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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남성경연구원(원장 문장환 목사)은 2020년 11월 5일(목) 박사학위 논문발표회를 가졌다. 코로나로 인해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발표회에서 이원재 박사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간추려서 발표했다. 해당영상은 https://youtu.be/t-JzwmTdZlA 에서 볼 수 있다. 아래는 이원재 박사가 간추린 논문 내용이다. - 편집자 주


 

 

에덴동산의 죽음 경고: 창세기 2:17의 초기 수용사

Death Warning in the Garden of Eden: The Early Reception History of Genesis 2:17[1]

 

 

 

 

캡처.JPG

 

 

 

 

 

 

 

 

 

이원재 박사

에딘버러 대학교 박사

고든콘웰대학교 M.Div

토론토 대학교 학사, 석사

 

 

서론

   창세기 2-3 장의 에덴 동산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금도 현대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본문이며 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아온 본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육체적 죽음의 기원이라는 주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기초가 되는 본문 이기도 하다.  창세기 5:3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930년의 나이에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보고가 아니다. 성경의 많은 독자와 비독자들이 원래 불멸, 즉 죽지않는 존재(immortal)로 창조되었고 소위 '타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에덴 동산에서 유일하게 그 지위를 누린 것으로  믿고 있는 최초 인간의 사망이다. 주요 기독교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이해되어져 왔다. 이에 대해, 카르타고 공의회 (418 AD)의 규정은 다음과 같이 매우 강력한 입장을 취한다: ’”아담이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고, 죄가 없어도 자연적으로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2]  

 

세상에 죽음이라는 존재가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확정적으로 명시한 가장 중요한 인물로 2000년전 다소의 바울(Paul)을 들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5:12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기록한다. 어거스틴(Augustine)의 원죄론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 대한 바울의 해석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펠라기우스 (Pelagius)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인간의 본성은 ... 처음에는 흠 없고 죄가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3] 어거스틴은 그의 다른 작품인 On the Merits and Forgiveness of Sins, and on the Baptism of Infants에서 '아담이 죄의 결점 없이, 죄의 형벌이 아니라도 죽었을 것’ [4]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주장에 창 3:19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 구절을 사용하여 반증한다. 그는 ‘그러므로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육체를 빼앗기지 않고 불멸과 썩지 않는 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5] 또 다른 작품인 On Genesis Literally Interpreted (De Genesi ad litteram)에서 어거스틴은 '이 죽음은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행한 날에 일어났다. 그들은 생명 나무로부터 공급되는 영양분에 의해 신비스럽게 질병과 노화 과정에서 그들의 몸이 보존되며 유지되던 특권을 잃었다 '고 기록한다.[6] 여기서 어거스틴은 명확하게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죽음 '의 시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존 칼빈 (John Calvin, 1509-64)은 '결함이 없는' 몸과 영혼을 가졌고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던’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순간부터 이전 상태에서 벗어나 죽는 존재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칼빈은 특히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먹은 그 날에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것, 즉 죽음 경고의 형벌 집행의 불충족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서 그는 죽음의 이중 개념 (영적 및 육체적)을 주장한다. 칼빈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이 의미하는 죽음은 무엇입니까? 이 죽음의 정의는 그 반대의 개념인 ‘삶’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삶에서 떨어졌는지 기억해야합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행복했습니다. 그의 영혼에는 올바른 판단과 사랑에 대한 적절한 통치가 있었고, 그의 몸에는 결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죽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습니다 … 우리는 또한 죽음의 원인,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반역하자마자 그는 이전의 (좋았던)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아담이 겪는 모든 비참함,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하고 잃어버린 삶으로 쫓겨 났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이 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 그를 죽이시겠다고 하신 뒤 죽음이라는 형벌을 오래동안 미루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불필요합니다. 그때 이미 아담은 죽음에 맡겨졌고 그에 대한 치료법인 하나님의 최상의 은혜가 있기 전에 죽음은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7]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주장도 동일하다:

 

아담에게 분명하게 주어진 이 경고는 그에게 ‘법’이 주어졌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아담이 무죄인 상태, 의로운 상태로 지어졌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담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라면, 그는 절대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은 죄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8]

 

 

이처럼 사소한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전통 기독교에 속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일반적으로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에게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주장을 따른다. 많은 현대 학자, 특히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개념을 다루는 신약 학자들이 그러한 이해가 창세기 내러티브에서 시작되었다는 근본적인 가정에서 창세기 본문을 가리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9]  그러나 에덴동산 내러티브를 고전 15:21-22과 롬 5:12의 렌즈를 통해 읽지 않는다면 타락 이전의 '불멸 아담’의 개념은 창세기 내러티브 자체에서는 명백한 본문적 근거를 찾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불순종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의 불멸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그러한 해석은 종종 추론적이며 원문에 확고한 근거가 없는 후기 전통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타락 이전에 아담과 하와의 불멸의 지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특정 내러티브 요소들이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동일한 내러티브 특징과 요소를 지적하며 '타락'이전에 죽음의 존재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박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최초의 인간이 처음부터 자연의 원칙에 따른 ‘필멸’ (mortal)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주장의 강력한 지지자는 에덴동산 이야기를 '죄와 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불멸의 상태에 거의 가까이 왔지만 실제로 잃어버린 이야기 (a story of how human immortality was almost gained, but in fact was lost)'로 간주하는 제임스 바(James Barr)이다.[10] Barr에 따르면, 에덴동산 이야기는 죽음의 도입이 아니라 인간이 불멸에 대한 접근을 영구적으로 상실한 원인을 제시한다. Barr의 주장은 필자의 논문 3장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그는 다음의 내러티브 요소들을 제시한다 1) ‘죽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구약에서 발견되는 문화적인 전제이다; 2)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죄', '불순종' 또는 '반항'과 같은 단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3) '히브리어 성경 자체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죄의 존재에 대한 설명으로 인용되지 않는다; 4) '죄가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다'는 견해는 구약에 대한 헬레니즘 적 해석의 산물일 가능성이 있다; 5) 아담에게 가해진 처벌에는 죽음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 전의 그들의 신체적 상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다른 이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불순종 이전에 죽지 않는 존재였는지 또는 죽는 존재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 창세기 이야기 자체의 모호한 특성 때문이다. 창세기 저자는 '타락'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 상태나 삶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에덴동산 이야기에는 종종 발견되는 내러티브 ‘간격’ (gap)과 ‘불일치’ (inconsistencies)한 요소들이 있다. 실제로 창세기 저자는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내러티브의 세부 사항들을 건너 뛰며 독자들에게 논란이 될만한 문제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에덴 동산 이야기를 읽는 모든 독자는 이러한 내러티브 간격을 메우거나 (gap-filling) 또는 텍스트가 명확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11]

 

논문의 목적, 범위, 방법

논문에서 필자는 이러한 최초 인간인 아담이  불멸 또는 필멸로 창조되었다는 학술적 전제들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 전 아담과 하와의 상태와 관련하여 창 2:17의 죽음 경고 및 관련 구절(3 : 14- 24)들의 초기 유대 수용사(reception history)를 추적한다. ‘수용사' 는 일반적으로 텍스트가 독자의 이해와 해석과는 별개로 이해 될 수 없다는 확신 아래  텍스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졌는지에 대한 연구로 정의된다. Blackwell Bible Commentary 시리즈의 편집자 중 한 명인 존 소여 (John Sawyer)교수는 성경 연구에서 수용 역사의 관점과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한 새로운 것은 텍스트 자체보다 텍스트의 ‘수용’ (reception)이 더 중요하며 누군가가 읽을 때까지 텍스트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초기 텍스트는 말을 하지 않는다 (the bare text is mute)". 그것은 철학자들의 오래된 질문과 같다. 나무가 숲에 떨어지고 아무도 그것을 듣지 않으면 나무는 어떤 소리를 내었는가? 독자가 없는 텍스트는 의미가 없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독자이다. 어떤 의미에서 독자는 저자만큼 텍스트를 창조해낸다. 창작자로서 독자의 역할은 새로운 개념이었고 이것이 Blackwells 시리즈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이다.[12]  

 

 

최근에 주목을 받으며 성경 본문 수용사의 광범위한 범위를 포괄하는 국제적 프로젝트인 Encyclopedia of the Bible and its Reception (EBR)은 성경연구 분야에서 본문의 수용사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30권으로 계획된 EBR의 두 가지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현재의 지식을 유대교와 기독교 표준 형식으로 포괄적으로 기록하고 또한 실제로 발전시키며, (2) 주석 및 다양한 신학적, 철학적 장르의 문학, 전례, 음악, 시각 예술, 무용, 영화, 이슬람 및 기타 종교적 전통과 현대 문화에서 발견되는 -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성경이 수용되어진 역사를 기록한다. [13] 

 

 

필자의 논문은 대체로 BBC 및 EBR 프로젝트의 ‘수용사’에 대한 접근 방법과 관점을 따르고 유지한다. 그러나 이 논문의 범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죽음 경고 (창 2:17)와 관련한 -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자신의 죄로 인해 죽는 존재가 되었다는 개념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것에 목적을 두는 - 초기 유대 수용사와 해석으로 제한 될 것이다. 이 논문은 먼저 창세기 2장 17절의 의미를 히브리 성경 창세기의 본래의 맥락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 다음, 이후의 제 2 성전 시대의 유대 문학에서 그 해석을 추적해 나간다. 고전 15:21-22, 롬 5:12에서 바울이 명시적으로 인간의 육체적 죽음을 아담의 불순종에 귀속시킨 것에 앞서 70인역,  사해사본, 집회서 (벤 시라) 등 - 아담의 불순종에 의해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주장과 언어적 특징을 공유하는 제 2 성전 시대 유대 문학 - 에서 발견되는 창세기 2:17절과 관련된 해석적 흔적과 요소들을 따라가며 조사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텍스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창세기 2장 17절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 2:17을 읽으면서 종종 발생하는 질문, 즉 아담과 하와가 원래 육체적으로 불멸 (immortal) 또는 필멸(mortal)의 존재로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왜 최초의 인간이 불순종 한 직후에 하나님께서 창 2:17에서 경고하신대로 죽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로 하나님이 창 2:17에서 의미하셨던 죽음은 임박한 사형선고가 아니라 인간이 죽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신 것이라는 설명이 제시된다. 이와 같은 설명에 이어지는 것은 그들이 만약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먹지 않았다면 영원히 살았을 것, 또는 그들이 동산의 또 다른 나무인 생명 나무를 계속 먹었다면 영원히 살았을 것이라는 가정들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먼저 창세기 2:17의 죽음 경고가 히브리어 성경에서 의도된 의미와 사용 용례들의 문학적 맥락을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더 잘 평가 될 수 있다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논문에서 문학적 맥락과 서술적 맥락안에서 죽음 경고에 대한 상세한 주석적 조사를 먼저 다루었는데, 첫 번째 이유로는, 히브리어 문구 מות תמות (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에 대한 많은 고대 및 현대 해석과 번역들이 실제 죽음 경고에 대한 분석보다는 창세기 내러티브에서 아담의 불순종 사건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의 일반적인 근거는 ‘아담에 대한 사형이 즉시 집행된 것이 아니므로 죽음 경고는 즉시 처벌되는 사형선고에 관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한  당일 (‘in the day’)에 바로 죽지 않는 문제는 성경의 고대 및 현대 독자 모두에 의해 인식되어 왔으며, 죽음 경고와 그 성취 사이의 불일치로 인해 죽음 경고의 의미와 관련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14] 창 2:17 죽음 경고에 대한 신중한 분석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로는, 죽음 경고의 수용사에 대한 철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석을 보장할 수 있도록 경고의 원래 의미를 신중하게 분석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원본 히브리어 텍스트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적 죽음’의 개념에 대한 측면도 관련 장에서 일부 다루고 있지만 이 논문의 논의는 주로 '육체적' 죽음의 기원에 국한되며 육체적 죽음 이후의 삶이나 영혼의 불멸에 대한 해석적 발전에 광범위하게 다루지 않는다.[15]  

 

이전 연구, 본 논문의 특징

 

아담과 하와가 원래 불멸 (또는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학문적 탐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창 2:17의 죽음 경고 자체와 경고의 후속 수용사에 대한 상세한 주석 분석을 제공하는 것에 전적으로 집중하지 않았다. 이 논문의 주제들과 관련된 문헌들이 각 장에서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이 논문과 일부 중복되는 부분이 있는 것들은 그들의 간략한 개요를 소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제임스 바 (James Barr)의 책 - The Garden of Eden and the Hope of Immortality - 은 필자로 하여금 불멸 (immortality)의 주제를 더 조사하도록 영감을 준 출발점이었다.  Barr는 아담과 하와가 실제로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면서 아담이 불순종하기 이전에 영원히 사는 존재였다는 전통적 견해에 도전한다. 특히 처음 두 장에서 Barr는 에덴 동산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전체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죽음'이 죄에 대한 처벌로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성경의 많은 증거들이 죽음이 인간의 삶에서 선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즉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Barr는 또한 '아담과 하와에 대한 바울의 이해'가 창세기 본문이 아니라 구약성경 외적인 책들에서 그 근거가 발견된다고 주장한다.[16] Barr는 또한 바울을 제외하고 신약의 나머지 책들은 죄와 죽음을 가져온 사람으로서의 아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으며,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형은 바울 자신의 해석이며 그것 또한 롬 5장과 고전 15정에  한정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Barr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분명히,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수단으로서 하와와 아담의 죄를 강조하는 것은 신약 기독교에서 보편적인 필요성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성 바울의 특징이며, 그에게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개념이 기독교 내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사용된 것이 그에게서 시작된 것이다.[17]

 

 

Barr의 책은 죽음과 불멸에 대한 주제와 관련된 논의와 질문들을 따라가는데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Barr가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밝히는 것처럼 그의 책은 '불멸이라는 주제에 대한 철저하거나 체계적인 토론'을 제공하거나 '학술 문헌의 모든 방대한 토론' 및  ‘관련성 있는 모든 성경  구절들’을 제공하지 않는다.[18] 더욱이 Barr의 ‘설득력’ 있어 보이는 주장에 약점과 추정적인 전제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Barr는 ‘불멸이 되는 것’이 생명나무를 먹게 되는 것의 결과 (창 3:22)일 뿐이며 창 2:17의 죽음 경고는 원래부터 필멸의 존재에게 더 적합한 경고라는 이유로 아담과 하와가 원래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주역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즉각적인 사형에 대한 죽음 경고가 원래부터 불멸이었던 존재에게 주어질 수 없다고 가정 할 이유는 없다. 특히 인간이 생명 나무를 주기적으로 먹음으로서 그의 불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 사람이 원래 필멸의 존재였다는 주장에는 아담과 하와가 지금까지 생명 나무에서 먹을 기회가 없었다는 근본적인 가정이 필요하며, 이는 단순히 우연에 맡기거나 다른 추정으로 설명 할 수 없다. Barr의 주장은 필자의 논문 3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불멸이라는 주제에 대한 초기 수용사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까지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다른 학술지들이 있다. 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주장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창세기 본문 자체는 아담과 하와가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기록한다; 2) 다른 초기 유대 문헌들은 인간이 처음부터 필멸로 창조되었다고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바울조차도 같은 해석 범위에 넣고 있다). 예를 들어, Adam Citings before the Intrusion of Satan : Recontextualizing Paul 's Theology of Sin and Death에서 헨리 켈리(Henry Kelly)는 아담과 하와를 언급하는 초기 문서들에 대한 개요를 제공한다. 그의 목록이 토빗서부터 Justin Martyr의 Dialogue with Trypho (160 CE) 까지 아담과 하와에 대한 초기 유대 문헌 대부분의 언급들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매우 포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켈리의 글은 텍스트를 주석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각 인용에 대한 짧은 소개에 그치고 있다. 켈리는 하늘에서 나신 둘째 사람’ 그리스도와는 대조적으로 땅(ἐκ γῆς)에서 아담이 창조 된 것에 대한 바울의 설명 (고전 15:47)에 근거하여 바울조차도 아담을 원래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묘사한다는 해석을 강요하고 있다. 켈리는 또한 롬 5:12-21에서 죽음에 대한 Paul의 견해가 15:21의 ‘영생’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육체적/물리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논문의 몇 몇 장들에서 더 논의되지만, 간단히 말해서 그의 주장은 바울서신의 전체적인 맥락, 바울이 문자적 ​​의미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육체적 죽음과 부활을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설명하는 한 사람을 통해 들어오게 된 ‘죽음’에 대한 바울의 주장에 비추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리는 '바울이 아담의 죄와 그 결과에 대해 강조한 해석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과 공유되지 않은 것'이라고 기록한다.[19]

 

 

존 J. 콜린스 (John J. Collins)는 그의  글, Before the Fall : The Early Interpretations of Adam and Eve에서 여러 유대 문서들 - 집회서 (벤 시라), 사해사본, 에녹 1서/파수꾼의 책 등 - 의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해석들을 다룬다. 콜린스는 Barr와 동일하게 히브리 성경 전체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나 언급이 부족함을 지적하고 그가 살펴본 문서들에는 '타락'의 결과로 인한 현재의 인간 상태나 죽음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  오히려,  집회서나 에녹서는 아담과 하와가 원래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명확한 텍스트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콜린스는 창 2:17의 죽음 경고나 그 경고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는 집회서14:17에 대해서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 논문의 6장에서 벤 시라가 죽음을 인간의 자연적인 존재라고 묘사한다는 콜린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본 논문과 가장 많이 겹치는 학술지는 콘라드 쉬미드(Konrad Schmid)의 글, Loss of Immortality? Hermeneutical Aspects of Genesis 2-3 and its Early Receptions 이다.[21]  쉬미드는 글의 전반부에서 히브리 성경의 죽음 경고 사용법에 대해 논의한 뒤에 히브리 성경의 에덴동산 이야기와 여러 초기 유대 문학에서 선택한 구절들을 분석하며 죽음이 히브리 성경 뿐만 초기 유대 문학에서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일부로 그려지고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의 주장은 Barr와 위에서 언급한 다른 학자들의 견해와 동일하다. Schmid는 집회서, 지혜서, 에녹 1서, 에즈라 4서, 바룩서, 요세푸스, 필로 및 바울 모두가 인류는 처음부터 필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취했다고 주장한다.[22] 쉬미드의 글은 아담과 하와의 불멸의 지위에 대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수용사적 관점에서 각 문서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미드의 연구는 각 텍스트 (이전 켈리와 콜린스의 두 연구와 유사)에 대한 자세한 주석 분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각 텍스트의 구절과 각 구절의 맥락에 대한 토론은 매우 선택적이며 그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가 본 논문에서 다뤄진다.

 

 

앞서 언급된 학자들과는 달리 본 논문은 빠르게는 70인역 (LXX)의 창세기 번역부터 사망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았다는 바울의 확신 (고전 15:21; 롬 5:12)에 이르기까지 인류에 육체적 죽음이 시작된 것과 하나님의 죽음 경고(창 2:17)를 연관 짓는 해석의 역사에 발전 과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또한 죽음 경고 (창 2:17)에 좁은 초점을 두면서 본문 비평적 그리고 주석적 방법을 사용하여 초기 유대 문학의 수용사를 추적하는 방식에서 독특하다. 에덴동산 이야기나 죽음 경고 자체가 아담이 불멸의 존재였는지 또는 먹지 말아야 할 열매를 먹어서 필멸의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 논문은 죽음 경고와 죽음의 시작 사이의 연관성이 어떻게 후속 초기 유대 문헌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지 나아가 바울서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비록 바울이 - 제 2성전 시대에 아담과 하와의 죄를 육체적 죽음의 원인으로 돌리려는 해석적 시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 유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첫 인간 아담의 죄를 죽음의 시작에 귀속시킨 바울의 명백한 확신과 그 생각에 대한 반복적인 강조는 그 어떤 문서에서도 전례가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바울은 죽음 경고에 대한 아담의 불순종 (창 2:17)이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왔다고 명시한 유일한 신약 저자이기도 했다. 아담과 하와가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후대 기독교의 주요 해석은 바울에 대한 의존성이 크며 아담의 죄를 통해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해석을 대부분 따르고 있다 (롬 5:12;  고전 15:21-22). 이러한 이유로 바울 이후의 해석은 – 어느 정도 논문에서 다루고 있으나 (예:  Augustine, St. Jerome, Symmachus 등) – 이 논문의 전체적인 범위에서는 제외 되었다.

 

논문 전체의 개요 및 주제

위 서론에서 밝힌 대로 이 논문의 연구목적은 인간에게 육체적 사망이 주어지게 되는 것의 해석적 연관성과 관련하여, 에덴 동산의 하나님의 죽음 경고 (창 2:17)의 초기 유대 수용사(reception history)를 고찰하는 것이다. ' 창세기 2장 17절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 전에 아담의 육체적 상태, 즉 인간이 원래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 (immortal) 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필멸의 존재 (mortal)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서술적 단서가 창세기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죽음의 경고 자체가 문자적으로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becoming mortal) 을 의미한다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어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유대 문서에서 발전되며 명확해지는 창세기 2장 17절에서 언급된 ‘죽음’의 의미와 범위, 그리고 해석 역사의 흐름에서 발견되는 ‘죽음의 경고’와 ‘육체적 죽음의 시작’사이의 강화된 연관성을 논증한다.

 

논문은 1장과 8장의 서론과 결론을 포함한 총 8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서론에 이은 두 번째 장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사건 이전에 동산에 있는 첫 인간의 지위/상태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창세기 내러티브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고려한 다음 창세기 2:17의 죽음 경고의 원래 의미를 분석한다. 특히, 아담의 불순종을 통해 세상에 들어오는 육체적 죽음의 개념이 죽음 경고 자체의 문학적 용법과 맥락에 따라 유효한지 대답하기 위해서 창세기와 오경 그리고 히브리 성경 전체에서 사용된 ביום 'in the day'라는 문구와 죽음 경고 'you will be surely die' (מות תמות)에 주의를 기울인다.  세 번째 장에서는 아담, 하와 그리고 뱀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및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다루는 창세기 3:14-24을 더 자세히 살펴보며 2:17의 죽음 경고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해석적 질문들을 고려한다. 네 번째 장에서는70인역 (LXX) 및 라틴어 (OL, Vulg.)의 번역자들이 창 2:17  하나님의 죽음 경고를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했는지, 창세기와 70인역 전체 번역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죽음 경고의 번역과 해석의 요소들을 살펴본다. 먼저 히브리 성경인 마소라 텍스트 (MT)의 에덴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70인역의 어휘 선택 및 번역 요소들을 살펴본 뒤 창 2:17의 죽음경고의 번역에서 다음 번역적 요소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1) 그리스어 관용구 ᾗ δ 'ἂν ήμερά φάγητε ('먹는 날에… '); 2) 70인역에서 복수 동사 ἀποθανεῖσθε (‘너희은 죽으리라’)로 번역된 마소라 텍스트의 단수 동사로 표현 된 죽음 경고, מות תמות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리고 3) 마소라 텍스트에서 강조를 위해 사용된 부정사 מות가 여격 명사로 번역된 것, θανάτῳ ἀποθανεῖσθε ( '죽음에 의해, 너희은 죽으리라'). 다섯 번째 장은 죽음 경고 מות תמות (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에 대한 사해 사본의 4QGenb, 4QGen,h2의 텍스트 증거와 4Q422, 4Q423, 4Q303, 4Q504, 그리고 4Q124등에서 발견되는 창조, 죽음 경고 (창 2:17), 그리고 처벌(창 3:14-24)과 관련된  암시와 언급을 살펴본다. 여섯 번째 장에서는 벤 시라 (집회서)에서 인간의 죽음에 관한 두 개의 중요한 해석 구절을 살펴본다 (14:17; 25:24). 특히,이 장에서 필자는 벤 시라서에서 인간의 죽음이 창조의 자연적인 부분으로 이해되어진다는 현재의 일관된 학술적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시라서 14:17절이 실제로 창세기 2:17의 죽음 경고와 하와의 불순종에 대한 암시, 즉 14:17은 벤 시라의 창 2:17과 죽음의 기원에 대한 해석임을 주장한다. 특별히  גוע יגוע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과 חוק עולם (‘영원한 규례’)의 용법과 의미를 다룬다. 일곱 번째 장은 선악을 아는 나무에 관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언급하는 바울 서신과 신약의 나머지 본문들을 조사한다 (요 8:44; 롬 5:12-21; 고전 15:21-22; 고후 11 : 3; 그리고 딤전 2:13-14). 이 장에서 다루는 두 주요 구절은 고린도전서 15:21-22와 로마서 5:12-21이며, 각 구절에서 바울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이유로 아담의 불순종을 직접 언급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각 장에서 관찰된 요점을 요약하고 창 2:17의 하나님의 죽음 경고와 죽음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개념 사이에 강화되고 명확해지는 연관성을 보여주는 제 2 성전 시대의 해석 역사의 점진적 노선을 연결하며 논문이 마무리 된다.

 

 


[1] 본 논문은2019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 신학부에 제출된 박사 논문으로 수정을 거쳐 2020년 9월 튀빙겐의 모어 지벡 (Mohr Siebeck)사의 FAT II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Chris Lee, Death Warning in the Garden of Eden: The Early Reception History of Genesis 2:17 (FAT II/115; Tübingen: Mohr Siebeck, 2020). 논문을 소개하는 이 글은 논문의 제 1장 서론을 일부 각색한 것임을 밝힌다.

[2] Philip Schaff, Nicene and Post-Nicene Christianity: A.D. 311-600, vol. 3 o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3rd ed. (New York: Scribner’s Sons, 1889), 799. 이하 모든 한글번역은 필자의 것이다.      

[3] Augustine, Nat. grat., III, 1.

[4] Augustine, On the Merits and Forgiveness of Sins, and on the Baptism of Infants, II, 2.

[5] Ibid.

[6] Augustine, Gen. litt., XI, 32.

[7]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John King, (vol. 1; Grand Rapids, Eerdmans, 1948), 127–28.

[8] Martin Luther, Luther’s Works: Lectures on Genesis, Chapters 1-5 (St. Louis, MO: Concordia, 1958), 110.

[9] 예를 들어, 요셉 피츠마이어 (Joseph Fitzmyer)는 고전 15:21-22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동사가 생략된 두 개의 구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3 : 17-19의 기록을 암시하는데 이는 인간이 죽음을 경험하게 된 이유를 알려준다. 아담은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에 대해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Joseph A. Fitzmyer, 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YB 32 (New Haven: YUP, 2008), 569.

[10]  James Barr, The Garden of Eden and the Hope of Immortality, 4, 6-8.

[11] 내러티브에 주어진 다음 사항과 그 사이의 간격에서 누락된 세부 사항들은 독자가 텍스트와 의식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내러티브가 명확하게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해석 할 수 있도록 한다: 1)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먹는 날에 죽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신다 (2:17); 2) 하와는 뱀에게 나무의 열매를 먹거나 만지면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3:3); 3) 뱀은 그녀에게 그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3:4); 4) 아담과 하와는 과일을 먹는 날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 (3:7); 5)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서 영생을 얻기 위해 생명 나무를 먹지 못한다 (3:22-24). 이러한 제한된 정보를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은 추가 질문들이 발새한다: 1) 하나님께서 창세기 2:17에서 예언하신대로 불순종 한 직후 (in the day)에 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12] John F.A. Sawyer, “The Role of Reception Theory, Reader-Response Criticism and/or Impact History in the Study of the Bible: Definition and Evaluation,” (paper presented at the biennial meeting of the authors of the series Evangelisch-Katholischer Kommentar, Germany, March 21–23), 1. See also, idem, ed., The Blackwell Companion to the Bible and Culture (Malden, M.A.: John Wiley and Sons, 2012), 1–7. For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study of reception history, see Mary. C. Callaway, ‘What's the Use of Reception History?’ (SBL Paper, San Antonio, November 2004), 1–14.

[13] Hans-Josef Klauck et al., eds., ‘Introduction,’ EBR 1: ix.

[14] Symmachus는 기원 2 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 된 그의 구약성경에서 מות תמות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를 θνητὸς ἔσῃ '네가 필멸의 존재가 될 것이다/you will become mortal.'로 번역했다.이 번역은 아담과 하와가 원래 지녔던 불멸의 상태를 상실했다는 해석을 포함한다. Budde, Speiser 및 Cassuto 등과 같은 현대 학자들 또한 인간이 그날 필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2:17의 죽음 경고를 ‘너는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you shall be doomed to death'로 번역하여 모든 인간의 육체적 죽음의 기원을 하나님의 명령 위반의 결과로 본다. 이와 같은 해석은 전치사구 ביום '그 날에/on the day'를 24 시간으로 번역하는 것이 너무 문자적 (literal)이며 'when'또는 'if'와 같이 더 광범위하게 번역해야한다는 제안에 의해 더욱 뒷받침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죽음의 본질이 육체적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두 번째 주장은 다음과 같다. ביום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즉 '하루'로 해석 할 수 있지만 사망 경고 자체는 문자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John C. Collins는 여기서 죽음이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죽음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지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로 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논문의 2장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고 있다.

[15] Cf. Murray J. Harris, ‘The New Testament View of Life after Death,’ Them 11.2 (January 1986), 47-52.

[16] Barr, The Garden of Eden and the Hope of Immortality, 18.

[17] Ibid., 5.

[18] Ibid., xi.

[19] Henry R. Kelly, “Adam Citings before the Intrusion of Satan: Recontextualizing Paul’s Theology of Sin and Death,” BTB 44 (2014): 14.

[20] John J. Collins, “Before the Fall: The Earliest Interpretations of Adam and Eve,” in The Idea of Biblical Interpretation: Essays in Honor of James L. Kugel, JSJSup 83 (Leiden: Brill, 2004), 293-308. 

[21] Konrad Schmid, “Loss of Immortality? Hermeneutical Aspects of Genesis 2–3 and its Early receptions,” in Konrad Schmid and Christoph Riedweg, eds., Beyond Eden: The Biblical Story of Paradise (Genesis 2-3) and its Reception History, (Tübingen: Mohr Siebeck, 2008), 58–78.

[22] See ibid., 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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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교육 교수 선교사로 살기로 하다!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1] 교...
논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
고통의 신약적 이해
고통의 신학적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목회 (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