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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교인가입과 신앙교육'입니다. 로마교회는 교회를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로 나누었지만 교회는 사도적인 가르침위에 서야 합니다. 이 가르침을 통해 신자가 생겨나고, 신자가 양육을 받습니다. 한국교회에는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냥 믿으면 되었지 뭘 더 배우려고 하고, 따지고 드냐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사도들의 임직식을 행하면서 '삼위의 이름으르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다음세대 신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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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 / 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

 

 

  교회마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이 화두다. 신앙교육에 대한 관심은 교회성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이 멈춘 후 탈출구를 찾아보는 가운데 등장하는 관심사다. 하지만,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이 단지 방법론에 불과할까? 언약신앙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언약을 맺을 때 자녀와 그 후손과도 연결하셨다. 이 언약은 교육이라는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했다(창 17:9). 자녀의 신앙교육은 부모에게 주어진 명령이다(신 6:4-9). “여호와께서......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시 78:5)

  그 동안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주일학교에서만 이루어졌다. 안타깝게도 최근 주일학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주일학생도 줄었고 교사의 열정도 찾아보기 힘들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발전은 아이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아 버렸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주일학교에만 의존하던 신앙교육을 탈피해야 한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위해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회의 역할을 바로 회복해야 할 때가 되었다.

   첫째, 가정이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가정예배를 시작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세대가 분리된 예배를 중지하고 세대가 함께 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예배만큼 좋은 신앙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셋째,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이 새롭게 정리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은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대한 근원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돌파구를 찾고 대안을 제시한다. 

 

 

1. 신앙교육의 외통수, 주일학교!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주일학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주일학교가 유일한 신앙교육의 장이다. 주일학교는 ‘신앙교육의 외통수’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신앙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신앙교육은 세 영역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가정ㆍ학교ㆍ교회이다.

  첫째는 가정이다. 자녀가 태어나 양육 받고 독립하는 곳은 가정이다. 신앙도 가정에서 전수 받고 훈련되고 자란다. 특히 언약신앙을 믿는 부모는 자녀에게 언약 신앙을 전수해 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장로교인은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할 때 자녀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겠다고 서약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성도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매일 가정예배를 하는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될까?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부실하다.

  둘째는 학교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학교 경험이 별로 없다. 단지 선교를 위한 미션 스쿨만 알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공교육을 받고 있다. 그들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교과목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들은 무신론적 진화론에 근거해 만들어진 인본주의 지식으로 교육 받는다. 일반화의 오류를 각오하고 말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잘 하면 잘 할수록 무신론자가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학교에서 신앙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교회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신앙교육이 부재한 가운데 주일학교가 그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다 떠안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주일학교의 신앙교육 매우 중요하다. 주일학교가 상대적으로 교육에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도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은 주일학교가 도맡아 했다. 여전히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는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을 위한 유일하고도 최고의 방법이다. 어쩌면 주일학교가 있기에 아직도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학교는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을 위한 외통수이다.

 

 

2. 주일학교의 문제

 

  주일학교가 신앙교육에 외통수로 서 있다는 점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최근 주일학교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상황이 매우 어렵다. 주일학교를 통한 신앙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학생들이 적거나 없어 주일학교가 아예 없는 교회도 많다. 2015년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장로교회(통합) 전체 8,383개 교회 가운데 50% 정도가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 영아부가 없는 교회도 무려 78%나 된다고 하니 문제가 심각하다. 같은 해 부산 성시화운동본부가 실시한 전수 조사를 보면 무려 2/3의 교회가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고 있단다.

  사회 전체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것도 영향이 있다. 학교에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에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연결된다.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현대인은 점점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 물질적 부요는 영적 가난을 낳고 있다. 전도가 예전 같지 않다. 일주일에 1시간의 주일학교 교육만으로는 세속화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에 역부족이다. 교회의 어린이는 신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영적 기아에 허덕이다가 급기야 교회를 떠난다.

  교회는 이제야 위기를 깨닫고 아우성을 치지만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없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3. 주일학교의 정체성 재고

 

  한 때 주일학교는 한국 교회의 부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주일학교 시절에 교회 다닌 기억 때문에 나중에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현 주일학교는 여러 면에서 예전과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위치도 달라졌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경제적 성장은 신앙적 빈곤을 생산하고 있다. 더구나 일주일에 1시간의 주일학교만으로 신앙교육이 제대로 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한국교회는 주일학교의 위치와 역할과 정체성을 새롭게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제 주일학교가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을 모두 책임지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2014년 미국에서 『주일학교가 교회를 죽이기 전에 주일학교를 없애자』(Let's kill the Sunday School before it kills the Church)라는 책1)이 출판되었다. 주일학교의 역할이 다했고 본 것이다. 주일학교가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독이라는 판단이다. 본래 주일학교는 불신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주일학교는 영미 지역을 휩쓸었던 부흥운동의 흐름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선교와 복음화에 기여한 바도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0~200년이 지난 지금 살펴보니, 주일학교의 부흥과 성장이 가정예배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쇠퇴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주일학교 교육이 융성할 때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점점 사라졌다. 가정예배가 사라진 것이 모두 주일학교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간접적 영향을 부인하기 어렵다.

 

  주일학교 교육은 이제 그 독보적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주일학교는 가정과 학교에 그 독보적인 자리를 나눠주어야 한다. 주일학교는 더 이상 신앙교육의 모든 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4. 새로운 개념의 신앙교육

 

  지금까지 신앙교육하면 주일학교를 떠올렸지만, 이제 신앙교육하면 주일학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까지 머리에 떠올라야 한다. 새로운 개념의 신앙교육에 대해 소개해 본다.

 

1)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가정과 교회가 언약의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을 주일학교에만 전적으로 맡겨버린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성경적 원리를 보면 하나님은 부모에게 신앙교육의 책임을 맡기셨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기본이며 근본이다. 이제 가정이 신앙교육의 중요한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아니 교회가 가정에 그 역할과 기능을 돌려주어야 한다. 교회 중심의 신앙교육을 가정 중심의 신앙교육으로 재편해야 한다. 교회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하도록 격려하고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신앙교육하지 않으면 부모의 직무유기임을 권고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심방 때 이 점을 확인하고 격려하며 권면해야 한다.  

  가정마다 매일 가정예배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녀에게 언약의 말씀을 전수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녀에게 언약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말씀을 가정에서 자녀에게 가르침으로 언약의 복을 유산으로 받고 전달했다(신 6:4-9). 이 원리는 새 언약의 시대에도 변함없이 이어져야 한다. 

 

2) 학교에서의 신앙교육

 

  신앙교육은 학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는 미션스쿨이 있었다. 학교에서 신앙교육은 미션스쿨의 전유물이었다. 채플과 성경 수업이 그것이다. 한국 선교초기에 미션 스쿨이 신앙교육에 기여한 공로는 크다. 하지만, 미션스쿨은 그 역할을 다한 지 오래다. 미션스쿨에서의 신앙교육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을 정도다.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 학교가 필요한 때이다.

  신앙교육을 위한 기독교 학교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2009년 『기독교학교 이야기』(SFC 2009)라는 책을 출간했다. 일주일에 5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듣는가는 중요하다. 성경과 교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성경적 관점에서 교과내용을 가르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학교를 경영하는 기독교 학교가 필요하다. 기독교 학교의 학생은 교인의 자녀이다. 불신자를 모아 선교를 위해 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교육을 위해 신자의 자녀를 모아 교육하는 개념의 학교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형태의 학교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학교를 세워 운영해 오고 있다. 지금은 미국에도 수많은 기독교 학교가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신앙교육은 학교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주일학교의 전유물이었던 신앙교육을 학교도 나눠 가져야 할 때이다. 지역 교회가 노회별로 연대해서 이런 학교를 세울 수 있다. 여유 있는 교회의 교육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헌신해야 할 때가 왔다.

    

3) 교회에서의 신앙교육

 

  주일학교 교육은 그 동안 일반 공교육의 아동발달 단계에 따라 신앙을 교육해 왔다. 성경과 교리를 계단처럼 단계별로 정리해 좋은 주일학교 교재도 만들었다. 각 교회나 교단별로 커리큘럼이 만들어졌다. 영아부ㆍ유아부ㆍ유치부ㆍ유년부ㆍ초등부ㆍ소년부ㆍ중등부ㆍ고등부의 단계가 있다. 주일학교 교사는 이 단계에 따라 신앙을 가르치면 되었다.

  하지만, 학교의 교과목 지식처럼 신앙 지식도 단계를 만들 수 있을까? 성경 지식의 이해는 나이의 단계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믿음, 곧 신앙 교육은 단순한 지식교육과 차이가 있다. 믿음은 수량화하기 어렵다. 아이의 믿음이 어른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4)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할 그 무엇이다. 신앙은 지ㆍ정ㆍ의가 통합된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예배 때 아이들과 부모를 분리한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한다는 명분으로 자녀는 부모를 떠나 따로 예배한다. 아이가 흥미 있어 하고 좋아한다는 교육학적 논리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자녀가 없는 예배를 부모도 편해 한다. 과연 그것이 온전한 신앙교육을 위해 좋을까? 세대가 분리된 예배가 과연 신앙교육에 유익할까? 필자는 분리된 예배가 통합된 예배보다 심각한 영적 문제를 낳는다고 본다. 세대 통합 예배가 절실하다.

 

  사실 주일학교의 예배는 예배학적으로도 어불성설이다. 주일학교는 그야 말로 학교일뿐, 교회가 아니다. 학교의 역할은 예배가 아니라, 학습이다. 예배는 교회의 공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것이 옳다.

 

  주일학교에서 자녀만 따로 예배함으로 부모와 신앙이 단절되고 말았다. 오전과 오후 예배는 어른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어른 예배’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규모가 있는 교회에 어린이를 데리고 오전예배에 참석하려면 안내위원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웃지 못 할 광경이 종종 벌어진다. 언제부터 어린이가 공예배로부터 배제된 것일까? 근대 주일학교가 생겨나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을 생각한다면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세대가 한 번에 예배할 수 있는 공간과 장소가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예배 숫자가 늘어나면, 몇 부로 나눠서 예배하지 않는가? 그처럼 방법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숫자가 많으면 교회를 작게 나눠 분리하는 방안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주일학교 시스템으로는 다음세대가 은혜의 방편인 성찬과 세례를 배우고 경험할 기회가 전혀 없다. 입교 교육을 제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입교한 후 생전 처음으로 성찬식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입교를 하고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소위 어른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성찬식에 참여할 기회가 없다. 이런 점은 신앙의 근본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은혜의 방편인 성례를 다음세대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신앙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음세대 아이들을 공 예배에 참석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주일학교에 대한 과감한 정체성 정리와 주일학교의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당장 없앨 수는 없다. 주일학교는 아직도 필요하다.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시키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일학교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아야 한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그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균형 잡힌 신앙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가정은 가정의 역할을,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학교는 학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신앙교육에 있어 이 세 가지 영역이 균형있게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교회의 다음세대가 희망이 있을 것이다.

 

4) 교리교육의 필요

 

  요즘 다음세대가 성경을 잘 읽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사상누각 같은 신앙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신앙에 대한 의심이 들기 전에 답을 미리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많은 부모들이 말하기를 아이들 스스로 질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효과가 가장 좋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앙교육을 등한히 하거나 미룬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고 세뇌 하듯 ‘아빠! 엄마!’를 반복해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아이 스스로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아빠 엄마’라고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장로교회라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한국 교회가 교리문답 교육을 하지 않음으로 부실한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소요리문답의 질문과 답을 암송하거 가능한 질문을 받고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는 교리문답 교육을 교회가 시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5. 나가며

 

  요즘 한국 교회의 다음세대 신앙교육이 핫 이슈이다. 하지만, 그럴 듯한 대안은 없어 보이다. 현 한국 교회는 고령화 된 지 오래다. 노인들이 가득한 교회가 꽤 많다. 소위 전통적인 교회는 미래가 없어 보인다. 교회를 개척하면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젊게 만들 것이다. 다음세대 교육이 개척교회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Rich Melheim & Friends, Let’s kill the Sunday School: before it kills the Church (Faith Inkubator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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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의 정치화, 위험하다'라는 주제입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든지 소위 말하는 정교분리문제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교회의 욕망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했고요. 성경과 현실 양자에 촉수를 예민하게 들이대고 있을 때 제대로...
    Date2019.08.09 By개혁정론 Views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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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획-교회의 정치화, 위험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비추어 본 교회와 정치의 관계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의 정치화, 위험하다'라는 주제입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든지 소위 말하는 정교분리문제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교회의 욕망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했고요. 성경과 현실 양자에 촉수를 예민하게 들이대고 있을 때 제대로...
    Date2019.08.07 By개혁정론 Views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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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획-직분자, 어떻게 세울까] 당회/제직회 운영, 이렇게 하면 된다

    이번 기획기사는 '직분자, 어떻게 세울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는데, 놀랍게도 인간 직분자를 통해 다스리십니다. 교회의 일어서고 넘어짐은 직분자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분은 직무와 은사...
    Date2019.07.07 By개혁정론 Views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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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획-직분자, 어떻게 세울까] 직원을 세우는 절차,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직분자, 어떻게 세울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는데, 놀랍게도 인간 직분자를 통해 다스리십니다. 교회의 일어서고 넘어짐은 직분자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분은 직무와 은사...
    Date2019.07.04 By개혁정론 Views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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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획-직분자, 어떻게 세울까] 이런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면 안 된다!

    이번 기획기사는 '직분자, 어떻게 세울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는데, 놀랍게도 인간 직분자를 통해 다스리십니다. 교회의 일어서고 넘어짐은 직분자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분은 직무와 은사...
    Date2019.07.02 By개혁정론 Views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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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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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경과 그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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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권징의 은혜 (1)
기고
[기고] 총회 개최 장소 문제에 대하여
돌트교회질서(1619년)와 한국장로교회
세속화된 교회가 세속의 성화를 가...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지만...
‘고신포럼발기’에 대한 우려와 기대
심방 예배(설교), 꼭 드려야 하나?
종교개혁자들에게 심방이란 무엇이...
섭리와 기도
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칼빈주의
화란개혁교회와 고신총회의 관계에 ...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