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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배가 없는 기독교는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예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 어떻게 다를까요? 구약성경 말라기서에 보면 당시 제사장들이 제사 드리는 것을 지겨워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예배가 지겨워지고 있지 않은지, 아니면 예배를 흥미를 돋우는 공연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배 하나면 잘 해도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 우리의 예배를 보고는 저기에 정말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곧 전도일 것입니다. - 편집자 주

 

 

공예배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

 

 

임경근.png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들어가며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기획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대체로 교회로 모일 지역과 장소, 그리고 건물이다. 가장 실제적이고 긴급한 것들이다. 물론 하드웨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공예배의 기획이다. 성도가 교회로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공예배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장소와 건물도 바로 이 공예배를 위해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개척을 위해 무엇보다 심형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공예배의 기획이다.

 

   필자가 그냥 ‘예배’라 하지 않고 ‘공예배’(Public Worship)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적예배’(Private Worship) 때문이다. 사적예배는 가정예배, 비밀예배 등 개인적 혹은 그룹으로 행하는 여러 모임을 의미한다. 사적예배를 위한 형태로 필요하겠지만, 자유롭다. 하지만, 공예배는 성경에서 그 원리가 나와야 하고 성경적 질서가 있어야 한다. 공예배는 특정 지역과 시대의 교회를 초월하는 보편교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점도 있다.

 

   공예배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첫 공예배를 시작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건물보다는 공예배의 순서였다. 교회 공간은 큰 관심의 요소가 아니었다. 공예배 장소는 필자의 아파트 거실이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이차적인 문제였다. 교회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전 교인과 공예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작 목사인 필자도 공예배 순서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축도라는 말이 옳은가? 복의 선포인가? 아니면 강복 선언인가? 성만찬의 순서는 설교 전에 와야 하는가, 아니면 그 후인가? 헌금인가 헌상인가, 봉헌인가? 시편 찬송인가, 그냥 찬송가인가? 왜 복음 송은 안 되는가? 설교인가 강설인가, 강론인가? 교인과 함께 공예배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성경은 공예배 순서가 어떠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뭘 해야 할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예배 순서는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유와 목적이 있고 신학적 경향이나 신앙의 색깔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개혁신앙의 선배들, 곧 장로교회의 선배들은 공예배를 어떻게 기획했을까? 그것을 이 글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규정적 원리

 

종교 개혁가들은 1계명, 곧 거짓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대상)도 금했지만, 2계명의 참된 하나님을 거짓 된 형태(방법)로 예배하는 것도 금했다. 거짓된 대상과 거짓된 방법을 금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참된 예배의 방법인가에 대한 부분은 약간의 이견이 있었다. 특별히 종교 개혁의 후손들인 루터파 교회와 잉글랜드 국교회는 성경이 금하지 아니하는 무엇이든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파 교회와 잉글랜드 국교회는 성경이 교리적 문제에서는 기준(normative)이 되지만 교회정치와 예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것을 규범적 원리(normative principle)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성경은 예배에 향을 피우는 것을 금하지 않기 때문에 해도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성경이 명확하게 금하지 않는 것이라면 예배에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자유롭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의 원리가 교리뿐만 아니라, 교회의 정치 그리고 예배에까지 영향을 긴밀히 준다고 보았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성경보다는 자기 욕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는 욕구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했다. 결국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를 채택했다. 성경에서 분명히 명령하는 것만 예배에 채택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은 규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예배에 촛불과 향을 피우는 것은 분명하게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했다. 규정적 원리로 예배를 바라보면 그 순서가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함이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예배의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공예배는 말씀ㆍ성례ㆍ봉헌ㆍ기도ㆍ찬양으로 제한된다. 양초ㆍ예복ㆍ웅장하게 장식된 거룩한 제단은 없다.

   물론 성경이 구체적으로 정확한 공예배 순서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일상적인 종교적 예배의 필요한 부분들을 그 시대와 정황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롭게 추론 해 시행할 수 있다.

 

 

자의적 숭배의 위험

 

성경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본 원리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친다. 인간은 죄성을 가졌기 때문에 예배할 때 자기 열심과 지혜로 드리려 한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예배의 방법일 잘못되면 죄이다. 교회와 사람의 유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적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라고 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 도다”(마 15:9)라고 했다. 더구나 바울은 “자의적 숭배”(골 2:23)에 대해 경고했다. 한 영어 성경은 ‘자의적 숭배’를 ‘in self-made religion’(NASB)로 번역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도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고 했다. 일부만 가르치고 다른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모든 성경(Tota Scriptura)이 가르치는 대로 예배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유일한 예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자유의 속박!

 

어떤 사람은 구약의 제사를 넘어 신약의 예배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이웃 사랑을 향한 명령은 여전히 동일하다. 장로교의 개혁신앙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의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로 인해 부패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인정한다. 모든 인간은, 심지어 신자까지도 우상숭배의 성향이 남아 있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 제조공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죄의 충동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 성도는 ‘죄의 속박’으로부터는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자유의 속박’은 유지해야 한다. 인간의 전적타락 교리를 인정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는 다시 말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유는 방종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위한 속박이다. 이 원리를 예배에 적용하면 ‘규정적 원리’이다. ‘규정적 원리’는 예배에서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한다. 규정적 원리가 예배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준 자유를 빼앗는 편협하고 좁은 규칙이 아니다. 규정적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안전장치와 같다. 성도의 자유는 성경에서 금하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특히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에 관해서는 더 조심해야 한다.

 

 

예배 요소와 예배 환경

 

예배 순서에 어떤 것을 넣을 것인가? 어떤 것을 뺄 것인가? 오전 예배 시간은 10시가 좋은가, 11시가 좋은가? 오후 예배인가 저녁 예배인가? 예배 시간은 1시간 이내에 끝내야 하는가 아니면 2시간까지는 괜찮은가? 이런 질문들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은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이런 예배의 기획은 성경에 기초한 규정적 원리로부터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전통적으로 개혁신앙을 표방하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예배 요소’와 ‘예배 환경’을 구분해 설명하는 유용한 방법을 시도했다. ‘예배 요소’란 예배에서 고정된 불변하는 ‘무엇’(What)을 말한다. 기도ㆍ성경읽기ㆍ설교ㆍ찬송ㆍ성례가 예배의 불변하는 요소이다. ‘예배 환경’이란 예배를 어떻게(How) 드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예배의 시간ㆍ장소ㆍ질서 정연한 조건들이 여기에 속한다. 예배 환경은 교회마다 자유롭게 결정하면 된다. 대한민국의 특별한 상황과 그 교회의 독특한 정황을 고려해 정하면 된다.

 

 

규정적 원리의 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어떤 유익을 얻는가? 성경은 제2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후손 천대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사랑’(출 20:6)을 약속한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결책을 냈다면 어땠을까? 포도주 대신 막걸리를 제공했다면 더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할 것은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지혜로 예수님 보다 앞서 가서는 안 된다. 마리아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 종들은 즉시 그대로 행했다. 그 결과는 풍성하고 행복한 잔치였다.

   우리가 기획하고자 하는 공예배는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얻는 복은 사람의 지혜와 상상력과 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이 부분에서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법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진정한 영적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대화의 원리

 

모든 공예배는 언약을 갱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약은 종주와 속주의 쌍방적인 교제로 이루어진다. 약속과 믿음, 순종과 보호의 원리가 언약에 들어 있다.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식과 같다. 그러므로 예배는 대화로 구성된다. 이것은 우리는 예배의 ‘대화의 원리’라고 부를 수 있다.

   먼저 예배는 성경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공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부름 받은 언약 백성이 특정 예배 장소와 구체적인 예배 시간에 모여 예배를 시작한다. 그러면 이 예배의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있고 땅에서 하늘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맹세나, 찬송, 기도와 봉헌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복의 선포나, 사죄 선언, 십계명, 성경읽기, 그리고 설교 같은 것은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내려오는 것이다. 성례(세례와 성만찬)에는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예배의 대화 원리를 예배에 잘 적용하면 아름답고 복된 예배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교회를 개척하면 예배를 기획하거나 내년에 예배를 개혁하기 원하는 기성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은 이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침묵한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인가? 맞다. 그리스도인은 구약의 율법적 예식을 더 이상 따를 필요가 없다. 예식 자체가 무슨 마술적 효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천주교회 예전은 종교 개혁가들에게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자유는 말씀이라는 범위 아래 있어야 한다. 종교 개혁신앙을 따르는 장로교회는 규정적 원리와 대화의 원리를 가지고 예배를 개혁 하려 했다. 오늘 이 시대에 그들의 지혜를 배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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