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수 교수의 <세례와 성찬> 서평
양명지 목사
(두레교회 부목사)
장로교회와 개혁신학에 대한 흔한 오해는 죽은 전통이라는 편견입니다. 장로교회가 사장된 전통을 고지식하게 답습하고 있는 사람으로 비칠 때가 많습니다. 이에 더하여 가슴은 냉랭하게 식고, 커다란 머리로 주변을 판단하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모습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분명히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뼈아픈 현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교회의 역사와 교리에 대한 폄하의 모습으로 시시로 나타나곤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죽은 조문인 교리와 현재와는 맥락도 맞지 않는 옛이야기를 읊조리게 하는 역사로 타파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신 교회와 목회의 현장에서 신앙의 문제를 다룰 때, 효용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역사성과 전통보다 통시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위 대형교회의 선택과 동시대의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세례와 성찬은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가 거추장스럽거나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지금 이시대에 얼마나 성도들의 정서에 의미 있게 다가오고 있는지,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들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글이지만 고재수 교수의 <세례와 성찬>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혹은 새롭게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총 4장으로, 1장 세례 때의 약속들, 2장 부모들은 확신할 수 있는가, 3장 주님의 만찬의 의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과 2장이 세례를, 3장과 4장이 성찬을 다루고 있고, 관련해서 부록에 유아세례 예식문과 성찬 예식문이 실려 있습니다.
세례는 특별히 세례 예식문에서 성령과 관련된 약속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성령의 내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이르기까지 관련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지 차근차근 살핍니다. 칼뱅과 우르시누스와 같은 개혁신학자들의 역사적 배경부터 성경적 근거까지 짧은 내용이지만 중요한 줄기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독자들을 인도합니다. 그리고 결국 유아세례에서 유아의 중생 가능성이 아니라 언약의 실체가 중요한 핵심임을 가르칩니다.
특별히 유아세례와 관련해서 도르트 신경 제1장 17조를 더하여 다룹니다. 한 때, 뜨거운 논쟁이었던 구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는 하나님께서 유아기에 이생에서 데려가시는 자녀의 선택과 구원에 관하여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살핍니다. 도르트 대회의 배경과 과정을 통해서 도르트 신경이 언약과 관련해서 단순히 유아기에 생명을 잃은 신자의 자녀에 대한 이해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를 향한 위로를 목회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전통과 현실에 따라 신자 세례는 거의 없고, 유아세례와 언약을 다루는 것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세례를 이해하는데 세례를 신자 세례만 아니라 언약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데 유익이 있습니다. 특히 유아세례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는 사실, 목회적으로 간과되기 쉬운 부분을 이미 개혁신학에서 주의 깊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찬에서도 역시 역사적 배경과 성경적 근거를 함께 살펴 성찬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귀도 드 브레, 칼뱅을 통해 역사적 배경과 진전을 살핀 후에 개혁교회의 견해에 대한 주석학적, 교의학적, 실제적 비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하여 답합니다. 그리고 성찬의 중요한 주제들-몸, 피, 먹으라, 그리고 마시라, 언약-을 하나씩 다룹니다. 성찬의 상징적 언어와 관련해서는 떡, 떡을 떼는 것, 한 떡, 포도주, 잔, 식탁, 식탁에서의 선물들을 다루고 이를 종말론적으로도 조망합니다.
성찬과 관련해서 중요한 개념인 ‘표와 인’을 더하여 다루는데 중세와 루터파, 취리히와 제네바의 역사적 배경과 견해를 소개합니다. 이와 더불어 성경적 근거로 표에 대한 용례와 성례의 문맥을 검토합니다. 이를 통해서 세례와 성찬인 성례가 “성격상 표로서 본질적인 내용을 신앙의 눈앞에 현시하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을 보증하는 이중적 의미가 신앙생활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찬을 다루는 데 있어 어떤 방식으로 시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을 시행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것들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간과하기 쉬운 성찬의 중요한 주제들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더하여 짧은 내용을 통해서도 교회 역사 가운데 성찬이 중요한 토론의 주제가 되었는지 알 수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짧지만 저자의 역사와 성경에 대한 치밀하고도 신실한 수고와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은혜의 방편인 성례의 기본적인 내용을 핵심 요약 교과서처럼 잘 소개합니다. 저자의 꼼꼼한 작업의 결과는 저자가 교회로 하여금 성례를 제대로 시행하게 하려는 지향점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 원해서 가고자 하는 바와는 요원한 우리 시대 교회의 요원한 실상을 드러내 서글프기도 합니다.
어떻게 현장에서 적용하여 시행할 것인가를 다루지는 않지만 시행할 때 어떤 근거와 배경을 가지고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교회를 16-17세기에 묶어두지 않으면서도 손에 적절한 재료를 가지고 실험하고, 도전하게 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야 성도들의 마음에 뭐라도 느껴질 것인가를 고민할 때, 새로운 시대에 다양하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숙고하고, 숙고하게 하도록 하는 유익한 도구와 재료를 우리의 손에 들려줍니다.
책 한 권을 통해서 교회 전체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중요한 주제를 다룰 때, 성경과 교회 역사를 참고하면서 접근하는 태도와 자세는 우리가 교회와 신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주변 교회, 큰 교회가 어떻게 하느냐로만 현안을 살펴보던 시각을 넓혀 본래 선배들이 해왔듯이 근거와 배경을 가지고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을 건전하게 세워가도록 끊임없이 시도하고 소통하는 우리 시대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