도에게 허락되었지만(참고. 고전 11:5), 바울은 은사가 풍성한 예배의 질서 유지와 같은 특수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를 원했다.53) (2) 34절의 여성은 정관사를 동반하기에(αἱ γυναῖκες) 모든 여성이 아니라 특정 여성에게 권면하는 것인데, 어떤 모임에서 일부 여성이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마음대로 내뱉음으로써 분위기를 주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참고. 고전 14:36).54) (3) 따라서 바울은 그 당시에 지배적인 남성 우월적 사회 규범을 의식하면서, 교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은 교회 내부의 분열을 초래할 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을 구실을 제공할 수 있기에 문화에 일시적으로 순응할 필요를 느껴 여성에게 잠잠하라고 명했다.55) 더불어 바울은 난잡하고 사교(邪敎)적인 동방 제의에서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공적 질서와 품위를 손상시킨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56) 그리고 (4) 고전 14:26-33에 의하면, 여자만 잠잠해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배의 질서를 깰 가능성이 있는 경우 즉 계시를 받은 자가 말할 경우 예언하는 자는 잠잠해야 했고(14:30), 통역이 없는 경우에 방언하는 자들도 잠잠해야 했다(14:28).57) 따라서 (5) 여자의 침묵은 고린도교회의 특수 상황에서 기인한 시간 제약적 교훈이기에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침묵 명령이 아니며, 여성의 예언이나 방언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세우기 위한 ‘긍정적 참여’이고,58) 더욱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14:34-35)은 여성의 열등성을 의미하지 않는다.59)

   이런 특수한 상황이 초래한 문제가 해결되면 여성(아내)의 예언이나 발언이 재개될 수 있었는가? 바울의 논지는 여성이 교회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방언이나 예언 혹은 교회의 쟁점에 대해 큰 소리로 토론하지 말라는 의미로 본다면, 특별히 남편이 방언을 통역하거나 예언을 분별할 때 아내가 오류를 큰 소리로 지적하는 것은 공동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60) 바울이 여성의 잠잠함을 수치와 연결하기에(35절), 여성이 분별없이 말하는 것은 파격적 행위였다.61) 혹은 여자가 고린도교회의 예배 중에 수행된 예언의 진정성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일(고전 14:29)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교회의 남성 장로들이 예언의 진위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62) 또는 교육에서 배제되어 배움의 욕구가 컸던 여성이 지식의 은사를 받아 교만해진 것을 바울이 지적했을 수 있다.63)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거나 지배하는 공적 교훈을 항시(恒時)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64) 첫째, 율법이 말하는 것같이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34절; 참고. 창 2:20-24; 3:16). 현재 능동태 직설법 동사로 언급된 ‘율법이 말하는 것같이’는 바울의 권면이 고린도교회의 특수한 상황에 근거한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의 관점에서 도출된 계시임을 가리킨다.65) 따라서 신약 목사직은 구약의 성전 제사와 제사장 직분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33절의 ‘교회들’은 복수 명사이므로, 바울의 논의가 특수한 교회의 관습이 아니라 교회의 일반적 관습에 근거하고 있다.66) 따라서 바울 당시의 문화적 관습에서 볼 때, 아내가 남편에게 배우지 않고 교회와 교회 밖의 공적 모임에서 어리석게 말하는 것은 수치였고(고전 14:35), 지금도 원칙상 그러하다.67) 여성이 오늘 날 교회당에서 드리는 공예배 때보다 가정에서 모인 예배에서 예언하고 방언하는 것 그리고 예언을 분별하는 것은 친밀한 분위기상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 14:34-35는 여자의 공적 사역이나 안수를 위한 근거 구절로 보기 어렵다.68)

 

3.5. 갈라디아서 3:28

 

   예수님이 성취하신 새 시대 곧 성령님이 임하신 종말의 빛에서 구약과 신약을 파악해야 한다면,69) 성령께서 임하셔서 여성의 신분을 남성과 동등하게 성령의 전으로 회복하신 것은 직무의 회복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70) 즉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이해를 지지하는가?(갈 3:28; 참고. 롬 10:12; 고전 12:13; 골 3:11).71) 그리고 “너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다”라는 바울의 교훈을 따라서, 현대 교회가 노예 제도를 철폐했다면, 목사직에서 있어서 여성 차별도 철폐해야 하는가?72) 따라서 오순절은 남녀 역할의 차별이 철폐된 전환점인가?73)

   성경은 성령강림이라는 종말적 사건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창조 질서의 빛에서도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초론의 사상이 종말론으로 만개(滿開)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예수님 안에서 동등하지만, 타락 이전에 주어진 창조 질서(즉 남편을 돕는 아내; 창 2:20)는 오순절에 성령님이 여자에게 임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74) 그리고 갈 3:28은 여성 안수의 맥락 혹은 교회에서 남녀평등을 소개하는 구절이 아니다.75) 창조 질서를 따라 여성이 남성에 복종해야 함을 강조한다고 해서 남녀의 동등성은 파괴되지 않으며, 동등성만 강조하다보면 창조 질서는 파괴될 수 있다.”76) 바울이 남녀의 동등성을 주장했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든 면에서 관령성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동성애를 반대했고(참고. 롬 1:26-27; 고전 6:9; 딤전 1:10), 결혼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된 역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엡 5:22-33; 골 3:18-19; 딛 2:4-5).77) 그렇다면 남성성(maleness)과 여성성이 교회의 공적 직무와도 연관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전 11:2-16; 14:33-36; 딤전 2:9-15).78) 주님께서 우월성과 열등성을 결정짓던 잘못된 옛 관행은 폐지하셨지만, 남성과 여성 그리고 종과 주인의 역할조차 폐지된 것은 아니다(참고. 엡 5:22-33; 6:5-9).79) 따라서 무(D.J. Moo)가 지적하듯이, 교회 안에서 차이의 아디아포라화(adiaphorizing)는 차이를 제거하거나 역할의 차이를 제거할 수 없다.80) 백인이 흑인을 인종차별적으로 억압한 죄와 남성이 여성을 무시한 것은 회개해야할 죄다. 하지만 바울이 본문에서 의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존재와 직무에 있어 평등하다는 신앙 그리고 유대와 로마의 남녀 차별적 문화적 상황 사이의 긴장과 투쟁했는가?81) 바울은 남녀의 평등과 구별성을 동시에 견지하는 창조 질서와 복음의 관점에서 그 당시 세상 문화를 비판했다. 바울은 노예제도를 비판하지만 그것의 철폐를 급진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남성에 종속된 여성의 상황을 그 당시 문화적 규범을 파기하고 혁명적으로 개선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바울이 사회 규범을 무시하는 혁명적 사회 변혁을 교훈했다면 교회는 생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도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그 당시 문화나 윤리적 상황과 규범을 고려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대안을 제시했다.  

 

3.6. 디모데전서 2:8-15

 

   예루살렘 탈무드는 “토라의 말씀이 여자에게 주어지는 것보다는 불태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함으로써, 여자가 학습하는 것은 시간낭비였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여성 열등성을 반대한다.82)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교회의 여성도가 거짓 선생의 가르침(딤전 1:3)에 미혹되어서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 쉬웠음을 알고 있었다(딤전 5:13, 15; 딤후 3:6-7). 바울 당시의 이런 특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현대에는 다르게 적용하면 되는가?83) 그런데 딤전 2:12는 접속사 ‘그러나’로 시작하기에, 여성이 배워도 가르칠 수 없음을 의미한다.84) 즉 여자가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면(11절) 목사가 되어 공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85) 따라서 나이트(G.W. Knight III)는 바울이 교회에서 남자에게 주어진 권위있는 역할을 여성이 배움으로써 전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86) 여성은 하나님이 남성 목사와 장로에게 주신 권위와 리더십에 순종해야 한다(참고. 눅 10:39-40).87) 사족을 달면, 이 사실은 남성 장로가 여성도를 무시하거나 학대할 폭군과 같은 권한을 부여받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여성이 여성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 그리고 사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이 단락에서 주석상 논란이 된 몇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88) (1) 11절의 명사 ἡσυχία는 여성 안수 찬성자들이 지지하는 ‘조용함’(quietness; 혹은 침착함)인가?(NASB; NIV; 살후 3:12; 딤전 2:2).89) 아니면 여성 안수 반대자가 선호하는 ‘침묵’(silence)인가?(KJV; RSV). 바울 서신의 용례, 배움의 자세로는 부적절한 침묵보다는 조용히 수용하여 배우려는 자세, 그리고 주요 영어 성경의 번역을 고려하면 ‘조용함’이 적절해 보인다.90) (2) 12절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 1인칭 단수 에피트레포(허락하다)는 개인적 충고나 권면인가? 아니면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주는 명령의 뉘앙스를 가지는가? 바울의 권면의 엄중성을 고려한다면 후자가 더 적절하다.91) (3) 12절의 부정사 디다스케이은 예수님이나 사도처럼 권위를 가진 이의 가르침이라는 협의적 의미인가?(참고. 마 5:2; 7:29; 9:35; 11:1; 행 4:2; 엡 4:11). 아니면 일반적 가르침을 가리키는가?(참고. 골 3:16; 딛 2:3-5). 여성이 조용해야 한다는 문맥을 고려하면, 권위있는 가르침이 더 적절하다. (4) 12절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 ‘아우쎈테인’은 ‘전적인 권위를 가지다’(have total authority)인가? 아니면 ‘주관하다’(domineer over)라는 뜻인가? 11절의 ‘순종’과 연결하면 둘 다 가능하다. (5) 13절의 접속사 ‘가르’는 11-12절의 이유를 소개하는가? 아니면 이유가 아니라 예증이라는 설명을 의미하는가? 비록 ‘가르’가 ‘예를 들어’ 혹은 ‘이제’로 번역되거나, 번역이 안 되어도 무방한 경우가 있지만(참고. 롬 8:18-24), 『개역개정』과 NIV가 번역하듯이 13절에서는 이유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참고. 고전 14:34와 딤전 2:13의 이유의 ‘가르’). 따라서 13절 이하의 창조 질서(creation order)는 12절의 여성의 침묵을 위한 적절한 이유이다.

   AD 1세기의 여성 전부가 문맹자가 아니었는데(참고. 행 18:2-3),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배운 여자를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그리고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회에서는 창조 질서를 따라 여자는 남자의 헤드쉽 아래 존재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하며(딤전 2:13-14), 공예배와 일상에서도 남자의 헤드십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92) 그런데 바울의 논의에서 창조 질서는 결정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있어서 선한 것이지만(창 2:18),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인 독신(ἄγαμος)도 권장할 만한 선한 것이라고 본다(고전 7:7-8).93) 왜냐하면 이 세상의 현재 외형은 다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7:31).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재창조 사역은 창조 질서를 단순히 회복시킨 차원인가, 아니면 창조적으로 변혁시킨 것인가?94) 이 질문에 대한 일정 부분의 답은 딤전 2:11-14는 물론 15절까지 포함시켜 주해할 때 찾을 수 있다. 딤전 2:13는 창조, 24절은 타락, 15절은 창조 질서의 회복을 다룬다. 그러므로 문맥상 여성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역할을 벗어난다면 사탄의 유혹으로 타락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95) 그리고 딤전 2:13의 ‘창조되다’(formed)는 창 2:7-8 LXX에서 아담의 창조에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성 역할에 대한 바울의 논의는 타락의 결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타락 이전에 설정된 창조 질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모든 문화와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96) 12절의 가르침은 교회의 교사인 목사의 가르치는 사역을, 주관하는 것은 감독 곧 목회사역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97) 갈 3:28과 딤전 2:11-15는 한편 본문이 다른 본문을 지배하지 말고 상호보완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는 동등하지만 역할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참고로 딤전 2:15의 “여자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를 남존여비라는 유교적 관습에 근거하여,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집안에서 안전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신분이 불안하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98) 그러나 이 해석은 오늘 날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자의 몸에서 구주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구원할 것이라는 해석도 남녀의 역할을 다루는 문맥에 맞지 않다. 오히려 여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유하게 부여하신 역할인 출산을 믿음으로써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99) 또한 1세기 출산 시 산모의 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상황에서 볼 때, 공적 예배와 사적 생활에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을 실천하는 여자는 출산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구원을 경험할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100)

 

3.7. 디모데전서 3:1-7, 11

 

   딛 1:5-9와 더불어 딤전 3:1-7은 감독의 자격을 다룬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여성 안수를 연구한 논문에 고전 11:3-16과 14:34-36에 밀려서, 딤전 3:1-7은 목사직이라는 ‘교리의 좌소’(sedes doctrinae)라 불릴 정도로 주요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간과되거나 부차적으로 취급된다.101) 바울에 의하면,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그리고 아내의 사별로 재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감독의 자격은 남성이다(3:2).102) 바로 앞 딤전 2:12-15에 언급된 남녀 사이의 창조 질서는 특정 시간과 문화에 제한되거나 매이지(bound) 않기에, 딤전 3:4-5에서 동사 프로이스테미(to manage, 참고. 살전 5:12)를 통해서 바울은 가정에서 헤드십을 수행하지 못하는 여성은 교회에서도 못한다고 말한다(참고. 고전 11:3; 엡 5:22; 골 3:18; 벧전 3:1-6).103)

   11절의 ‘여자들’은 접속사 ‘이와 같이’를 고려하여 많은 이들이 해석하듯이 여자 집사를 가리킬 수 있지만,104) 11절 전후 구절에 등장하는 ‘집사’의 아내를 자연스럽게 가리킬 수 있다.105) 만약 바울이 11절에서 여집사를 의도했다면, 그 직분에 맞는 자격이나 의무를 상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11절의 유동적 해석 때문에 여성 목사는 인정치 않더라도 여자 집사는 안수 없이 허용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참고로 역사비평가들은 디모데전서를 ‘제 2 바울 서신’으로 간주하면서 초기 가톨릭주의를 반영한다고 본다. 그들에 의하면,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재림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던 상황에서 가부장적 교회질서의 형태를 채택하여 세상과 공존하고 합법적 종교로 생존할 수 있도록 모색했다고 본다.106) 이런 잘못된 주장은 디모데전서의 바울 저작을 믿지 않고(참고. 딤전 1:1), 기록 연대를 바울의 말년이 아니라 지나치게 후대로 본 가설에서 기인한 것이다.

 

3.8. 기타: 행 9:36-43의 다비다, 행 21:9의 빌립의 세 딸, 그리고 벧전 2:9의 왕같은 제사장

 

   욥바의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라는 집사의 역할을 했지만(행 9:36), 여성 목회자는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위로와 돌봄과 치유에 있어 더 적극적이거나 은사가 있다고 해서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107)

   사마리아의 집사 빌립의 세 딸은 처녀로서 예언을 했는데(행 21:9), 성령님이 종말의 은사를 여성에게도 주신 결과다. 그러나 빌립의 딸들은 개인적으로 예언을 했지만, 지도자 역할이나 공적 예배에서의 예언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108)

   ‘제사장 나라’는 구약 이스라엘의 별명인데 그럼에도 제사장 직무를 감당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약 교회가 왕같은 제사장이지만(벧전 2:9; 계 1:6) 따로 목사직이 필요하다(딤전 3:1-7).109)

   참고로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인 여인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했지만, 그것이 여성 안수와 설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110) 그리고 루디아(행 16:14-15)가 빌립보교회 설립은 물론 예배 처소를 제공한 봉사를 했기에 여성 안수의 모델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과 의도를 넘어서는 주장이다.111)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엡 5:24)은 항시적 원리이다.112)

 

4. 한국교회에 적용

 

   교회에 여전도사가 활동 중이지만, 그들이 강도권을 가지지 못하기에 설교가 아니라 ‘권면의 말’을 한다. 여전도사는 물론 남전도사와 교회학교 교사는 목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참고로 2016년 9월에 열린 제 101회 고신총회에서, 신대원을 졸업한 여성 사역자에게 강도사에 준하는 ‘권도사’(勸道師, exhorter)라는 호칭을 허용하자는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학교에 여교사들이 봉사 중이지만, 주일학교는 설교와 성례가 시행되는 교회가 아니다. 물론 남자건 여자건 복음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참고. 골 3:16). 따라서 교회학교의 여교사를 여성 안수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회(교단)는 이 문제로 조만간 큰 홍역을 치를 수 있다. 여성 안수에 관한 역사적, 주석적, 실천적 연구를 위한 전문가 그룹을 영역별로 나누어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하며, 연구발표회를 통한 공청회를 통해서 준비해야 한다. 화란 국가개혁교회(NHK)가 여성 안수를 두고 85년 동안(1892-1977) 씨름했듯이,113) 한국교회도 여성 안수에 대한 논의를 만지지도 말아야 하는 선악과처럼 금기시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

 

나오면서

 

   성경에 여성이 안수를 받았다는 언급이 없고, 여성 목사가 언급되지 않기에 여성 안수에 대한 논의를 하는 자체가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이라는 극단적 주장이 있다.114) 마치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없다고 해서 삼위일체를 논의하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볼 이유는 없듯이, 여성 안수도 마찬가지다. 여성 안수를 결정지을 요소는 전통이나 교회의 필요가 아니라 성경해석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논의한 관련 신약 구절들은 시간 제약적인가(time-bound), 아니면 시간 오리엔트적(time-oriented) 혹은 시간 초월적인가?(time-transcended). 즉 본문의 가르침은 AD 1세기에 한정된 규범이기에 현대 교회에서는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는가? 아니면 영구적 진리인가? 시간 제약적으로 보는 이는 다음 질문들을 계속 던질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 남성 12명만 제자로 삼으신 것을 현대에도 문자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115) 이방인, 종, 사마리아인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가? 주님이 베푸신 최후 만찬에 유대인 남자 제자 12명이 참석했기에, 오늘날 성찬식에 유대인 12명만 참석해야 하는가? 1세기에 여자가 남성을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스캔들이라면, 현대는 여자를 특정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이 스캔들이지 않는가?”116) 하지만 1세기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 안에도 규범이 있다. 즉 1세기에 국한되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안에도 타락 이전에 규정된 창조 질서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따라 남성에게 제한된 구약의 제사장직과 신약의 사도직과 장로직에 근거한 영구적 규범을 동시에 찾아야 한다.117) 신약 본문을 1세기에 국한되는 내용으로 보는 해석을 쉽게 허용한다면, 신약 본문의 규범성이 약화되고, 더 나아가 현대에 적용할 때 큰 혼동을 일으킬 것이다. 또한 여성 안수를 허용할 경우에 제기될 실제적 문제들도(예. 사모의 역할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고려해야 한다.118)

                     

                  A Short Thought about the Ordination of Women

                  Youngmog Song(Prof. of Department of Theology)

 

Abstract

 

   The aim of this paper is to delve into the biblical perspective about women ordination from historical and exegetical studies. Every research on this issue claiming ‘biblical’ makes readers much more confusing. Since the 1930’s, major denominations of Korean church including Methodist church and Assembly of God have been approving women ordination. Even though the real concern for this issue must be the process of the decision whether accepting it or not, not a few denominations accredited women pastor due to their practical necessity. In other words, biblical exegesis on the related passages in the New Testament matters. Keeping in mind these phenomena and principle, the Korean churches which do not allow women ordination have to prepare this issue because some day it will cause a serious debate or conflict among their community. This paper explores this issue from four steps: (1) the historical argument on the women ordination, (2) women ordination from the Old Testament perspective, (3) women ordination from New Testament exegesis, and (4) application of this issue to Korean Church. Finally the four steps lead to the conclusion that women ordination is not clearly confirmed by the New Testament exegesis. It is neither recommendable nor wise to escape open discussions on this issue by regarding it like a fruit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Key Words

 

Ordination of women, biblical hermeneutics, the New Testament, time-bound, time-transcended

 

주제어

 

여성 목사 임직, 성경 해석, 신약, 시간 제한적, 시간 초월적

 

 

 

 

 

 

 

 


1) 옥스퍼드대의 S. Pickard, “A Christian Future for the Church’s Ministry: Some Critical Moves”, Ecclesiology 8 (2012), 52.

2) GKSA, Acts of the Extraordinary General Synod (Potchefstroom, 12 January 2016), 1-142. 참고로 이 글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인 ‘안수’(按手)는 ‘임직’이라는 의미이다. 안수는 구약에서 25회 사용되는데, 주로 제물이나 제사장의 머리에 손을 얹을 때 등장하여, 전가, 인정, 혹은 동일시를 함의한다. 참고. 베일러대학교의 T. Brisco, “Old Testament Antecedents to Ordination”, Perspectives in Religious Studies 29 (2002, 2), 162.

3) 미국의 경우 1987년에 창조와 구원에 있어 성의 평등에 근거하여 여성 안수를 주장하는 Christians for Biblical Equality(CEB)와 전통적 남성 헤드십이라는 성(性) 인식에 근거하여 남성 안수만 고수하는 The Council on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CBMW) 사이에 의견이 나뉘었다. 칼빈신학교의 J. Bolt, “Eschatological Hermeneutics, Women’s Ordination, and the Reformed Tradition”, CTJ 26 (1991), 370.

4) 압뻘도른신학대에서 화란교회의 여성 안수 논의를 연구하여 박사학위(2001)를 받은 임경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제와 한국 교회의 과제”, 『진리와 학문의 세계』 11 (2004), 82, 84.

5) 참고. 한신대의 김애영, “여성안수와 참된 교회 공동체”,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7 (2005, 1), 302; 백석대의 조기연, “여성안수: 찬성과 반대”, 『신학과 선교』 38 (2010), 3.

6) CRC는 1984년에 여집사를 허용했으며, 1997년에 북미 장로교회-개혁교회 연합회(NAPARC)는 여성 목사안수를 허용한 CRC의 회원자격을 박탈했고 그 결정은 현재도 유효하다. 또한 NAPARC는 CRC가 1973년에 공포한 성경관이 역사적 개혁주의 견해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성경관이 여성 안수와 직결됨을 보여준다. T.J. Van Dyken, “Reformed Orthodoxy and Gendered Authority: The Christian Reformed Church 1945-1984”, CTJ 51 (2016), 77. 1973년에 PCA가 남부장로교회(SPC)에서 분리할 때 비성경적 결혼과 이혼 및 여성안수 반대가 중요 명분이었다. 역시 성경관의 차이가 교회 분열을 낳았다. 참고. WTS출신인 F.J. Smith, “Petticoat Presbyterianism: A Century of Debate in American Presbyterianism on the Issue of the Ordination of Women”, WTJ 51 (1989, 1), 67, 72-73. Contra 성경관에 있어 보수적인 오순절 교회가 여성 안수를 쉽게 허용한 것을 예로 들면서, 성경관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노스 파크신학교의 K.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Covenant Quarterly 67 (2009, 2), 27.

7) 전 세계 교회들의 여성 안수 현황은 에큐메니칼적 단체인 세계 개혁주의 교회 연맹(WARC) 소속의 U. Rosenhäger and S.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개혁신학의 이해』 (Walk, My Sister-The Ordination of Women: Reformed Perspective, 장상 역, 서울: 이화여대 출판부, 1995), 199-205를 참고하라.

8) 이혜정,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교단정체성 연구”, 209.

9) 조윤희, “한국교회의 여성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46.

10) 2011년 11월 8일, 백석대 교수 79인은 만인제사장직에 근거하여 여성 안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1) 2013년 기준으로 여목사의 비율은 기장은 14.79%, 통합은 5%, 감리교는 5.4%이다. 참고. 윤소정, “오늘날 한국교회 여성목사 안수와 교회 현장에서의 문제들”, 『기독교사상』 (2013년 3월호), 49.

12) 참고.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0251(2016년 10월 16일 접속).

13)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개혁신학의 이해』, 28, 67; 경성대의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인문학논총』 15 (2010, 1), 176; 조윤희, “한국교회의 여성안수에 관한 역사적 고찰”, 『한국여성신학』 19 (1994), 36, 39, 44,

14) 예장(통합) 전국 여교역자연합회 총무인 고애신, “예장(통합) 여성안수 활동사”, 『한국여성신학』 28 (1996), 31; 대한신학교의 김성봉, “마지막 방파제”, 『교회와 문화』 28 (2014?), 10-11. 참고. WCC, Concerning the Ordination of Women (Geneva: WCC, 1964).

15) 총신대의 심창섭, “여성 안수에 대한 소고”, 『신학지남』 64 (1997), 193. 참고로 진보적인 가톨릭 수녀들은 1976년에 시카고에서 ‘여성 성직 수임 회의’(Women’s Ordination Conference)를 설립했다. 남성 사제 지원자의 급감으로 인해 여성 사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거세게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애, “로마가톨릭교회 개혁의 주체, 여성 사제직”, 『신학연구』 63 (2013), 104, 112.

16) Van Dyken은 미국 루터교 미주리노회, OPC, PCA, 그리고 일부 CRC교회를 예로 든다. Van Dyken, “Reformed Orthodoxy and Gendered Authority”, 61. 참고로 미국 안식교는 2015년 60회 총회에서 여성 안수를 부결했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총회 결정을 무시하고 여성 안수를 시행했다.

17) 샌프란시스코신학교 교수이자, PCUSA 213대 총회장(2001)인 J.B. Rogers, “Culture vs. Revelation: Women’s Ordination and LGBT Ordination as Parallel Struggles”, Church & Society 96 (2006, 3), 98, 107.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G.C. Berkouwer를 박사과정에서 사사했고 죽기 전에 영국 청교도 Edward Reynolds(d. 1676)의 전기를 연구를 Rogers는 여성 안수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은 선택적인 문자주의에 빠져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성경의 교훈을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PCUSA는 1921년 총회에서 여집사를 승인했고, 2011년 5월 10일에 LGBT의 목사 안수를 승인했으며, 2015년 3월 17일에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승인했다.

18) 20세기 중반까지 여성안수에 대한 연구 목록과 요약은 R.T. Barnhouse et al, “The Ordination of Women to the Priesthood: An Annotated Bibliography”, Anglican Theological Review 6 (1976), 81-106을 보라.

19) 신선, “여성 안수 왜 안 되는가?”, 『새가정』 4 (1984), 46.

20) 계신대원의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서울: 큰샘출판사, 2004), 16.

21) 김세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나”, 『목회와 신학』 (2004년 5월호), 58.

22) 흥미롭게도 LXX와 Vulgate에 ‘노아댜’(느 6:14)는 남성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여성을 남성의 지위와 동등하게 만들려는 시도인지, 아니면 여성의 이름에 구약의 번역 시기 당시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지 논란이 된다. 전자를 지지하는 입장은 프린스턴신학교의 G.A. Barrois, “Women and the Priestly Offic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St. Valdmir’s Theological Quarterly 19 (1975, 3), 178을 보라.

23) 위클리프홀의 R.T. France, “여성 안수에 관한 신약성경의 증언: 연속성과 발전”, 『목회와 신학』 (2004년 5월 호), 192.

24) 노틀담대학교의 J.M.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0 (1973, 4), 690. 이방 종교의 성창들의 영향을 거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여자 제사장이 없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이방 종교의 영향 이전에 노아(창 8:20-21), 욥(욥 1:5), 그리고 족장들은 가족을 대표하여 제사를 드렸다(창 12:7-8).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28.

25) 참고. 칼빈의 딤전 2:12 주석을 소개하는 심창섭, “여성 안수에 대한 소고”, 197.

26) G. Wenham, “여성 안수: 왜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나”, 『목회와 신학』 (2004년 5월호), 205.

27) Wenham, “여성 안수: 왜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나”, 210.

28) 심창섭, “여성 안수에 대한 소고”, 194.

29) 장로회신대의 박수암, “여성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견해”, 『장신논단』 5 (1989), 65; France, “여성 안수에 관한 신약성경의 증언”, 193.

30) 참고. 댈러스신학교의 D.L. Bock, Luke 1:1-9:50 (BECNT; Grand Rapids: Baker, 1994), 713.

31) Contra 여제자들이 주님의 갈릴리 사역부터 죽으실 때까지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녔다고 보는 베일러대학교의 D.E. Garland, Luke (ZECNT; Grand Rapids: Zondervan, 2011), 341.

32) 참고. 상당한 규모의 여성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것을 ‘비평적으로 확증된 사실’(critically assured fact)이라고 보는 Whitworth대학교의 J.R.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PNTC; Grand Rapids: Eerdmans, 2015), 233.

33) 손석태, “여성 안수 성경적인가?”, 『개신논집』 9 (2009), 251.

34) 김세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나”, 63.

35) 긍정적으로 보는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77; France, “여성 안수에 관한 신약성경의 증언”, 196;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9; 더반-웨스트빌대학교의 D.S. Watson, “The Mutual Recognition of Ordained Ministries”, Journal of Theology for Southern Africa 23 (1978, 1), 67; Smith, “Women’s Human, Ecclesial and Missionary Identity”, 155;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32.

36) 합신대의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신학정론』 8 (1990, 2), 317.

37) 웨신대의 최영숙,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 여성들: 고린도전서 14:34-35 해석”, 『신약논단』 22 (2015, 3), 751.

38)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34;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70.

39) 남침례신학교의 T.S. Schreiner, Romans (BECNT; Grand Rapids: Baker, 1998), 787.

40) Contra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33.

41)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79.

42)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319.

43) ‘머리’를 ‘뛰어난’ 혹은 ‘첫째가는’이라는 의미로 본다면(참고. 신 28:44; 사 7:8-9; 애 1:5 LXX), 남성이 여성보다 앞과 위라는 지도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여성의 남성을 향한 복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D.E. Garland, 1 Corinthians (BECNT; Grand Rapids: Baker, 2003), 516.

44) ESV Study Bible (Wheaton: Crossway, 2008), 2206.

45) ESV Study Bible, 2207.

46)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22; 총신대의 김정우, “여성 안수에 대한 논평”,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29 (2005), 109.

47) ESV Study Bible, 2207.

48) 총신대의 이관직,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 『신학지남』 64 (1997, 3), 297.

49) 고전 14장과 딤전 2장은 남아공 개혁교회 특별 총회에서 가장 논쟁이 된 구절이다. GKSA, Acts of the Extraordinary General Synod, 19.

50) 참고.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34; 백석대의 최갑종,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가”, 『목회와 신학』 (2005년 7월호), 170; 노팅엄대학교의 A.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2000), 1152. Contra 한국여신학자 협의회의 김상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에 관하여”, 『기독교사상』 28 (1984), 231;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81; 김세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나”, 66. 참고로 34절의 “여자는 교회들에서 계속 잠잠하라”를 고린도에 유행하던 슬로건을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형식이 격언적(proverbial)이지 않고, 교회의 자유방임파의 성격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 덴버신학교의 C.L. Blomberg, 1 Corinthians (Grand Rapids: Zondervan, 1994), 280.

51) 백석대의 이경석, “고린도전서 14:33b-36의 진정성과 주해”, 『신약연구』 7 (2008, 4), 683. 참고로 고전 14:36의 접속사(ἤ)는 34-35절의 내용을 부정하고, 36절의 형용사 ‘유일한 자들’(μόνους)이 ‘남성’ 복수 대격이므로, 바울은 여자의 침묵을 강요한 고린도교회의 남성 예언자들을 비판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접속사 ἤ는 앞의 진술이 참됨을 증명하는 뜻을 가질 수 있는데, 바울은 여성을 포함할 때에 남성 단어으로 종종 표현한다(참고. 고전 1:2; 16:1, 15). 참고. 최영숙,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 여성들: 고린도전서 14:34-35 해석”, 755-56.

52) 상호 모순된다고 보는 예는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78; 김세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나”, 68. 김세윤의 이 입장은 고전 14:34를 바울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후대의 첨가로 본 결과다.

53) Garland, 1 Corinthians, 672; Wenham, “여성 안수: 왜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나”, 207; 박수암, “여성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견해”, 79;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3.

54)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The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를 창간한 주역이자 Bard대학교의 B.D. Chilton, “Opening the Book: Biblical Warrants for the Ordination of Women”, Modern Churchman 20 (1977, 1-2), 34.

55) Colby대학교의 T.R. Longstaff, “The Ordination of Women: A Biblical Perspective”, Anglican Theological Review 57 (1975, 3), 324.

56) Garland, 1 Corinthians, 673.

57)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35.

58) 최영숙,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 여성들: 고린도전서 14:34-35 해석”, 766.

59) 참고로 고전 14:34의 여자가 ‘복종해야하는’(혹은 ‘서로[ὑπο] 질서 가운데 행해야하는[τάσσω]’, 참고. 고전 14:32의 ‘절제/통제하다’) 대상을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이나 교회(교회의 질서)로 보는 경우는 최영숙,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 여성들: 고린도전서 14:34-35 해석”, 767-68.

60) 김상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에 관하여”, 233.

61) 이경석, “고린도전서 14:33b-36의 진정성과 주해”, 694.

62) Blomberg, 1 Corinthians (Grand Rapids: Zondervan, 1994), 280; ESV Study Bible, 2213.

63) 이경석, “고린도전서 14:33b-36의 진정성과 주해”, 695, 697. 따라서 이경석은 고전 14:34-35는 여성 안수의 찬성이나 반대에 사용할 수 있는 구절이 아니라고 본다.

64) 참고. 박윤선의 고전 14:34-36 주석과 권성수의 해석을 인용하는 이관직,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 298-99.

65) 참고. 실로암교회 이광호, “여자목사 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2009년 9월 14일. 예장 브니엘총회 공청회. 브니엘교회당).

66) 이경석, “고린도전서 14:33b-36의 진정성과 주해”, 689.

67) Garland, 1 Corinthians, 668.

68) Garland, 1 Corinthians, 669. 고전 14:31에 의하면, 고린도의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예배 중에 질서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배워야 했다.

69) 최갑종,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가”, 173; 박수암, “여성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견해”, 74. 미국 CRC의 경우, 바울 서신에 영구한 원칙의 시간-문화 제한적 적용이 많지만, 현대에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변혁적 사역(갈 3:28)이 창조 질서를 초월-회복하기에 여성 안수를 긍정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경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Bolt, “Eschatological Hermeneutics”, 373.

70)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5; 박수암, “여성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견해”, 63.

71) 오클랜드대학교의 S. Smith, “Women’s Human, Ecclesial and Missionary Identity: What Insights does the Pauline Correspondence offer the Contemporary Woman?”, Mission Studies 27 (2010), 149.

72)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88. 참고로 유대인 회당의 기도인 18축도문의 제 2, 3, 4번은 이방인, 종, 여자로 창조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73)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31.

74) 참고로 타락 후에 주어진 창 3:16의 남편이 아내를 다스린다는 말씀은 영원한 규범인가, 아니면 타락한 본성을 가진 남편이 아내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는 일종의 저주의 선포인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Barrois, “Women and the Priestly Offic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182.

75)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342; 이관직,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 301.

76) 남침례교 여신자인 D.K. Patterson, “ Why I believe Southern Baptist Churches should not ordain Women” Baptist History and Heritage 23 (1988, 3), 61. 참고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제 2 바울 서신’으로 간주하는 역사비평가들에게 그런 서신에 담긴 바울의 권면은 의미가 없다.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44.

77) T.R. Schreiner, Galatians (ZECNT; Grand Rapids: Zondervan, 2010), 259.

78) 여기에 동의하는 입장은 Schreiner, Galatians, 259를 참고하라.

79) ESV Study Bible, 2251.

80) 위튼대학교의 D.J. Moo, Galatians (BECNT; Grand Rapids: Baker, 2013), 255.

81)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62.

82) 필라델피아 10장로교(PCA) 목사인 P.G. Ryken, 1 Timothy: Reformed Expository Commentary (Phillipsburg: P&R, 2007), 89.

83)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4; 최갑종,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가”, 176.

84) Ryken, 1 Timothy, 93.

85)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336.

86) 그린빌장교회신학교의 G.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1992), 139.

87) Ryken, 1 Timothy, 90.

88) 참고, 일본 교토의 선교사 P.B. Payne, “Libertarian Women in Ephesus”, Trinity Journal 2 (1981), 169-77.

89) 선교단체 ‘중보의 용사들’ 대표인 C. Jacobs, 『여자여, 내가 너를 불러 세웠노라』 (Women of Destiny, 이숙희 역,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9), 282.

90) Contra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51-52, 56. 조영엽은 심지어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와 생리 중의 심리적인 기복도 여성 안수에 적절치 않은 요인으로 본다.

91) ESV Study Bible, 2328;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58.

92) 참고. 계명대의 이혜정,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교단정체성 연구”, 『종교연구』 58 (2010), 210.

93) 캄펀신학대학의 R. van Houwelingen, “Meaning and Significance of the Instruction about Women in 1 Timothy 2:12-15”, Särospataki Füzetek 19 (2015, 4), 68; Snodgrass, “A Case for the Unrestricted Ministry of Women”, 28-29.

94)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당하던 성과 민족에 기초한 차별을 없애주셨다는 빛에서 딤후 2:11-15를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흑인 여성학자인 D.C. Inyamah, “Contrasting Perspectives on the Role of the Feminine in Ministry and Leadership Roles in John 4 and 1 Timothy 2:11-15”, Journal of Religious Thought 60-63 (2008-2010), 104-105.

95) 남동침례신학교의 A.J. Köstenberger, “Ascertaining Women’s God-Ordained Roles: An Interpretation of 1 Timothy 2:15”, Bulletin for Biblical Research 7 (1997), 142-44.

96) ESV Study Bible, 2328.

97) 참고. 이광호, “여자목사 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

98)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68.

99) ESV Study Bible, 2328.

100) 송영목, 『신약주석』 (서울: 쿰란출판사, 2011), 1024.

101) 시애틀의 메시아루터교회의 E. Lassman, “1 Timothy 3:1-7 and Titus 1:5-9 and the Ordination of Women”, Concordia Theological Quarterly 56 (1992, 4), 291.

102) 조영엽, 『여성안수, 성경적인가?』, 70. 참고로 교부들은 ‘한 아내의 남편’(딤전 3:2; 딘 1:6)을 한 번만 결혼한 사람으로 주로 이해하여, 재혼한 사람(digamist)을 감독으로 안수하지 말라고 이해했다(참고. NRSV: “married only once”). 하지만 적법한 이혼의 경우에 재혼은 허용된다(마 19:9). 참고.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158.

103) Lassman, “1 Timothy 3:1-7 and Titus 1:5-9 and the Ordination of Women”, 293. 더불어Lassman에 의하면, 딤전 3:1의 ‘미쁘다 이 말이여’는 예수님이 구원하시러 세상이 들어오신 것을 언급하는 1:15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는 권면인 4:9에도 나타난다. 이 세 구절은 시간을 초월한 진리를 강조하는 신뢰할만한 말씀이다.

104) 세인트 앤드류스대학교 명예 강사 및 UBS 성경번역 서비서실의 책임자인 P.H. Towner, The Letters to Timothy and Titu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2006), 266.

105) Ryken, 1 Timothy, 133;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172; 고든-콘웰신학교의 W.D. Mounce, Pastoral Epistles (WBC; Waco: Word, 2000), 204;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340.

106)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65.

107)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7.

108) Wenham, “여성 안수: 왜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나”, 206

109) 홍창표, “여성안수에 대한 부정적 평론”, 311. Contra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105;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87; 조기연, “여성안수: 찬성과 반대”, 7.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약은 만인제사장 시대이므로 ‘평신도 목회’도 가능하다고 보는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6; Watson, “The Mutual Recognition of Ordained Ministries”, 69.

110) Contra 김세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나”, 61.

111) Contra 최종호, “여성들의 목회 참여를 위한 성경적-신학적 고찰”, 188. 참고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이름 모를 한 여인이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것(막 14:3)을 여성 안수의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는 P. Anderson, “Mark 14:3-9 and the Ordination of Women”, Currents in Theology and Mission 22 (1995, 6), 453.

112) 참고로 엡 5:24-25는 아내가 남편에 복종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남편은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이라고 보는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81. 더 나아가 Ford는 딛 2:3의 ‘늙은 여자’를 가르치는 여장로로 본다.

113) 임경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여자 직분 문제와 한국 교회의 과제”, 63.

114) 심창섭, “여성 안수에 대한 소고”, 196.

115) 행 1:21에서 가롯 유다 대신에 사도를 보충할 때 조건 중 하나는 남자(ἀνήρ)였다. 참고로 눅 10:1의 제자 70명에 여성이 포함되었다는 주장은 Ford, “Biblical Material Relevant to the Ordination of Women”, 673.

116) 예를 들어, 미국 가톨릭대학교 박사과정의 A.A. Hutchinson, “Women and Ordination: Introduction to the Biblical Context”, Dialogue 14 (1981, 4), 65.

117) 페미니스트는 남녀의 역할 구분을 타락 이후의 죄성의 결과로 보면서, 목회적 은사와 소명을 여성 안수의 중요 요소들로 간주한다. Rosenhäger and Stephens, 『함께 걷자, 나의 자매여』, 116, 118, 195.

118) 더불어 구원계시사적으로 볼 때, 여성 안수를 다룰 때, 바울 서신이 기록될 당시의 신구약 중첩기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바울 당시에 구약의 남성 중심적 제사장 제도가 돌 성전을 중심으로 존속되고 있었지만 성령 강림이라는 종말 사건으로 인해 점차 쇠하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을 취하면, 여성 안수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새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구약의 중첩과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 여성 안수의 정당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제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후 30여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여전히 신구약 중첩기간 동안에 기록된 목회서신이 밝히는 신약교회에서의 남녀의 역할 구분은 사도시대로 한정되고 오늘날은 폐지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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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2017년 개혁신학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춘계학술대회(2017년 4월 8일, 총신대학교)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내 교리교육의 부재와 딜레마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 탐구” 논문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왜 한국교회는 교...
    Date2017.04.10 By개혁정론 Views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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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논문]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아래의 논문은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무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12월 3일 서울 금란교회) "85차 정기논문 발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한 것이다.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김영무 목사 (남아...
    Date2016.12.14 By개혁정론 Views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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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논문]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주기철 교수 (고신대 신학과 신약학) 들어가면서 본 글의 목적은 2016년 고신 교단 설립 70주년에 즈음하여 그간 교단 내에서 발간 된 ‘고려신학보’, ‘...
    Date2016.12.13 By개혁정론 Views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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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논문]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김 순 성 교수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Date2016.11.28 By개혁정론 Views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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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No Image

    [논문]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김영종 교수 (고신대 교양학부 조교수, 교목)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의 고신신학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
    Date2016.11.17 By개혁정론 Views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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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논문]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1938년 제 27회 대한예수교장...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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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논문]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미셸 조네 박사(Dr. Michel Johner)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장칼뱅대학 학장 A. ...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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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논문]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허 순 길 박사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전 원장)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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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최윤갑 교수 (고신대 신학과)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70년의 세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지난 70년의 세월 속에 고신대학교와 함께 하...
    Date2016.11.11 By개혁정론 Views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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