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장로님은 어떻게 교회를 섬기나요?

조재필 목사
(새언약교회)
김집사님! 섬기시는 교회에 장로님이 계시다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질문은 장로로 구성된 치리회(당회)의 역할이 아니라 장로 개인의 역할에 관한 질문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둘 사이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지만 장로 개인이 감당해야할 역할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입니다.
1.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 2.교회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 3.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는 일, 4.교인을 권면하는 일, 5.교인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부를 살피는 일, 6.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 7.교인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 8.목회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목사에게 상의하고 돕는 일.(정치 제66조 장로의 직무)
헌법의 규정은 어려움 없이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에 덧붙여 이 여덟 가지 장로의 직무가 나오게 된 배경까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여덟 가지 직무의 의미와 가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입니다.
첫째, 장로의 직무는 성경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즉 성경에 근거해서 장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위 여덟 가지 직무가 문자 그대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으로부터 유추한 것입니다. 그 유추는 장로를 가리키는 특별한 명칭에서 출발합니다. 원래 ‘장로’(presbuteros)는 구약 성경과 회당에서 기원한 명칭인데, 문자적으로는 연륜이 많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오랜 체험과 연단이 있어서 어린 성도들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장로를 가리키는 명칭이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명칭이 ‘감독’과 ‘목자’입니다. 이 명칭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만나서 권면할 때 함께 나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감독’(episcopos)은 문자적으로는 ‘위에서 살피는 자’(overseer)라는 뜻입니다. 감독으로서 장로는 교회와 성도의 필요와 어려움을 살피고 적절한 공급과 지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명칭으로부터 헌법에 명시된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 ‘교회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이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은 감독하는 장로를 가리켜 “도덕적인 과실을 책벌하고 권징을 시행하는 책임을 맡은 자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온 양 떼를…보살핀다’는 말에서 ‘목자’(poimēn)라는 명칭이 나옵니다. 말 그대로 ‘양치기 목동’을 뜻합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목자장께서 맡기신 양떼를 권면하고, 살피고, 양육하고 기도하는 직무를 수행합니다. 헌법에도 명시되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명칭은 ‘목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엡 4:11, 벧전 5:1) 이 명칭으로 볼 때 장로는 목사와 동역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목사와 협력하여’라고 말하고, ‘목회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목사에게 상의하고 돕는 일’이라고 명시한 것입니다. 개혁교회의 문서인 [도르트 교회질서]에 따르면 장로의 직무(22조)는 목사의 직무(16조 2항)와 매우 유사하고 공유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성경에 근거해서 개혁주의 장로교회는 ‘다스리는 장로’를 ‘목양 장로’로 이해합니다.
둘째, 장로의 직무는 교회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16세기 교회개혁 시기에 개혁된 교회는 중세 교회가 상실한 장로 직분을 회복했습니다. 근거는 앞서 살핀대로 성경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장로의 직책만 회복한 것이 아니라 실제 직무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직무는 심방이었습니다. 교구별로 배정된 가정을 심방하며 공예배에 부지런히 출석하는지, 목사의 설교를 이해하는지, 헌금생활과 봉사생활을 성실하게 하는지,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지(헌법해설 266문) 일일이 살피고, 그에 따라 교훈, 위로, 권면을 하였습니다.
중세 로마교회는 교인을 감독하는 쪽으로 편향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목자의 기능이 희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감독 직무가 고위직 사제(주교)에게 국한되었고 목자의 직무는 사제가 베푸는 고해성사로 제한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미사와 성만찬과 고해성사 중심으로 고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교인들이 교회로 찾아와 감독을 받았지 교회가 교인을 찾아가 목양하는 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더욱이 성례의 개혁으로 고해성사가 폐지되자 교인들은 아무런 목양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개혁된 교회는 장로가 심방을 통해 목양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칼빈은 1541년 교회 질서에 장로들의 가정 심방을 조항으로 첨가하였습니다. 특히 성만찬이 있기 전에 장로들은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원래 목사의 주된 사명은 설교와 자녀들의 교리교육이며, 심방은 주로 병자나 독거 노인 등 특수 심방에 한하였습니다. 일상적인 가정 심방은 장로의 책임이었습니다.
심방은 장로가 감독과 목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방은 한국교회에서 목사만의 일이 되었고, 큰 교회에서는 부목사나 심방 여전도사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전통에 따르면 심방은 성만찬과 권징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성찬식 당일에 목사가 그저 자신을 살피고 난 후에 성찬에 참여하라고 권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장로의 심방을 통해 교인을 감독하고 목양할 때 온전한 성찬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김 집사님. 이상의 설명이 너무 이상적이고 현 교회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나요? 우리가 그만큼 멀리 온 것이 아닐지요? 예전에 떠돌다가 제가 섬기는 교회에 잠시 머문 장로님이 우리 교회 장로님들께 이런 주장을 하였습니다. “장로는 목사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성경도 모르고 성령님께서 운행하신 교회의 역사도 망각한 발언입니다. 너무 멀리 떠내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