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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소리높여본들 소용없습니다. 너무나 부족하고 문제많은 교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과연 청년들이 돌아올까요? 교회에 있는 청년들이 기죽지 않고, 교회를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청년들을 생각하며 기획기사를 엽니다. - 편집자 주

 

 

청년, 교회 권위자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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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청년의 때는 과격해지기 쉬운 때다. 청년의 혈기를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서는 더더욱 권위자들을 치받기 쉽다. 권위주의의 폐해로 인해 청년들이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권위자들의 꼰대짓(?)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아직까지도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일수록 청년들이 교회 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힘겨워하는데 가면 갈수록 헌신의 요구는 더 커져간다. 큰 교회로 옮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교회는 왜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권위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라고 요구하는가?

 


권위를 인정하라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사를 다스리심을 믿는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신학자요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서 손톱만큼이라도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시는 영역이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신다는 말이다. 중립적인 영역은 없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온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만사를 다스리시지만 일차적으로는 교회를 먼저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셨는데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세우신 것은 교회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 하에 있다.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직접적으로 다스리시는가? 하나님은 직분자들을 세우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 목사, 장로, 집사가 바로 그 직분자들이다. 그 직분자들에게 권위가 주어져 있다. 모든 권위의 원천은 직분에 있다는 말이다. 권위의 원천은 사람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에 있다. 직분은 직무에 근거하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세우신 직분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신다. 직분자들이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냐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분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소리를 발하시면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하나님께는 순종하겠지만 사람에게는 절대로 순종할 수 없다’고 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우리를 직접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분자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은 직접적인 다스림이 아니라 간접적인 다스림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직분자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이다. 하나님께서 신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에게 순종하지 않고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 파송한 대사를 무시하면서 그 나라를, 그 대통령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권위에 순종하라

 

청년들은 권위자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평등에 대한 관념이 몸에 익어있기 때문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권위자들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이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방식이다. 믿는 청년이라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을 받지 사람이 자기를 다스리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기 쉽다. 우리는 이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세우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왕, 선지자, 제사장들을 세우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셨다. 아담이 이미 다스리는 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직분을 세우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신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는 제5계명을 해설하면서 이 계명이 단순히 우리의 육체의 부모를 향한 계명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권세자로 세운 이들을 향한 계명이라고 해설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생명의 근원인 것이 아니라 직분자이다. 자녀는 자신의 육체가 부모로부터 왔기 때문에, 자신은 부모의 분신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꺼이 받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그 다스림을 위임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우신 모든 직분자들에게 동일하게 순종해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제5계명을 해설하면서 ‘권위자의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합당한 순종을 하라’고 권고한다. 권위자들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권위자들은 지배하고 억압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하고 있을 때 징계하는 자들이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권위자들의 좋은 가르침을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는 권위자들의 징계를 기꺼이 받아야 한다. ‘부모도 나를 꾸짖지 않는데 교회가 왜 나를 꾸짖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요즘에는 교회에서 꾸짖는 것이 사라졌다. 직분자들이 청년들의 삶을 잘 모르기도 하겠거니와 꾸짖으면 교회를 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분자는 잘 가르치고, 잘 꾸짖어야 한다. 직분자의 가르침과 꾸짖음을 하나님의 가르침과 꾸짖음으로 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권위를 인내하라

 

청년들에게는 권위자의 모습이 너무나 빤히 보인다. 그들의 약점이 잘 보인다. 이런 경우에 ‘너나 잘하시오’라고 말하기 쉽다. 뒷담화하기 쉽다. 조롱하기 쉽다. 권위자가 존경할만해야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존경받을만하지 않은데 그들을 말을 들고 순종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상급자가 아무리 존경받을만하지 못하더라도 하급자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한다. 순종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짤리니까 말이다. 그런데 교회는 다르지 않은가? 교회에서는 권위자가 존경받을만해야 순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존경과 비례하는 것이 순종이지 않겠는가? 직분자가 희생하고 존경받을만해야만 순종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리문답은 말한다. ‘권위자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도 무수한 약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부족한 모습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약점과 부족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인내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도와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에 어떻게 했는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윗의 심복은 이 기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기회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윗을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직분자도 인내했다. 이것이 직분자를 향한 태도이다.

청년들을 권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것이 인내하는 한 방편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내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권위자들을 향해 인내하셨다. 그들을 향해 욕하기도 하셨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을 향해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권위자들을 아름답게 세워 주실 것이다. 물론, 기도한다고 해서 권위자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데 권위자들이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는 권위자들의 부족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바꾸려고 하고, 내가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권위에 저항하라

청년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도 순종하고 싶다’고 말이다.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순종할 수 있냐고 말한다. 자기 생각인 것 같은데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하라고 하면 어떻게 순종하겠냐는 것이다. 교회는 일하는 것에 대해 임금을 쳐 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헌신을 강요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무조건 순종해야 하냐고 말한다.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세속적인 일을 줄이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고 할 때 순종해야 하냐고 물어온다. 권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도무지 힘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 올 때에 우리는 순종하기 힘들다.

청년들은 겸손히 청원해야 한다. 자신의 형편에서 지금 할 수 없는 일은 겸손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믿음이 없냐, 왜 헌신하지 않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억지로 교회 일을 맡고, 불평하면서 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협하면서 일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직장인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헌신을 강요할 때 다 들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겸손히 말하고, 요구사항도 청원해야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일하고 순종해야 한다.

청년들은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할 때가 있다. 권위자들이 행하는 불의와 불법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말이다. 혁명을 일으키라는 말이 아니다. 혁명은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에 ’반혁명당‘이 있었다. 프랑스혁명을 염두에 둔 것인데, 기독교인은 겸손히 건의할 수 있지만 혁명을 꾀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불법이 저질러질 때, 교회가 이단사설을 전할 때 단호하게 저항하고 불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섬김과 교회 섬김이 충돌하고 대립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중세교회를 향한 종교개혁자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교회를 박차고 떠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쫓겨났지만 말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 배교한 교회, 배교한 직분자로부터는 단호하게 떠나야 한다.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다. 우리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를 살고 있다. 청년이 순종하는 모습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평생 신앙생활하고 나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직접적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일 것인가?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늘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품으셨는데 말이다. 인정하고 순종하고 인내하고 저항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청년들의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교회가 세워질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우리 가정과 사회마저 아름답게 세우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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