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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청각장애인을 고칠 때에 탄식한 이유

 

 

   페이스북에 올라온 지난 글들을 보다가 한 목사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그 교회 학생들이 교인들을 상대로 조그만 장사(?)를 하여 번 돈을 부산장애인전도협회에 후원을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그 학생들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그가 장애와 관련한 얘기를 했습니다. 언젠가 설교에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보지 못함의 어려움이 훨씬 커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한 성도가 다가와 실제 생활 속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특수학교 교사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시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시각 장치가 넘쳐납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잘 쓰지 않지만, 이모티콘은 이미 젊은이의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나이키와 애플은 더 이상 말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육상 트랙을 형상화했다는 곡선 모양의 로고와, 누군가 한입 베어 문 사과 로고로 충분합니다.

 

   시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늘날만의 일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시각과 관련된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비전, 큰 그림, 관점 따위가 그렇습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눈은 마음의 창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 이런 말들은 보는 것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부터 그만큼 사람들이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듣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면서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리고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롬 10:17) 이렇게도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이런 표현들 때문에 한때는 청각장애인들이 세례를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얼마나 무식하고 몰지각한 처사입니까?) 그런 것은 차치하고서도 성경은 듣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헬렌 켈러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만일 보는 것과 듣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하여야 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았던 사람이지요. 그가 무엇이라고 답을 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사물과 멀어지게 하지만,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과의 거리를 멀게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소통 때문입니다.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에서, 여기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갈등도 많이 경험합니다. 스마트폰의 개발은 청각장애인에게 혁명이다,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에는 직접 만나지 않으면 그들은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만나지 않고도 멀리서 수어(수화)로, 또 메시지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도도 개선되어 수어통역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은 이 사회 속에서 여전히 이런저런 어려움과 불이익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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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한 청각장애인과 이숙자 사모(신흥교회 은퇴목사인 황만선 목사의 부인)를 만나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 장애인이 예수님이 청각장애인을 고칠 때에 탄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을 한다면, 청각장애인이 겪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예수님이 잘 아셨기 때문이랍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경중으로 따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어려움의 모양이 다를 뿐이지 모두 이 사회 속에서 장애로 어렵고 힘든 삶을 참고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지거나 편견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장애인전도협회 소식지(평등과 참여) 디자인은 오래전부터 한 청각장애인이 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 감각이 참 뛰어납니다. 비록 지금은 여러 사정 때문에 디자인회사를 접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그에게 계속 소식지 디자인을 맡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보입니다. 먼저 마음을 여십시오. 그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십시오. 그 마음으로 이웃과 관계하십시오.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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