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C 문제, 이렇게 해결하자
황원하 목사
1. 교회와 SFC 사이의 갈등
필자는 몇 년 전에 “SFC가 과연 교회를 위한 단체인가”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 그 글은 그 매체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SFC를 무시하고 간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필자의 글 때문에 간사 후원금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SFC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총회를 앞두고 여러 노회에서 총회상정 안건으로 SFC에 대한 내용들을 올렸고, 이에 SFC 대표간사(김동춘 목사)는 노회들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몇 가지 조처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수많은 별별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필자는 다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필자의 생각을 제시해 본다. 필자는 이러한 갈등적 사안들이 비단 이번만의 일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와 SFC 사이에 쌓여 온 불만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부교역자로 20년을 보냈고 담임목사로 6년을 보내고 있는데, 교단 목사들과 SFC 사이에 그리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고신 목사들 대부분은 SFC 출신이며, 현재 고신 교회에서 중고등부나 대학부를 SFC라 칭하고 있고, 수련회도 SFC 수련회에 많이 보낸다. 그리고 SFC도 ‘교회중심’ 공동체라는 점을 구호로 내 걸고 있으며, SFC 간사들이 교회에서 파트타임 교역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SFC 학생들은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충성스럽다. 그러니까 고신 목사들과 SFC는 땔 레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즉 한 집안 식구다. 그런데 왜 이런 갈등이 생겼는가? 왜 많은 고신 목사들이 SFC를 외면하고, SFC는 고신 목사들에 대해서 섭섭해 하는가? 필자는 이러한 양자 사이의 불편했던 심기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문제는 SFC 지도위원회다.
총회에 SFC 지도위원회가 있고, 각 노회에도 SFC 지도위원회가 있다. 필자 역시 현재 대구노회 SFC 지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위원회가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 어떤 노회는 지도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할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알기로 상당수 노회의 지도위원회는 활동이 거의 없다. 지도위원회란 것이 노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일 뿐이다. 필자 역시 순서가 되어서 SFC 지도위원이 되었으며, 3년 임기여서 곧 지도위원회에서 빠질 것이다. 필자는 이런 실정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도위원회 체계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뜻이다.
SFC는 고신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교회중심 공동체를 표방한다. 그리고 노회나 총회에 반드시 활동보고를 하고 있다. 따라서 SFC는 지도위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하며, 지도위원들 역시 적극적으로 SFC를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간사들이 지도위원회에 활동에 대한 허락을 받고 활동했다면 모든 책임은 당연히 지도위원회가 져야 한다. 그런데 지도위원회가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간사들로 하여금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다. 교회에서도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의 허락 하에 어떤 일을 했다면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담임목사가 지는 것 아닌가? 이런 원리는 사회의 상식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SFC 지도위원회가 유명무실하지 않고 실제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도위원회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간사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도위원회는 돌아가면서 할 것이 아니라 SFC를 잘 아는 사람, 교회와 SFC 사이를 원만하게 조정해 줄 수 있는 사람, SFC 활동을 적극 지원해 줄 능력(경제적 능력 포함)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SFC 간사를 역임했다고 해서 지도위원회에 들어갔다가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SFC를 실질적으로 후원하지도 않으면서 지도위원회에 이름만 걸쳐 놓고 있는 것도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바다.
노회나 총회가 지도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 놓았다면, 간사들은 지도위원회의 지도를 적극 받아야 한다. 물론 간사들의 애환이 있을 것이다. 지도위원들을 찾아가는 것이 부담일 수 있고, 지도위원들이 간사들이 찾아오려고 하면 잘 만나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위원이 되었다면 간사들과 적극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간사들은 어쨌거나 지도위원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문제의 원인이 지도위원회의 부실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되고 간사들이 지도위원회의 지도를 받으며 지도위원회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3. ‘SFC 자발성 보호’의 의미
최근에 개혁정론은 사설을 통하여 ‘SFC의 자발성은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자발성’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언뜻 보면 목사들이나 장로들이 SFC를 건들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SFC의 자발성이란 원래 ‘학생들 자체의 자발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SFC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신앙 ‘운동’이지 선생으로부터 학습을 받는 단체가 아닌 것이다. 학생들은 교회에서 학습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교회에서 배우고 익힌 내용을 학원(나아가서 사회)에서 행동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간사들이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 보자. 간사들은 노령화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간사들이 사임하고 교회에 돌아가려해도 담임목사로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간사로 계속 사역하려고 하는 것이다. 간사들이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학생들과 세대차가 날 수 밖에 없고, 학생들과 생각이 달라서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교회적으로는 나이든 간사들과 교회의 젊은 부교역자들 사이에 선후배 관계가 모호하게 되어서 이상한 긴장기류가 형성된다. 여기에다 간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데 SFC 운동원들의 숫자는 적어서 이래저래 고생이다.
‘자발성’의 문제에 있어서, 필자는 오늘날 SFC에는 학생들의 자발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심하게 말하자면, SFC는 그 자체로 교회가 되어 있어서 여타의 선교단체들과 비슷하게 되었고, 간사는 교사(목사)가 되었으며, ‘운동원’은 학생(교인)이 되었다. 그래서 SFC 자체로서 교회의 거의 모든 기능이 수행되고 있어서 학생들이 굳이 교회와 SFC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현실에서 SFC는 다시 처음의 자발성을 회복해야 하며, 간사들은 학생들이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하며, 이때 노회나 총회 지도위원들의 지도와 후원을 받아 일하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4. 문책성 질의와 사과성 조처의 문제
이번에 SFC에 대해서 노회가 올린 안건들은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교수를 초청하여 강의하게 한 일, 출판부에서 비평학적인 책을 낸 일, 간사들의 자질 문제, SFC가 몇 명을 전도하여 교회에 보내었느냐, SFC가 자체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느냐는 물음 등이다. 우선 노회는 이런 사안들을 올릴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문제가 된 강의 내용을 정확하고 심도 있게 분석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토론했어야 했고, 문제 있는 책이 도대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했어야 했으며, SFC 간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서 어떤 방향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어야 했다.
노회가 일부 회원들의 성토성 문제제기와 전체 분위기에 편승하여 안건을 올릴 것이 아니었다. SFC는 교회의 자식이다. 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나무라면서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듯이, 교회는 교회의 자식인 SFC를 나무라면서도 SFC가 제대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이번 일을 노회나 개체교회가 과연 얼마나 SFC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SFC에 대해서 그동안 소홀하게 대했던 점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SFC는 교회의 기대와 요구에 최선을 다해서 답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돈이나 내시오’라는 마음을 절대로 가지지 말아야 한다.
SFC 자체의 문제를 돌아보자. 대표간사를 비롯해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간사들은 이런 일이나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노력했어야 했다. 즉 평소에 SFC가 잘 했더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성급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토론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가졌어야 했다. 필자가 보기에, SFC는 노회원들의 원성을 살 행동을 했다. 아직 분별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회에 부담을 주는 무리한 강의를 추진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된다. 그것은 목사들이나 신학생들 앞에서 학술적으로 제시할 만한 내용이지, 수련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할 내용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출판부 문제인데, 고신의 공동체나 개혁신앙을 가진 학생들에게 SFC에서 내는 책을 믿고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한다. SFC 출판부는 다른 여타 출판부와 달라야 한다. SFC는 고백공동체이며, 출판부는 그런 공동체의 성격을 지원해 주는 곳이다. 분명히 우리가 학술서적을 낼 테니까 각자 알아서들 판단해서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하라고 할 곳이 아니다. 앞으로 SFC 출판부에서 나온 책이라면 어떤 책도 좋으니까 안심하고 읽어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바란다. 모쪼록 이번 일이 원만하게 처리되기를 바란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나갈 사람은 나가고, 후원을 더 열심히 하고, 시스템을 새롭게 바꾸어서, 다같이‘교회중심’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