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회 고신총회 소식 9]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신대원 교수회의 균형잡힌 보고서
제75회 고신총회는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보고서를 그대로 받기로 했다. 이 보고서는 제74회 총회에서 대사회관계위원장 원대연 목사가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질의”를 상정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해당 안건은 총회신학위원회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연구를 맡겨 1년 뒤 보고하도록 결정한 바 있다.
교수회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성경은 교회에 대해서 분명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나, 세속 정치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이 제한적인 지침을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확장하는 것은 교회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정치에 대한 성경의 제한적인 지침에 만족하면서 그 지침이 제시하는 원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인식하고 각자에게 주신 분별력을 사용하여 정치와 사회에 봉사하는 좋은 시민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② 구약성경의 종교와 정치 관계와 규범은 신정 일치 국가에 주어진 것임으로, 자유 민주 공화정을 채택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③ 신정국가의 시대가 아닌 종교 다원화 시대에 교회와 정치는 원칙적으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교회의 생명과 성장은 복음의 순수성에 있기 때문에 교회는 정치나 세상 정치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정치가나 정치의 힘을 빌려서 어떤 특혜를 받으려고 하는 시도는 장로교 정치원리에 어긋난다.
④ 신자가 시민의 자격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권고할 필요가 있으나, 교회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 교수회 보고서 전문 -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원칙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서론
제74회(2024년) 고신 총회는 차별금지법 등 악법들의 발의 및 통과 가능성과 관련하여 정교 분리의 성경적 원칙에 관한 설명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이하 교수회)에 요청하였다. (대사회관계위원장 원대연 목사가 발의한 “정교 분리의 원칙에 대한 질의”) 이에 교수회는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과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 원리에 토대를 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이 문제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시에 본 연구보고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시대적 한계와 이로 인한 ‘고백서 수용사’ 에서의 내용 일부 변경과 정교 관계에 대한 교회사적 교훈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실천적 적용 방안도 제시하고자 한다.
1. 중요한 주제, 제한적인 지침
교회와 정치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며 동시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까다로운 주제이다. 그것은 성경이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역사적 상황에 따라 교회의 입장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회나 교파가 각자의 정치적 견해나 상황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교회는 이런 역사적 경험을 충분히 성찰하여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찾을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인 교회에 대해서 분명한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나 세속 정치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이 제한적인 지침을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확장하는 것은 교회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교회와 교리적 진리에 대해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확신을 할 수 있으나 정치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답을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정치에 대한 성경의 제한적인 지침에 만족하면서 그 지침이 제시하는 원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인식하고 각자에게 주신 분별력을 사용하여 정치와 사회에 봉사하는 좋은 시민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2. 교회 역사 속에서 배우는 교훈
교회 역사는 교회가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거나 통제와 지원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교회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였음을 보여 준다.
1) 국가의 박해를 받은 교회
3세기 로마 제국의 정세가 불안정하여 235~284년에 걸쳐 30명 이상의 황제가 통치권을 놓고 권력 투쟁을 할 때, 데키우스 황제(249~251년)와 그를 이은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는 로마 제신 숭배를 경시하고 조상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황제들의 칙령을 따르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징역형과 고문, 재산 몰수, 강제 노동, 추방, 혹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리스도인의 집회가 금지되었다. 원로원 의원, 고위 관리, 또한 기사 계급에 이르기까지 상류 계층의 그리스도인들도 신분과 관직, 재산을 박탈당했고, 명령을 계속 거부하는 자들은 처형되었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는 303~304년에 총 네 차례에 걸친 칙령을 통해 로마의 종교 관습과 제신 숭배를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집회를 금하였고, 성경을 소각하도록 하였으며, 성직자들을 체포하고, 그리스도인의 관직과 지위, 법적 권리를 박탈하였으며, 고문과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였다. 로마의 관용을 무시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냉혹한 조처는 비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의를 얻지 못할 만큼 가혹했다.
국가가 정치적 안정을 위해 교회와 동맹 관계를 맺는 시기도 있었다. 발레리아누스의 후계자인 갈리에누스(260-268) 황제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270-275)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폐지하고, 압류한 예배 장소를 돌려주고, 제한적인 모든 조처를 폐기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물러난 후 갈레리우스 황제(305-311)도 기독교를 로마의 법규를 따르는 공인된 종교(religio licita)로서 인정하고 제국의 공공 안영(salus publica)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2) 국가의 보호를 받은 교회
이같은 동맹 관계를 넘어, 콘스탄티누스(~ 337년 사망) 대제 이후 정치의 교회 관여는 서구 국가에서 오랫동안 주장되었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신정 일치 국가였던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 통치자 혹은 국가 정치가 참된 종교를 수호하거나 지원해야 하고 공권력을 사용하여 이단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5년 니케아에서 회집한 니케아 공의회와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회집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긍정적인 예이다. 이 두 보편 공의회로 아리우스주의자로 인해 교의적으로 분열될 수 있었던 사도적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이고 사도적인 신앙고백(니케아-콘스틴티노플 신경)을 통해 하나 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속 권력과 교회의 관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기에 1647년 제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정치 위정자가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31장 2항) 그러나 왕정을 폐지하고 위정자의 교회 통치를 거부한 미국혁명 이후 미국장로교회는 이 조항을 삭제하였고 우리 고신 교회도 이를 따르고 있다.
3) 국가 권력으로 세속화된 교회
주후 395년의 로마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 서방 교회는 교황권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제국의 종교로서 자리매김한 교회는 제국의 분열로 인해 황제의 권한이 약화되자 응급 처방으로 교황의 권위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주후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성직자들의 권위와 세속 권력이 나란히 제국을 이끈다는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를 지나면서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의 긴밀한 결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결탁은 한편으로 교회에 대한 세속 권력의 간섭을 강화했고, 다른 한편으로 성직자들이 세속적 권세도 가지게 되는 세속화를 낳았다.
중세에는 봉건제의 구조 속에서 막대한 토지를 보유했던 주교나 수도원장들이 세속적인 권세까지 행사할 수 있었고, 황제와 교황은 이들에 대한 서임권을 두고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하였다. 교회 안에 성직매매가 관행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위 성직자들이 세속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황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황제나 왕이 교황에 의해 파문을 당하기도 했는데, 파문된 위정자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가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교회가 세속적 권력을 가지고 정치적인 힘을 행사할 때 국정이 불안정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이 교회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4) 종교개혁과 정교분리
이와 같은 문제를 정확하게 간파한 개혁교회 지도자들은 “왕이신 하나님은 자기 아래에 그리고 백성들 위에 국가 위정자들을 세우셨다”(23장 1항)라고 고백함으로 교황의 지위를 하나님과 위정자들 사이에 두어 위정자를 교황 아래에 위치시키려고 한 로마 교회의 교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하였다. 또한 이 원리에 근거하여, 우리 신앙고백서는 더 나아가 교황의 권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교황은 각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그들의 백성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권세나 사법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특히 위정자들을 이단으로 판결하거나 그 밖의 다른 구실을 내세워서 그들의 통치권이나 생명을 박탈할 수 없다”(23장 4항).
종교개혁 기간 동안 중세의 교회와 국가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국가는 거짓 교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참 교회의 지원군으로 바뀌었다. 거대한 로마 가톨릭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많은 위정자가 참된 신앙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위정자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은 매우 미미한 일시적인 운동에 끝났을 것이다. 실제로 종교개혁 당시 대다수 개신교 신학자들은 교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세속 군주들은 종교개혁이 완성된 이후에도 교회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를 위하여 교회를 계속 통제하려고 하였다. 특히 개체교회에 목사를 청빙하는 일에 간섭하려고 했다. 이와 같은 간섭은 교회 안에서 자유주의적인 세력이 뿌리는 내리는 토대를 제공했다. 참된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은 국가의 간섭에 대해서 교회의 독립을 강하게 주장했고, 결국 그들 중 일부는 교회로부터 쫓겨나서 독립적인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교회사는 국가의 지원은 국가의 간섭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비극적인 30년 종교전쟁(1618-1648년) 이후 서구에서는 종교의 관용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자유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정치형태로 자리 잡게 된 나라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다종교와 교파주의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정치가 참된 종교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와 종교는 원칙적으로 분리되었고 정치가 종교적인 일에 직접 관여하고 결정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가 교회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시도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회는 늘 이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3. 교회와 정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구약성경의 종교와 정치 관계와 규범은 신정 일치 국가에 주어진 것임으로 자유 민주 공화정을 채택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은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요 18:36).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림이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1-7).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벧전 2:13-17).
성경은 선한 통치자는 물론 악한 통치자도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성취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대주재이신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위정자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삼상 2:6-7).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세상의 대주재시요 왕이시다”(23장 1항). 최고 통치자로서 하나님은 자기의 종인 세속 위정자(civil magistrate)들을 백성들 위에 세워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23장 1항).
우리는 통치 기관은 왕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기 때문에 정치 자체를 악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보는 재세례파의 견해를 거부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 자체를 부인하는 무정부주의와 같은 급진적인 사상도 배격한다. 만약 정치가 없다면 사회는 만인이 서로 투쟁하는 사회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정치라고 해도 정치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개인의 안녕을 위해서 더 낫다. 그뿐만 아니라 위정자들의 정치를 통해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신비로운 뜻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하지만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 위정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만 사용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칼의 권세이며 이 권세를 통하여 위정자들은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악한 자들을 징벌한다(23장 1항). 심지어 위정자들은 필요하고 정당한 경우 다른 나라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23장 2항). 이를 통하여 공적인 선(public good)이 실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께서 위정자들에게 복종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권세를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인 세상 위정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칼의 권한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23장 3항). 정치는 칼의 권세 외에 교회에 부여하신 천국 열쇠의 권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시행하는 권한은 오직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이것은 비기독교 정치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기독교 정치에서도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천국의 열쇠인 권징이 정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에라스투스주의 역시 배격되어야 한다.
4.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신앙고백의 가르침
교회와 정치, 신자와 위정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앙고백서 23장 4항에 잘 정리되어 있다. “신앙이 없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위정자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세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백성들이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순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의 직무를 통하여 신자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는 기회나 여건이 되면 군인을 포함하여 위정자가 되어서 정치를 위해서 봉사를 할 수 있다(23장 2항). 이 점에서 우리는 “신자는 군인이나 정치 위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모든 견해를 반대한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군인들에게 폭정을 금하였지, 군복을 벗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경건한 신자가 위정자가 되면 보다 많은 국민이 유익을 받을 수 있고 복음 전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자가 위정자가 되었다고 반드시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왕이요 대주재이시라는 것을 믿음과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왕이시요 머리”라는 것을 고백한다(30장 1항). 교회의 머리로서 우리 주님은 세상 정치와는 다른 정치체제를 만드시고 세상 위정자와는 다른 교회의 직원(church officers)을 세우셔서 교회를 다스린다. 국가는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이 점에서 교회와 정치는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교회 직원들의 치리회인 공의회(당회, 노회, 총회)는 교회와 관련된 문제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다루거나 결정 내려서는 안 된다(31장 4항). 따라서 공의회는 상정된 안건이 교회적 사안(ecclesiastical matters)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판결해야 한다. 만약 그 안건이 교회적 사안이 아니라고 판결하면 치리회는 그 안건은 다루지 말아야 한다. 신앙고백서는 교회적 사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신앙과 교리에 관한 논쟁, 목회 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양심의 문제들(cases of conscience), 예배와 교회 정치에 관한 것들, 교회 안에서 접수된 불만들(31장 2항).
노예 문제로 미국 전체가 격렬한 논쟁에 휘말리고 내전에 빠졌을 때 미국 장로교회는 노예제 자체에 대한 논쟁도 있었지만, 이 문제를 총회가 다루어야 하는 교회적 사안인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논쟁하였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게 되자 교회는 안타깝게도 분열하고 말았다. 남북전쟁 이후 정치는 하나가 되었지만 분열된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오늘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교회가 정치와 연관된 사건을 얼마나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정치와 교회가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의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치리회는 예외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일을 다룰 수 있다(31장 4항). 하나는 비상시국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의 위정자가 요청하는 경우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시국에서 치리회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치와 관련된 안건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안건을 결정해서 그것을 정치에 제안할 때는 “겸허한 청원”(humble petition)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가 정치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하는 형식 역시 중요하다.
실천적 적용
1. 신정국가의 시대가 아닌 종교 다원화 시대에 교회와 정치는 원칙적으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교회의 생명과 성장은 복음의 순수성에 있기 때문에 교회는 정치나 세상 정치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정치가나 정치의 힘을 빌려서 어떤 특혜를 받으려고 하는 시도는 장로교 정치 원리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정치」 1장 2조 2항).
2. 비록 교회가 치리회를 통해 세상의 정치에 관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하지만 신자가 시민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권고할 필요가 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인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신자는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해야 하고, 정당에 가입하거나 건전한 시민단체나 정직한 언론을 후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교회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하는데,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기독교 기관이나 단체들이 서로 의견을 대립하게 되는 경우 교회 전체가 신뢰를 현저하게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정치가 비성경적 혹은 반성경적인 법률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시행할 때, 어떤 정치적 결정이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현저한 영향을 끼칠 때 교회는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 만일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근거로 입법기관이 성경에서 엄중하게 금하는 악법을 제정할 경우나 혹은 국가 기관이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하게 상충하는 법이나 정책을 제정하려 하거나 실행할 경우, 성경과 신앙고백에 근거한 총회의 결의에 따라 교회는 성경대로 가르치고 행하며 위정자들에게 겸허하면서도 분명하게 진리를 말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4. 순수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교회는 법률이나 정책에 대해서 진리를 말하고 시정을 요구할 때 교리적인 문제를 다룰 때보다 훨씬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교리에 대해서는 교회가 더 나은 전문성과 더 높은 권위를 가지지만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에서 공의회가 교리에 대해서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교회가 세상의 정치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할 때, 교회의 간절한 기도와 더불어 신중하고 깊은 토의와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손재익 객원기자 (reformed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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