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의 현 좌표와 제안
최재호
객원기자
인터넷언론 <개혁정론>은 어떤 언론인가. 아니 어떤 언론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한 지향성과 노력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지난 2014년 3월 시작된 <개혁정론>은 창간사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역사적 개혁신학과 원리 토대에 서서 정론을 추구하는 신문. 정치나 사회 각 분야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마침내는 한 치라도 주께 속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한다.’
개혁정론이 출범할 당시, 현 운영위원들 대부분은 인터넷언론 <코람데오닷컴>의 연구위원으로 있었다. 고신교단의 교단지인 <기독교보>가 교단 내 정치적 역학구도 속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온 것에 대한 반발과 교단지로서의 한계성을 비판하며 대안언론으로 창간한 <코람데오닷컴>. 그리고 그 대안언론의 정치성향과 편향된 시각에 대한 반발로 출범된 또 다른 대안세력.
그러한 <개혁정론>의 출발을 바라보는 고신 교단인들의 심정은 복잡했다. 고신이 내세울 만한 신학적 지식과 배경을 가진 신진목회자 그룹들로 구성된 새 언론이,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정치적 계파, 학교법인 이사회, 교단 교회, 신학교육 등을 어떤 신학과 시각으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를 우려와 기대를 하며 바라보았다.
이는 교단 밖 개혁파 신학을 가진 이들도 다르지 않아 많은 기대감을 가졌다. 창간사에서 밝힌 대로 역사적 개혁신학과 원리위에서 보편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려는 의지를 가진 언론, 이리저리 허물어지고 부패한 한국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일갈(一喝)을 발할 언론의 출현. 다른 언론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운영위원들의 면면, 화란개혁신학을 제대로 접하고 배워온 신진 신학자들을 보며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1년 반 가량이 흐른 지금 <개혁정론>은 어떤 좌표에 서있는가. 개혁정론을 향해 기울였던 한국교회의 기대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필자의 시각에는 우선 잘 꾸며진 마네킹을 보는 느낌이다. 매우 세련되고 잘 갖춰진 옷을 입은 맵시좋은 마네킹. 누가 봐도 좋아 보이고, 구매욕을 자극하는 이 존재는, 그러나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결여하고 있다.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생명력이 필수적이다.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제시하는지 치열함이 느껴져야 한다. 알리고 드러내며 계몽하는 과정들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지, 그것이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 일이든,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드러내는 일이든지, 이 일을 향해 쏟는 땀방울과 열정이 보여야 한다. 언론은 분명 학술지와는 다르다.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배경과 과정이 적절해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또 이 과정에서 언론의 보도내용에 대해 거친 목소리나 격론, 즉 이해당사자들의 비난이나 공격이 있었어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들의 창간사대로 보자면, 너무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매우 인본적이고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개혁정론>은 좀 더 거칠었으면 좋겠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나고, 소매와 바지단에 흙먼지와 오물도 묻어있음을 보고 싶다. 현장의 목소리, 그 대안이 생생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
둘째로 선택과 집중이 부족하다고 본다.
분명, 이 언론은 고신소속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언론의 창간사는 고신교단에 국한된 역할을 넘어선다. 한국교회를 향한, 아니 보편교회를 향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소식들은 고신교단을 잘 넘어서지 못한다. 고신교단만을 타킷으로 하겠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너무 두루뭉술하다. 현실에서 멀어진 몇몇 기획기사들은 집중력을 잃고 있기에 뾰족함이 없는 바늘과 같다. 무뎌지고 타락한 신앙양심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 여의도 정치인들의 정치적 술수 못지 않은 정치목사, 장로들과 온갖 부패와 타락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던 학교법인, 개혁신학을 천명하면서도 온갖 잡다한 프로그램들을 도입해 ‘대박’을 기대하는 지교회들은 별다른 제어장치가 없다. 심지어 <개혁정론>까지도 이를 못 본 체하거나 못보고 있는 것 같다.
옳다. 신생 인터넷언론이 일을 하기에는 인력도 자금도 부족하다. 현재 이 언론의 구조는 운영위원들의 쌈짓돈으로 운영비를 각출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언론의 존재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준다면, 그것이 이 땅의 많고 많은 기독언론의 또 다른 형태 정도가 아님을 자증한다면, 그래서 이 언론의 존재목적에 공감하게 된다면, 분명 동참하는 이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개혁정론>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야 한다.
부끄럽지만, 사실 필자는 <개혁정론>의 객원기자이다.
위에서 말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일정 정도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이들이 말하지 않는다면 혼자라도 말하고 외쳤어야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필자의 한계를, 이 일을 주도해가는 운영위원들의 한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가야 함에도 가지 못하였지만 이 일에 공감했던 많은 이들, 그들이 독자이든 관심있는 잠재적 동지이든, 관심과 역량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때로 알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든 따끔하게 질책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는 좋은 언론이 좋은 독자를 만들고, 좋은 독자가 좋은 언론을 만든다고 믿는다.
이제 1년을 지나 2년을 향해 달려가는 신생언론이지만, <개혁정론>이 내걸었던 목적에 공감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희망과 소망을 볼 수 없지만,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이기에 힘들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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