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윤웅열
장 칼뱅의 교회 개혁
1. 개혁을 기다리는 날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몇년 전부터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불을 지펴왔다. 종교개혁 현장이었던 유럽의 경우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입을 올리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사실 종교개혁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주 거리가 있어보이는 한국에서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잔뜩 준비했다. 이에 걸맞게 많은 행사들과 강연들이 준비되었고,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다.
이런 기간에 맞춰 장 칼뱅의 “교회 개혁”이 출간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교회 개혁의 필요성”이다. 이 책은 칼뱅을 비롯해 개혁자들의 주장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했다고 평가받는 책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시기에 이 책이 나온 것은 아주 뜻 깊은 일이다. 기념은 무엇이든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그것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이어가는 일인데, 칼뱅의 글은 종교개혁자들의 표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변론서는 당시 슈파이어 제국 회의에 참석한 황제와 제후들을 향한 것이었다.
(당시 황제 카를 5세)
2. 칼뱅이 말하는 교회 개혁의 필요성.
칼뱅의 첫 문장은 아주 분명하다. 이 글을 쓴 이유는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이제 더이상 치료하는 것을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즉, 자신들의 개혁이 정당함을 말한다.
칼뱅은 이어서 기독교 전체의 기초를 두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을 아는 것이며, 두번째는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17p). (*여기서 “아는 것”은 물론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알고 그 정보에 자신을 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랑, [예배 종교개혁가들에게 배우다](CLC, 2017), 부록 참고) 이 기초를 중심으로 우상 숭배가 가득찬 예배, 잘못된 구원 교리, 교회를 지도하지 못하는 교회정치 등 오염된 사례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칼뱅은 자신을 비롯한 개혁자들이 시행한 예배 개혁을 구체적으로 황제와 제후들에게 설명한다. 개혁자들은 당시 미신적인 예배를 비판한다. 어쩌면 지금 개신교의 예배나 믿음도 오늘날 사람들에게 미신적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당시 개혁자들의 눈에는 로마 교회가 미신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미신적인 것은 초자연적인 의미보다는 이교도적인 방식을 의미한다. 형상 숭배, 그림, 유골, 유물 등을 숭배하는 것들이다. 그에 반대해 개혁자들은 단순하고 명료한 예배를 드리자고 주장한다. 자국어로 분명한 설교를 하고, 성찬에 과도한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알아들을 수 있는 기도를 하자고 주장한다.
예배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을 설명한 다음 두 번째로 구원 교리에 대해 설명한다. 구원 교리를 설명하는 것은 개혁자들 자신이 이단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16세기 당시 이단으로 정죄받거나 파문 당한 자를 죽이면 그는 오히려 진리를 수호한 사람이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교리의 핵심은 중세 당시에 만연하게 퍼졌던 공로 사상에 반대하고 오직 믿음과 은혜로 의롭다 함을 인정받는 것이다(87p). 오늘 날에는 율법에 대한 새관점으로 개혁자들의 로마서, 갈라디아서 해석이 비판 받는다. 그러나 칼뱅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가장 명료한 방식으로 생명의 상속은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약속을 주신 분과,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사역하신 분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가 생명의 상속자가 되고,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 (90p). 그렇기 때문에 연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불안감을 해소하는 공로 교리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공로 교리와 연결된 상죄(고해성사) 제도와 상급에 대한 교리 역시 더불어 비판한다(91, 94p). 이런 맥락따라 중세 로마 교회를 이해한다면, 그들의 제도와 교리를 꽉 붙들고 있던 중심 교리가 공로 교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 자연스레 개혁자들이 이신칭의 교리를 끊임없이 강조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구원 교리를 설명한 다음 다시 성례로 돌아간다. 칼뱅의 구원 교리를 먼저 언급한 이유를 생각한다면, 지난 로마 교회의 성례전은 공로 교리에 오염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칼뱅은 성찬과 세례를 제외한, 견진성사, 서품성사, 혼인성사, 종부성사, 고해성사는 모두 인간이 고안한 성례라고 주장한다(99p). 그리고 세례의 경우 미신적인, 마술적인 요소를 제거할 것을 주장하고(101p) 성찬 역시나 미신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화체설을 비판한다(104p).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혁자들이 주요하게 공격하고 개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교회의 통치, 그리고 교황권이다. 아마 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인지도나 신뢰감은 역사상 최고로 높을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교황의 패악은 아우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교황에 잘 보이기 위한 사제들의 노력 또한 극심했다. 그러다보니 실력 없는 사제들이 넘처났고, 태도나 교양 역시 없었다. 칼뱅은 단순히 자기가 기분 나쁘니 교황은 악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교황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로 고대 교회와 교부들을 가지고 왔다. 그는 “고대교회에서는 가르치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목사임을 증명할 수 없는 주교를 임명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113p)라고 하면서 기존 사제들과 사제 교육을 비판했다. 개혁자들이 추구한 교회는 단순히 반(anti) 로마 교회가 아니라 고대교회, 사도적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였다(134p).
칼뱅의 “교회 개혁”의 목적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들을 변론하는 내용이다. 대신 앞선 내용은 자신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언급하면서 변호한다. 칼뱅은 자신들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황제에게 호소한다(141p). 그들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자, 참을 줄 모르는 자들, 견디지 못하는 자들로 비방 당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복음의 열정, 하나님을 경외함,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비록 자신들로 인해 혼란을 겪더라도 그리스도로 부터 징계를 당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한다(141p).
교황을 공격하고 사제들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곧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칼뱅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규율은 잘못된 것이고, 개혁자들은 무규율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172p). 오히려 그들이 보인 방탕한 사제의 생활, 파문의 남용이 오히려 백성들을 더욱 무질서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178p). 그리고 터무니 없는 공격 중 하나가 바로 개혁자들이 교회의 재산을 탐낸다는 공격이다(179p). 그러나 칼뱅은 교회의 수입 관리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 고대교회때부터 있어온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더 중요하게는 이전에는 사제들만 부당하게 즐긴 교회의 재산을 자신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공익을 위해 사용한다고 변호한다(187p).
사실 개혁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교회 일치 문제다.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는 개혁으로 인해 교회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마부르크 회의는 교회의 일치를 이루려는 개혁자들의 시도이자,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일치하는 일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일치는 무엇인가? 그들은 일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집단인가?
개혁자들도 교회의 일치를 추구했다. 그러나 일치의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교리의 일치이다. 그리고 이 교리의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통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198p). 개혁자들은 사제와 교황의 권위 아래 모이는 일치는 비성경적이고, 교회 전통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201, 203p).
칼뱅은 자신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주장을 분명하게 정리했다. 예배, 구원 교리, 성례전, 교회 통치(치리) 등의 주제들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반대자의 말들을 정리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변호한다. 개혁의 필요성과 긴급성, 무너진 교회 질서, 교회 일치에 대한 문제 등이다. 칼뱅은 부디 불신실한 자들의 말에 속아 개혁을 늦추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223p). 그리고 자신들의 개혁을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증인이 되신다고 고백함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232p).
3. 이 책의 특징
이 책은 당연하게도 당대 교양 언어였던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나 당연하게도 단락 구분이나 단락 제목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분 없이 읽는다면, 지금 우리가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저자는 아카기 요시미토(Akagi Yoshimito)의 Johannis Calvini Tractacus Theologici를 참고했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장, 절, 소제목 같은 것들은 원문에 없다. 그래서 편집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저자는 일러두기에서 아카기의 구분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구분의 절대성이나 누가 더 권위 있냐를 따지기 보다는 오히려 이런 구분이 책 이해에 주는 도움을 즐겁게 받자.
부록으로는 역자 김산덕 박사의 해설이 실려 있다. 사실 해설이라기 보다는, 2013년 9월에 발간한 개신논집 13집에 기고한 논문이다. 저자는 칼뱅의 논문이 나타난 배경을 잘 설명한다. 그리고 본서를 아주 잘 요약 정리해주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이해가 필요한 독자들은 오히려 역자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겠다. 물론 역자의 생각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은 책을 먼저 읽은 뒤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4. 개혁은 가능할까?
책을 정리하면서 내내 마음이 쓸쓸하다. 가을 날 때문이 아니라 들려오는 소식들 때문이다. 루터가 제기한 95개조 논제를 공개한 날을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정한다. 그러다보니 종교개혁 500주년의 핵심이 바로 10월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속한 한국 교회들의 총회나 노회는 9월과 10월에 각각 열린다. 그러다보니 글을 쓰기 전 눈으로보고 경험한 총회와 노회 상황은 꽤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그저께, 10월 24일 큰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유명 교회가 요청한 목사 청빙안이 노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한 교회 목사 청빙안 통과가 속보로 나올만큼 그 교회는 영향력이 큰 교회다. 그러다보니 주변에서는 그 교회와 당회, 성도를 비롯해 노회도 비난하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무슨 부끄러움이냐며 자조하고 조롱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이라니. 개혁의 주체가 전혀 개혁적이지 않은데 개혁을 떠들 수 있을까?
너무 지친다. 나 자신도 개혁(회개)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도 개혁되어서 나도 이끌어주길 기대하는 조그마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집단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또는, 나 자신은 어느 정도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속한 집단이 전혀 개혁할 의도나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너무 지친다. 그리고 “우린 아마 안될거야”라며 마음을 닫는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내가 칼뱅이 아니라도 좋다.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 불리던 후스든, 위클리프든, 왈도파든 어떤가? 아니 이름없는 농노라도 어떤가? 그들의 기록과 지지자들이 남아서 결국 16세기 종교개혁으로 폭발하지 않았겠는가? 개혁자들의 글들, 그리고 현대적 적용을 다시 시작하자.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끊임없는 준비와 시도, 노력 뿐이다.
윤웅열: 고신 다우리교회 강도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Th.M(신약학) 과정 중. CSRC 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