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윤웅열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1. 난해한 유해무 교수님.
영국의 신학자 앤서니 티슬턴(Anthony C. Thiselton)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고린도전서 주석(NIGTC 시리즈)을 썼다. 분량이 얼마나 방대한지 독자들의 원성을 샀고(멱살을 잡혔다는 후문도 있다), 티슬턴은 다소 간략한 분량의 고린도전서 주석을 새로 저술했다(SFC 역간). 물론 방대한 이전 주석의 단순 요약은 아니다.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목회적인 적용에 중점을 두고 새롭게 저술한 주석이다.
고신교단 소속 고려신학대학원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30여년 가까이 교의학 교수로 강의하는 유해무 교수 이야기다. 1991년부터 강의를 시작한 유교수는 이해하기 어려운 강의를 한다고 소문났다. 게다가 강의안도 없어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선배 목사님들이 기억한다. 그러던 중에 1997년 드디어 그의 역작 개혁교의학(크리스챤 다이제스트)이 출간되었다. 저자 서문에서도 이 책을 저술한 동기 중 하나가 학생들의 불평 섞인 권고였다고 말한다.
다수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개혁교의학은 학생-독자들에게 어려운 책이었다. 책으로 출간되긴 했으나 풍성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쌍방이 부족했다. 저자의 낮아짐(?)이 부족할 수 있으나, 독자의 역량부족이 큰 요인이다. 그러던 중 1999년에 고신교단 총회교육원에서는 “교회와 교육 시리즈”를 발간하는데, 이때 교리 관련 책을 유해무 교수가 맡았다. 이때 출간된 책이 바로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영문)이다. 책을 출간하면서 티슬턴이 작업한 것처럼 개혁교의학을 기초로 작성했지만 단순 요약이 아니며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저술했다. 시리즈 기획 자체가 교회 교육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유익을 얻었다. 그러나 교단 소속 작업이었기 때문에 독자층이 넓게 확장되지는 못했고, 출판사의 역량 부족도 있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랬던 그 책이, 20여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개정되어 나왔다. 그것도 탄탄하고 인지도가 높은 출판사 “복있는사람”에서 말이다.
2. 간략한 책 내용 소개
책은 총 9개 장으로 구성된다. 머리말 “왜 교리인가?”로 부터 시작해서 “1장 삼위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성경,” “2장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론적 신론,” “3장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과 참 인간,” “4장 성령 하나님,” “5장 성령 하나님: 교회론,” “6장 성령하나님: 구원론,” “7장 성령 하나님: 종말론,” “맺는말: 송영”이다.
저자는 30여 페이지 가량에 걸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 이후 한국교회에 왜 교리가 필요한지 설명한다(머리말). 이 내용은 단순히 교리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문제점만 지적하거나, 교리를 배웠을 때 얻는 유익만 강조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방식은 2000여년 동안 있었던 교회 역사와 종교개혁 이후 조선(한국)으로 복음이 전해진 경로, 그리고 전쟁 이후 성장과 혼란을 함께 경험한 한국사회 속 한국교회를 짚어가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5-6년 전부터 교리와 교리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관심은 대체로 종교개혁 시기, 이후 시기에 작성된 요리문답들과 신앙고백서들이다. 비슷하게 교리를 강조하는 저자는 특이하게도 고대교회의 신조인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책을 전개한다. 다소 차별이 있는 점이다. (*물론 종교개혁 시기 신앙고백서들과 요리문답들은 모두 사도신경과 그 내용을 포함한다)
첫 장은 성경을 말한다. 사도신경에는 성경에 대한 고백이 없다. 그러나 사도신경의 내용이 성경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경에 대한 고백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언약 체결의 순서에 따라 구약과 신약성경 순서로 계시를 정리하며 예수님께서 계시 자체이자 완성이심을 강조한다. 이후 일반계시, 성경의 영감, 성경의 속성 등을 소개한다.
2장부터는 사도신경의 순서에 따라 성경에 나타난 교리를 정리한다. 먼저는 삼위 하나님을 고백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리고 성경을 통해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삼위로 계신 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저자는 비공유/공유적 속성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10문의 내용을 따른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속성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만 수여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닮아가는(신격화) 모습이라고 제한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후 작정, 창조, 섭리의 교리를 정리한다. 저자는 작정의 관점으로 창조와 섭리를 이해하며, 삼위 하나님 모두의 공동 사역임을 설명한다.
3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개혁교의학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자는 “인간론”을 따로 구분해서 정리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서 인간을 다룬다.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역들을 정리한다. 특이한 점은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삼중직으로 구분하지 않는데, 저자는 구약성경 속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아)가 왕, 선지자, 제사장이기에 삼중직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정리한다는 점이다.
4장부터는 성령 하나님을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후 나오는 내용들에서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배제되지 않는다. 사도신경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가장 길지만, 이 책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더 길다. 저자는 성령 하나님을 오순절 이후 생성된 분이거나, 또는 성부의 기운(에너지) 정도로 이해하는 태도를 배격한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파송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5장에서는 사도신경 순서에 따라 성령님의 사역인 교회를 말한다. 저자는 교회를 말하면서 은혜의 방편(말씀, 성례, 기도)을 먼저 설명한다. 은혜의 방편을 말한 뒤 저자는 성경에 나타난 교회가 무엇인지 정리한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구약-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들, 그리고 교회의 속성(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그 내용이다. 이후 교회의 표지, 가시적-불가시적 교회, 교회의 직분, 교회 정치, 교회의 치리, 교회 연합, 교회 개혁을 말한다.
6장은 성령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가는 구원론을 말한다. 저자는 이것을 신격화로 표현한다. 6장을 시작하면서 오순절 운동과 무분별한 은사운동을 간략히 살피며 비판하기도 한다. 흔히 구원론을 말할 때 “구원의 순서”(ordo salutis, order of salvation)를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연대기적 순서와 같이 이해하는 관행”을 비판하며 성령님의 은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성령님의 은덕은 소명, 중생, 신앙, 회개, 칭의, 성화, 견인과 즐김, 영화이다.
7장은 종말을 말한다. 종말을 기다리는 소망이 성도 삶의 원동력이다. 종말을 말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 육신의 죽음과 이후를 정리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면서 징조, 시대의 표징들과 함께 천년설을 정리한다. 한국교회 내 자리잡은 전천년설(세대주의, 역사적 전천년설)을 비판하면서 소위 무천년설이라 불리는 입장이 성경적인 천년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이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논점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지닐 것을 요청한다. 재림 이후 심판과 영생, 완성을 정리하면서 성경의 교리를 마무리 한다.
마지막은 송영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송영의 핵심은 찬송하는 자의 자기 포기와 하나님만 전부가 되시는 점이다. 이해하기 쉬운 예시로 찬송가 288장 3절의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를 제시한다. 고대교회는 예배와 삶의 현장에서 자기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 전통을 전수받지 못했다. 그래서 예배와 삶, 교리가 분리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교리를 배움으로 예배와 삶 속에서 송영하며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요청한다.
1999년에 나온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영문)
3. 이전 판과 다른 점
이전판을 가진 많은 독자들이 개정판을 꼭 사야 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책을 읽어본 결과 필자는 “두 책은 ‘거의’ 다른 책이다”고 대답하고 싶다. 특히 30여페이지 가량 추가된 머리말은 아주 유익하다. 교회 역사, 교리 역사를 응축해서 작성했는데, 머리말만 읽어도 독자들은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성경구절이 많이 추가되었다. 문장이나 내용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전 판에는 성경구절이 없었던 부분에, 개정판에서는 성경구절을 많이 삽입했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종교개혁시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를 읽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추천사를 쓴 김균진 교수가 “한국 개신교회의 교리문답서”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저자의 책은 Y2K를 두려워하던 세기말에 출간되었다. 문장은 지금 독자들에게 어색하고, 책 편집은 많이 아쉽다. 이전 판 표지는 각종 지폐들, 화폐들로 장식되는데 아마도 물질만능주의를 겨냥하는듯 하다. 많이 투박하다. 개정판은 디자인이 아주 예쁘다. 에메랄드 색깔로 표지를 맞추었고 문장은 아주 깔끔하다. 판형도 작아져서 읽기에 편하다. 문장 관련해서도 이전 판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음을 말하고 있다”였는데 개정판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다고 말한다”로 수정되어 있다.
4. 책의 장점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유해무 교수의 신학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몇 년전부터 개혁교의학을 확장해 대작을 작성하겠다고 수업시간에 언급하셨으나, 저자의 바쁜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은퇴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대신 대작이 나오기 전에 집약판이 나왔으니 이것으로 대신 만족해야 할 듯 하다. 아마 고려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는 이 책이 유해무 교수 수업 기말시험 대비용으로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 책은 다른 교단, 교파에게도 큰 유익이 된다. 저자는 바빙크를 다소 비판하는 편이지만 바빙크가 주장한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신학자이다. 종교개혁 중 개혁교회 전통에 속해있지만 이것을 너머 개신교의 다양한 교파들, 루터교회, 로마 가톨릭교회와도 대화한다. 이런 자세는 동방교회와 고대 교회에 관심을 표방하는 것에서 잘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개혁교의학을 완성한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가 언어과정을 다시 수강하면서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를 배웠다. 그리고 교부들의 자료를 탐독하면서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다. 성약, 2007) 그래서 이 책은 고신교회를 너머 한국개신교 성도들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다.
성경 구절이 많은 점이 장점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에서부터 묵상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성경본문의 풍성한 의미는 한 가지로 제약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해석을 허용할 수는 없다. 이 면에서 교리는 주요한 경계선을 제공해주는데, 유해무 교수의 책은 성경에 담긴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우리의 고백을 경계선으로 잘 제공해준다.
5. 마무리
풍성하지만 어려운 유해무 교수의 저작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 내용을 어려워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애를 쓴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풍성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여 함께 힘을 내 봅시다.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송영하고 닮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지점을 다시 한 번 더 확신하고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유익을 얻길 기대한다.
추가로. 책 제목이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이 아니라 “우리”이다. 사도신경은 개인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로 확장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아마도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