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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의 선거와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어떻게 다른가?

 

 

아래의 글에 대한 영상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손재익 설교 사진.PNG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선거의 계절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2022년 3월 9일(수)에 있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얼마 안된, 6월 1일(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 글은 세속 국가에서의 선거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교회에도 선거가 있으며, 교회에서의 선거는 민주국가에서의 선거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다루려고 한다.

 

 

선거,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방법

 

   민주주의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국가는 선거를 통해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을 뽑기도 하고, 국민투표와 같은 일을 통해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천명하기에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렇기에 선거가 있다.

   선거(選擧, election)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제도로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까? 민주(民主)라는 말은 주권(主權)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으로,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란 모든 국민의 뜻에 따라 어떤 것을 다루는 것이다. 선거는 바로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이요,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 이전의 군주제(君主制)는 군주(君主), 즉 임금(君主)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에게는 주권이 없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원수인 대통령조차 국민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다수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하면, 그에 따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으니, 민주,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 주권이 자신에게 위임되어서 대통령의 권한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거란 국민들의 뜻, 즉 사람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교회에도 선거가 있다

 

   교회에도 선거가 있다. 직분자, 즉 목사, 장로, 집사를 선출할 때 선거를 한다. 누구라도 자기 마음대로 목사, 장로, 집사가 될 수 없다. 오직 선거에 의해 목사, 장로, 집사로 세움받는다.

   그렇다면, 교회에서의 선거도 민주주의의 결과물일까? 목사, 장로, 집사로 세움 받는 것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것일까? 교인들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방법이 선거일까? 그렇다면 교회에도 모든 주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일까? 교인들에게 주권이 있고, 그래서 선거의 결과 선출된 직분자들은 교인들의 주권을 위임받아 직분을 수행하는 것일까? 직분자들은 교인들의 말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일까?

 

 

선거의 근거

 

   그렇지 않다. 교회가 선거를 하는 것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6장이 성경적 근거다.

 

사도행전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신약교회가 처음으로 직분자를 뽑는 장면이다. ‘택하라’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한 주체는 사도이며, 듣는 자들 즉, 택해야 하는 자들은 교인들이다. 사도들이 교인들에게 선거를 하라고 말한다. 그 결과 사도행전 6:5에서 택한다.

 

사도행전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택한다는 것이 어떤 방식일까? 사도행전 14:23을 통해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도행전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이 구절에 “택하여”라는 말이 나온다. ‘택하다’라는 말은 원어로 케이로토네오(χειροτονέω)인데 이 단어의 접두어 χειρ는 ‘손’(χείρ)이라는 뜻이니, 어원적으로는 ‘손을 들어 표시하게 해서 선택하다’(elect by raising hands)라는 의미다.[1] 다시 말해 거수(擧手) 투표를 통해서 한 것이다. 회중들이 손을 들어 표시를 해서 택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구절들에 근거해서 교회는 선거를 한다.

   그런데 과연 성경에는 선거만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

 

 

선거 이전에 있었던 방식, 제비뽑기

 

사도행전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사도행전 6장에서 선거가 나오는데, 사도행전 1장에 제비뽑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셨는데, 그중에 한 명인 가룟 유다가 배교했다. 이제 12명의 제자 중 11명이 남았다. 12라는 숫자는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를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완전수다. 그래서 1명의 사도를 추가해야 하는데(22절) 이를 위해 23절에서 2명의 후보를 내세웠다. 한 명은 요셉(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 한 명은 맛디아.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 주님께 뜻을 묻기 위해(24절) 제비를 뽑는다. 결국 두 명 중 맛디아가 뽑혀 그가 사도 중 한 명이 된다(26절).

   제비뽑기는 그 이전에도 많이 나오는데,

누가복음 1:8-9

(8)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이 말씀을 보니 당시에 제비를 뽑는 것은 제사장의 전례이기도 했다. 여러 제사장 중에 누가 섬길지 순서를 정할 때 제비를 뽑았다.

 

 

구약에 많이 나오는 제비뽑기

 

   제비뽑기는 구약에도 많이 나온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에 사람을 뽑을 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결정하는데 사용되었다.

 

민수기 26:52-56 “(5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3)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55)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56)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이 구절에 의하면 땅을 나누어 주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구약에서 제비뽑기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나눌 때 지파별로 땅을 나눠야 하는데 이때 제비를 뽑으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그렇게 제비를 뽑는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온다.

 

민수기 33:54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수아 18:6-11

(6)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8)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그 땅을 그리러 가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것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리라 하니 (9)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서 실로 진영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10)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11)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제비를 뽑아서 지파별로 땅을 분배했다.

 

   이뿐 아니다. 사람을 뽑을 때도 제비를 뽑는 장면이 나온다.

 

역대상 25:8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다윗의 찬양대로 섬길 사람을 뽑을 때에 제비를 뽑아 직임을 맡겼다고 말씀한다.

 

역대상 26:12-13

(12)이상은 다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라 (13)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대소를 막론하고 다 제비 뽑혔으니

 

   심지어 성전 문지기로 섬길 사람들을 뽑을 때도 제비를 뽑았다.

 

 

제비뽑기의 의의

 

   구약시대에는 제비뽑기가 어떤 문제를 선택함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잠언 18:18은 이렇게 말씀한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이 말씀대로 구약시대 제비뽑기는 많은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었다.

   잠언 16:33은 이렇게 말씀한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구약시대에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사람이 제비를 뽑았다. 그래서 사람이 제비를 뽑을 뿐, 우연이나 확률에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형식은 우연에 맡기는 방식과 같지만 본질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제비뽑기와 선거 중에서

 

   그렇다면 성경에 제비뽑기가 나오니까 교회는 성경대로 해야 한다면 제비뽑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선거도 나오고 제비뽑기도 나오지만, 횟수로 치면 제비뽑기가 선거보다 더 많이 나온다.

 

 

선거로 바뀐 시점

 

   그럼에도 제비뽑기는 교회가 시행할 방식이 아니다. 왜 그럴까? 제비뽑기가 선거로 바뀌게 된 시점을 생각해야 한다.

   선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구절은 사도행전 6장이다. 제비뽑기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구절은 사도행전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이다.

   그렇다면 두 사건의 기준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다. 그 이후로 선거를 한다. 그 이전에는 제비를 뽑았다.

   성경검색 프로그램으로 ‘제비’를 검색하면 구약에는 엄청나게 많은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구약시대 동안 계속되던 제비뽑기 방식이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1:26을 끝으로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2] 뭐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나올 법한 상황에서도 안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계속되던 제비뽑기가 사도행전 1장을 끝으로 나오지 않고 그 이후부터는 투표가 계속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일까?

 

   왜 사도행전 1장을 끝으로 나오지 않을까?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강림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등장한다. 1장까지는 제비뽑기가 진행되다가 성령님께서 오신 뒤에는 제비뽑기가 나타나지 않고 대신 투표로 대체되고 있다. 성령 강림이 기점이다. 그러므로 선거에 있어서 핵심은 성령님의 오심과 관련 있다.

   구약시대에 특정한 때에만 임하시던 성령님께서 이제는 보편적으로 임하셨다. 이제 이 성령님이 각 심령 가운데 임하였다. 요한복음 16:13에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니,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

 

   구약시대의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이었다. 이제 제비뽑기는 선거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사람의 뜻’을 찾는가?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보다도 성숙한 신약교회에 제비뽑기를 폐하시고 교회에 속한 자들이 지혜롭게 선출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교회시대의 첫 직분자 선출은 제비뽑기가 아닌 투표의 형식을 취하였다(행 6장).[3] 성령강림의 참된 의미를 잘 알았던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직분자를 세울 때 자기들이 지명하거나 제비를 뽑지 않았다.

   오랫동안 계속되던 ‘제비뽑기’는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지면서 중단되었다.[4] 대신 투표가 그 방식을 대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방법은 굳이 ‘제비뽑기’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신 성령님을 심령에 모시고 있는 성도들이 하는 것이다.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이들이니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1조에서 분명히 가르쳐 준다.

 

제31조 교회의 직분자들

The Officers of the Church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stipulated 대로1) 기도와 선한 질서를 따라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election를 통하여 선출되어야chosen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부적절한 방법이 개입되지 않도록not to intrude by improper means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각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실한 증거sure testimony를 가지고, 또한 그 부르심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2) 말씀의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든지 간에 동등한 권세와 권위를 가지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교회의 유일한 우주적 감독자the only universal Bishop요 유일한 머리이신3)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4)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례가 위배되거나violated 거부되지rejected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말씀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역work으로 인하여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5) 가능한 한 불평grumbling이나 다툼arguing이 없이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 행 1:23-24; 6:2-3   2) 행 13:2; 고전 12:28; 딤전 4:14; 5:22; 히 5:4   3) 마 23:8,10; 엡 1:22; 5:23   4) 고후 5:20; 벧전 5:1-4   5) 살전 5:12-13; 딤전 5:17; 히 13:17

 

   근거구절을 잘 보면 사도행전 1:24와 사도행전 6:3을 언급한다. 이 두 구절의 차이와 시대적 이해를 토대로 선거가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방식임을 고백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제비뽑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마치 군주제처럼 보이는 제도도 있었다. 출애굽기 18:25에 의하면 모세가 직접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지명하여 세웠다.

 

출애굽기 18:25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군주제 같지만, 아니다. 역시 하나님의 뜻을 통해 모세가 한 것이다.

 

   모세의 직접 임명, 제비뽑기.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는 선거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이다.

 

 

교회에서의 선거의 의의

 

   세상에서도 선거를 한다. 교회에서도 선거를 한다. 둘 다 형식은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혼돈한다. 둘 다 본질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선거도 사람의 뜻을 묻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선거는 민주주의의 선거와 그 본질이 전혀 다르다.

   민주주의의 선거가 철저히 사람의 뜻을 묻는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하는지, 대다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교회에서의 선거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 신약교회에 주신 선거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양심의 주(主)가 되시는 성령님의 뜻을 구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외형은 같지만 본질은 오히려 정반대다. (물론 교회 안에 사람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투표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주 사소하거나 단순한 결정 등은 사람의 뜻을 묻는 투표다. 모든 투표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투표는 아니다.)

   그래서 교회도 선거를 하지만, 교회에서의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교회는 신정주의(神政主義)다. 교회는 인간의 지성에 근거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인간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근거한 성경적인 절차를 통해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교회를 친히 다스린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근거해서 교회를 판단한다. 민주주의가 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과 전혀 다르다.

   민주주의의 선거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정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에 근거를 두지만, 교회에서의 선거는 성경에 근거를 둔다.

   이처럼 교회에서의 선거는 민주국가에서의 선거와 전혀 다르고, 교회의 선거는 그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선거는 1948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면, 교회에서의 선거는 한국에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세상에서의 선거는 기원전 6세기나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교회에서의 선거는 AD 1세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증거

 

   교회의 선거가 민주주의의 선거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교회에서의 선거는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투표와 선거는 선거운동을 한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반장을 뽑아도 공약을 발표하기도 하고 선거운동을 한다. 누구를 뽑을지 미리 알리고 그 사람의 다짐을 들어본다. 그리고 나 좀 찍어 달라, 내가 섬기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교회에는 그런 게 없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내가 속한 예장 고신교단 헌법 교회정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헌법 교회정치 제35조 (교회 직원의 선거와 투표)

교회의 직원 선거와 투표는 다음과 같이 한다.

1. 선거 투표는 무흠 세례교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밀히 할 것이다. 교회에서나 어떤 회에서든지 특정한 사람의 성명을 기록하여 알리거나 방문하여 권유하거나 문서로나 집회를 이용하여 선거 운동하는 일은 일절 금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그 치리회는 적절히 시벌한다.

 

   이 내용은 고신에만 있는게 아니라 정상적인 장로교회라면 모두 이런 내용이 있다.

   왜 선거운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될까? 심지어 선거운동을 했을 경우 벌까지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직원 선거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원을 선출하는 일은 인기투표도 아니고,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섬길 일꾼으로 누구를 원하시는 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선거운동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에 방해를 놓는 일이다. 그렇기에 시벌을 하는 것이다.

   누구를 뽑아달라는 선거운동도 해서는 안 되고, 누구를 뽑지 말라는 낙선운동을 해서도 안된다. 심지어 자기를 뽑아주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안된다. 왜 그럴까? 나를 뽑아주지 말라고 말하는 건데 말이다? 자기는 비록 되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에서의 선거권은 세례교인에게 주어진다.

   세상에서의 선거는 보통선거다. 보통선거는 일정한 나이가 된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주는 원칙이다. 교회에서의 선거는 나이가 되었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의 선거는 세례교인에게 선거권이 있다. 세례 받은 신자라면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례교인이 되기 위한 나이 조건은 만 14세 이상이니, 15세, 16세에게도 투표권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표권은 만 18세이상의 국민에게 있다.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낮춰진 것으로, 그 이전에는 만 19세 이상이었다.

   교회에서는 만 30세라도 세례교인이 아니라면 투표권이 없다. 유아세례를 받았어도 입교하지 않은 경우 선거권이 없다. 즉, 입교하지 않은 25세는 투표권이 없다.

 

 

결론

 

   형식이 같다고 해서 그 이유와 본질도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교회에서의 선거와 민주국가에서의 선거가 바로 그러하다. 둘 다 선거라는 형식을 갖고 있지만, 그 본질은 완전 반대다. 교회에서의 선거는 사람의 뜻을 묻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사람의 뜻을 묻는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믿는 신정주의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비록 선거에 의해 직분자가 선출되었다 해도, 직분자들은 교인들의 말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직분자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1]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homas Nelson, 1998), p. 897, n.3; G. H. C. Macgregor, “Exegesis of the Acts of the Apostles”, in The Interpreters Bible, vol. 9 (Nashville: Abingdon Press, 1954), 193; David John Williams, Acts, Tyndale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Peabody: Hendrickson, 1985), 255

 
 

[2] Lawrence R. Eyres, The Elders of the Church, 홍치모 역, 『하나님이 세우신 장로』(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36. 이 시기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이기에 구약적 선출 방식인 제비뽑기의 방식을 취하였다는 지적으로 William H. Baker, “Acts”, in Eva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 Walter A. Elwell (Grand Rapids: Baker, 1989), 887을 보라.

 
 

[3] 제비뽑기 제도가 신약에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더구나 기독교적 실천의 규범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George Eldon Ladd, “Acts”, in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Chicago: Moody Press, 1962), 1126.

 

[4] Bruce K. Waltke, Finding the will of God: A Pagon Notion? (Grand Rapids: Eerdmans, 1995), 임원주 옮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서울: 도서출판 누가, 2006),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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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수 교수의 가르침과 우리의 나아갈 방향

    고재수 교수의 가르침과 우리의 나아갈 방향 최승락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신약학 교수) I. 들어가는 말 신학교 2학년 올라가던 어느 겨울날 고재수(N.H. Gootjes) 교수님으로부터 뜻밖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미스터 최, 저녁 7시에 우리 집에 차 한 ...
    Date2024.11.28 By개혁정론 Views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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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수의 신학과 고신교회

    2024년 10월 29일(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고재수 교수 기념 신학강좌가 있었다. 그날 발표된 글을 차례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고재수의 신학과 고신교회 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고신 교회는 고려신학교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교회로 출발하였다...
    Date2024.11.28 By개혁정론 Views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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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유월절, 맥추절, 성령강림절

    유월절, 맥추절, 성령강림절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구약의 3대 절기 출애굽기 23:14-17에는 세 개의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이 나온다(참고. 신 16:1-17).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Date2022.06.03 By개혁정론 Views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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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교회에서의 선거와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어떻게 다른가?

    교회에서의 선거와 민주국가에서의 선거는 어떻게 다른가? 아래의 글에 대한 영상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선거의 계절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2022년 3월 9일(수)에 있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얼마 안...
    Date2022.05.27 By개혁정론 Views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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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가정예배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6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 가정예배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제 아내와 저는 성격이 사뭇 다릅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에 따르면 저는...
    Date2022.05.23 By개혁정론 Views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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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독학으로 시작한 가정예배의 성장 이야기

    독학으로 시작한 가정예배의 성장 이야기 채충원 목사 (대전한밭교회 부목사) 고신총회 헌법은 개혁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전통을 따라 가정기도회를 신자의 당연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예배지침 제8장 제29조에서 “가족이 사적으로...
    Date2022.04.26 By개혁정론 Views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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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팬데믹 시대의 청년사역

    팬데믹 시대의 청년사역 박창원 목사 (포항장로교회) 현실 마주하기 전 세계가 코비드19의 몸살을 앓은 지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자가 격리 등의 용어가 익숙해지고, 마스...
    Date2022.04.14 By개혁정론 Views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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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가장(家長)이 존경받는 방법, 가정예배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4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가장(家長)이 존경받는 방법, 가정예배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요즘엔 가장(家長)이 존경받는 가정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가...
    Date2022.03.24 By개혁정론 Views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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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전쟁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전쟁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전쟁은 참혹하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았다. 윌 듀런트에 의하면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햇수는 고작 29년이다. 없어야 함에도 불구...
    Date2022.03.16 By개혁정론 Views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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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가정예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3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삼형제네 가정예배 이야기 3 가정예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가정예배는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
    Date2022.02.25 By개혁정론 Views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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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세족식(洗足式), 어떻게 보아야 하나?

    세족식(洗足式), 어떻게 보아야 하나?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교파와 교단을 불문하고 직원 임직식을 할 때 임직하는 직원의 발을 씻어주는 의식인 세족식(洗足式)을 하는 교회를 종종 볼 수 있다. 선배 직분자들이 임직하는 후배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
    Date2022.02.15 By개혁정론 Views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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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잊혀진 역사,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전통

    잊혀진 역사,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전통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예비군 훈련에서 있었던 일 신학대학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예비군 훈련을 갔다. 고려신학대학원생만이 참여하는 훈련이었다. 입소식과 함께 국민의례가 있었다. “국기에 ...
    Date2022.02.10 By개혁정론 Views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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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가정예배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2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삼형제네 가정예배 이야기 2 가정예배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전해 줄 수 있...
    Date2022.02.05 By개혁정론 Views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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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바울의 법철학

    바울의 법철학 황영철 목사 (성의교회 담임)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나에게 늘 낯선 책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마다 나의 평소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는 까닭이다. 이상하게 성경은 그렇게 읽고 공부를 해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속...
    Date2022.01.26 By개혁정론 Views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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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3차부터 해결하고 4차로 넘어가자

    3차부터 해결하고 4차로 넘어가자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고신 교단은 자랑할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영적, 인적, 물적 자산은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만족하는 순간에 발전이란 ...
    Date2022.01.24 By개혁정론 Views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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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4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4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 내가 만난, 내게 다가온 도...
    Date2022.01.18 By개혁정론 Views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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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3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리얼리스트다. 그의 리얼리즘은 존재의 근원이신 자존자를 등진 채 유리하는 인간 실존의 불안을 적나...
    Date2022.01.11 By개혁정론 Views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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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시기 도...
    Date2022.01.06 By개혁정론 Views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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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이원평 목사)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2021년 12월 5일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2021년은 도스...
    Date2021.12.29 By개혁정론 Views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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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믿음이 싹트고 자라며 열매 맺는 은혜의 시간, 가정예배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1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삼형제네 가정예배 이야기 1 믿음이 싹트고 자라며 열매 맺는 은혜의 시간, 가정예배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Date2021.12.24 By개혁정론 Views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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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 그의 두 성경을 중심으로 김헌수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2021년 10월 31일 종교개혁기념일 케임브리지의 틴데일하우스는 영국의 개혁자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경-1536)의 이름을 딴...
    Date2021.11.04 By개혁정론 Views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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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고신은 개혁신학에 기반한 교단이다. ‘개혁’이란 교리적 개혁과 윤리적 개혁을 포괄한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교리를 회복 혹은 정립했다. 그러나 우리는 윤리적 개혁을 ...
    Date2021.10.18 By개혁정론 Views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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